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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26화 (126/176)

126화 : 새로운 최강 (2)

“그 여자에게 들으셨나 보군요.”

자신의 이름을 듣고 놀라는 반응에 퀸이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은주는 자신의 정체를 흘린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유추해 냈다.

“처음부터 그 여자는 믿지 않았어요.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죠.”

“그럼 어째서 손을 잡은 거지?”

하은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길드 마스터가 아닌걸요.”

레인 길드와 거래를 한 건 유한성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저희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이 드시나요?”

하은주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다.

물에 흠뻑 젖은 헌터들이 이미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고, 빽빽하게 서 있어서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떠들고 있을 시간은 없다는 건가.

“도망친 친구들도 5층에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요. 입구 쪽은 이미 저희가 점령하고 있거든요.”

“그럼 빨리 거기서 도망치라고 하는 게 좋을걸. 죽기 싫다면.”

내 말에 그녀의 입꼬리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어지간히 동료를 믿나 보군요. 하지만 지금 최현 씨는 혼자인데 이 많은 헌터를 다 상대할 수 있겠어요?”

스르릉.

쌔엥-

다들 자신의 무기를 꺼내 언제든 내게 달려들 것처럼 송곳니를 드러냈다.

“최현 씨를 공략하는 방법은 이미 생각해 뒀어요. 마스터의 능력이 있다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죠. 이미 저희는 최현 씨의 모든 능력을 파악해 둔 상태니까요.”

확실히 유한성의 능력은 내 초월 능력과 상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생각보다 공간의 제약이 많은 능력이었기에 좁은 공간에서 날 죽이면 도망치기 힘들어진다.

유한성은 강제로 자신의 공간에 상대를 보낼 수 있다.

그것만 피하면 어떻게든…….

“이야, 오랜만인데?”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너덜너덜한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지독한 냄새와 함께 우리 사이로 등장했다.

“지나가다 보니까 낯익은 얼굴이 보이잖아! 하하하!”

“…류설영 씨?”

“류… 류설영?”

“저 남자가?”

내 말에 순식간에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류설영은 SS급 헌터 중 한 사람이며, 언젠가 행방불명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지꼴을 하고 등장했으니 믿기 어렵겠지.

“계단은 막아 뒀을 텐데 어떻게…….”

“계단? 아무도 없던데? 6층에서 내려왔거든.”

“……!”

그 특유의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당황해서 눈치를 살폈지만, 나는 그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천천히 인사를 나누기 전에 아무래도 주변 정리부터 해야겠는데?”

류설영의 말에 놀란 헌터들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SS급 헌터가 얼마나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존재인지 그들은 아는 것이다.

“갑자기 불청객은 반갑지 않은걸요.”

하은주의 목소리와 함께 스킬라들이 동시에 덤벼 오는 게 보였다.

“마침 다들 촉촉하게 젖어 있네.”

씨익 웃음을 머금은 류설영을 보자마자 빠르게 칠흑의 묵갑으로 갑옷을 바꿨다.

파직, 파지지직!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주변을 집어삼켰고, 나까지 휘말리기 전에 블링크로 빠져나왔다.

킹이 썼던 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설소은의 능력 때문에 젖어 있던 헌터들은 전격에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야, 아직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미안하네.”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 나오는 그를 보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전에 나랑 있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전격이었다.

“엄청 반갑네! 그보다 왜 이런 곳에서 저런 녀석들한테 둘러싸여 있던 거야?”

“여기서 말하기엔 사정이 길어서요. 그보다 류설영 씨는 왜 여기 있는 거예요?”

그는 던전 아래로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었다.

굳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던전에서 나와야 할 이유가 없었고, 던전 안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흐음… 나도 간단히 얘기할 만한 내용은 아니거든.”

문득 그의 모습을 살피다가 팔이 있어야 할 소매를 질끈 묶어둔 게 보였다.

“…! 류설영 씨?! 팔은……!”

“아, 오다가 몬스터랑 싸우다가 잃었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류설영을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봤다.

“여기까지 오는 데 팔 하나면 싸게 먹힌 거지.”

과거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17층에서 10층까지 내려오며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류설영이라 팔 하나로 끝난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든든한 동료도 얻었으니 다시 아래로 내려가 볼까.”

“제가 훨씬 더 든든한걸요.”

빈말이 아니었다.

류설영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금까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내가 바보 같아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오직 힘으로 뚫고 간다!

“안 비키면 다친다!”

부웅- 붕!

그는 전격을 맞고 쓰러진 헌터가 떨어뜨린 대검을 들고 가볍게 휘두르고 있었다.

전쟁광이라는 초월 능력은 어떤 무기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었다.

자유롭게 사는 그를 보면 딱 어울리는 능력이란 생각이 든다.

“아까 제법 많이 쓰러뜨렸는데 아직도 이 정도인가.”

어느새 주변에 다른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저를 도와서 싸우셔도 되는 거예요?”

류설영은 지금 우리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거라면 그는 그걸 거드는 셈이 된다.

“뭐야?! 너 죄지었어?!”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됐어.”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미안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힘을 제법 썼거든. 아까 같은 화력은 이제 무리야.”

류설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꽉 움켜쥐었다.

자세히 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미 한계인 상태인가.

위층에서도 계속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면서 왔을 테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엔 제가 할게요.”

“좋아, 실력 좀 볼까.”

류설영은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실력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단숨에 계단 쪽으로 몸을 틀어 앞에 있는 헌터를 향해 화도를 뿜어냈다.

쌔-엥!

“……!”

두 번이나 돌파를 당한 포위망은 아까보다 얇아졌고, 한 곳만 공략하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앞에서 달리며 헌터들을 쓰러뜨렸고, 내 뒤로 류설영이 바짝 붙어 따라왔다.

“검술 자세가 변했는데?”

“눈치채셨나요?”

“당연하지.”

류설영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검술이라는 건 조금만 바뀌어도 아예 다른 형태처럼 느껴지니까. 답을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

“류설영 씨 덕분이에요.”

그는 좋게 말해 주었지만, 개선된 부분은 굉장히 미미했다.

이미 몸에 익은 자세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았고, 최근엔 여러 사건이 겹쳐서 훈련할 여유도 없었으니까.

“그럼 네가 다른 헌터들이랑 싸우고 있었던 이유를 들어 볼까.”

***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라… 그런 줄 알았으면 아까 끝장을 냈을 텐데.”

“다른 헌터들도 있어서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근처에 유한성도 있었을 테고.”

류설영은 내 얘기를 다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내려오자마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래도 5층에서 저랑 만난 게 다행일지도 모르죠. 혼자서 1층까지 가는 건 힘들잖아요.”

“그건 그렇지!”

바로 내 말을 수긍한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보다 류설영 씨는 어쩌다가 내려올 결심을 하신 거예요?”

“오랜 친구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방금까지 웃고 있던 류설영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얼마 못 산다고 하더라. 그래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통신계를 통해서 연락된 건가요?”

“그래. 예전엔 통신이 와도 무시하고 죽은 척하면서 지냈는데, 그랬더니 이후로는 잠잠하더라고.”

매스컴에서도 그의 실종 보도와 함께 사망 추정에 관한 기사를 쏟아 냈다.

통신도 되지 않으니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그런데 이번에 연락을 한 녀석이 원래 통신계 헌터였거든. 그 녀석한테 연락이 왔어.”

“친구 때문에 내려오시다니… 예상 밖이네요.”

한량처럼 살며 다른 사람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이었기에 의외였다.

“그치? 나도 정신을 차렸을 땐 10층에서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더라고.”

피식 웃은 그는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둘러야지. 기왕이면 살아 있을 때 보고 싶거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주변에는 헌터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걸 보고 나서야 안도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지만, 오랜 시간 싸워서 제법 지쳐 있을 거다.

아래로 계단을 따라 성큼성큼 내려가던 류설영은 이내 걸음을 멈췄다.

“……?!”

“온다!”

카가가각!

류설영의 외침에 검을 들어서 반사적으로 공격을 막아 냈다.

“4층이 코앞인데 아쉽겠어.”

“최현 씨…….”

앞에 보이는 건 줄에 꽁꽁 묶여 있는 채하나였다.

울먹거리는 그녀를 보자마자 살기를 드러내며 그들을 쏘아봤다.

“한다는 게 겨우 삼류 인질극이냐?”

“…방법이 뭐든 중요하지 않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다 죽이겠다. 뒤에 다른 녀석들도 데리고 있거든.”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린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최후방에 가장 실력 좋은 헌터들을 모아 놨을 줄이야.

대충 훑어봐도 몇 명은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한 헌터들이었다.

이 정도 헌터들에게 기습을 받았으니 이민하 일행이라고 해도 힘들었겠지.

심지어 능력도 많이 써서 다들 한계였으니까.

“가만히 있어. 까딱하면 죽일 테니까.”

그들의 살기는 진심이었다.

류설영 씨와 나는 얌전히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올렸다.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채하나를 보고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간파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이 녀석들을 속일 수 있는 연기.

“최현 씨이이! 흐어어엉 우리 이제 어떡해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채하나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흠칫 놀랐다.

원래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실제 모습이야?

“시끄러워!”

헌터들은 나와 류설영을 묶은 뒤 목에 검을 겨누었다.

“전격을 쓰거나 초월 능력을 쓰면 다른 인질은 반드시 죽인다.”

류설영에 대한 건 이미 통신으로 들은 건가.

우리는 그대로 송인혁과 이민하, 그리고 설소은이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4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바로 앞에 사이좋게 잡혀 있었고, 묶여서 끌려오는 나를 보고 고개를 떨궜다.

“드디어 다 잡았네!”

우리를 다른 사람들 근처로 데려가는 순간, 묶인 채로 손가락을 움직여 펫 시스템을 열었다.

푸른 빛에 휘감긴 발렌은 옆에서 튀어나오면서 인질들 뒤에 있는 헌터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빠악!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에 헌터의 머리통이 으깨졌고, 발렌이 당당하게 인질들 앞에 섰다.

“영웅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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