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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40화 (140/176)

140화 : 모어 라이프 (2)

“…차윤지 씨는 매일 이런 전투를 해 왔던 건가요?”

“하하하! 벌써 지친 거야?”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심윤성 아저씨의 수염을 뽑아 버리고 싶었다.

신월 길드 팀에 합류한 지 이틀이 지났는데 벌써 피로 때문에 몸이 무거워졌다.

“애초에 윤지가 정상이 아닌 거지.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이신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괜히 차윤지가 했던 것이라고 하니까 여기서 포기하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모든 포지션에서 싸우고 있었다.

전위와 후위, 그리고 측면에서 나오는 몬스터까지 견제하며 전투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깨닫는 중이다.

“그래도 현이 정말 대단한데? 처음 봤을 때랑 완전 다른 사람이야.”

“이제 무려 SS급 헌터니까 말이지.”

민혁이와 유지한 아저씨의 말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들 나를 배려해 주고 있다는 건 알지만, 가끔 팀원들이 당황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치 이 상황에선 당연히 내가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쳐야 한다는 듯한 반응이다.

아무리 봐도 진입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차윤지가 이 팀에서 얼마나 존재감이 컸던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현이가 와 준 덕분에 살았어. 우리끼리 했으면 이만큼 못 했을 테니까.”

던전 공략은 여러 방향에서 다수의 팀이 전진하며 진행된다.

게이트 공략 팀과 속도를 맞춰야 하기에 우리 팀만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게이트가 없는 방향으로는 자유롭게 공략할 수 있었다.

“제가 없어도 이미 완벽한 팀인걸요.”

“아쉬운걸. 둘이 대련하는 거 나도 보고 싶었는데.”

계속 던전에 붙잡혀 있었던 민혁이의 말에 멋쩍게 웃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윤지 누나가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럴 만하지.”

차윤지라는 헌터는 그런 이미지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언제나 이길 것 같은 무적의 이미지.

그래서인지 나도 그녀를 이겼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후우우. 그래서? 대련 끝나고 윤지는 어땠어?”

유지한 아저씨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즐거운 듯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 같은데요. 굉장히 쿨했다고 해야 하나.”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유지한 아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역시네. 그 녀석 자존심이 엄청 강하거든.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 엄청 분할걸.”

확실히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차윤지는 호전적이고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나와 대련한 뒤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아마 조만간 귀찮게 할 테니까.”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마세요.”

전력으로 싸워서 차윤지를 이긴 건 사실이지만, 까놓고 보면 그녀와 대련하며 라이프를 몇 개나 썼다.

매번 대련할 때마다 그렇게 라이프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차윤지 씨는 내일 다시 복귀하는 건가요?”

내일이면 SS급 승급 대련이 끝이 나고 승급하는 명단을 발표한다.

어쨌든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원래 차윤지가 있어야 할 자리이니까 그녀가 돌아오면 나는 다른 팀으로 옮겨야 한다.

“뭐야? 벌써 우리가 질린 거야?”

“아… 아뇨! 그럴 리 없잖아요!”

심윤성 아저씨가 오버스럽게 울상을 지으며 말했고, 나는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승급 대련이 끝나면 그대로 휴식이야. 어차피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휴식기니까 인제 와서 다시 합류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유지한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팀은 한참 던전에서 싸웠기에 며칠 뒤면 휴식기로 바뀐다.

대련 때문에 지쳐있는 차윤지를 다시 여기로 불러서 합류시키는 건 아무리 봐도 비효율적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며칠 더 고생해 주라고.”

“고생이라뇨.”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생하는 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싸워 온 차윤지에게 존경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물론 이 팀이 얼마나 대단한 팀인지는 전투를 반복할 때마다 느끼고 있다.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행동을 취했다.

그렇기에 내가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 그럼 이제 어서 자. 잘 수 있을 때 자 두지 않으면 자고 싶어도 못 자거든.”

불침번인 심윤성 아저씨의 말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던전 구석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잠을 청한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에 협회에서 만든 진짜 베이스캠프가 있지만, 거리가 멀어져서 매일 그쪽으로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다들 잘 자요.”

“이따 봐요.”

침낭에 들어가 눈을 감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주섬주섬 침낭을 꺼냈다.

몸을 짓누르는 피로에 한시라도 빨리 잠들고 싶었다.

던전 공략이 힘들긴 하지만, 이 완벽한 팀에서 싸우는 동안 라이프를 빠르게 늘리고 있었다.

아마 다른 팀이나 혼자서 싸웠다면 이 속도는 무리였겠지.

애초에 목적은 라이프를 늘리는 거였으니까.

카앙!

“……!”

“형씨! 일어나!”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기절한 건가?!

깨지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발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흐릿한 시야를 떨쳐 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카카칵!

“뭐야?!”

바로 코앞에 날아온 화살이 이신예가 만든 베리어에 막혔다.

“정신 차려!”

베이스캠프는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과 전투 중이었다.

“레인?!”

눈에 보이는 적은 넷이었다.

유지한 아저씨와 심윤성 아저씨가 하나씩 맡고 있었고, 민혁이와 이신예가 다른 한 사람을 마크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한 사람은 전투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 자식들… 갑자기 기습해 왔어.”

“아저씨?!”

상황을 살피던 중 심윤성 아저씨의 배에서 붉은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출혈이 상당했고, 저런 몸으로 전투를 하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였다.

쐐액!

단숨에 아저씨에게 달려가 아저씨와 검을 맞대고 있는 놈을 향해 화도를 휘둘렀다.

그는 가볍게 뒤로 몸을 날려 피했고, 이신예가 서둘러 다가왔다.

“부상이 심해. 당장 치료해야 해.”

이신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저씨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이번 목표는 당신이 아니거든.”

까칠한 남자 목소리가 앞에 있는 검은 로브 안에서 튀어나왔다.

“최고 수준의 회복 능력을 가진, 이신예의 치유 능력을 가지러 왔다고.”

“…바보냐? 그런 걸 말하면 어떡해?”

“어차피 안다고 해도 막을 수 없을걸.”

그들은 수다를 떨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심윤성 아저씨를 치료하고 있는 이신예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상황은 좋지 않다.

일단 우리의 능력에 대해선 상대에게 노출되어 있다.

반면에 우리는 상대가 누군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심지어 숫자가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다.

“얌전히 능력만 내놓으면 아무도 죽이진 않을게.”

까칠한 목소리의 남자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잖아?”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팀원 전체가 지금까지 계속 던전에서 전투를 해 오느라 지쳐 있는 상태였고, 나는 어제 스킬을 써서 쿨타임이 부족했다.

아무리 내가 앞에서 싸운다고 해도 다른 팀원들을 노리고 공격해 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개소리 집어치워!”

“……!”

“S급 헌터를 얕보지 말라고.”

이신예는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발렌 어떨 것 같아?”

“잘 모르겠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발렌의 의족은 저번 전투 이후로 신아람이 간단하게 손봐 준 상태였다.

말 그대로 정비를 해 준 것뿐이라서 내구도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발렌이 같이 싸울 수만 있다면 상황은 훨씬 나아진다.

“정 싫다면 힘으로 뺏을 수밖에 없지.”

“발렌! 두 사람을 지켜 줘!”

“알겠어!”

발렌을 소환하면서 바로 앞으로 튕기듯 달려 나갔다.

“오크를 다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정말이네?!”

“다루는 게 아니거든!”

쉴 새 없이 월하백화식을 몰아치며 공격했지만, 검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아무리 라이프 파워가 쿨타임이라 쓰지 못한다고 해도 내 공격을 가볍게 피하는 건 이상했다.

공격을 피한다기보단 예측하고 이동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좋아! 좋다고! 기왕이면 네 능력도 가져가겠어.”

“…우리 목적은 이신예 뿐이다.”

“시끄러! 어차피 언젠가 노릴 물건이었잖아?!”

앞에 있는 까칠한 목소리의 남자는 뒤에서 지켜보는 중저음 목소리의 남자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앙!

“…톤파?!”

화도를 막은 건 로브 안에서 튀어나온 금속으로 된 톤파였다.

실제로 톤파를 무기로 다루는 헌터는 본 적이 없었기에 생소한 무기였다.

“신기하지? 나는 헌터가 아니거든.”

터엉! 텅!

화도를 튕겨 낸 그의 톤파가 매섭게 내 어깻죽지를 후려쳤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한 걸음 물러나며 화도를 다시 바로잡았다.

“우리 길드 계급은 대충 알고 있지? 나는 ‘룩’이야. 곧 킹의 자리를 차지할 거지만.”

백진철의 정보에 따르면 룩은 비숍과 함께 길드의 간부진이라고 했다.

그들은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전투력도 수준급이라는 게 백진철의 설명이었다.

확실히 전에 싸웠던 비숍이라는 녀석도 여럿이 함께 싸워야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블링크라는 좋은 초월 능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도 실력이었다.

“그러려면 내가 네 초월 능력을 가져가야겠지?!”

카앙! 캉!

톤파의 공격은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워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궤도로 파고드는 톤파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특히, 톤파는 거의 맨손 격투와 거리가 비슷해서 검을 들고 있는 나는 쉽게 공격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뒤로 물러나도 깊게 파고드는 바람에 검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발렌이 있는 쪽이 신경 쓰이지만, 그쪽에 힘을 보태 줄 수는 없다.

일단은 발렌에게 맡기는 수밖에.

쒸익!

“……!”

“칫.”

멀리서 날아온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바람 소리에 피한 게 아니었다면 이미 내 머리통에 화살이 꽂혀 있겠지.

“다시 한번 말하지. 능력만 넘겨준다면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

묵직한 중저음의 남자의 말에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지금 상황도 벅찬데 만약 근처에 다른 적이 남아 있다면 정말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된다.

“우리 퀸이 너에게 관심이 많거든. 아마 널 의식해서 이만한 전력을 보낸 거겠지.”

일단 알 수 있는 정보는 내 앞에 있는 남자가 룩이라는 사실.

만약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그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다른 놈들도 보통 실력자는 아니었다.

못해도 나이트 이상의 네 명.

목숨을 소모해가며 싸운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섣불리 움직이는 건 팀원 전체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능력이 목숨보다 소중한가 보군. 그럼 원하는 대로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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