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135화 (135/176)

135화 : 새로운 SS급 (2)

듀라한은 단순히 기사형 몬스터가 아니었다.

리치왕에 비하면 그리 뛰어나진 않지만, 듀라한도 냉기 마법을 다룬다.

즉, 놈은 마검사라는 의미다.

듀라한은 우리와 조금 거리를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선공, 네가 서포트.”

“알겠어요!”

차윤지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에 지금은 차윤지를 서포트하는 게 정답이었다.

타다닷!

차윤지는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서 검을 쏘았다.

카앙-!

펜싱처럼 찌르기 공격을 주로 다루는 그녀에게 듀라한은 썩 상대하기 좋은 적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단단한 갑옷을 두르고 있었고, 대검이라 공격을 막기에도 편했다.

부웅!

“……!”

듀라한의 묵직한 검이 수직으로 내리꽂혔고, 차윤지 옆으로 다급히 따라붙었다.

쩌엉-!

‘앵화’로 검을 쳐올려 내리치던 듀라한의 검을 반대로 튕겨 냈다.

자연스럽게 듀라한과 나는 검이 붕 떠서 자세가 무너졌고, 차윤지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파파팍!

그녀의 검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듀라한의 온몸에 파고들었다.

듀라한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우리에게 손바닥을 펼쳤고, 뾰족한 얼음송곳이 허공에서 만들어졌다.

“물러나!”

파앙!

기다렸다는 듯 베리어가 펼쳐졌고 얼음송곳은 베리어를 뚫지 못한 채 막혔다.

“…단단해.”

“그런 것 같네요.”

차윤지의 초월 능력인 ‘간파’는 상대의 약점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녀는 확실히 월등한 스피드를 갖고 있지만, 파괴력은 강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걸 커버하는 게 바로 초월 능력이었다.

약점은 고유 위치가 아닌, 자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겠어. 내 움직임에 호응해.”

“네?”

“내가 공격한 곳을 바로 정확하게 공격하는 거야. 할 수 있지?”

차윤지는 마치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못 한다고는 할 수 없지.

“할 수 있어요.”

“좋아.”

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다시 듀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쐐액!

차윤지의 검이 섬광처럼 뿜어졌고, 듀라한은 검으로 공격을 막아 내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듀라한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이었다.

크게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정확하게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였다.

일단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지 않으면 놈의 방어를 돌파하기 어렵다.

“발렌!”

“내가 나설 차례인가.”

몽둥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씨익 웃은 발렌이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지만, 발렌의 속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아람이 만들어 준 의족은 이미 그 내구도를 다해서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발렌은 자신이 싸울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듯 보였다.

“한 번이면 충분해.”

“알았어.”

발렌은 웬만한 헌터보다 든든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피지컬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내 전투를 1인칭으로 봐 왔기에 누구보다 내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발렌은 거기에 맞춰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자, 날뛰어 보자고, 형씨.”

“오늘따라 멋있는데?”

피식 웃은 발렌은 그와 동시에 앞으로 뛰쳐나갔고, 그의 뒤에 바짝 붙어 쫓아갔다.

듀라한이 거대한 대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부웅-!

“……!”

발렌의 현재 무기는 몽둥이라 저런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파앙-!

앞으로 나선 내가 화도를 들어 놈의 공격을 받아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공격을 몇 번만 더 막으면 화도의 내구도가 버티지 못하겠는걸.

“형씨!”

“알고 있어!”

놈이 공격한 이상,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검을 다시 휘두르는 듀라한의 공격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지금이야!”

뒤에서 들려온 이신예의 목소리에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쩌엉-!

우리에게 휘둘러진 듀라한의 공격은 그대로 이신예의 베리어에 막혀 버렸다.

덕분에 무방비 상태인 듀라한은 한순간 우리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어느새 바짝 옆으로 따라붙은 차윤지가 방어조차 하지 못하는 듀라한의 몸에 검을 쑤셔 넣었다.

“따라와.”

차윤지의 말은 단순히 자신을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검의 궤도를 따라오라는 의미였다.

그녀의 찌르기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월하백화식의 기본기인 ‘목란’ 역시 찌르기다.

이걸 익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찌르기에 투자했는지 모른다.

“후웁!”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차윤지가 찔렀던 곳에 정확히 다시 화도를 쑤셔 넣었다.

“……!”

이번엔 타격이 있는지 듀라한의 몸이 이상하게 꺾이며 아까보다 빈틈이 커졌다.

“발렌!”

화도를 뽑지 않은 채로 손에서 놓고 상체를 숙였다.

부웅-!

내 위로 발렌의 몽둥이가 휘둘러져서 듀라한의 몸에 박힌 화도의 아랫부분을 후려쳤다.

파악!

“좋아!”

내가 공격했을 땐 질긴 피부에 박혀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발렌이 놈의 몸속 깊은 곳까지 박아 넣어 주었다.

“……!”

제대로 대미지가 들어갔는지 놈의 체력이 단숨에 3분의 1이나 줄어 있는 게 보였다.

듀라한이 다시 자세를 잡기 전에 발렌은 바로 내 화도를 뽑아냈다.

“형씨!”

“고마워.”

발렌이 던져 준 화도를 받고 우리 셋은 듀라한과 거리를 벌렸다.

라이프 파워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큰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 이 정도의 타격을 줄 수 있었던 건 차윤지가 본 약점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세 방향으로 나누자.”

“알겠어요.”

여러 방향에서 공격하면 움직임이 더 자유로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그만큼 서로의 시너지는 떨어지겠지만, 듀라한은 기본적으로 움직임이 둔하니까.

차윤지가 가장 먼저 듀라한을 향해 낮은 자세로 접근했다.

그녀가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은 맹수가 초식 동물을 사냥하는 것처럼 보였다.

낮은 자세로 단숨에 다가가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무시무시한 사냥법이었다.

“발렌!”

내 외침에 발렌이 차윤지를 따라 듀라한과 거리를 좁혔다.

가장 먼저 듀라한의 검이 차윤지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카가가가각!

차윤지는 검을 사선으로 올려 쳐서 듀라한의 검의 궤도를 옆쪽으로 흘려 냈다.

쿠웅!

그대로 듀라한의 검은 차윤지의 옆쪽 땅에 박혔고, 기다렸다는 듯이 발렌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파악!

발렌이 노린 건 듀라한의 무릎 뒤쪽이었다.

“……!”

발렌의 공격 때문에 균형이 무너진 듀라한은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넘어졌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타이밍과 완벽한 공략이었다.

이어서 차윤지의 검은 약간의 자비도 없이 듀라한의 온몸에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파파팟!

확실히 저렇게 자세가 무너진 상태라면 어딜 공격해도 약점이지.

그리고 둘에게 시선이 쏠려 있을 때가 내가 움직일 타이밍이었다.

스으읍.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 듀라한을 향해 달려갔다.

“물러나요!”

차윤지와 발렌이 뒤로 움직이며 내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줬다.

듀라한은 달려오는 나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고, 내 발밑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송화.

발끝으로 바닥을 튕기듯이 걸으며 이동했다.

파악!

날카로운 얼음 기둥이 바닥에서 솟아올랐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찢을 뿐이었다.

이내 듀라한이 검을 힘껏 위로 쳐들었다.

연화.

카강!

듀라한의 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먼저 내 검으로 힘을 막아 냈다.

놈의 공격이 두 번이나 막힌 이상, 공격 우선권은 완전히 내게로 넘어왔다.

화왕부터 시작해서 목란, 매화, 앵화, 그리고 다시 목란까지 완벽하게 모든 대미지를 놈에게 때려 박았다.

“좋아! 제대로 들어갔어!”

발렌의 신이 난듯한 목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나며 숨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옆으로 류설영이 뛰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고생했어!”

파지직- 콰지직!

듀라한에게 전격이 내리쳤고, 이내 류설영이 에렌 셀을 듀라한의 등에 꽂아 넣었다.

“지원할게요!”

뒤에 다른 몬스터들을 모두 정리한 것인지 이쪽으로 다들 모여들었다.

이미 타격이 큰 듀라한은 사방에서 퍼부어지는 공격에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체력이 0이 되었다.

[System : 네이비 스톤x2, 흐릿한 갑옷 조각x3, 청암의 검날x1을 획득하였습니다!]

“하아… 역시 그래도 네이비는 네이비인가.”

“시간이 제법 지체됐네요. 서둘러서 이동하죠.”

뭔가 제대로 차윤지와 호흡을 맞춰서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난 여기까지인 것 같아, 형씨.”

“아… 괜찮아. 충분했어, 발렌.”

이미 발렌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다.

나는 그런 발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발렌의 표정은 아쉬움이 진득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의족이 너덜너덜해져서 이젠 걷는 것도 무리인 듯 보였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힘내서 이동하죠! 화이팅!”

밝게 소리친 채하나를 따라 나도 소리쳤다.

“화이팅!”

***

“…완전 시체들이구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저희도 꼴이 말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만나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신아람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좀 더 감정을 담아서 걱정을 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내가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는데. 너희 걱정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니까.”

“입에 침이나 닦으시죠.”

“쓰읍…….”

이런 모습이 신아람의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짜증 나는 매력.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다들 고생했어.”

신아람은 앞으로 나와서 채하나와 이민하를 안아 주었다.

두 사람은 밀쳐 낼 힘도 없는지 가만히 신아람에게 안겨 있었고, 신아람은 히죽거리며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껴 줄까?”

“됐거든요!”

“뭐, 일단은 무엇보다 쉬는 게 우선 아니겠어? 여기까지 오느라 엄청 고생했을 텐데 이야기를 듣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되겠지.”

신아람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는지 바로 우리를 데리고 쉴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신예 덕분에 웬만한 상처는 다 치료돼서 피로한 것만 제외하면 괜찮았다.

“일단 씻고 옷부터 갈아입어. 그런 꼴로 돌아다니면 몬스터인 줄 알고 헌터들이 사냥하려고 할걸?”

“하긴, 최현 씨 모습이 조금 끔찍하긴 하네요.”

“채하나 씨도 마찬가지거든요!”

물론 앞에서 싸운 내가 몬스터 피를 더 많이 뒤집어써서 엄청난 모습이 되어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씻어 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마치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웠고, 어디든 머리만 땅에 닿으면 바로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류설영도 씻고 나왔는지, 멀끔해진 얼굴로 백진철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희 쪽에서 안내할 테니 바로 따라오시죠.”

류설영은 시한부를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아래로 내려왔다.

눈이 마주친 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거로 응원을 해 줬고, 그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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