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 미끼 최현 (3)
정보라의 화염을 다루는 마력계 능력은 파괴력만 보면 어느 능력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불이라는 건 그 밀도가 높지 않아도 충분히 위협적인 능력이었다.
“운이 좋아서 우리가 있는 곳을 발견한 건 아닐 테고…….”
로브를 쓰고 있는 남자가 슬며시 로브를 내리며 말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궁금한데?”
키가 큰 그는 중년의 남자로 까무잡잡한 피부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죽을 건데,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돼.”
“말 한번 살벌하게 하네.”
차윤지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썩 기분이 좋지 않겠지.
첫 기습으로 한 사람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옆에 있는 금발의 남자에게 너무나 간단히 막혀 버렸으니까.
사실 그 부분은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차윤지의 기습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냈다.
“어쨌든 우리 목표가 자기 발로 왔으니 번거롭진 않겠네.”
금발의 남자는 노골적으로 내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왜 그렇게 봐? 이렇게 기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면 처음부터 자기가 목표가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를 쏘아보자 그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차윤지의 공격을 흘릴 정도의 실력자라는 건가.
분명 무언가 초월 능력을 쓴 게 틀림없다.
“떠들려고 모인 건 아니잖아?”
쿠웅!
도진욱이 그들을 향해 손바닥을 내민 순간, 그들의 무릎이 동시에 바닥에 꿇어졌다.
“……!”
‘그레비티’.
중력 자체를 컨트롤하는 강력한 초월 능력이다.
얼마 전까지 A급 헌터였던 도진욱은 초월 능력을 얻게 되며 단숨에 몸값이 뛰었다.
중력을 다루는 능력은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지만, 아직은 그걸 제대로 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무겁긴 하지만…….”
“……!”
“아직 애송이군.”
부웅-!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난 덩치 큰 남자가 도진욱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난 도진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초월 능력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이 강해진다.
능력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진욱에겐 아직 한계점이 확실하다.
“여기 있는 다섯이 최강의 전력이라는 건가.”
“블랙 룩,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라. 여기선 능력을 쓸 수 없어.”
뒤에서 로브를 쓰고 있는 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그에게 달려들었다.
쌔엑-!
화도가 그의 목을 노리고 뿜어졌지만, 다시 한번 앞에 금발의 남자가 막아섰다.
카앙!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차윤지가 그에게 달려들어 길을 열었다.
“이거, 적극적인 누님이시구만.”
차윤지의 검이 쉬지 않고 연속으로 뿜어졌지만, 금발의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내고 있었다.
일부러 반격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반격할 여유가 없는 건지는 몰라도 계속 밀려나기만 했다.
화악!
검은 로브를 쓰고 있는 자들 중에서 가장 뒤에 있던 남자가 로브를 걷어 내자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
당황한 우리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고, 감각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경계했다.
“다들 괜찮으세요?!”
내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고 빛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하여튼 멋대로 이딴 짓을 벌이다니… 재수 없는 자식이라니까.”
앞에 있는 여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초월 능력으로 우릴 떨어뜨려 놓은 건가?”
“우리 비숍 능력이지.”
그녀는 검은색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30대 중반인 정보라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다.
“그 자식은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든. 다른 동료들을 시간 벌이로 쓴 거야.”
“시간 벌이?”
“비숍의 능력은 방금 본 것처럼 순간 이동.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이랄까.”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경계하며 물었다.
“그런 정보를 쉽게 말하는 이유가 뭐지?”
“아? 뭐, 상관없잖아. 어차피 우리 길드는 서로 돈을 벌려고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거니까.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도 그것과 같은 거고.”
주변을 둘러봐도 다른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2층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건가.
“나는 화이트 룩이야. 아까 그 금발의 남자애가 블랙 룩. 그리고 큰 도끼 막 휘두르던 사람 있지? 그쪽이 화이트 나이트.”
“……?”
그녀의 말을 들으며 멍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내가 하는 말들이 거짓말 같아?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씨익 미소를 지은 그녀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우리 계급을 알고 능력을 안다고 해서 너희가 이길 일은 없거든.”
“…그건 너무 허세 아닌가?”
이제 막 SS급이 된 세 사람이 있다고 해도 헌터들 최상위에 있는 실력자들이다.
저렇게 당당하게 이길 거라고 말하는 건 누가 봐도 허세로만 느껴졌다.
“우리 초월 능력은 온전히 너희들에게 맞춰서 얻은 거야. 비숍은 우리를 가장 까다로운 상대로 엮어서 날려 보낸 거고.”
“그 말은…….”
“어차피 SS급 헌터라고 해도 초월 능력에 기대고 있잖아? 능력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지.”
스르릉.
검을 뽑은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 초월 능력은 ‘무효화’.”
“……!”
타다닷!
말을 마친 그녀는 단숨에 내게 달려와 검을 휘둘렀다.
카앙!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두른 그녀의 검을 받아 내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무거운 검에 하마터면 자세가 무너져서 넘어질 뻔했다.
“말 그대로 초월 능력 자체를 지워 버리는 능력이야. 어때?”
“뭐?!”
“내 근처에 있는 한 사람의 능력만 지울 수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능력이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믿지 못한다면 죽어 보는 건 어때?”
꿀꺽.
한 걸음 물러나서 화도를 꽉 움켜쥐었다.
죽지 않아도 이미 초월 능력이 없어졌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내 초월 능력은 다른 초월 능력과 달리, 언제나 유지되는 ‘능력치’라는 개념이 있었기에 그게 사라지면 몸으로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감각을 느껴 본 건 처음이지만.
“뭐, 사실 그렇다고 내가 유리한 건 아니야. 무효화 능력이라는 건 본인도 결국 초월 능력이 없는 거랑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 거 치곤 너무 여유로운데?”
“재밌잖아. 이제 서로 검에 한 번 찔리면 죽는 아무것도 아닌 목숨이 되었으니까.”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훑은 그녀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누가 살아남을지 해 보자고.”
카앙! 캉!
매섭게 쏘아붙이는 그녀의 검을 받아치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능력치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몸이 제대로 적응을 못 하고 있다.
“뭐야?! 언제까지 도망치는 거야? 역시 초월 능력이 없으면 평범한 인간인가?!”
초월 능력이 없어도 지금까지 검을 휘두르고 훈련한 시간이 있다.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역시 몸이 너무 무거워.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검의 무게 때문에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확실히 무효화 능력은 거슬리네.”
“……!”
캉!
검을 휘두르기 전에 내가 먼저 파고들어서 그녀의 검을 막았다.
연화.
몸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
“그럼 혼자서 오지 말고 다른 놈들이랑 같이 덤볐어야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이 나를 이길 거라고 확신했는지 몰라도, 어이없을 정도의 자만이었다.
빠악!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 그녀의 자세가 무너졌고, 그대로 무릎을 복부에 꽂아 넣었다.
일격이 먹힌 순간 이미 승부는 결정 난 거나 다름없었다.
푸욱.
망설이지 않고 바로 그녀의 어깨에 화도를 찔러 넣었다.
“크악!”
짧은 비명과 함께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린 그녀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체 1 : 1로 나를 이긴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거야?”
“분명 능력이 없으면 별것도 없다고 했는데…….”
그녀는 떨리는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비숍이 그랬다고! 모든 능력치가 다 초월 능력이라 능력만 지우면 내가 이길 거라고……!”
틀린 말을 아니다.
힘부터 민첩까지 움직임 하나하나가 초월 능력의 능력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아까 검술을 보면 그녀 역시 검을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를 그저 초월 능력에 기대는 허접한 놈으로 본 건가.
“그러기엔 너무 수라장을 많이 겪어 왔거든. 검술이라는 건 초월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헌터 하나만 더 있었어도 아마 내가 이기는 건 불가능했겠지.”
비숍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녀만 여기로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비상하고 똑똑한 놈이라면 애초에 다른 사람이랑 그녀를 함께 보냈을 텐데.
“가진 말 중에서 최선의 수를 고른 거지.”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긴장을 풀지 않고 그녀에게 검을 겨눈 채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비숍은 자신이 살 수 있는 최선의 수를 고른 거라고. 처음 기습을 당했을 때부터 그 자식은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던 거야.”
방금까지 동요하고 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체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숍의 능력은 멀리 이동할수록 쿨타임이 길거든. 5명이나 던전 안으로 이동했으니, 밖으로 나가려면 아마 제법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거야. 우리는 그 시간 벌이로 이용된 거고.”
“…애초에 이길 생각이 없었다는 건가?”
“여기서 무리하게 널 잡으려고 했다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나는 그 남자에게 들은 게 너의 전부이니 능력만 지우면 이길 수 있다고 멍청하게 믿은 거고.”
그녀를 데리고 던전에 들어왔다는 건 나를 잡을 목적이 있었다는 거겠지.
“한 명씩 따로 떼어 놓은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는 건가?”
“아마 그럴걸? 지금쯤이면 밖으로 도망쳤을 거야.”
자연스럽게 우리를 각개 격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벌기 위해 떨어뜨려 놓았다는 거군.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미 우리가 기습했을 때 그 자식은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건가.
“자, 더 궁금한 거 있어?”
“상당히 협조적인데?”
“굳이 여기서 반항하고 죽는 것보단 협조하는 쪽이 서로 좋잖아? 어차피 붙잡힌 이상 앞으로 다시 그 자식들을 볼 수 있을 리도 없으니까.”
현실적인 사람이군.
“물러 터지게 보이지만, 만약 여기서 허튼짓하면 바로 죽일 거잖아. 보기와 다르게 무서운 눈을 하고 있거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며 다시 말했다.
“다른 쪽은 어떨지 몰라도, 빨간 망토는 위험할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그 금발 있잖아. 그 남자애의 초월 능력은 빨간 망토랑 상성이 너무 안 좋거든.”
초월 능력에 우위가 있다고 해도 차윤지는 쉽게 질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미 불안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남자애의 초월 능력은 ‘가속’.”
“……!”
가속… 그건 서진욱, 내 스승님의 초월 능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