150화 : 잃어버린 뇌신 (4)
“짜… 짝사랑이요?!”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지은은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엄청 강하잖아요. 통신계 헌터인 저는 전투 실력은 전혀 없어서 강한 헌터들을 동경하고 있었어요.”
“장지은 씨의 통신계 능력은 굉장한 능력 아닌가요? 여러 사람이랑 동시에 통신할 수 있는 능력은 처음 들었는걸요.”
장지은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몬스터와 싸우는 강한 헌터가 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고, 그런 헌터가 되고 싶어서 헌터 사관 학교를 나왔어요.”
헌터 사관 학교는 헌터 협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로, 전문적인 헌터를 육성하기 위한 학교다.
던전에서 활동하는 헌터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며, 육체적인 훈련도 이루어진다.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배출된 인원 중 특출나게 성과를 보이는 사람은 드물었고, 그로 인해 사관 학교의 평은 좋지 못했다.
씁쓸하게 웃은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재능이 없었죠. 만약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가 되었다면 E급에서 올라가지 못했을 거예요.”
“그럼 류설영 씨랑은 학교에서 만난 건가요?”
헌터 사관 학교에서 나온 가장 유명한 스타가 바로 류설영이었다.
“맞아요. 동기였어요. 학교에서도 성격 때문에 아무도 설영이랑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죠.”
“그런데 장지은 씨는 왜 류설영 씨랑 친하게 지내신 건가요?”
채하나의 물음에 그녀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까 말한 게 그 답이에요. 이미 학생 때부터 설영이는 엄청난 실력자였어요. 다른 사람들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죠.”
내가 워낙 어렸을 때의 이야기지만, 한참 후에 들은 적이 있다.
학생 때부터 류설영이 특출난 실력을 보였다는 얘기는 유명했으니까.
“그땐 아직 초월 능력만 가지고 있을 때였는데, 헌터에게 있어서 초월 능력이라는 건 축복과 같으니까요. 모두가 부러워했죠.”
확실히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최소 A급까지는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초월 능력이 있는 헌터와 없는 헌터는 헌터들의 취급부터가 다르니까 누구나 원할 수밖에.
“설영이는 특이한 친구였어요. 보통은 그럴 때 겸손해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받기 싫어하지만, 그 아이는 항상 다른 거만하고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걸 좋아하며 남들을 약 올렸죠.”
“…….”
뭔가 류설영답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떤 사람이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없는 사람을 약 올릴 수 있겠는가.
그의 성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백번 천번 동감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조용하고 튀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워낙 주변에서 괴롭히니까 아예 대놓고 삐뚤어진 거죠.”
“…뭔지 이해가 되네요.”
헌터 사관 학교면 특히 질투나 시기가 심했겠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착하게 있어도 욕하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나쁜 짓을 하고 다녀도 똑같다면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 이유는 없었다.
“나쁜 아이가 아닌데 나쁜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제겐 신선했어요. 그래서 친해지고 싶었죠.”
우리는 두 사람의 먼 과거를 엿보는 것처럼 얌전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사실 헌터 사관 학교를 나온다고 해서 다 헌터가 되는 건 아니에요. 헌터 협회나 길드에서도 실제로 전투가 아닌 사무 업무를 맡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저는 특히 그런 쪽으로 추천을 많이 받았지만, 한사코 헌터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장지은은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헌터가 됐지만, 저는 실력도 없고 재능도 없어서 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반대로 D급 헌터로 시작한 설영이는 볼 때마다 헌터 등급이 올라 있었죠.”
“…장지은 씨는 괜찮았나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환경이면 열등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최현 씨!”
옆에서 채하나가 다급히 내 옆구리를 찔렀다.
확실히 이건 예의 없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한참을 E급 헌터로 살아온 나이기에 궁금했다.
그토록 친했던 같은 팀원들에게도 열등감을 느꼈었던 내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모른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부러웠어요. 실력도, 그런 성격도, 재능도. 동경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친해지신 건가요?”
“설영이가 훈련하는 걸 봤거든요.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여러 무기를 훈련하는 걸 보고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참을 수 없었어요.”
류설영의 초월 능력은 ‘전쟁광’이다.
어떤 무기든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게 그의 초월 능력인데 따로 훈련까지 했다는 얘기다.
“재능이 있고, 실력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죽도록 훈련하고 있는데,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서 저는 매일 남을 질투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에게 다가갔죠. 저도 싸우는 법을 알려 달라고…….”
“류설영 씨가 받아 주셨나요?”
“물론 거절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재능이 없다면서 헌터를 포기하라는 얘기까지 했어요.”
“그건 너무해요!”
채하나가 옆에서 화를 냈지만, 나는 류설영의 마음을 이해했다.
헌터라는 직업은 단순히 고집을 부린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실력이 없는 사람이 헌터 일을 계속하다 보면 목숨을 잃을 확률도 높았다.
어쩌면 그녀를 위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매일 설영이를 따라다니면서 같이 훈련하고, 물어보고, 괴롭혔죠. 그리고 결국, 설영이에게 전투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의외네요. 끝까지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음… 아마 설영이도 저에게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
“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류설영의 성격상 누군가를 그렇게 도와줄 성격이 아니다.
애초에 장지은이 매일 따라다닐 때 거칠게 밀어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부터 그녀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다는 거겠지.
“한참이나 훈련을 했는데도 저는 재능이 없었고, 설영이는 점점 일이 많아져서 제 훈련을 봐줄 수 없게 됐어요.”
“류설영 씨는 어렸을 때부터 SS급 헌터가 됐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엄청난 파란이었죠.”
그는 최연소로 SS급 헌터가 돼서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심지어 그때 마력계 능력까지 얻었으니 무서울 게 없었고, 그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SS급 헌터가 된 설영이는 제가 따로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졌어요. 옆에 있던 사람이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니까 쓸쓸하더라고요. 처음엔 단순히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제가 설영이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럼 장지은 씨는 그 후에 통신계 능력이 각성한 건가요?”
그녀는 옆에 있는 컵을 들고 물을 마신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전투 센스는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통신계 능력엔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나 봐요. 남들보다 정신력도 강해서 오래 통신할 수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다수의 사람과 통신이 가능해졌어요.”
사실 이 얘기도 궁금했었다.
처음부터 그런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다 보니 진화하게 된 케이스였다.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도 능력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저도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덕분에 A급 헌터까지 올라갈 수 있었죠. A급 통신계 헌터는 가끔 상위 헌터들과도 일을 할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설영이 팀에 들어갈 때도 있었어요.”
통신계 헌터는 말 그대로 통신을 하는 역할이었기에 웬만한 지식과 경험이 있으면 상위 랭크 티어와도 팀을 이루는 게 가능했다.
헌터 사관 학교를 나왔고 경험도 충분한 그녀라면 가능했겠지.
“설영이랑 만나면 항상 저에게 친하게 다가와 줬어요.”
“네?! 그 류설영 씨가요?!”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묻자, 그녀가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남들 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저랑 순수하게 떠들고 노는 게 멋있었죠. 덕분에 저도 눈에 띄었지만.”
SS급 헌터는 어디에서든 사람들 눈에 띄기 마련이다.
심지어 류설영은 천재라는 타이틀과 함께 최고의 몸값을 자랑할 때였으니 더 심했겠지.
“신기하게 성격이 좋은 헌터들이 설영이에게 다가갔지만, 설영이는 그런 사람들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어요. 가끔 조금 친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떤 기준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우리 엄마랑도 친하게 지냈다고 했으니까.
류설영 만의 기준이 있겠지만, 그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는 건 확실하군.
“아, 제가 너무 혼자 떠들었나요? 오랜만에 옛날얘기를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랬네요.”
“아뇨. 즐거웠어요.”
“오랜만에 말 상대가 있어서 혼자 신났나 봐요.”
그녀는 멋쩍게 웃다가 이내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갔다.
“마지막까지 설영이에게 민폐만 끼치고 싶진 않아요. 한 번쯤은 제가 설영이를 도와줘도 되는 거겠죠?”
“당연하죠. 저는 할 수 없었지만, 장지은 씨라면 분명 류설영 씨에게 마음이 닿을 거예요.”
이내 장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힘낼게요! 반드시 장지은 씨를 지키고 류설영 씨를 되찾는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채하나가 주먹을 쥐고 소리쳤다.
“여기 병원이라고요! 제발 쉿.”
똑똑.
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채하나가 급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거봐요. 이제 채하나 씨 혼난다.”
“어… 어떡해요?! 죄송하다고 하면 봐줄까요?”
끼익.
그런 얘기를 하던 중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스르릉!
검은 로브를 쓰고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인벤토리에서 화도를 꺼냈다.
“……!”
“너 뭐야?!”
“오랜만이네요. 최현 씨.”
로브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나는 알고 있었다.
레인의 퀸.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정확히는 여기 없는 거지만요. 이건 제 분신이에요. 아쉽게도 이번엔 최현 씨가 아니라 뒤에 계신 장지은 씨를 만나러 왔어요.”
장지은은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당황하면서도 눈에 힘을 주고 퀸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를 따라오시죠. 장지은 씨. 그럼 얼마 남지 않은 그 몸을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닥쳐. 당장 류설영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 목숨을 끊겠어.”
“……!”
거친 장지은의 말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퀸 역시 그녀의 그런 저돌적인 말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왜? 허세 같아? 지금 당장이라고 할 수 있어.”
“…아뇨. 그 말을 들으니 허세로 느껴지진 않네요.”
“어차피 얼마 남지도 않은 목숨이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남을 위험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낫지.”
째엥!
옆에 있는 꽃병을 내리친 그녀는 날카로운 조각을 주워서 자신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눈은 매서웠고, 손도, 눈동자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