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새로운 SS급 (3)
“하여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사건을 몰고 다니는 거냐?”
“…저도 궁금하거든요.”
예전에는 정말 내가 사건에 휩쓸리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벌어진 일들은 내 초월 능력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기에 운이 나빴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2층을 공략 중인 공략 팀과 다시 합류한 우리는 백진철에게 마음껏 휴식하라는 허가를 받았다.
“그럼 본격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 보죠.”
이곳에 모인 건 나와 신아람, 백진철, 그리고 송인혁이었다.
백진철은 일단 이번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었기에 우리를 불러 모았다.
“먼저 이번 사건에 휘말리게 만든 점 사과드립니다.”
백진철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고개를 들지 않았다.
“처음 게이트 지정 때 협회 관계자 중 누군가가 관여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조사 중이며 그들의 사칭이 아닌, 실제 협회 내부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협회장님이 그렇게 사과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평범하게 일하던 직원이 갑자기 그런 짓을 벌이는 걸 협회장이 어떻게 알고 막겠어요?”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잘못된 건 알지만, 여러분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헌터들이었다면 지금처럼 아무런 피해도 없이 끝나진 않았을 겁니다.”
백진철의 말에 신아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감이야. 레인이랑 한바탕하고 심지어 앙그라마이뉴랑도 붙었다며? 거기다가 드래곤 토벌에 몬스터들까지 처리하면서 오다니…….”
“그렇게 말하니까 엄청난 일을 하고 온 것 같잖아요.”
“엄청난 거거든!”
신아람은 돌아온 우리 앞에서 평소보다 밝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유미래에게 듣기론 상당히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매일 잠도 자지 않고 본인이 직접 위로 올라오겠다는 걸 다른 길드원들이 뜯어말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기와 다르게 정이 깊은 사람이다.
“뭐야, 징그럽게 왜 그렇게 봐.”
“…….”
어쨌든 우리는 게이트인 줄 속아서 유한성의 공간에 들어간 것부터 킹을 쓰러뜨린 것, 퀸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
송인혁도 간단하게만 들었기에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자 이야기에 집중했다.
“체스인가. 그렇다면 다시 킹이라는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힐 가능성도 있겠군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럴 가능성은 낮을 것 같아요.”
내 말에 백진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죠?”
“퀸은 조직에 대한 애착이나 욕심이 없어 보였어요. 레인이라는 길드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죠. 그녀는 오직 돈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적어도 내가 봤던 퀸이라는 여자는 그런 여자였다.
킹이 만든 조직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외엔 킹에게 조금의 고마움이나 애착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상 근본적인 원인인 퀸을 처리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겠군요.”
송인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앙그라마이뉴랑 비슷한 상황이네요.”
레인이라는 길드의 핵심은 퀸이었다.
그녀는 헌터의 능력을 빼앗을 수도, 다른 헌터에게 넣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능력은 퀸이 만드는 것인지, 조직적으로 만드는 체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퀸이 레인을 무너뜨리는 핵심 열쇠인 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앙그라마이뉴의 하은주도 퀸과 비슷했다.
그녀는 딱히 길드 마스터인 유한성과 친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몬스터 군단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선 유한성의 능력이 필요했던 것뿐이지, 만약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유한성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앙그라마이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류설영 씨와는 어떻게 만나신 거죠?”
“만났다기보단 류설영 씨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요. 앙그라마이뉴에게 쫓기고 있을 때 류설영 씨가 나타나서 도와주셨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서 류설영을 만나서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류설영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누군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최현 씨는 류설영 씨랑 구면이라고 했죠?”
백진철은 나와 류설영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굳이 그때 얘기까지 하나씩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과 관련이 없었고, 귀찮았으니까.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걸 보고 백진철은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5층의 상황은 어떻던가요?”
“앙그라마이뉴는 5층을 완전히 공략하고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였어요. 몬스터의 수도 제법 늘린 것 같긴 한데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더군요.”
몬스터를 조종해서 컨트롤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몬스터들이 먹는 음식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었기에 생각 없이 수를 늘릴 수는 없을 거다.
“외부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유통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면 여전히 위협적인 건 사실입니다.”
그때 당시 게이트에 수많은 몬스터가 있을 때 몬스터가 착용할 장비가 모두 완성되었다면 얘기가 달랐을 거다.
몬스터에게 장비를 채워 준다는 그 신박하고도 정신 나간 발상 덕분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5층에서 다시금 장비 제작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5층을 중심으로 4층과 6층에선 장비를 만들 때 쓸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많이 나오는 곳이니까.
“아, 저 발렌이 의족이 망가져서요.”
“역시 내구도가 버티지 못한 건가.”
“아니에요. 의족은 굉장히 좋았는데, 오래 써서 그런 거죠.”
발렌은 의족을 차고 간만에 날뛸 수 있었다.
그런 발렌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까지 기분이 좋았기에 다시금 그가 마음껏 싸우게 해 주고 싶었다.
“일단 그 의족을 수리해서 사용하다가 재료만 구해 오면 바로 만들어 줄게.”
“감사합니다. 살았어요.”
“그분 굉장히 잘 싸우던데요? 듬직해서 저희 길드로 모셔오고 싶을 정도였어요.”
“푸흡.”
송인혁의 말에 신아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발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옆에 있는 백진철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발렌이라는 건 누구죠? 제가 알기로 거기 있었던 6명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던 거 같은데…….”
“든든한 조력자이자, 제 친구입니다.”
“개성 넘치는 분이죠.”
송인혁과 눈을 마주치고 빙긋 미소를 짓자, 백진철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감히 저를 놀리시다니. 협회장의 모든 권한을 써서라도 누군지 알아내겠습니다.”
비장한 그의 표정에 더욱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찾아봐도 발렌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백진철이 말하는 오크인 발렌을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 건 사실이군.
“이렇게 모인 김에 여러분들에게 먼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협회에서는 최근 1층 공략이라는 큰 전진과 더불어 류설영이란 귀한 전력이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SS급을 다시 뽑을 생각입니다.”
“……!”
“그 말은 SS급이 늘어난다는 얘기인가요?”
백진철은 신아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SS급이 3명인 채로 둘 수는 없으니까요. 원래 SS급은 지금까지 세워 온 공로와 다른 SS급과의 대련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이젠 형태를 바꿔 볼까 합니다.”
“형태를 바꾼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이것 역시 너무 쓸모없는 시간 낭비가 많다는 말입니다. SS급과 S급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
안타깝지만 사실이었다.
SS급 헌터 한 사람이 수십 명의 S급 헌터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니까 비교하는 것부터 오류인 셈이지.
“SS급 헌터는 일반적인 헌터와는 결이 다릅니다. 남녀노소 중 누가 봐도 강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죠.”
확실히 SS급은 그런 이미지였다.
절대 지지 않을 것 같고, 어떤 몬스터든 이겨 줄 것 같은 최강자의 느낌.
“그렇기에 간결하고 확실하게 바꾸려고 합니다.”
“바꾼다면…….”
“SS급과의 대련이죠. 많은 관중이 있는 곳에서 대련하는 겁니다. 그 후에 직접 대련을 했던 SS급 헌터와 관중들의 투표를 통해 SS급으로 승급할 수 있는 거죠.”
백진철다운 생각이었다.
이제 막 S급이 된 헌터라도 기회가 열려 있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렇게 진행되면 하나씩 절차를 밟을 필요도 없으니 시간 낭비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최현 씨도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네?! 제가요?!”
깜짝 놀라서 한 걸음 물러나자 오히려 백진철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저는 당연히 최현 씨도 SS급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셨던 모양이군요.”
“물론 되고 싶긴 하죠.”
SS급이라는 건 모든 헌터의 동경과도 같은 존재였다.
누구와 싸운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카리스마와 어떤 몬스터도 남김없이 도륙 낼 것 같은 위압감, 그것을 가진 게 SS급 헌터라고 생각한다.
드래곤 하트를 먹은 지금은 분명 먹기 전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강해진 게 사실이다.
예전엔 류설영이나 차윤지와 대련하면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잘 싸우면 해볼 만했다.
“물론 최현 씨를 비롯해서 S급의 많은 분에게도 제안할 생각입니다. SS급은 정신적으로도 큰 의지가 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백진철은 그렇게 말한 뒤에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바로 SS급으로만 이루어진 팀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
“그건 쉽지 않겠는걸요.”
SS급은 실력이 뛰어난 만큼 개성도 뚜렷해서 어디에서든 반짝거리며 튀기 마련이었다.
지금 SS급 헌터만 생각해 봐도 하나 같이 성격이 특이하니까.
“서로 섞이기 힘들겠지만, 만약 섞일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팀보다 강한 팀이 될 겁니다. 서로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이 함께한다면 서로를 고양하고 발전시킬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요.”
매력적인 이야기다.
SS급 헌터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고 자극이 된다.
그런 사람들과 항상 함께 싸운다면 당연히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그 새로운 SS급을 뽑은 대련은 언제 진행하실 생각이신가요?”
“이제 바로 시작할 겁니다.”
“네?!”
“지금?!”
백진철의 말에 우리 셋은 눈이 동그래져서 그를 바라봤다.
“앙그라마이뉴랑 레인은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그들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입니다.”
백진철은 장난이 아니라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저희는 겨우 2층을 공략하고 있어요. 3층과 4층은 지금보다 더 오래 걸리겠죠. 1층과 2층에서 발생하는 게이트를 공략할 인원을 빼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 사태를 정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미 머릿속에 답은 나와 있었다.
각 조직의 핵심 인물인 하은주와 퀸을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저희에겐 그런 임무를 맡아 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