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진화된 능력 (1)
전원이 너덜너덜해졌지만, 드래곤을 사냥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카룬이 뿜어낸 불 때문에 우리가 있던 곳 주변은 온통 다 타버려서 몬스터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몬스터는 탄 냄새를 싫어하니까.
“그래도 너무 트인 공간 아니야?”
이민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여기가 가장 안전해요. 카룬이 한바탕 날뛰었으니 드래곤의 기척을 느낀 몬스터라면 이쪽으로 오지 않을 거예요. 탄 냄새가 지독할 정도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니까요.”
주변이 다 타서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터가 되어 버렸다.
언제든 몬스터들 시야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건 반갑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보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멀쩡하지. 정신을 잃었을 뿐이니까.”
아마 이민하가 초월 능력에 각성하며 바로 쓰러진 건 능력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최대치까지 사용한 탓일 것이다.
몸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거지.
“내게 초월 능력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이민하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상기된 얼굴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초월 헌터는 헌터계에서 일반 헌터와 전혀 다른 취급을 받게 된다.
그녀는 이제 새로운 헌터 인생을 시작하게 된 거다.
“그보다 앞으로 어떡할지 생각해 보자고. 언제 다시 몬스터와 싸우게 될지 모르니까.”
옆에 있던 류설영의 말에 송인혁이 앞으로 나섰다.
“일단은 최현 씨 말처럼 여기서 휴식을 취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던전 안에 있는 이상, 어디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기왕이면 외곽 지역에 탄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 낫겠죠.”
우리 조의 리더는 송인혁이었고,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카룬을 쓰러뜨리고 나서 반나절 정도 쉬었지만, 다들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각자 스스로의 한계 범위를 넘어서 힘을 사용했으니 회복이 더뎌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 상태로는 블루 라벨 몬스터만 만나도 버겁겠어. 꼼짝없이 여기서 쉬어야겠네.”
바닥에 자리를 잡고 누운 류설영은 3초를 세기 전에 코를 골기 시작했다.
원래 던전에서 살아온 탓인지 그의 적응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여러분은 쉬고 계세요. 주변 경계는 제가 하겠습니다.”
송인혁은 카룬과의 전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리는지 우리 편의를 봐주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였다.
원래도 좋은 사람이라곤 생각했지만, 길드 마스터라는 자리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때?”
“하아, 무리야. 아무리 봐도 안 되겠어.”
발렌이 자신의 의족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아람이 만들어 준 의족은 임시로 만든 거라 금방 내구도가 다했다.
애초에 걸을 수 없었던 발렌에겐 임시라도 소중한 의족이었지만, 방금 전투는 심하게 격렬했으니까.
“걷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는데, 전투하면 완전히 망가질 거야.”
“어쩔 수 없지. 일단 들어가서 쉬어.”
발렌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펫 시스템으로 다시 들어갔다.
“들리세요?!”
“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유미래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뭔가 오랜만이네요.”
“하하, 그런가요.”
우리 길드원들 중 가장 어색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유미래였다.
그녀는 레이브 길드의 통신계 헌터이자 치유계 헌터를 맡고 있다.
나이가 어리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한 헌터였다.
“대충 채하나 씨에게 얘기 들었어요. 아깐 최현 씨와 이민하 씨 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어서 채하나 씨와 얘기했지만, 앞으로는 두 분과 통신하는 게 나은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에게 말해 주시면 제가 이민하 씨에게도 전달할게요.”
이 파티의 총지휘관은 조장인 송인혁이지만, 우리 길드의 리더는 이민하였다.
지금은 갑작스레 초월 능력을 각성하고 현장에서 지휘하느라 통신까지 하긴 버거울 테니 내가 맡는 게 낫겠지.
“아래 공략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현재 1층은 공략이 끝났고, 2층 공략에 들어가고 있어요. 협회는 인원을 추가 모집하고 공략을 장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공략 팀으로 들어왔고요.”
헌터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계속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과거 최상층 공략에서도 최상층에서 싸우는 헌터들은 꾸준히 다른 헌터들과 교대하며 공략을 이어 갔었다.
지금도 헌터들이 싸우면서 공략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대할 수 있는 인원을 구하는 거겠지.
“그쪽은 어떤가요?”
유미래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히 별로 좋지 않아요. 먹을 것도 없고 다들 체력을 전부 소모해서 이동조차 불가능해요.”
현재 우리 상태는 4층에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일 정도였다.
먹을 걸 구하고 다른 몬스터로부터 버티는 게 한계일 정도다.
체력과 정신력만 어느 정도 회복된다면 금방 괜찮아지겠지만, 당장 부딪힌 상황이 최악이었다.
“알겠어요. 시간이 될 때마다 다시 통신 드릴게요.”
“유미래 씨도 조심하세요.”
내 말을 끝으로 통신은 끝이 났다.
어쨌든 아래에서 공략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5층에서 4층으로 내려온 계단 근처.
즉, 우리는 4층부터 3층, 2층을 뚫어야 복귀할 수 있다는 얘기다.
2층까지만 가면 그래도 다른 헌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문제는 4층과 3층인가.
“최현 씨도 눈 좀 붙이세요. 아직 한 번도 쉬지 않으셨잖아요.”
내 옆으로 다가온 채하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장비를 손질하고 주변에 경계선을 만드느라 제대로 앉지도 못 하셨으면서.”
“안 그래도 슬슬 쉬려고요.”
장비는 미리 정비를 해 두지 않으면 내구도가 빨리 떨어진다.
여기서 내려갈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내구도는 챙길 수밖에 없지.
경계선은 긴 줄에 쇠붙이를 여러 개 묶어서 근처에 만든 임시 트랩이다.
누군가 줄을 건드리면 소리로 알 수 있도록 만든 거다.
가지고 있던 것들을 대충 얽어서 만든 거라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이렇게 탄 냄새가 나면 발렌이 후각을 쓸 수 없으니까 어디서 몬스터가 올지 모르잖아요. 이렇게라도 안 해 두면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요.”
내 말에 빙긋 미소를 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채하나 씨가 더 대단한걸요. 전투에서 정신력을 다 쓰셨으면서 바로 다른 사람 회복까지 해 주다니.”
채하나는 전투에서 버프는 물론이고 베리어까지 쓰며 정신력을 소모했지만, 전투가 끝나고 바로 다른 사람을 치유 능력으로 회복 시켜 줬다.
적어도 내가 본 사람 중에선 가장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다.
“원래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가끔 아이처럼 행동하긴 하지만, 채하나를 보고 있으면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
“설소은 씨는 어때요?”
“능력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크게 이상은 없는데 깨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카룬을 물기둥으로 추락시킨 그녀는 그 이후로 정신을 잃고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원래 약한 사람이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능력을 세밀하게 다루는 건 정신력 소모가 더 크니까.
“무사히 내려갈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채하나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에겐 아직 던전에 갇힌다는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 안되면 윈터 버드라도 한 번 더 타죠.”
“…농담하지 마세요!”
나를 째려보는 채하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고, 그녀 역시 나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
“근처에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어요. 문제는 게이트가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 있어요.”
“…골치 아프네요. 처리할 수도 없고.”
이민하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게이트에선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그래도 여기보다 괜찮은 곳은 찾기 힘들어요. 게이트랑 거리도 있고, 경계하면서 지내야죠.”
“어쩔 수 없죠.”
하루를 꼬박 쉰 덕분에 그나마 조금 활기를 되찾았다.
식수는 깨어난 설소은이 만든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식량이었다.
현재로선 몬스터를 사냥해서 먹는 게 최선이다.
그만한 리스크가 생기겠지만.
“몬스터를 사냥하면 다른 몬스터를 불러올지도 몰라요. 어제보다 탄 냄새도 빠진 상태고 피 냄새를 맡으면 몬스터들은 이성을 잃고 달려드니까요.”
송인혁의 말대로다.
어떤 방법이든 냄새 없이 몬스터를 사냥해서 먹을 수는 없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데.
“게이트 안에는 먹을 게 있지 않을까요?”
채하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갔다.
확실히 게이트 안에선 몬스터는 물론이고 동물도 느리게 생겨난다.
발렌이 처음 게이트에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산 것도 그 덕분이었다.
문제는…….
“위험하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야.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라요.”
류설영이 내 생각을 대신 말해 줬다.
이형 게이트가 아니라면 언제든 출구를 통해서 다시 나올 수 있겠지만, 게이트는 그 자체로 위험성이 컸다.
“여기서 굶어 죽는 것보단 나을지도.”
순식간에 우리는 두 개의 의견으로 나뉘었다.
나와 채하나는 게이트에 들어가서 식량을 구해야 한다는 쪽이었고, 이민하와 송인혁, 그리고 류설영은 반대파였다.
“아직은 버틸 수 있잖아. 당장 움직일 필요는 없어. 다른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식수만 있으면 한동안 식량이 없어도 버티는 게 가능해요.”
이민하와 송인혁은 우리를 보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이 속으로는 나와 의견이 같다고 해도 겉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 뻔히 위험한 행동은 지양하고 싶은 거겠지.
“식수만으로 버티면 시간이 간다고 해도 체력이나 정신력 회복에 크게 도움이 안 돼요. 오히려 다들 점점 지쳐 가겠죠.”
“…그건 맞는 말이야.”
류설영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두 사람은 반박하지 못했다.
우리는 단지 시간을 버티고 있을 수 없다.
언제 공략 팀이 여기까지 올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류설영을 도와 빨리 내려가기로 했으니까.
“내가 다녀올게.”
원래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반대했던 류설영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원래 이 팀도 아니니까 팀장들이 내 목숨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지금 빨리 내려가려고 하는 것도 나 때문이잖아?”
“지금의 류설영 씨는 무리에요.”
나는 단호하게 그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전격 쓸 수 없죠?”
“…….”
그야말로 방전된 것처럼 한동안 전격을 쓰지 못하는 그에게 남은 건 전쟁광 초월 능력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이 불편한 그는 더 위험하겠지.
“위험하지 않은 방법이 있어요.”
“너…….”
“제가 다녀오는 거죠.”
다들 어느 정도 내 말을 예상했는지 그렇게 놀라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내가 또 목숨을 코인처럼 사용하는 것에 이민하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괜찮아요. 저도 공짜로 죽으러 갈 생각은 아니니까. 제가 식량을 가져오는 대신, 이건 제가 갖는 거 어떨까요?”
그렇게 말한 나는 인벤토리에서 ‘드래곤 하트’를 꺼내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