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신월 vs 레인 (3)
SS급 승급 대련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협회는 이번 승급 대련으로 총 3명을 SS급으로 승급시킨다는 발표를 했다.
거기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와아아!”
“축하드려요!”
“우리 길드에서 SS급 헌터가 나올 줄이야.”
간만에 길드 아지트로 돌아온 우리는 내 승급 축하 파티를 열었다.
매일 같이 피 냄새나는 곳에서 싸우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하하하! 당연한 일이지!”
“왜 마스터가 그런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죠? 승급한 건 최현 씨인데요.”
채하나가 신아람을 쏘아봤지만, 이미 취한 그녀는 신이 나서 다시 술을 따르고 있었다.
“저렇게 마셔도 되는 거예요?”
“오늘은 좋은 날이기도 하니까 그냥 두자.”
이민하 역시 이런 분위기가 즐거운 듯 웃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뭐랄까. 좋아하는 연예인이 성공하면 이런 기분일까요?”
채하나가 내게 다가와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건네주었다.
“최현 씨라면 분명 SS급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바보 같죠? 제가 된 것도 아닌데 들떠서…….”
“아니에요. 채하나 씨에게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다른 것보다 이렇게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강해질 수 있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채하나 씨 버프만 있으면 SSS급 헌터도 될 수 있겠는걸요.”
“그게 뭐예요!”
물론 SSS급이라는 등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채하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채하나가 버프만 걸어 준다면 그보다 든든한 것도 없다.
“좋은 분위기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
“협회장님?!”
옆에 있던 장수주가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봤고, 백진철은 내게 대화를 하자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나는 잔을 내려놓고 그를 따라 나갔다.
“금방 다녀올게요.”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백진철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요?”
“조사는 진행 중이지만, 아마 그때 얻은 정보 이상의 것을 얻긴 힘들어 보입니다. 포획한 자들이 직접 움직인 거라면 몰라도 당한 쪽이라면 저희가 원하는 수준의 정보는 나오지 않겠죠.”
백진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버림 말로 쓰인 그들에게 비숍이라는 자가 레인의 중요한 내부 정보를 공유했을 리 없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얻은 정보는 그리 많지 않네.
“아, 그리고 SS급 헌터가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준 사람이 축하해 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하하, 형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협회 내부의 간부진이 회의한 끝에 나온 결론이니까요.”
백진철은 내게 손을 건네왔고, 나는 차가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부담스러우시겠지만, 저는 최현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크거든요.”
“부담스럽네요.”
“하하하! 팬심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보다 그때 말했던 팀은 언제 꾸릴 생각이신가요?”
던전 2층을 공략하는 중인 상황에서 서둘러 SS급 승급 대련을 진행한 건 이 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앙그라마이뉴의 차은주와 레인 길드의 퀸을 잡기 위한 특수 팀.
이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아마 백진철은 특수 팀을 짜기 위해 박차를 가하겠지.
“최대한 빨리 진행하려고 합니다. 최현 씨를 비롯한 다른 네 사람에게도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다른 네 사람이라면…….”
“이재문 씨를 제외한 분들이죠. 류설영 씨도 참가를 거절한다면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이재문은 팀에 들어가서 직접 작전을 뛰진 않겠지.
하지만 류설영은 의외였다.
그는 한참이나 자리를 비웠고, 앞으로 헌터로서 활동하기 위해선 이런 중요한 상황에 빠지지 않는 게 좋을 것이었다.
“오래 혼자서 지내셨으니 팀에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참가하시는 게 더 좋지만, 거절한다면 억지로 넣진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SS급 헌터들은 개성이 넘쳐서 팀으로 모이면 섞이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와 차윤지는 같이 싸운 적이 많아서 부딪히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문제였다.
“팀에 관해서는 구체화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사적인 얘기인데…….”
백진철은 답지 않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내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묘하게 긴장돼서 가만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동생분이신 최율 씨에 관한 얘기입니다.”
“율이요? 율이가 왜요?!”
백진철의 입에서 나온 예상 밖의 이름에 흠칫 놀라며 그에게 성큼 다가갔다.
당황한 백진철이 한 걸음 물러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진정하시죠.”
“아…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 앞으로 나선 걸 깨닫고 서둘러 물러났다.
“저번 협회장님께서 최현 씨와 모종의 거래를 했었죠?”
그가 말한 거래라는 건 아르티아 토벌에 관한 걸 비밀로 하고 윤서훈이 율이에게 신약을 공급해 준다는 거래였다.
그 후로 윤서훈은 협회장 자리에서 내려왔고 백진철은 윤서훈이 했던 거래를 이어 가 줬다.
그에겐 그렇게 할 만한 이유가 없었지만, 협회에서 한 것을 쭉 책임지겠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아시겠지만, 약은 여전히 잘 공급되고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율이와 연락을 했기에 그런 건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제가 직접 약을 가지고 찾아갔는데, 최율 씨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최현 씨가 언제쯤 휴가를 얻을 수 있는지.”
“…율이가요?”
“제 오지랖이라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아닙니다.”
백진철의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가 됐다.
“여기서부턴 최현 씨가 판단할 문제이니 저는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율이와 언제 봤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항상 던전에서 지내거나 그것도 아니면 길드 아지트에 있으니 율이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아니, 시간이 없다는 건 변명이겠지.
내 욕심 채우느라 율이를 챙겨 주지 못한 것뿐이다.
“최현 씨에게 직접 묻는 건 아무래도 미안했던 모양이더군요.”
율이는 내가 자신의 약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바삐 일한다고 생각한 건가.
무거운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
다음 날 바로 율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오빠?! 정말 오빠야?”
“미안해. 자주 못 와서.”
“아니야! 나 혼자서도 잘 노는 거 알잖아. 오빠 SS급 됐다며!”
율이는 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엄청나잖아! SS급이라니…. 난 오빠가 A급만 돼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SS급은 정말 상상도 못 한 거 있지?!”
“이제 어디 가서 자랑해도 돼. 오빠가 SS급 헌터라고.”
“이미 병원 사람들한테 자랑했거든!”
신나서 얘기하는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율이의 병세는 전보다 나아져서 이젠 병원에 있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호전되었다.
얼마 후에 퇴원할 예정이었기에 한 번 올 생각은 있었지만, 백진철에게 그런 얘기를 들으니 미룰 수 없었다.
“율아, 나한테 떼써도 돼.”
“내가 애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이야.”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해도 되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달라고 해도 돼.”
율이는 내 말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나 그런 거 없다니까.”
“알겠어. 없으면 괜찮지만, 앞으로 참지 않아도 되니까 뭐든 얘기해 줘.”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친 율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꼭 말할게.”
율이는 나와 달리 똑똑한 아이다.
아마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금방 눈치챘겠지.
“그럼 오늘은 율이랑 오랜만에 데이트나 할까?!”
“정말?! 외출하는 거야?”
“후훗. 이제 네가 알던 그 가난뱅이 오빠가 아니라고. 집이든, 차든 말만 해!”
“떡볶이 먹고 싶어. 매운 거로.”
“…떡볶이?”
율이의 대답에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율이 답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게 우리에게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아!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맛있는 거 잔뜩 먹고 오자.”
“최현?!”
뒤에서 들려온 내 이름에 나와 율이의 시선이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류설영 씨?!”
눈이 동그래진 류설영이 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내 표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시 복도로 나와 그와 이야기를 나눴고, 류설영은 전에 말했던 그 친구가 이 병원에 있다고 한다.
나도 율이에 대해 말해 주자 류설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쩐지, 네 엄마랑 쏙 빼닮았더라.”
류설영은 우리 엄마와 아는 사이였고, 17층에 갔을 때 그 인연으로 나를 도와줬었다.
“친구분은 어때요?”
“좋지 않아. 위급하다는 얘기만 들어서 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병이 아니라면…….”
“레인 길드에게 당한 거야.”
“……!”
레인 길드라는 말과 함께 류설영의 살기가 단숨에 복도를 집어삼켰다.
너무나 짙은 살기라 당황해서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고, 류설영은 그제야 놀라서 살기를 갈무리했다.
이 정도의 살기는 일반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니까.
“레인 길드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원래 그 녀석은 통신계 헌터로 유명했어. 한 번에 여러 명과 통신할 수 있는 특수한 통신계 능력을 가지고 있었거든.”
“…레인이 그걸 노린 건가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능력을 빼앗으려고 하자 거칠게 반항했고, 그 과정에서 심각하게 다친 모양이야.”
“…….”
“너도 들었지? SS급들을 모아서 팀을 짠다는 얘기.”
류설영은 지금까지 본 어떤 표정보다 살벌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조건 그 팀에 들어갈 거야. 그리고 레인은 내가 박살 낸다.”
“그 팀의 목적은 그게 아니잖아요. 퀸이랑 하은주만 처리하면 그 과정에서 대부분 정리되겠지만 길드는 자연스럽게 와해할 거예요.”
내 말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범죄자야. 돈을 위해서 능력을 뺏고 그것 때문에 사람 목숨까지 빼앗은 살인자들인데 편하게 살게 해 줄 순 없지.”
“그건 알지만…….”
내가 걱정되는 건 그딴 쓰레기 자식들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에서 사적인 감정이 섞이면 자칫 위험해질 수 있었다.
특히 평소에 이성을 유지하던 류설영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나까지 불안해질 지경이었다.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생각은 없어. 레인은 나 혼자면 충분하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놈들이 무슨 초월 능력을 가졌는지도 모르는데 혼자서 어떻게 싸워요? 저처럼 목숨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거든. 혼자서 간다고 하면 협회에서 절대 허락해 주지 않았을 테니까.”
류설영의 말대로 백진철은 그게 누구든 혼자 활동하도록 두지 않았다.
류설영도 마찬가지겠지.
그렇기에 팀에 들어가서 형식적으로는 팀 활동을 하는 척 혼자서 레인과 싸우겠다는 거다.
“하지만 류설영 씨…….”
“부탁할게. 막지 말아 줘. 내가 던전에서 내려온 건 저 녀석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젠 내 삶의 목표는 레인을 부수는 것뿐이거든.”
그의 목소리에 담긴 씁쓸함에 나는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