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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38화 (138/176)

138화 : 새로운 SS급 (5)

“…인기 많네?”

“인기라고 해야 하나요?”

대련장 위로 내가 올라오자 관중석이 웅성거리는 게 느껴졌다.

눈치가 없는 바보는 아니었기에 내가 얼마나 대중의 이목을 받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C급 헌터에서 한 번에 S급 헌터까지 올라온 헌터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런 상태로 SS급에 도전하는 것이니 주목받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뭔가 즐거워 보이시네요.”

순수하게 내 앞에 있는 차윤지를 보고 느낀 것이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었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스르릉.

“그래? 그럴지도.”

차윤지는 애초에 강한 사람과 대련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과거에 스승님을 라이벌로 삼고 싸웠을 정도니까.

“망신당하기 싫으면 전력으로 덤벼.”

“후회하실 겁니다.”

뒤에 있던 이성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우리 가운데에 멈춰 섰다.

나와 차윤지를 한 번씩 훑어본 그는 깃발을 높게 들었다가 내리치며 말했다.

“대련 시작!”

화도에 손을 가져가며 눈은 차윤지에게서 떼지 않았다.

스킬을 쓰면 라이프가 줄어들지만, 아낄 생각은 없다.

라이프 흡수가 모든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라이프를 늘려 주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라이프 수급도 전보다 나아졌다.

쌔액- 카앙!

순식간에 내 코앞까지 달려온 그녀는 매섭게 검을 찌르고 들어왔고, 화도를 뽑으며 그녀의 공격을 막아 냈다.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까지 사용했다.

캉! 카칵! 쌔엥!

서로의 급소를 노리고 쉴 새 없이 검이 뿜어졌고, 대련에서 목숨을 노릴 수 있는 건 상대방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원래 차윤지의 속도는 일반인의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정도다.

그녀의 주력은 속도이기도 하고, 이번에 초월 능력 진화 전까진 버프 스킬을 써도 차윤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제법인데?”

그녀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숨을 토해 냈다.

힘으로 맞부딪히면 내가 차윤지보다 훨씬 위였고, 속도도 이젠 그녀와 비등해질 정도다.

이론상으로는 내가 압도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방금 5번 정도 죽을 뻔했는데 제법이라뇨.”

농담이 아니었다.

그녀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은 게 5번 정도.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그녀의 검이 내 몸을 꿰뚫었을 것이다.

천재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타고난 전투 센스와 초월 능력을 다루는 감각.

그녀에겐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재능을 가지고 수많은 전투 경험을 쌓아 왔다.

그런 것들이 나와 차윤지 사이에 있는 능력치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최현! 지면 가만 안 둔다! 무조건 이겨!”

“…제발 조용히 좀…….”

경기중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서 신아람을 비롯한 S급 헌터가 대련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외침에 어쩐지 내가 민망해져서 고개를 떨궜다.

“몸풀기는 끝났지? 제대로 덤벼.”

카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차윤지의 공격을 튕겨 내며 몸을 뒤로 날렸다.

차윤지는 공격을 시작하는 순간,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진다.

전력으로 싸우던 블랙 퀸에 맞먹을 정도로 빨랐다.

그때의 나는 속도에 전혀 따라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쌔엥-!

“……!”

차윤지의 공격을 살짝 피하며 오히려 내 화도가 그녀의 목을 노렸다.

살짝 훑고 지나간 공격에 그녀의 새하얀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최현… 이라고 했지?”

“정말 얼마 전까지 C급 헌터였다고? 그 차윤지에게 밀리지 않는데?”

관중석은 다시 술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건 얼마 전부터였으니까.

C급 헌터는 대중들의 관심 밖이었지만, 백진철은 내가 블랙 퀸과 아르티아를 토벌한 걸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S급까지 한 번에 올렸다.

처음엔 헌터 협회에서 의도적으로 나를 띄우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게 100%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막 협회장이 된 백진철에겐 대중의 시선이 쏠리며 협회가 이목을 끌도록 유도한 셈이다.

“정말 퍼플 라벨을 혼자서 잡은 거야?”

“몰랐어? 저 사람 그 서진욱의 제자잖아.”

“정말?!”

여기에 와서 대련을 관람할 정도라면 내 이름은 들어 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욕심이 생겼다.

스승님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고 싶지 않다는 욕심.

“이번엔 제가 갑니다!”

장비를 칠흑의 묵갑으로 바꾸자, 차윤지가 방어 자세를 취했다.

“갑옷이 바뀌었어!”

“저것도 초월 능력인가.”

블링크는 당장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내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차윤지는 내가 이 갑옷을 착용한 이상 언제 어디서 공격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칠흑의 묵갑은 착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갉아먹는 갑옷이었지만, 그 정도 대가를 지불하는 건 아깝지 않았다.

쌔액!

“목란.”

“……!”

기술 이름을 말한 건 내가 아닌, 차윤지였다.

목란을 피한 차윤지는 중얼거리듯 말했고,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다음 공격을 이어 갔다.

파앗!

“앵화.”

쌔엥-!

“화왕.”

“…월하백화식을 알고 있는 건가요?”

내 물음에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술 이름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을 정도면 단순히 검술을 눈으로 본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잖아.”

차윤지는 스승님을 이기기 위해 몇 번이나 도전했었다고 했다.

그 스승님도 차윤지를 라이벌로 인정했을 정도였다.

“그 검술로는 나를 못 이겨.”

“…….”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내 검술을 꿰뚫고 있었고 속도는 내가 따라가는 정도였다.

아까부터 차윤지는 내 공격을 피하기만 하고 받아치진 않았다.

힘에서는 차이가 크니까 애초에 힘으로 붙을 생각은 없는 것이다.

“형씨, 체력이…….”

“알고 있어.”

칠흑의 묵갑 때문에 조금씩 깎여 나가는 체력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내 파괴력이라면 단 한 번의 기회면 충분하다.

스으읍.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걸 보고 차윤지가 다시 자세를 낮췄다.

파앙!

바닥을 박차고 튕기듯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쐐액!

화도가 허공을 찢으며 차윤지의 옆구리를 노리고 뿜어졌지만, 그녀는 가볍게 검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내 왼손에 에렌 셀을 소환하며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

카앙!

공중에 떠 있던 차윤지는 두 번째 공격은 피하지 못하고 막을 수밖에 없었다.

검을 세워 에렌 셀의 공격을 받아 낸 차윤지는 힘을 이기지 못 하고 한참 날아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와아아아!”

“이거 최현이 이기는 거 아니야?!”

“최현 이겨라!”

“차윤지 화이팅!”

이미 관중들은 우리의 대련에 몰입되어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를 무시한 채 바로 라이프 룰렛을 사용했다.

트드듯!

활을 쏘는 건 오랜만이었지만, 몸이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

애초에 지금 공격은 차윤지를 맞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파앙-!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차윤지를 노리고 날아갔고, 몸을 일으킨 그녀는 바로 다시 옆으로 굴러야만 했다.

그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차윤지를 향해 에렌 셀을 힘껏 던졌다.

후웅! 캉!

“……!”

차윤지 머리 바로 옆에 에렌 셀이 꽂혔고, 놀란 차윤지는 그대로 상체를 일으켰다.

화악!

그때를 놓치지 않고 차윤지 바로 옆으로 블링크해서 화도를 그녀에게 휘둘렀다.

캉!

“뭣?!”

검을 쓸 수 없는 자세였기에 내가 이겼다고 확신한 순간, 차윤지가 신발 바닥으로 검을 막아 냈다.

신발 바닥이 철로 되어 있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심하지 마.”

어느새 차윤지의 검이 오히려 내 목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정신을 번쩍 들어서 화도를 버리고 차윤지의 손목을 낚아챘다.

“……!”

“방심하지 마세요.”

팔을 뒤로 꺾으며 차윤지를 제압했고, 그녀의 뒤에 앉아 화도를 주워 옆에 꽂아 넣었다.

“와아아아아!”

“대련 종료!”

차윤지의 손목을 잡은 순간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S급 헌터가 SS급 헌터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대련장의 분위기는 굉장히 술렁거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 대련은 S급의 전투 능력을 점수로 평가해서 SS급이 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S급과 SS급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기에 사실상 일방적인 대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차윤지를 제압한 셈이다.

“활을 쏘는 기술이 있는 줄은 몰랐어.”

“비밀이 있는 쪽이 매력적이잖아요?”

그녀의 손을 잡아서 일으킨 뒤 빙긋 미소를 짓자, 차윤지도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는 그녀는 자신이 졌다는 것에는 분한 것 같았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이겨 줄게. 나도 새로운 검술을 연구하고 있거든.”

“기대하겠습니다.”

이성연의 주도로 우린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SS급 헌터 중에서 현재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건 차윤지뿐이었다.

류설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던전에 있다가 내려왔고, 이재문은 활동을 그만두고 길드 운영을 한 지 한참이 지났다.

현역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차윤지를 이겼다는 건 의미가 컸다.

“정말 차윤지를 이겼어?”

“그럼 새로운 SS급인가?”

“역시 서진욱 제자네.”

아직 사람들의 반응은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얼마 전까지 들어본 적도 없던 헌터가 갑자기 SS급을 이겨 버렸으니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

“하하하하! 이게 우리 길드 에이스라 이 말이야!”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마세요.”

당당하게 사방에 소리치는 신아람을 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대련은 만족스러웠다.

몇 번이나 아슬아슬한 상황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차윤지와 제대로 대련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녀 말대로 다음에 다시 싸우면 내가 질지도 모른다.

“그럼 다음 대련 속행하겠습니다. 이재문 씨와 S급의 하일우 씨의 대련입니다.”

이성연의 목소리에 대련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련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단 이재문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

현재 SS급은 세 사람뿐이지만, SS급이었다가 은퇴한 헌터도 몇 명 있었다.

그 말은 이재문은 헌터로서 은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언제든 전장에서 싸울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의 실력은 익히 들었지만,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차윤지를 이길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

이재문은 자신과 대련하는 헌터에겐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내 쪽만 보고 있었다.

“SS급이 되면 저희 길드로 오시는 건 어떠십니까? 최현 씨라면 전무후무한 최강의 헌터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쪽 도움이 없어도 가능하거든요.”

이재문은 내 대답에 피식 웃음을 머금고 앞에 있는 헌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했다.

“그럼 대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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