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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32화 (132/176)

132화 : 진화된 능력 (3)

사방이 불바다로 변하기 시작하며 끔찍한 풍경이 펼쳐졌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고 연기가 하늘을 메우며 숨을 쉬기 힘들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동물들이 이동하는 쪽을 따라 같이 움직였다.

불이 번지는 속도는 무시무시했고, 그걸 등진 채 동물들을 쫓았다.

“형씨, 슬슬 시작하자고.”

기다리고 있던 발렌은 나오자마자 동물 몰이를 시작했다.

나 역시 라이프 섀도우를 써서 분신을 만들었고, 이제 한 방향으로 유도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많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성공하면 오늘 밤은 포식이라고.”

발렌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계속 굶었기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불이 번지는 방향에서 동물들이 벗어나지 않도록 잘 유도하는 것이다.

“으아아!”

쿵쿵!

소리를 지르거나 바닥을 두드려서 동물들이 한쪽으로만 움직이게 했다.

“쿨럭쿨럭… 이러다 우리가 먼저 죽는 거 아니야?”

연기 때문에 숨이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게이트에서 나가지 않으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좋아! 이쪽으로만 유도하면 이제 끝이야!”

다행히 예민하게 감각이 발달한 동물들은 우리와 불을 피해 원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동물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친 쪽은 게이트의 외곽이었다.

결국, 게이트는 나갈 수 없는 벽이 존재했기에 벽으로만 데리고 가면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잡아!”

뒤쪽이 불바다인 상황에서 동물들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심지어 나와 발렌, 그리고 라이프 섀도우로 만든 분신까지 셋이서 사냥을 시작했기에 그들에겐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몬스터와 싸우는 것에 비해 동물들은 너무나 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렇지?”

제법 큰 동물들을 어깨에 짊어진 우리는 잠깐 그 자리에서 사죄의 기도를 한 뒤 출구로 향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동물을 사냥한 것이지만, 동물들에게 숲을 빼앗은 건 잔인한 행위였다.

“자, 시간이 없어.”

“괜찮아.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게.”

혹시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발렌을 집어넣고 사냥한 동물들도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제 주변 시야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했다.

거대한 불과 연기 때문인지 몬스터는 어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으아아! 탈출!”

게이트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고, 밖으로 나오자 맑은 공기가 나를 반겼다.

열기에 오래 노출되고 연기를 마신 탓인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속은 울렁거리고 피부는 화끈거렸으며 어지러워서 당장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던전 내부 공기가 이렇게 맑았구나. 후하!”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작전이 성공한 걸 자축했다.

***

“여러모로 대단하네.”

“푸흡.”

류설영과 다른 조원들의 표정에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몸에선 탄내가 진동하고 얼굴엔 까만 게 잔뜩 묻어 있었으니 웃길 수밖에.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이 잡다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민하는 내가 꺼내 놓은 사냥감을 보고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배불리 먹겠네요.”

송인혁은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식량 배분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씻겨 드릴게요.”

“네?”

설소은의 말에 놀라서 고개를 돌린 순간, 내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촤아악!

“…정말 감사합니다.”

홀딱 젖은 생쥐가 된 채로 떨떠름하게 말하자 설소은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충분한 식량을 조달했고, 이제 이 드래곤 하트는 내 차지다!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아. 네가 가져도 돼. 사실 나는 초월 능력을 얻은 것만으로도 너무 기분 좋거든.”

이민하는 더 이상 드래곤 하트에 미련이 없는지 고기를 손질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미 고기를 손질한 류설영은 어느새 그걸 구워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입안에 고기가 가득한 채로 말하는 그는 어떻게 해야 던전에서 빨리 내려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류설영 씨가 만나러 가는 친구는 어떤 분인가요?”

문득 그에게 묻자, 그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는 입에 있던 고기를 삼켜 내고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하나뿐인 친구지.”

류설영은 그다지 다른 헌터와 친밀한 관계를 쌓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높은 등급까지 올라온 류설영을 이용하고 시기하고 미워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질려서 류설영은 17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헌터야. 웃길 정도로 재능이 없는 녀석이었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을 떠올리는 듯 보였다.

“활을 다루는 통신계 헌터인데, 활 실력이 어이없을 정도로 하찮았거든. 그런데도 공략 팀만 고집했어.”

류설영이 활동할 때는 아포칼립스 전의 이야기니까 공략 팀과 정찰 팀이 나누어져 있을 때였다.

“신기하게 후각이 발달해서 주변에 몬스터나 다른 이상한 것들을 금방 눈치채고 반응하는 녀석이었어.”

“네? 그럼 왜 공략 팀에 있는 건가요?”

어느새 다른 조원들도 모여서 류설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류설영의 말을 들어 보면 그의 친구라는 사람은 정찰 팀에 어울렸다.

전투 재능이 없고 그런 감각이 발달되어 있다면 누가 봐도 정찰 팀에 속하는 게 맞겠지.

“정찰 팀으로 가면 나랑 같이 싸울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

그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나랑은 등급부터 격차가 커서 애초에 같은 곳에서 싸우긴 힘들었어. 하지만 그 녀석은 언젠가 꼭 나랑 같이 싸우겠다며 공략 팀만 고집했거든.”

그의 이야기만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던 류설영이 저런 무방비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부터 신기한 사람임은 틀림없다.

“하아… 살겠다!”

“이제야 다 나은 기분이네.”

“고기 좀 먹었다고 그렇게 빨리 회복될 리 없잖아요.”

한껏 포식을 마친 뒤에 다들 만족스러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보다 드래곤 하트 먹어 보는 게 어때?”

“오 저도 궁금해요!”

이민하와 채하나가 내게 다가와 눈을 반짝거렸다.

“그렇네. 나도 지금까지 드래곤 하트에 대한 뜬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먹고 어떻게 변하는지는 본적이 없거든.”

어느새 나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드래곤 하트를 꺼냈다.

새빨갛게 빛나는 드래곤 하트는 크기가 상당히 컸고, 보고만 있어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저렇게 큰데 여럿이서 나눠 먹으면 안 되는 건가요?”

“드래곤 하트는 고도로 응축된 에너지가 담겨 있는데, 처음 입을 대는 사람에게 그 에너지가 흡수되는 거라 나머지는 그냥 고깃덩어리일 뿐이야.”

류설영은 그렇게 말하고 내가 드래곤 하트를 먹길 기다렸다.

“이거 그냥 먹어도 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고기인데 익혀서…….”

“아 좀 그냥 먹어!”

“기대된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드래곤 하트를 내 입으로 가져왔다.

굳이 아껴서 나중에 먹을 필요는 없었기에 드래곤 하트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시큼한 향과 함께 입안에 육즙이 퍼지며 묘한 감각이 몸 안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크윽…….”

바닥에 털썩 엎드린 채 가슴을 부여잡는 날 보고 깜짝 놀란 다른 사람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괜찮아? 드래곤 하트 먹어도 되는 거 맞아요?”

당황한 그들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아요. 안에서 날뛰는 힘 때문에 조금 벅차서…….”

마치 몸 안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날뛰고 있는 감각이었다.

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치는 에너지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System - 모든 능력이 한 단계 진화했습니다.]

[System - 스킬이 강화되었습니다.]

[System - 인벤토리가 강화되었습니다.]

[System - 펫 시스템이 강화되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시스템 창들이 내 시야를 가렸고,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때? 강해진 기분이 들어?”

“하하, 강해진 기분은 뭔가요? 뭔가 능력이 진화되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이민하는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는 걸 숨기지 않았다.

몸 안에 날뛰던 힘은 그대로 천천히 깃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우우.”

진화된 감각.

바로 능력치창을 열어서 확인했다.

[최현 Lv.59

체력: 5950/5950 마나: 590/590 기력: 30/30

힘: 152 민첩: 91 지능: 68(사용 가능 포인트:6)

라이프 : 1381개]

능력치창만 보면 큰 변화는 없었다.

이어서 스킬창을 열었다.

“오……!”

“뭔데 뭔데!”

작게 감탄을 내뱉자 다들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킬이 변했어요.”

주로 사용하는 스킬들이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스킬 이름에 -각성-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음, 일단 스킬은 나중에 제대로 확인해 보고 이번엔 인벤토리를 열었다.

전보다 2배는 넓어진 인벤토리에는 새로운 모양의 아이콘이 보였다.

이건 인벤토리를 열지 않아도 말하는 것으로 아이템을 꺼낼 수 있는 건가?

장비를 바꿀 때랑 편하겠는걸.

“혼자 뭐 하고 있는 거야?”

“아, 죄송해요. 드래곤 하트를 먹으면 능력이 진화한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한 단계 강화되는 느낌이랄까?”

“크으… 부럽다.”

이민하가 입맛을 다셨고, 나는 다시 펫 시스템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때 형씨? 나도 더 강해진 거야?”

발렌은 잔뜩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펫 시스템에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아이콘이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발렌도 이제 나랑 비슷한 힘을 쓸 수 있는 것 같아.”

“비… 비슷한 힘?!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 거야?”

“아쉽게도 그건 아니야.”

내 말에 발렌의 힘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뭔데?”

“발렌 전용 스킬이 있는 것 같아.”

이것 역시 당장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스킬창 옆에는 장비창도 있었다.

발렌에게 장비를 착용 시켜 주고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스킬을 쓰고 장비를 착용한다면 발렌은 지금보다 월등히 강해질 수 있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래곤 하트를 먹으면 능력이 진화된다는 건 사실이구만. 다음 전투에서 활약하는 거 기대하겠어.”

류설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엄청 기대되는걸요.”

기본 능력치 변화는 없었지만, 어쩐지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능력치 숫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수치가 전보다 커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시험해 볼 겸 나랑 대련하는 건 어때?”

자리에서 일어난 류설영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살살하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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