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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42화 (142/176)

142화 : 신월 vs 레인 (2)

“다들 무사해?”

어깨에 다른 헌터 하나를 짊어지고 온 유지한 아저씨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아저씨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손님이 끊이질 않네. 얼른 이쪽으로 와서 줄 서요.”

이신예의 말에 유지한 아저씨는 고분고분 걸어와 발렌 옆에 앉았다.

다행히도 다른 놈들이 덤비지 않았던 걸 보면 여기 있는 네 사람이 전부였던 모양이다.

다들 상당히 지쳐 있었고, 차윤지도 빠져 있으니 이신예를 노리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일단 다 묶어 두긴 했는데, 이제 어떡하죠?”

민혁이의 물음에 이신예가 발렌을 치료하며 말했다.

“협회 쪽에 통신으로 보고해 둔 상태야. 곧 다른 헌터들이 지원을 올 거니까 기다리자.”

문득 이런 상황에서 이신예의 담담한 반응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에게 노려진다는 건 다른 의미로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팀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위험할 뻔했어. 심윤성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니까.”

“그러고 보니 전투가 처음 시작될 때 어떻게 된 건지 나는 못 봤구나.”

“아저씨가 혼자서 넷을 상대하고 있었거든.”

민혁이의 말에 흠칫 놀라며 쓰러져 있는 심윤성 아저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지도 몰라. 자는 우리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다 받아치면서 달려드는 놈들까지 상대하셨으니까.”

“…그랬구나.”

매일 술만 마시는 아저씨지만, 역시 S급 헌터인가.

나와 민혁이는 크게 다친 게 없어서 발렌과 유지한 아저씨만 치료를 받았다.

두 사람을 치료한 이신예는 땀을 닦으며 깊은숨을 토해 냈다.

“끝났어요.”

“고생하셨어요.”

그녀는 상당히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채하나 만큼은 아니지만, 이신예 역시 정신력이 일반 헌터에 비해 상당했다.

어제 전투 이후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발렌의 서포트와 세 사람의 치료를 끝냈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할지도 모를 정도로 엄청난 정신력이었다.

“으윽…….”

“그럼 이제 우리도 잃은 만큼 얻을 차례지.”

그렇게 말한 유지한 아저씨가 정신을 차리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와 싸웠던 헌터로, 자신을 룩이라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정신이 드냐?”

“이거 풀어! 그 자식이 지금 가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자식?”

지금 상황에 몹시 흥분한 그는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몸부림쳤다.

스르릉.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나는 장난을 좋아하지 않고, 성격이 급하거든. 허세인지 시험해 보고 싶으면 해도 좋아.”

유지한 아저씨의 날카로운 검 끝이 그의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이름은?”

“…장태빈.”

짧은 노란색 머리카락으로 염색한 그는 눈매가 날카로웠고, 나이는 나보다 어려 보였다.

율이와 비슷한 또래 정도인가.

레인이라는 길드는 전체적으로 나이가 어린 것 같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킹 자식이 다루기 쉬운 어린 사람들로 구성한 거겠지.

“너는 스스로 룩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사실이냐?”

“그건…….”

“우리도 너희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거든. 만약 여기서 거짓말이 나오면 바로 네놈을 죽일 거다.”

유지한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흘러나왔고, 장태빈은 흠칫 놀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저번에 자신이 킹인 척하고 투명화 능력을 가진 레인 길드원인 최윤수를 우리가 데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블러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최윤수가 장태빈에 대해 알고 있지 않으면 통하지 않겠지만.

“거짓말이 아니야. 사실이야.”

“…그렇군.”

장태빈은 순순히 대답했고, 유지한 아저씨는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다른 녀석들은 무슨 계급이지?”

“당신과 싸웠던 저 남자도 나와 같은 룩이야. 그리고 활을 쏘는 여자애는 나이트, 다른 하나는 폰.”

우리를 기습한 건 룩 두 명과 나이트 하나, 폰 하나라는 건가.

“아까 말했던 그 자식이라는 건 누구지?”

유지한 아저씨의 지금 모습은 내가 알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차갑게 살기를 뿜어내며 정말 당장에라도 죽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게 취조를 위한 연기인지, 아니면 길드원이 노려졌다는 것에 대한 분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아 있는 다른 비숍. 이름은 몰라. 그 자식이 우리 길드의 전략가거든.”

전에 유한성의 공간에서 비숍 하나를 쓰러뜨렸으니, 이제 남은 간부는 장태빈이 말하는 비숍 하나뿐이었다.

“대부분 표적을 정하거나, 전략을 짜는 건 다 그 자식이 하는데, 이번에도 우리를 보낸 건 그 자식이야.”

“퀸은 관여하지 않는 건가?”

내 물음에 그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퀸은 그놈을 완전히 신뢰하고 그 자식이 하자고 하는 건 대부분 따르거든. 덕분에 우리가 이런 꼴이 됐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봤던 퀸은 그렇게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리를 챙기고 명분 따위는 하찮게 생각하는 그런 여자였다.

만약 그 비숍이라는 놈이 실력이 없는 인간이었다면 퀸이 그런 신뢰를 주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충분히 믿을 만한 전략을 보여 줬는데, 이번에 이런 실수를 했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애초에 지금까진 내가 없었는데 왜 내가 합류한 이후에 기습해 온 거지?”

이들이 노리는 게 내가 아닌 이신예라면 굳이 지금 타이밍일 필요가 없다.

나와 차윤지가 모두 빠져 있는 타이밍이라면 어쩌면 전략이 성공했을지도 모르니까.

“나도 몰라! 우리가 작전을 전달받은 건 이미 네가 합류한 이후였다고! 차윤지가 돌아오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다는 얘기만 들었어.”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난듯한 말투였다.

만약 비숍이라는 놈이 애초에 이신예를 노리지 않았다면?

“새로운 킹은 없는 건가?”

아무래도 유지한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퀸은 킹을 새로 들이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어. 킹은 몰라도 우리 길드가 이번에 유명해져서 지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

역시 그랬던 건가.

레인이라는 길드는 체스의 계급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앙그라마이뉴처럼 공개적으로 큰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다수가 움직여서 한 사람을 노리는 형태의 조직이었기에 인원이 많다고 좋진 않다.

오히려 꼬리만 밟혀서 더 움직이기 힘들겠지.

“왔나 봐요!”

이신예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다른 헌터들이 보였다.

협회 소속의 헌터들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묶어 둔 레인 길드 헌터들의 신병을 확보했다.

“다들 무사하신가요?”

“어떻게든요.”

뒤따라온 백진철은 우리의 상태부터 살폈고, 유지한 아저씨는 취조를 하며 알아낸 사실을 그대로 백진철에게 전했다.

레인이 꾸준히 던전 안에서 활보하고 다니는 건 우리가 아닌 다른 헌터들에게도 상당히 위협적이었으니까.

“일단 다들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잘못됐겠지만, 저들과 싸운 게 여러분이라 다행이네요.”

백진철의 말뜻을 알 수 있었기에 우리는 칭찬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보다 저들은…….”

“버림 말이겠죠.”

유지한 아저씨의 말에 백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만약 작전이 성공했다면 저들은 다른 곳에서 또다시 이런 식으로 쓰였을 거다.

비숍이라는 자가 원하는 건 표적인 이신예가 아니었다.

저들을 길드에서 자연스럽게 내버릴 수 있는 것.

“협회에서 대대적으로 레인에 관한 것을 공개했고, 오히려 레인을 홍보해 주는 꼴이 되었군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레인 놈들에게 당했다고밖에 볼 수 없죠.”

비숍이라는 놈이 여기까지 꾸민 거라면 무서운 놈이 틀림없다.

던전에 레인 길드가 숨어 있다면 협회는 그들의 존재를 묵인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지면 협회의 입지가 무너질 테니까.

헌터들의 안전을 위해 협회는 레인에 관한 걸 공지했고, 레인은 그걸 이용해서 더 강하고 실력 있는 헌터들을 길드로 영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길드 내에 있는 실력이 부족한 헌터들을 쫓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게 바로 저들인 거겠지.

“말하자면 세대교체라는 거군요.”

“하아, 저 녀석들도 제법 실력이 뛰어난 놈들이었는데, 저것들보다 더 강한 놈들을 앞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백진철이 고개를 숙였다.

“항상 저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돌아가면 바로 저들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백진철은 잠을 자는 심윤성 아저씨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돌아가는 게 좋겠네요. 그런 전투를 겪은 후니까 돌아가서 충분한 휴식을 하시죠. 어차피 며칠 남지 않았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유지한 아저씨는 백진철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어쨌거나 지쳐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치료는 마쳤다고 하나, 심윤성 아저씨와 이신예를 계속 여기에 두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대로 백진철과 협회 소속 사람들을 따라 베이스캠프로 돌아갔다.

***

“누우면 바로 기절할 거 같아.”

“동감.”

베이스캠프에 돌아오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 피로가 몰려왔다.

우리는 다들 같은 자세로 축 처져서 좀비처럼 흐느적거렸고, 이미 우리 소식이 베이스캠프에 돌았는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여기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시고 던전 밖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백진철과 유지한 아저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희는 이 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알아내는 게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죠.”

인사를 나눈 뒤 백진철은 서둘러 어딘가로 향했다.

안 그래도 던전 공략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은데 저 사람도 고생이구나.

아마 나는 때려 죽어도 저런 일은 못 할 거란 생각이 든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아… 왔냐?”

유지한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하루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는 순간, 지금 하루의 기분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평소엔 자신의 표정을 완전히 숨기고 가면을 쓴 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게 하루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화가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표정이었다.

“레인 길드 쓰레기들은 어디 있죠?”

“협회에서 데려갔어. 네가 오면 멀쩡히 돌아가진 못할 테니까.”

“왜! 왜 그냥 가게 뒀어요!”

하루가 소리를 빼액 지르자 유지한 아저씨가 귀를 틀어막았다.

“네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부터는 협회에 맡기는 게 맞아. 너도 알잖아. 그리고 지금 화가 나는 건 너뿐이 아니야.”

유지한 아저씨는 물론이고 민혁이도, 그리고 정신을 차린 심윤성 아저씨도 살기등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월이라는 길드는 이런 길드라는 걸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유쾌하고 즐거운 길드지만, 그게 누구든 길드원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을.

“신월을 건드린 걸 후회하게 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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