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미끼 최현 (1)
“여동생이랑 데이트는 잘하고 왔어?”
“…당연하죠.”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자연스럽게 그의 분위기를 살폈다.
병원에서 만났을 때 류설영의 분위기는 평소와 전혀 달랐다.
평소에도 그는 자유로우면서도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마치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불안했다.
“다들 모이신 것 같으니 시작하겠습니다.”
갈색 정장을 차려입은 백진철은 여느 때처럼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넘기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오늘 이곳에 여러분을 소집한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말했던 기동 팀을 만들려고 하시는 거 아닌가요?”
나와 같이 이번에 SS급 헌터가 된 ‘정보라’가 말했다.
그녀는 30대 중반으로, 불을 다루는 마력계 헌터다.
SS급 승급 대련을 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분명 합격할 거라 생각했다.
그 정도로 실력이 좋은 헌터였다.
“맞습니다. 최근에 신월 길드와 레인이 부딪쳤었고 위험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최현 씨도 그때 같이 있으셨고요.”
백진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다행히 잘 대처한 덕분에 아무런 사상자도 없이 끝났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로 던전 공략에 큰 타격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어디서 누굴 노릴지 모르는 놈들이니까.
던전 공략은 많은 헌터가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로 던전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팀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레인의 존재 자체로 헌터들이 공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희는 이번에 팀을 꾸려서 개별적으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공략하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건 상당한 시간이 소모됩니다. 그 전에 저희의 목표인 앙그라마이뉴와 레인의 핵심 인물들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애초에 던전 공략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건 앙그라마이뉴 때문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다시 한번 아포칼립스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한 번 모아 둔 몬스터를 모두 처리한 덕분에 어느 정도 시간을 벌었지만, 놈들이 5층에 오래 머무르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번 승급 대련을 열어서 SS급 헌터 팀을 만든 겁니다.”
“다 좋은데 레인이라는 놈들은 어떻게 잡을 생각입니까?”
이번에 승급한 ‘도진욱’이 물었다.
그는 SS급 헌터들 중에서 나만큼 나이가 어린 젊은 헌터였다.
중력을 컨트롤하는 특이한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레인 길드는 외부와 던전 내부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유한성의 능력을 말하는 건가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번 일로 인해 앙그라마이뉴와 레인 길드는 더 이상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서로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이다.
원래 앙그라마이뉴와 연결 고리였던 레인의 킹이 죽었고, 퀸은 애초에 앙그라마이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번에 나를 노리지 않았던 거로 봐선 퀸은 본인이 말한 대로 당장은 내가 목적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내 능력을 노리고 있던 앙그라마이뉴와 멀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것만으로 둘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하기엔 너무 섣부른 거 아닌가요?”
“두 길드의 관계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본론으로 넘어오면 공략 도중 레인이 던전으로 들어오는 걸 본 헌터들이 있었습니다.”
“……?!”
“정확하게 말하면 어디선가 이동됐다고 할 수 있죠.”
전에 만났던 비숍이 블링크 능력을 가졌던 것처럼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초월 능력도 있을 수 있다.
“던전의 다른 층에서도 왔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면 외부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번 신월과의 전투에서 레인은 새로운 멤버로 길드를 구성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결국, 외부에서 다른 멤버를 구했다는 말이고 그건 외부와 연결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시는 게 뭔가요? 돌려서 말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요.”
“레인이 던전에 들어오는 순간, 저희 쪽에서 기습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죠.”
백진철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잠깐, 저만 이해 안 되는 거 아니죠?”
류설영이 손을 흔들어 대화를 끊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레인이 외부에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놈들이 언제 어디로 들어올 줄 알고 기습을 하죠? 설마 저희가 사방에 매복하고 있으라는 건 아니겠죠?”
“나름 협회장이라는 사람인데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않겠죠. 들어오세요.”
끼이익.
백진철의 눈이 문 쪽으로 향했고, 우리의 시선은 그를 따라 문으로 움직였다.
이내 한 어린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낯선지 잔뜩 굳어 있었다.
“이선우 양입니다. 그녀는 조금 특이한 초월 능력이 있죠.”
“특이한… 초월 능력이요?”
“쉽게 말하면 초월 능력이 발동되는 걸 감지할 수 있는 초월 능력입니다.”
“……!”
동시에 모두가 그런 게 가능하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고, 백진철은 그런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었다.
“초월 능력이라는 건 언제나 저희의 상식을 뛰어넘죠. 아포칼립스에 각성한 이선우 양의 능력은 마치 통신계 능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이 원할 때 능력을 발동시켜서 먼 거리까지 초월 능력을 사용하면 감지할 수 있죠.”
“확실히… 그런 능력이 있다면 레인을 기습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던전은 워낙 넓어서 같은 층에 있다고 해도 이동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그걸 감안해도 어쨌든 레인이 나타난 위치와 시간을 알면 우리에게 기습할 기회가 생긴다.
“처… 처음에는 능력을 컨트롤할 수 없어서 아무 때나 감각이 느껴졌어요.”
“감각?”
“네. 피부에 무언가 닿을 때 느껴지는 것처럼 초월 능력을 누군가 사용하면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은 능력을 썼을 때만 느껴지지만…….”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어째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던전 밖에서 던전 안을 감지할 수는 없어요.”
“그 말은 이 아이도 저희와 같이 던전으로 들어간다는 건가요?”
“그럴 생각입니다.”
백진철의 굳은 표정에 다들 흠칫 놀랐다.
1층은 완전히 공략된 상태지만, 던전이란 곳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었다.
“물론 충분한 보상을 할 예정이고, 그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중지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엔 거절했지만, 얘기를 듣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이선우는 방금까지와 다르게 맑은 눈으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제 능력은 나중에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능력도 아니잖아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던전에 들어가게 될 거니까 괜찮아요. 제 능력으로 나쁜 사람들을 잡을 수 있는데 만약 제가 돕지 않아서 누군가 다치거나 죽으면 괴로울 것 같았거든요.”
그녀의 말을 듣고 백진철에게 화를 내려다가 애써 삼켜 냈다.
애초에 백진철이 이선우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그런 죄책감을 짊어질 필요도 없었다.
“이선우 양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저희는 조금의 실수도 없이 빠르고 완벽하게 레인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럼 시간이랑 위치를 파악하고 기습할 수 있다고 해도 퀸이 있는지는 알 수 없잖아요.”
내 말에 백진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현 씨가 전에 보고했던 것처럼 분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더 잡기 힘들겠죠.”
저번에 퀸과 만났을 때 퀸은 분신으로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본체는 아마 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겠지.
그런 부분을 보면 퀸이 던전 내부로 직접 들어올 일은 없을 거다.
“계속해서 레인의 길드원들을 잡아가다 보면 분명 퀸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능하겠지만, 그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만약 퀸이 이선우라는 이 아이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정말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체하다간 퀸은 더 멀리 숨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미끼를 쓰는 건 어떨까요?”
“미끼?”
내 말에 반응한 건 차윤지였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차윤지는 어쩐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 능력은 레인에게 먹음직스러운 미끼죠. 유한성이 아니더라도 제 능력을 탐내고 있습니다. 레인 자체에서 원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 말대로 수요가 있는 건지는 몰라도 분명 제가 그들에게 좋은 미끼인 건 확실하죠.”
“그 말은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는 거야?”
차윤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능력을 빼앗는 능력은 퀸이 가지고 있으니 제 능력을 뺏기 위해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그때 잡는다면 분명 퀸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반대야. 너무 위험해.”
차윤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레인은 네 능력을 알고 있어. 그런 뻔한 수에 걸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잡혔을 때 네가 무슨 짓을 당할지 알고 하는 얘기야?”
죽어도 죽지 않는 능력이 내가 가진 능력이다.
그걸 알고 있는 한 죽이기보다 다른 식으로 나를 괴롭히겠지.
예전에 아르티아가 했던 것처럼.
“만에 하나 네 능력이라도 뺏기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건 저도 동감이에요.”
정보라가 차윤지의 말을 거들었다.
“최현 씨의 능력은 지금까지 있었던 다른 초월 능력과 다르게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가진 능력이에요. 만약 적이 최현 씨의 능력을 뺏는다면 저희가 감당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위험 부담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레인이에요. 가만히 두면 얼마나 더 피해가 커질지 모릅니다. 놈들이 다른 헌터들을 더 많이 사냥하면 던전 공략이 점점 힘들어지겠죠.”
안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헌터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런데 몬스터도 아닌 사람에게 목숨을 위협받으며 싸우는 상황이라면 지금 활동하는 헌터도 그만둘지 모른다.
새로운 헌터도 줄어들겠지.
“단순히 레인이라는 길드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사건이 커지면 던전 공략 전체에 영향이 미칠 거예요.”
“그래도 미끼는…….”
“안 돼. 동의 못 해.”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차윤지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너무 단호하게 반응해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저희는 헌터잖아요. 목숨을 걸고 싸워 왔고, 앞으로도 그러겠죠. 무섭다고 위험하다고 도망치면 다른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싸우는 거잖아요.”
“…….”
“이번에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던 차윤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네가 정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너 스스로 네 능력을 지켜. 그건 약속해.”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그럼 최현 씨 미끼 작전을 본격적으로 계획해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