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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47화 (147/176)

147화 : 잃어버린 뇌신 (1)

“네가 알고 있는 그 가속 능력이야. 순간적으로 자신의 신체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차윤지는 파괴력이 강한 스타일은 아니잖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윤지는 빠르고 깔끔한 움직임으로 단숨에 약점을 관통해서 대미지를 입히는 전투 방식을 취한다.

차원이 다른 전투 센스와 반응 속도 덕분에 그런 전투가 가능하지만, 만약 약점이 아닌 다른 곳이라면 그다지 큰 타격을 입힐 수 없다.

“그런 차윤지가 속도에서도 밀린다면 어떻겠어?”

“…….”

“최현, 너 괜찮아?!”

그때 이신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신예 씨?! 무사하세요?”

우리와 함께 돌입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따로 떨어져 있어서 걱정하고 있었다.

“발렌이랑 같이 있어. 발렌의 후각을 따라서 도우려고 이동 중이야.”

“저는 끝났어요.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랑은 통신이 이어지나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상대하기 힘든 능력과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최대한 빨리 지원을 가야 해.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랑 먼저 얘기했어. 다들 전투 중인데, 윤지가 고전하고 있나 봐.”

“차윤지 씨가요?!”

“평소에는 빨리 끝낸다고 하는데, 지금은 최대한 버틴다고 했어. 그 아이 성격상 그런 말은 하지 않거든.”

“저도 다른 곳으로 가 볼게요.”

그 전에 먼저 이 여자를 처리해야 하는데…….

반항하지 않는 그녀의 목숨을 빼앗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전장에 함께 데려가는 건 너무 위험하고, 어쩌지?

“미안하지만, 여기서 날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네게 선택지는 없어. 나를 다른 헌터에게 넘기고 가는 것밖에는.”

“…그런 것 같네.”

어쨌든 그녀는 레인의 간부로 많은 정보를 쥐고 있다.

그냥 둘 수는 없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내게 양손을 내밀었다.

“얼른 묶어. 물론 허튼짓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서로 편하지 않겠어?”

그녀의 현명한 반응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무효화 능력이 사라진 덕분에 인벤토리를 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인지 새삼 느껴졌다.

“너무 꽉 묶은 거 아니야?”

“시끄러워. 당신 능력은 너무 위험하다고.”

차라리 이런 식으로 그녀를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위협적일 테니까.

“가면서 다른 헌터들 얘기도 해 줘야겠어.”

“네네,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어쨌든 이 여자의 목숨은 내게 달려 있다.

그녀가 나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위치이기에 바보가 아닌 이상 이상한 짓을 하진 않겠지.

나와 그녀의 실력 차이는 현격했고, 한 번 무효화 능력에 당해 봐서 이젠 무효화만 써도 금방 알 수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랑 그 금발 남자애가 룩, 그리고 도끼를 든 사람이 나이트야.”

“그럼 비숍 하나를 빼면, 마지막은?”

“이번에 나랑 새로 들어온 비숍.”

그럼 이곳에 있는 건 비숍 둘과 룩 둘, 그리고 나이트 하나라는 건가.

간부진은 모두 들어왔다는 거군.

“우리만 모조리 잡아도 레인은 아마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을 거야. 결국, 퀸을 잡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겠지만, 당장은 복구하기 힘들겠지.”

나 역시 그녀의 말에 동감이다.

현재 레인을 이끄는 건 퀸과 아까 봤던 그 비숍.

퀸이 적극적으로 길드를 이끌고 있다곤 생각되지 않고, 비숍이 지휘봉을 잡고 있겠지.

“나이트도 초월 능력자인가?”

“마력계야. 땅을 다루는 능력을 쓰는데, 능력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능력을 잘 다뤄. 상당히 까다로울걸.”

“땅을 다루는 능력이 위협적이지 않다고?”

마력계 능력은 대부분 광범위하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파괴력이 강한 능력뿐이다.

자연을 다루기에 그런 게 가능하고, 어느 능력이든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정신력의 차이 때문인지 큰 범위를 다루진 못하거든.”

“그럼 다른 비숍은?”

일단 여기 있는 화이트 룩의 능력은 ‘무효화’.

그리고 차윤지와 싸우는 블랙 룩은 ‘가속’.

화이트 나이트는 마력계라고 했고, 비숍의 능력은 순간 이동이다.

그럼 남은 건 다른 비숍 하나뿐.

“사실 그게 문제인데, 나도 그 사람 능력은 몰라.”

“…….”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진짜라니까. 이런 걸 거짓말할 거면 처음부터 말 안 했지. 능력은커녕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모른다고.”

“그런 게 가능해? 같은 간부인데?”

“말이 같은 간부지, 사실 비숍이 가장 높은 계급이야. 나이트는 폰을 관리하는 관리직일 뿐이고, 룩은 비숍 아래에 있거든.”

걸음을 옮기면서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실력을 보자마자 바로 비숍에 올려놨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라고 했어.”

누가 누구랑 전투 중인지 모르는 상황이라 더 걱정되는걸.

***

방향만 알고 있다면 다른 팀이 있는 곳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근처에 있는 대기 중인 다른 팀에게 잡은 그녀를 넘겼다.

“무효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조심하세요.”

“조심은 무슨…. 이렇게 꽁꽁 묶여서 뭘 할 수 있는데?”

그건 맞지.

저렇게 묶여 있으면 초월 능력을 무효화 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못 하겠지.

그리고 팀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니까 괜찮을 거다.

“저희가 본부에 신병을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조심하세요.”

다른 헌터 팀의 리더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바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순간 이동으로 날렸는지 알 수 없으니 직접 찾아다니는 수밖에.

쿠웅!

바닥이 떨릴 정도의 진동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저쪽인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류설영 씨!”

“……!”

내 등장에 류설영과 그의 앞에 있는 남자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도울게요.”

“안 그래도 버거웠던 참인데, 잘 왔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키에 퀭한 눈, 그리고 긴 백발을 하나로 묶은 남자는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이 사람은…….”

“순간 이동을 쓴 그 자식이야.”

“……!”

이 자식이 그 비숍인가.

“…화이트 룩은 당한 건가. 이것보단 좀 더 버틸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버림 말이었나.

만약 화이트 룩이 무효화 능력만 쓰면서 허세를 부렸다면 그렇게 금방 끝나진 않았을 거다.

“저 자식 능력을 쓰기 위해서 시간을 버는 거예요. 던전 밖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가 봐요.”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 이 자식 덤비진 않고 도망 다니면서 시간만 벌고 있거든. 순간 이동 능력이 성가셔.”

아까 들은 얘기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비숍은 능력을 쓰기 위해선 특수계 능력처럼 무언가를 소모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던전에서 나가기 위해선 그 무언가의 회복량이 소모량보다 커야 가능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힘을 모을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 능력을 쓰게 만들면 된다는 거다.

“몰아붙이죠. 제가 앞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알겠어.”

단숨에 화도를 뽑으며 자세를 낮추고 그에게 파고들었다.

쌔엥-!

“……!”

신기루가 사라지듯 검이 훑고 지나간 곳엔 그의 형상만이 남아 있었다.

어느새 내 옆쪽으로 이동한 그는 바로 내게 검을 휘둘렀다.

캉!

그리고 다시 뒤로 이동.

파지직!

기다리고 있던 류설영의 전격이 그에게 뿜어졌고, 그는 한 번 더 거리를 벌려 멀어졌다.

말로 들었을 땐 몰랐는데, 엄청 까다롭네.

“젠장, 이동하는 모션이나 예비 동작이 없어서 잡기 힘들어.”

전에 상대했던 비숍도 블링크 능력이라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비슷한 능력이지만, 이 녀석은 다른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하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도 있으니 상위 호환이라고 볼 수 있다.

“너희가 날 잡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내게 당하고 있는 건 너희들이지.”

무슨 꿍꿍인지 몰라도 틀린 말은 아니다.

멀리 도망치면 우리가 잡지 못할 텐데, 굳이 놈이 여기서 우리랑 싸우고 있다는 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거겠지.

“차윤지는 우리가 움직일 때 상당히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다. 이번 기회에 처리해 두면 좋겠지.”

“……!”

“운이 좋으면 다른 SS급도 처리할 수 있고.”

시간 벌이라는 건가.

그가 다른 곳으로 멀리 도망치면 나와 류설영이 합류해서 도울 수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시간을 벌면서 다른 전투가 끝나는 걸 기다리는 거다.

“…너 ‘장지은’이라는 헌터를 알고 있냐?”

“그 통신계 헌터군.”

그는 류설영의 말에 바로 반응했다.

그리고 옆에서 들은 나는 그게 류설영이 말했던 친구의 이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그 능력은 지금도 우리가 잘 쓰고 있다.”

“이 개자식이!”

이성을 잃은 류설영이 바로 비숍에게 달려들었다.

파앗!

전에 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비숍은 그보다 빠르게 공격을 피했다.

애초에 순간 이동 능력을 쫓아간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했다.

“여러 명과 동시에 통신이 가능한 통신계 능력은 그녀 외엔 본 적이 없다. 가치 있는 능력이지.”

“네놈들 때문에 그 녀석이 죽기 직전이라고!”

류설영의 검은 쉬지 않고 휘둘러졌고, 검이 닿지 않을 땐 바로 전격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덕분에 비숍 역시 쉴 새 없이 능력을 쓰고 있었다.

“능력을 빼앗을 때 반항했고, 그로 인한 결과일 뿐이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

파지지직!

주변이 환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전격이었다.

평소 류설영의 전투 스타일을 알고 있기에 그의 현재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전격은 정신력 소모가 커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만 했는데, 지금 그는 무분별하게 토해 내고 있을 뿐이었다.

“류설영 씨! 진정하세요! 결국, 저희만 소모된다고요!”

“반드시 죽여 주겠어!”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그의 시선은 비숍에게만 꽂혀 있었다.

이렇게 전투가 이어지면 비숍도 계속 능력을 쓸 수밖에 없고 도망칠 수 없게 될 텐데 굳이 류설영을 자극하는 이유가 뭐지?

그를 도와서 전투에 끼고 싶지만, 도저히 전격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잠시 류설영이 움직임을 멈추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무덤덤한 표정의 비숍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라면 그녀를 낫게 해 줄 수 있다.”

“…뭐?”

“퀸의 능력인 ‘수술’을 쓰면 죽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너 이 자식 그딴…….”

“그게 정말이야?”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의 류설영이 가만히 비숍을 바라보고 있었다.

“류설영 씨…? 설마 저 말을 믿는 거 아니죠?”

“정말 살릴 수 있냐고!”

“…가능하다.”

순간 류설영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과 동시에 비숍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는 항상 이익을 좇는 집단이지. 우리 길드에 들어와서 충성을 맹세한다면 그녀를 살려 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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