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신월 vs 레인 (1)
톤파를 주 무기로 다루는 그는, 내게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검을 휘두를 거리도 주지 않고 쉴새 없이 내게 달려들어 공격을 퍼부었다.
내가 밀릴 정도로 차이가 벌어지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길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발렌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그쪽도 상황이 나쁜 건 마찬가지였다.
“날 상대로 눈을 돌리다니… 자존심 상하는데!”
카앙-!
톤파와 화도가 맞부딪히며 찢어지는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을 룩이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내 상대가 아니다.
어떻게든 내가 이길 수 있지만, 문제는 그때까지 다른 팀원들이 버틸 수 있느냐다.
중상을 입은 심윤성 아저씨와 그를 치료하는 이신예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유지한 아저씨와 민혁이가 다른 두 사람을 맡고 있지만, 상당히 지친 탓인지 불리해 보였다.
“그 빨간 망토를 이겼다고 해서 기대했더니, 실망인데. 퀸이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건 목숨이 많다는 장점 하나뿐이었나.”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거든!”
파악-
거칠게 발로 그를 밀쳐 냈고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바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방어 자세를 취하는 그를 보고 화도를 아래에서부터 끌어올렸다.
앵화.
“……!”
톤파를 쥐고 있는 그의 팔이 위로 쳐올려졌다.
무방비 상태의 그의 몸 안쪽을 노리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까앙-!
“…뭐?!”
분명 그의 몸을 베었다고 생각했는데 화도는 아무것도 베지 못한 채 막혀 버렸다.
빡!
“커헉!”
곧바로 그의 톤파가 내 어깨를 내리찍었고,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놀랐지? 내 초월 능력이거든.”
씨익 웃은 그는 로브를 걷고 그 안의 옷을 젖히며 자신의 몸을 보여 줬다.
금속처럼 반짝이는 그의 몸은 은색 래커로 칠한 것처럼 보였다.
“…함부로 능력을 떠벌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닥쳐! 내가 왜 너 따위 명령을 들어야 하는데!”
뒤에 있는 다른 동료를 까칠하게 쏘아 댄 그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때? 좀 알겠어? 초근접 무기인 톤파와 검으로 벨 수 없는 피부. 넌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거야.”
“그건 해 봐야 알지.”
“좋아 좋아! 좀 더 즐기자고!”
카앙! 카캉!
그의 말처럼 내가 그를 쓰러뜨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검이 통하지 않으니 아무리 빈틈을 파고든다고 해도 대미지를 입힐 수 없다.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한 말이었나.
쿠웅!
“…! 발렌!”
세 사람이 있는 쪽에서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일어나는 게 보였다.
“한눈팔지 마!”
부웅-!
톤파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쪽은 괜찮아.”
“…이신예 씨?!”
전투를 계속하며 통신으로 들려오는 이신예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우리 쪽에 있는 녀석은 메이스를 쓰는 힘이 무지막지한 놈이야.”
“괜찮으신 거죠?”
“일단은 발렌이 막아 주고 있지만, 조금씩 밀리고 있어. 의족 때문에 움직임에 망설임이 생기는 것 같아.”
이신예가 심윤성 아저씨를 치료하면서 발렌의 서포트도 해 주는 모양이었다.
“다른 두 사람도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
지쳐 있다고 해도 S급 헌터들이다.
쉽게 당하진 않겠지.
지금은 그들을 믿고 내 앞에 있는 놈부터 빨리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목숨도 많다면서 계속 도망만 다니는 거야?!”
“너 같은 놈한테는 목숨 하나를 빼앗기는 것도 아깝거든!”
쐐액!
화도를 뒤로 당겼다가 튕기듯 앞으로 찔렀다.
내 공격을 봤으면서도 가만히 서서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칵!
“안 통한다니까!”
이내 톤파가 묵직하게 내 얼굴의 옆쪽을 후려쳤고, 어느새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분명 까다로운 놈이긴 하지만, 타격이 강하진 않았다.
톤파 자체가 상대를 죽이기엔 그다지 살상력이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톤파의 형태로 검날이 붙어 있는 무기도 있지만, 그가 이런 무기를 쓰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근력이 좋지 않은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톤파는 가벼운 금속으로 만들어졌기에 저렇게 빠른 움직임으로 나를 몰아칠 수 있는 거겠지.
그리고 이렇게 직접 타격을 당했는데도 크게 대미지가 없는 걸 보면 애초에 근력이 부족한 녀석이다.
“SS급 헌터를 쓰러뜨린 놈을 내가 잡으면 나도 SS급 헌터가 되는 건가?”
로브 안에서 히죽거리는 그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검날이 달린 톤파는 오래 쓰지 못하고 기동력이 떨어진다.
감정적이고 화끈한 척하지만, 자신이 나를 상대로 시간 벌이용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날 죽여 봐야 어차피 다시 부활할 테니 시간을 버는 무기면 충분할 테지.
“슬슬 끝낼 시간이네.”
“뭐라는 거야? 지금까지 나한테 상처 하나 못 낸 주제에.”
라이프 파워의 쿨타임은 5시간.
잠들기 전 전투에서 사용한 탓에 지금까지 쿨타임이라 쓰지 못했다.
스르릉.
화도를 집어넣는 걸 보고 그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뭐야, 끝낸다는 게 포기한다는 거였냐?”
“그럴 리가. 널 처리하는 데 검도 필요 없다는 뜻이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더블 라이프 파워는 쓰지 않았었다.
쿨타임이 무려 48시간이나 되는 스킬이니 아껴 두길 잘했지.
“허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야.”
놈이 괜히 시간을 끌면 귀찮아진다.
방심하고 있을 때 바로 처리하는 게 최선!
칠흑의 묵갑으로 장비를 바꾸자, 그가 내게 달려들었다.
“알고 있다고! 그 갑옷은 블링크를 쓸 수 있는 갑옷이지?!”
부웅-!
톤파가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그의 뒤로 이동했다.
“어차피 어떤 공격도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
빠악!
“……?!”
무릎으로 놈의 등을 찍었고, 놈은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래도 앞으로 꼬꾸라졌다.
쿠웅! 쿵!
쓰러진 놈의 등에 주먹을 내리찍었고, 그럴 때마다 철로 된 피부가 휘어지는 게 보였다.
“컥! 커헉!”
“벨 수는 없지만, 뭉갤 수는 있거든.”
“그… 그만! 그만!”
물론 그만할 리 없다.
깍지까지 끼고 있는 힘껏 내리치자 아예 등이 찌부러지는 걸 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잃었는지 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바로 돌아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발렌!”
“늦었다고, 형씨!”
“크아아악!”
발렌과 손을 잡은 채 힘 싸움을 하고 있는 남자는 손목이 꺾이며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 자식! 오크 따위가 무슨 힘이……!”
“왜 그래? 아까는 힘에 자신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대로 발렌이 찍어 누르자 팔이 기괴하게 꺾이며 남자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까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팔이 비틀어졌고, 손을 뗀 발렌이 바로 팔꿈치를 얼굴에 꽂아 넣었다.
빠악!
일격.
한 번의 공격에 정신을 잃은 남자는 그대로 몸이 무너져 내렸다.
“하마터면 질 뻔했다고. 스킬이 있으면 빨리 좀 쓰지.”
“나도 그러고 싶었거든?! 없는 걸 어떡해!”
발렌은 내 능력치에 비례해서 발렌의 능력치도 상승하기 때문에 스킬을 쓰면 발렌도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두 녀석은 처리한 건가.
남은 건 뒤에서 지켜보던 중저음 목소리의 남자랑 활을 다루는 헌터다.
“심윤성 아저씨는 어때요?”
“위험한 상황은 넘겼어. 발렌을 서포트하느라 치료에 전념하지 못해서 회복하려면 좀 더 걸릴 거야.”
“알겠어요. 발렌 너는 어때?”
내 물음에 발렌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의족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면 알잖아. 미안하지만, 더 돕긴 힘들겠어.”
“…그렇네.”
의족은 조금 망가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으스러져서 제 모습을 잃은 상태였다.
“아저씨 치료가 끝나면 발렌도 치료해 줄 테니까 옆에서 기다려.”
“나… 나는 괜찮은데.”
“시끄러! 기다리라면 기다려.”
“…….”
이신예의 매서운 말에 발렌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그녀 옆으로 총총 뛰어갔다.
“그럼 여기는 부탁드릴게요. 무슨 일 생기면 통신해 주세요.”
“알았어. 너도 조심해.”
어쨌든 다른 두 사람이 아직 싸우고 있으니 나는 그쪽을 도우러 가야 했다.
지금까지 둘이 버티고 있었던 걸 보면 내가 가세하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쒸익! 파악!
“……?!”
내게 날아오던 화살에 다른 화살이 박히며 바닥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현아! 조심해!”
다시 활시위를 당기는 민혁이를 보고 자세를 낮췄다.
“저 자식, 단순히 화살을 쏘는 게 아니야. 쏜 화살을 조종하고 있어.”
“뭐?!”
한참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쏘는 검은 로브의 헌터는 내게 그 끝을 겨누고 있었다.
쒸익- 팍!
민혁이가 말한 것처럼 화살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날아왔고, 민혁이는 그 화살을 조준해서 맞추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화살을 맞추는 것도 놀라운데, 저렇게 멋대로 움직이는 화살을 명중시키는 실력에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뒤는 어때?”
“다른 둘은 정리했어. 이제 저 녀석이랑 유지한 아저씨가 맡은 놈만 남았어.”
서둘러 민혁이 쪽으로 이동했고, 민혁이는 검은 로브의 헌터에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난 저 화살을 막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해.”
“뭐?! 날아다니는 화살을 맞추는 게 얼마나 대단한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 말에 민혁이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말은 고맙지만, 보면 알다시피 방향이 바뀌는 탓에 속도가 그렇게 빠르진 않거든. 활 하나로 S급까지 왔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민혁이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날아오는 화살을 맞춰서 떨어뜨렸다.
저 헌터는 자신이 쏜 화살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초월 능력을 가진 건가?
성가시지만, 그렇게 위협적인 능력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상대와 싸울 때 유도 화살이 날아온다면 끔찍했겠지.
민혁이 덕분에 완벽하게 차단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엄호할게. 빠르게 처리하자.”
“알겠어.”
민혁이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오직 활 실력 하나로 S급 헌터까지 올라온 실력자였다.
화살은 몬스터의 약점을 정확하게 맞히지 못한다면 그다지 강한 무기가 아니었다.
초월 능력도, 특수계 헌터도 아닌데 민혁이는 완벽하게 원하는 곳에 화살을 명중시키며 S급 헌터가 된 것이다.
그런 그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는단 말인가.
타다다닷!
자세를 낮추고 앞으로 달려 나가자, 앞에 있던 헌터가 다급히 내 쪽으로 화살을 쐈다.
파악!
“역시!”
다시 민혁이의 화살이 날아오던 화살을 정확하게 쳐냈고, 나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헌터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쌔엥-!
“……!”
뒤로 넘어지듯 검을 피한 그… 아니, 그녀의 로브가 화도에 베어졌다.
로브 안에 있는 얼굴은 너무나 어려 보여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울먹거리는 그녀에게 검을 겨누며 쏘아봤다.
“몇 살이야?”
“…열여덟.”
그녀의 말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죄… 죄송해요.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아…….”
스르릉.
화도를 다시 검집에 집어넣는 순간, 주저앉아 있던 그녀가 단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빠악!
내 주먹이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꽂혔고, 평범한 주먹이 아니기에 아픈 정도로 끝나진 않았다.
코뼈가 나가 버린 그녀는 그대로 기절한 상태였다.
“너무 뻔한 레퍼토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