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134화 (134/176)

134화 : 새로운 SS급 (1)

설소은의 전투법이 너무나 신박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를 익사시켜 죽인다니…….

그녀이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발버둥 치던 몬스터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 그녀는 힘을 풀었다.

“하아… 하아…….”

“괜찮으세요?”

“형태를 유지하는 건 더 정신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래요. 괜찮아요.”

계속 이 방법을 써서 전진할 수는 없다는 건가.

어쨌든 길을 뚫고 다시 이동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힘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어쩔 수 없죠. 다들 어느 정도 각오하세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니까.”

송인혁은 모두를 보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2층에서 다른 헌터와 합류하게 될 때까지 쉬지 못할 겁니다. 최현 씨.”

그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쓰고 정면에 있는 블랙 스네이크를 향해 단숨에 도약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각성’ 스킬은 기본 스킬 효과에 추가로 새로운 게 붙어 있었다.

지금 사용한 라이프 파워는 본래 1시간 40분 동안 모든 능력치를 2배로 늘려 주는 효과였지만, 각성하고 나서 쓰러뜨린 적의 능력치 10%를 빼앗는 효과도 붙었다.

물론 추가로 얻는 능력치는 스킬 지속 시간이 끝나면 모두 사라지지만, 스킬을 사용하고 계속 능력치를 올리는 건 엄청난 효과였다.

“키에에엑!”

블랙 스네이크를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놈의 독만 조심하면서 단숨에 도륙을 냈고, 블랙 스네이크가 죽는 것과 동시에 능력치가 상승했다.

더블 라이프 파워는 라이프 파워의 지속 시간을 1시간 추가로 늘려 주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이제 라이프 파워의 지속시간은 2시간 40분.

“…최현 씨, 지금 움직임 마치…….”

채하나가 말끝을 흐려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치 차윤지와 닮아 있는 움직임이다.

더 이상 블루 라벨의 몬스터는 내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이젠 어느 정도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다.

“앞에서 최대한 빨리 정리하면서 움직이겠습니다. 다들 바로 따라붙으세요.”

“알겠어!”

이민하가 고개를 끄덕였고 기다렸다는 듯이 발렌이 말했다.

“북북서쪽 두 마리.”

다른 조원들이 지쳐 있으니 내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아마 버프가 끝나기 전에 2층에 합류하는 건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동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전위에서 필사적으로 날뛰는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Passive - 라이프 흡수 Lv.Max -각성-

몬스터를 쓰러뜨릴 때마다 라이프 1개가 늘어난다.]

이제 나보다 강한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몬스터를 사냥하기만 하면 라이프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처음 스킬을 읽었을 땐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라이프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시절도 이젠 안녕이다.

정말 다시 라이프 9999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현아, 위!”

뒤에서 들린 류설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쳐들었고, 높게 날고 있던 와이번이 내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망설이지 않고 화도를 집어넣은 채 손을 깍지 껴 발판을 만들었다.

씨익 웃은 류설영은 그대로 내게 달려와 손으로 만든 발판에 뛰어올랐고, 있는 힘껏 그를 위로 던졌다.

파앗!

에렌 셀을 들고 있는 류설영은 그대로 공중에서 와이번을 쉬지 않고 베어 갈랐다.

와이번의 피가 단숨에 사방에 튀어 우리의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허억… 헉…….”

4층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를 베었다.

내가 어떤 몬스터를 어떻게 죽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중간에 기습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서 이모탈을 쓰는 바람에 이모탈은 현재 쿨타임이 돌고 있다.

“다들 괜찮으시죠?”

“괜찮진… 않은 것 같아요.”

하나같이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너덜너덜해진 모습은 대화하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걸 믿기 힘든 정도였다.

피 냄새를 맡은 몬스터의 피는 또 다른 몬스터들을 불러왔고 그렇게 끝도 없이 몬스터를 죽이고 죽였다.

촤아악!

설소은은 우리 위로 샤워기처럼 물을 뿌려 주었고 간단하게 피를 씻어 낼 수 있었다.

“아직 이 짓을 더 해야 하다니…….”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우리의 현재 위치는 2층.

이제 막 2층에 내려온 상태였기에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이었다.

그리고 현재 공략 팀이 있는 곳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이었다.

즉, 던전 끝에서 끝이라는 의미다.

물론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낫지.

“금방 온 건 사실이지만, 이제부터가 진짜겠네요.”

“슬슬 몸이 뻣뻣해지고 있어요. 얼마나 전격을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

류설영이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길 반복했다.

몬스터가 너무 많이 모이면 그는 한 번씩 전격으로 쓸어버렸고, 그 덕분에 돌파할 수 있었다.

정신력 소모를 막기 위해 기절할 정도의 화력만 사용하고 직접 처리했다.

“어쩔 수 없죠. 이제부터 악착같이 싸우는…….”

“…최현 씨?”

말하다가 고개를 휙 돌리자, 채하나가 갸웃거렸다.

분명 방금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발렌 어때?”

“지금은 피 냄새가 진동해서 모르겠어. 미안.”

이미 발렌의 후각 레이더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이젠 좀 더 경계하며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

쌔엥-!

반사적이라기보단 본능적인 움직임에 가까웠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검을 뽑았다.

“……?!”

다들 깜짝 놀라 내게 시선을 돌렸고, 화도는 정확히 적의 목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카앙-!

“…움직임… 좋아졌네?”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검을 가볍게 막고 있었다.

“차… 차윤지 씨?!”

그녀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 함께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죄송해요! 차윤지 씨인 줄 모르고…….”

“괜찮아.”

그런 와중에 정확하게 반응했는데 그녀에게 가볍게 막혔다는 게 어쩐지 조금 자존심 상하는걸.

“차윤지 씨가 어떻게 여기 계시는 거예요?”

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멀리엔 게이트도 있었다.

아직 공략되지 않은 장소인 건 확실한데 그녀가 있다는 게 이상했다.

“신예 언니가 구조대라고 했어.”

“아…….”

잊고 있었는데 이신예가 차윤지보다 언니였지.

외모나 행동만 보면 차윤지가 언니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이신예 쪽이 워낙 동안이니까.

외모든 행동이든.

“하아… 하아……!”

“같이 좀 가자니까요!”

뒤따라온 민혁이와 이신예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민혁아!”

“현아!”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기쁨의 재회를 나누며 격하게 껴안았다.

민혁이와는 특별히 깊은 사이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와는 항상 편하고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동갑이라는 이유가 큰 듯했다.

“협회에서 여기로 지원을 보냈어. 뺄 수 있는 전력이 우리뿐인 건 어쩔 수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낫지?”

“그걸 말이라고 해? 안 왔으면 우리끼리 또 끔찍하게 고생했겠지.”

진심이었다.

이젠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몬스터와 싸웠기에 우릴 도와주러 온 세 사람은 구원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심지어 SS급 한 사람에 S급 둘.

이보다 든든할 수 없지.

“오자마자 이런 말 하는 건 미안한데, 일할 시간인 것 같네.”

“미안할 게 뭐 있어? 일하려고 온 건데.”

민혁이는 씨익 웃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이미 주변엔 우리 냄새를 맡고 다가온 몬스터들이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그럼 후우……. 다시 시작해 보죠.”

몸을 스트레칭하며 말한 송인혁이 쇠사슬을 꽉 움켜쥐었다.

“최전방은 최현 씨와 차윤지 씨가 맡아 주시고, 그 바로 뒤로 최민혁 씨가, 그리고 이신예 씨는 채하나 씨와 같이 움직이면서 웬만하면 보호막 위주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네!”

송인혁은 단숨에 대열 배치를 마친 뒤 이동을 지시했다.

쌔엥-!

정면에 있던 구울을 베어 버리는 것과 동시에 차윤지가 내게 달려드는 스켈레톤을 아작냈다.

그녀의 움직임은 여전히 미스터리할 정도로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조금의 군더더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깔끔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내 거친 움직임이 아쉽게 느껴졌다.

“오, 예전에 봤을 때랑은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강해졌는데?”

“……?”

차윤지는 류설영의 말에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잠깐 굳어 버렸다.

역시 아무리 차윤지라고 해도 이렇게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면…….

“누구지?”

그냥 못 알아본 거였냐?!

“류설영 씨에요! 차윤지 씨랑 같은 SS급 헌터.”

“아.”

류설영을 기억했는지 그녀는 짧게 탄성을 내뱉고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음에 이겨 줄 거야.”

차윤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에게 류설영은 이기지 못했던 사람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 사람의 합류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무난하게 몬스터들을 돌파하며 이동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내 스킬 지속 시간은 끝났고, 다들 정신력도 한계였다.

4층에서 2층까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돌파해 왔으니 당연하겠지.

“왼쪽!”

카앙-!

차윤지의 말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검을 휘둘렀고, 그곳에 있던 검붉은 갑옷의 기사가 내 검을 막아 냈다.

“……!”

“나온 건가.”

지금까지 블루 라벨 이상의 몬스터를 만나지 못했는데,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듀라한’이라는 언데드 몬스터였다.

목이 없는 듀라한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데스나이트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데스나이트 역시 강한 건 사실이지만, 듀라한에 비하면 묘하게 움직임 사이에 공백이 존재했다.

그에 반해 듀라한은 마치 사람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놈이었다.

“네이비 라벨 등장.”

“어쩐지 잘 풀린다고 했어.”

덩치부터 목이 없는데 2.5m라는 무시무시한 키에 자신의 덩치에 어울리는 대검을 쓰고 있었다.

움직임도 빠른데 괴력까지 갖춘 밸런스형 괴물이라는 뜻이지.

“그쪽은 셋이 맡아 주세요! 전력을 분배하기엔 이게 한계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차윤지는 바로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네이비 라벨의 몬스터인데 나와 차윤지, 이신예 셋이서 상대하라니…….

라고 투정을 부리기엔 주변에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

저기서 더 전력을 빼 오면 후방이 위험해질 게 뻔했다.

“우리 셋이 어떻게든 해야겠네.”

이신예가 인상을 찡그렸고,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족하면 하나 더 부르죠.”

“뭐?”

바로 내 옆에 발렌을 소환했고, 발렌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나타났다.

“……!”

차윤지가 놀라서 검을 휘두르려는 걸 내가 앞으로 가로막았다.

“설명은 나중에! 제 친구예요. 일단 같이 싸울 동료이기도 하고.”

차윤지는 모르지만, 이신예는 예전에 발렌을 치료한 적이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땐 발렌이 정신을 잃은 상태여서 지금 발렌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자, 그럼 저걸 어떻게 공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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