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미끼 최현 (2)
미끼.
남을 꾀어내기 위한 물건이나 수단.
미끼를 활용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상대가 미끼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너무 티 나지 않게 광고하는 게 어렵네요.”
미끼인 걸 들키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너무 티가 나면 함정이라는 걸 들키고, 그렇다고 꽁꽁 숨기면 상대가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봐요.”
“그럼 다행이지만…….”
헌터 협회는 이번에 승급한 SS급 헌터들에 관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새로운 SS급 헌터가 생긴 건 오랜만이었기에 그런 홍보들이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레인이 끌릴 만한 미끼를 숨겨 뒀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요.”
“이 작전은 비공개로 진행돼서 저희 외엔 몇 명 정도밖에 모릅니다.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백진철은 그렇게 말하며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가 꺼낸 미끼는 SS급 헌터의 팀 변경이다.
전력의 분배라는 핑계로 SS급 헌터들을 B급이나 A급 헌터들과 팀을 짜서 던전 공략을 진행한다는 기사를 내서 레인을 끌어들이려는 게 그의 작전이었다.
특히, 내가 속한 팀은 모두가 B급 헌터라 레인이 보기엔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아닐 수 없겠지.
물론 실제로 그 헌터들과 팀을 이뤄서 공략을 진행하진 않는다.
만에 하나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이선우 씨는…….”
“……!”
이선우에게 말을 걸자 가만히 앉아 있던 그녀가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아, 죄송해요.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닌데.”
“아뇨. 괜찮아요.”
여전히 잔뜩 굳어 있는 그녀는 이 상황이 낯설어서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계속 주변 눈치만 살피는 그녀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선우 씨는 초월 능력을 누가 썼는지도 알 수 있는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누군가 초월 능력을 썼을 때 어디서 썼는지 감지할 수 있는 정도에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백진철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은 공략 자체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미리 공지를 해 뒀어요. 헌터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 외에서 초월 능력이 감지되면 바로 움직이면 됩니다.”
우리가 현재 있는 곳은 던전 1층에 만들어진 임시 작전 본부였다.
이미 SS급 헌터 5명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보다 안전한 곳이지만, 우리가 자리를 비웠을 때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 4명의 S급 헌터가 주변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SS급 헌터엔 통신계 헌터가 없기에 이신예가 지원을 왔다.
“왜 나까지…….”
“하하, 이신예씨는 치유계 능력도 있으니까 특별히 선발된 거겠죠.”
내 말에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 레인에게 노려졌던 그녀가 흔쾌히 이번 지원에 응했다는 것부터 놀랐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녀는 강한 사람이다.
“레인과 교전이 벌어지면 저희는 바로 던전에서 밖으로 이동합니다.”
“일망타진인가요?”
도진욱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에게 외부로 이동하는 능력이 있다면 만약 놈들이 도망친다고 해도 이선우가 감지해서 근거지를 찾을 수 있을 거다.
백진철은 단순히 이곳에서의 전투를 넘어서 레인을 뿌리째 뽑을 계획을 짜 둔 셈이다.
드르륵!
대화 도중 갑자기 이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C-17 구역에서 초월 능력을 누군가 사용했어요.”
“……!”
이선우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우리는 바로 본부에서 뛰어나왔다.
어쨌든 우리의 기습이 성공하기 위해선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신예가 있으니 이동하며 정보를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근처에 있는 팀들에게 물어봤지만, 초월 능력을 쓴 팀은 없어요.”
“빨리 이동하죠!”
***
2층의 C 구역 근처에서부터 우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상대는 실력자들이고 우리의 존재를 알아채면 기습의 효과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적의 숫자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 섣부르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SS급 5명이 모여 있는 팀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상당히 이상적인 팀으로 보일 수 있다.
헌터 최고 전력이 모여 있는 팀이니까 어느 팀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각자 어디서든 인정받는 실력자들이었고, 본인들도 본인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건 팀으로 움직일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기습은 속도가 생명이에요. 이렇게 늑장 부리다가 놓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도진욱의 말에도 차윤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사실 차윤지가 팀장을 맡게 되었을 때부터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그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리더라는 자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른 사람과 소통도 어색한 그녀가 팀장이 된다는 건 어째서인지 상상이 잘 안 되었다.
“정말 이러고 있을 겁니까?”
도진욱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고, 나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차윤지가 팀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현역으로 가장 활발하게 헌터 활동을 했었고, 이번에 올라온 SS급 새내기들에게 팀장 자리를 맡기는 건 더 이상했으니까.
“지금은 기다립니다.”
단호한 차윤지의 목소리에 도진욱이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가 답답해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되긴 했지만, 지금은 차윤지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았다.
이렇게 매복하고 있다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다고 해도 다음 기회가 있다.
하지만 만약 섣불리 움직여서 놈들에게 들키게 되면 다음은 오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팀장의 판단이 최우선이에요. 괜히 분열 만들지 마세요.”
“…알고 있다고요.”
정보라가 차윤지의 편을 들자 도진욱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본부는 던전 밖으로 나가서 초월 능력을 감지 중이에요.”
“형씨. 내가 가 볼게.”
가만히 기다리던 중에 발렌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발렌이 간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어차피 여기는 공략되지 않은 구역이잖아. 오크 한 마리가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건 그렇지만, 너무 위험해. 놈들이 만약 발렌을 공격해 오면 어쩌려고?!”
아무리 발렌이 보통 오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하지만, 너무 위험한 작전이었다.
적의 정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렌을 보낼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나한테는 뛰어난 후각이 있잖아.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인간 냄새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고. 위험하면 도망칠 테니까.”
“그래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까먹게 하지 말아 줘.”
발렌의 마지막 말에 결국 내가 무너졌다.
일부러 내가 이런 말에 약하다는 걸 알고 노린 거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알겠어. 그럼 일단 기다려 봐.”
조심스럽게 차윤지에게 다가가서 몰래 발렌의 말을 전했다.
“…좋아. 해 보자.”
“네? 괜찮아요?”
그녀가 너무나 흔쾌히 허락해 줘서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지금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고 발렌은 들키지 않고 이동할 수 있잖아. 뛰어난 후각이 있어서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도 않을 거야.”
“그럼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새로 SS급이 된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발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 뒤에서 몰래 발렌을 소환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하게 움직여. 위험한 상황이 되면 꼭 도망치고.”
“알았다니깐!”
발렌은 내게 엄지를 세워 보이고 천천히 우리가 있는 곳에서 멀어졌다.
이신예도 차윤지 옆에 있었기에 발렌이 움직인다는 걸 알았고, 그녀가 발렌과 통신을 이어주기로 했다.
“…! 발렌이 아무래도 발견한 모양이야.”
“벌써?!”
내가 놀라며 묻자 이신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우리 근처에 있었던 거 같아. 이제 막 발렌의 후각에 감지된 거니까 그렇게 가까운 건 아니겠지만.”
발렌의 후각 범위는 생각보다 상당히 넓어서 이신예의 말처럼 이제 막 발견해도 거리는 제법 멀겠지.
“발렌이 접근 중이야.”
그들을 발견하고 정보를 얻는 것보다 혹여나 발렌이 위험한 상황이 될지 모른다는 것에 조마조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이신예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웬만한 A급 헌터보다 발렌이 더 믿음직스럽잖아.”
나도 알고 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고.
“멀리서 후각으로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어. 서쪽으로 이동 중.”
이신예의 말을 들은 차윤지가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 서쪽으로 이동하면 돼. 다들 따라오세요.”
“드디어 가는 건가?!”
차윤지의 말에 도진욱이 반색하며 따라나섰다.
적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면 언제든 우리 쪽에서 기습할 수 있다.
다행히 저쪽에서 빠르게 이동하지 않아서 충분히 추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동하는 이유가 뭔가요?”
뛰어서 이동하던 중에 정보라가 물었다.
“그렇잖아요. 가만히 적의 움직임을 기다렸던 건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이려고 했던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달려서 이동한다는 건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에요.”
정보라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물론 이런 지적을 받아 본 적 없는 차윤지는 누가 봐도 당황한 표정이었고, 내가 거기에 끼어들었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알려 드릴게요. 확실한 근거를 전달해 주는 동료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아 두세요.”
“…알겠습니다.”
정보라는 석연치 않은 듯한 반응이었지만, 지금 상황이 급박했기에 일일이 따지고 있을 수 없었다.
조금 돌아서 이동해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고, 발렌에게 계속 위치 보고를 받았다.
“좋아. 이쪽으로 오고 있어.”
“내가 가장 먼저 들어가고 최현이 따라와. 그리고 정보라 씨와 류설영 씨가 퇴로를 차단해 주세요. 그리고 도진욱 씨는 엄호와 주변 경계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말을 마치고 바로 차윤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더를 따라 조금 떨어져서 이동했고, 멀리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보였다.
“……!”
쌔엥-!
그들이 우리를 발견하는 순간, 이미 차윤지의 검이 뽑히고 있었다.
카앙!
앞으로 튀어나온 한 사람이 차윤지의 검을 가볍게 받아 냈다.
그는 로브를 뒤집어쓰지 않아서 얼굴이 보였는데, 금발의 더벅머리를 한 젊은 남자였다.
“뭐야, 이런 이벤트는 들은 적 없는데?”
“비켜!”
쐐액!
차윤지의 뒤로 바로 따라온 내가 그에게 검을 뿜어냈지만, 그는 가볍게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금발 남자를 포함해서 숫자는 5명.
우리 팀의 수와 같았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지?!”
“뒤를 밟힌 건가.”
“SS급이 둘이나 있다니… 대놓고 노렸군.”
“나갈 준비 해.”
화르륵!
그들이 떠드는 중에 멀리서 뜨거운 불덩이가 날아왔다.
“……!”
깜짝 놀란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불덩이가 날아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가긴 어딜 나가? 여기서 다 잿더미 될 줄 알라고.”
정보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