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 잃어버린 뇌신 (3)
“그… 그게 무슨 말이죠? 뭐든 벨 수 있는 검이라니…….”
“저도 듣기만 한 거라 정확하진 않지만, 정보라 씨의 말에 의하면 그 검은 불까지도 베어버려서 정보라 씨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다양한 무기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특수한 능력이 있는 무기는 제작도 어렵고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빙결의 갑옷이나 칠흑의 묵갑도 판다고 하면 엄청난 가격에 팔리겠지.
그런데 심지어 뭐든 벨 수 있는 검이라니…….
“그런 무기라면 정보라 씨가 어떻게 할 수 없었겠네요.”
화염을 다루는 그녀에게 불을 베어 버리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이길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정보라 씨가 쫓아낸 건가요?”
“사실 저희도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정보라 씨에게 얘기만 들었을 땐 그녀가 전투 내내 불리한 위치였는데, 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망쳤다고 했으니까요.”
마력계 헌터는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는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거다.
그런데 어째서 비숍은 정보라 씨를 처리하지 않고 도망친 거지?
“지금 저희가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겠죠. 일단 상황을 정리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최현 씨도 궁금한 걸 다 해결하셨으면 쉬도록 하세요.”
“저기 혹시…….”
걸음을 옮기려던 백진철은 내 말에 멈춰 서서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장지은이라는 분 찾아뵐 수 있을까요?”
“…흐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최현 씨라면 괜찮겠죠. 문자로 남겨 두겠습니다.”
“류설영 씨에 관한 건…….”
“어차피 전해야 하는 이야기니까 저희가 하는 것보단 그나마 류설영 씨와 가까운 최현 씨가 얘기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직접 전해야 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백진철의 말대로 차라리 내가 말하는 게 그녀에게 충격이 덜할지도 모른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병원에 다녀오시면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백진철은 다시 바쁘게 어딘가로 향했다.
저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물음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 줬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넌 괜찮아?”
“당연하지. 사실 우리가 도우러 갔을 땐 어느 정도 상황이 끝나 있었어. 차윤지가 밀리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양쪽 다 상처가 엄청났거든.”
차윤지에게 가속이라는 능력은 상당히 까다로운 능력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실제로 스승님이 능력을 쓰는 걸 봤기에 가속이 얼마나 무서운 능력인지 알고 있다.
단숨에 속도를 끌어올려서 섬광처럼 흩어지는 움직임은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런 상대를 혼자서 몰아붙인 건가.
심지어 자신의 능력과 상성이 안 좋은데…….
“최현 씨이이이!”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채하나가 내게 돌진해 왔다.
“커헉!”
“어어엉! 최현 씨! 무사했군요! 엉엉.”
“방금 교통사고 당해서 무사하지 않아졌어요.”
눈물을 쏟아 내는 채하나를 보고 서둘러 한 걸음 물러났다.
“채하나 씨는 지금 휴식기 아니에요? 왜 여기에…….”
“최현 씨가 걱정돼서 달려왔죠. 왜 그런 위험한 작전에 들어가면서 저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신 거예요?!”
그녀가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다급히 시선을 피한 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하하, 비밀 작전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전에 앙그라마이뉴가 협회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번 작전은 정말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어쩔 수 없이 길드 마스터인 신아람에게는 상황을 전달해 뒀으니, 그녀가 말한 거겠지.
작전이 끝났으니까 아무런 상관없지만.
“이젠 저도 최현 씨랑 같이 싸울 거예요.”
“네?!”
단호하게 눈물을 닦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놀라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억지는 안 돼요.”
“억지 아니거든요. 협회장님한테 말했더니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엑?!”
그 인간… 대체 무슨 꿍꿍이지?
물론 채하나의 버프 능력은 말할 것도 없어서 환영이지만, 백진철의 속내를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그럼 이제 최현 씨는 쉬시는 건가요?”
“일단 그렇긴 한데, 저는 보시다시피 멀쩡하고 건강하거든요. 그래서 가 볼 곳이 있어요.”
***
“여기 누가 계신가요? 전에 말했던 그 여동생분?”
“평소엔 여동생을 만나러 병원에 오지만, 오늘은 아니에요.”
백진철에게 받은 문자를 확인하고 6층으로 올라갔다.
병실 앞에 ‘장지은’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 최현 씨?”
“안녕하세요.”
나를 따라온 채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따라 인사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죄송해요. 몸도 불편하신데 제가 찾아뵙겠다고 해서.”
“아니에요. 혼자 병실에 있으면 엄청 심심하거든요. 말 상대라도 있으면 좋죠.”
남색 빛이 감도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굉장히 가냘파서 손대면 부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벅차 보이는 그녀는 나를 보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설영이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원래 티를 안 내는 녀석이라 그렇지, 최현 씨를 많이 아끼는 것 같더라고요.”
“…네? 저를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류설영과 어느 정도 면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친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보통 다른 사람 얘기는 잘 안 하거든요. 원래 남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성격도 이상해서 사람들이 웬만하면 거리를 뒀어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흠칫 놀라서 헛기침했다.
그런 내 행동을 봤는지 그녀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유독 최현 씨 얘기는 즐겁게 하더라고요. 실력도 굉장하고 성격도 재밌는 녀석이라고…….”
“그렇군요.”
“그래서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반짝이는 다른 건물들의 빛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창문에 비친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설영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죠?”
“……!”
“던전에서 나오고 나서 매일 저를 찾아왔어요. 그게 아니면 미리 언제 연락한다던가, 언제 찾아온다고 말해 뒀는데 오늘 아무런 연락도 없었거든요.”
말할 타이밍을 잡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녀가 먼저 얘기를 꺼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최현 씨가 저를 찾아온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눈치챘어요. 만약 최현 씨를 만난다면 설영이가 데려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쁜 소식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내 말에 고개를 휙 돌린 장지은은 울상을 지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긴 건가요? 설마…….”
“류설영 씨는 무사해요.”
그제야 그녀는 조금 안도하더니 다음 내 말을 기다렸다.
“이번에 저희는 ‘레인’이라는 길드를 토벌하기 위한 작전을 벌였습니다.”
“레인이요?!”
레인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흠칫 놀라며 손을 덜덜 떨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까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어 갔다.
“비밀 작전이었으니 아마 장지은 씨에게도 말씀하지 않으셨겠죠. 결과적으로는 저희가 승리했지만, 류설영 씨가… 레인에게 잡혀갔어요.”
“네?! 잡혀가다뇨. 납치당했다는 말인가요?!”
“정확히는 류설영 씨 스스로 간 거니까 납치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장지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이렇게 된 원인이 레인인데 가장 친했던 친구인 류설영이 그곳에 들어갔다고 하니 납득할 수 없는 거겠지.
“레인의 간부 중 한 사람이 장지은 씨를 치료해 준다는 조건을 걸었어요.”
“……!”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그녀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마 레인을 가장 미워하고 있던 사람은 류설영 씨였을 거예요.”
전에 그가 말했던 걸 생각하면 얼마나 레인을 싫어하고 증오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마치 홀린 것처럼 비숍의 말에 레인을 따라갔다.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는 장지은을 보고 잠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 제 탓이에요.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으면… 그냥 원하는 대로 살도록 뒀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제가 설영이의 모든 걸 망치고 있어요. 저 때문에 팔도 그렇게 되고, 이젠 그런 곳까지…….”
채하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 줬다.
“어쩌죠. 저 때문에…….”
사실 이미 류설영의 헌터 수명은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레인이라는 길드는 모든 헌터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돈을 위해서 다른 헌터의 능력과 목숨을 빼앗는 더러운 길드였으니까.
결국, 류설영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그들을 돕는 선택지를 골랐으니, 아마 다시 헌터로 일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한 번 배신한 사람을 믿고 같이 싸울 수는 없으니까.
“장지은 씨 탓이 아니에요. 모든 건 다 이딴 짓을 벌인 레인 놈들이 문제인 겁니다. 류설영 씨도 피해자일 뿐이니까요.”
“저는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죠?”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지만, 놈들은 분명 장지은 씨를 노리고 이곳으로 올 겁니다.”
비숍은 치명상을 입긴 했지만, 치유계 헌터가 있고 정말 퀸에게 그만한 치료 능력이 있다면 금방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레인에서 류설영 씨를 이용하려면 장지은 씨가 필요하니까요. 저희는 장지은 씨를 지키면서 류설영 씨를 되찾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장지은 씨가 필요해요.”
아무리 옆에서 내가 소리쳐도 류설영에게 닿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장지은이 말한다면 다를지도 모른다.
결국, 류설영이 싸우는 이유는 장지은이니까.
“뭐든 할게요! 제발… 제발 설영이가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너무 울어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그녀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았다.
“제가 막지 못해서 죄송해요. 힘을 써서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원래 그런 고집불통이에요. 자기가 하기로 한 건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죠.”
눈물을 닦은 장지은은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 좋은 모습만 보였네요. 제가 약해지면 안 되는데…. 항상 설영이에겐 도움만 받고 살아왔어요. 마지막까지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이번엔 제가 그를 구하고 싶어요.”
방금까지 오열하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눈엔 힘이 있었다.
“그런데 류설영 씨는 장지은 씨를 많이 아끼시나 봐요? 던전에서도 장지은 씨 때문에 내려왔다고 들었는데…….”
채하나의 말에 장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성격이 이상한 아이라서 저밖에 친구가 없었거든요.”
먼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허공을 응시하는 장지은이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그를 짝사랑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