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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24화 (124/176)

124화 : 오크 몽둥이 (2)

“드디어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군요.”

“…….”

전에 유한성에게 당했던 방식을 그대로 다시 당할 줄이야.

새로 끌려온 공간은 원래 있던 공간보다 훨씬 좁았다.

잘해 봐야 가로세로 10m 정도의 공간.

그곳에 나와 킹, 그리고 퀸이 있었다.

비숍이 날뛰었던 건 처음부터 이렇게 나를 빼돌리기 위해 시선을 끈 것이다.

“그렇게 눈을 굴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이 찾는 출구는 저희 뒤에 있으니까요.”

킹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살짝 옆으로 틀었고,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보였다.

“물론 나가실 땐 초월 능력은 없으시겠지만.”

가장 구석에 등을 붙이고 놈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킹이라는 놈은 처음 만났을 때 ‘투명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엔 최윤수에게 투명화 능력을 줬다.

아무 능력도 없이 나를 잡겠다고 찾아오진 않았을 테니 뭔가 다른 능력을 갖고 있겠지.

능력이 뭔지 알기 전까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신중하시군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밖에 있는 다른 동료들을 걱정해야 하지 않나요?”

“너야말로 우리 걱정보단, 본인 걱정이나 하시지.”

블링크나 지정 부활을 써도 유한성의 공간에서 나갈 수 없다.

아마도 아예 별개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능력을 뺏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킹은 처음 날 만났을 때 약을 먹이려고 했다.

전투 중에 능력을 뺏는 게 가능하지 않다면 할 만해.

“형씨, 나도 같이 싸울게!”

“아직 기다려.”

발렌의 존재는 내게 히든카드나 다름없다.

놈들은 나를 혼자 떼어 놓기 위해 여기로 데려왔고, 다른 방해꾼은 전혀 없다고 안심하고 있다.

발렌을 먼저 꺼내서 같이 싸우는 것보다 한 번의 기회를 만드는 게 좋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킹은 천천히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와 반대에 서 있는 퀸은 킹의 그런 움직임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지켜봤다.

“너, 내 능력을 뺏어도 유한성에게 줄 생각 없지?”

“오호,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검을 뽑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의 걸음이 멈췄다.

“정말 유한성이 네가 말했던 ‘고객’이라면 처음부터 그의 힘을 빌렸겠지. 하지만 넌 혼자서 날 찾아와서 능력을 뺏으려고 했어.”

“…뭐, 굳이 숨길 필요도 없겠죠. 그는 현재 자신의 능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몬스터를 모아서 군단을 만들려는 계획을 위해 필요했던 거죠.”

“그 계획조차 망가져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건가.”

킹은 내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를 꾀어내는 건 간단한 일이었죠.”

처음부터 내 능력을 탐내고 있던 건 바로 킹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목숨을 걸고 날 만나러 오지 않았을 테니까.

새의 날개가 달린 그 여자를 포함해서 주변에 다른 녀석들이 더 있었겠지.

민혁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잡담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는 허전한 자신의 팔 쪽 로브를 움켜쥐며 말했다.

“다시 멍청하게 당해 줄 생각은 없으니까요. 당신에 대한 정보는 완벽하게 분석했습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갑옷, 능력치를 극대화 시키는 버프 스킬, 인벤토리, 죽으면 즉시 부활할 수 있는 스킬, 죽음을 막는 스킬…….”

킹이 하나씩 내 능력을 나열할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번에 유한성의 공간에서 그 많은 몬스터와 싸울 때 놈이 정보를 모아 둔 거겠지.

“그리고 원래는 죽었을 때 무작위 장소에서 부활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원하는 공간에서 부활할 수 있는 스킬을 얻은 거겠죠.”

“그 정도면 내 스토커 수준인데?”

역시 발렌의 존재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발렌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공개했고, 최근엔 다리 때문에 밖으로 나와서 같이 싸운 적도 없으니까.

“그래서? 죽어도 부활하는 나를 상대로 어떻게 이길 생각이지?”

“힘으로 누를 수밖에.”

파지지직!

“……!”

킹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스파크에 내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초월 능력은 한 사람에게 하나의 능력만이 존재하지만, 특수계 능력은 다수의 헌터가 같은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마력계도 마찬가지이며, 같은 속성의 헌터도 여럿 있다.

“마력계에서도 전격 능력은 희귀한 능력이죠. 운 좋게도 얼마 전에 전격 능력을 가진 헌터를 찾았거든요.”

“설마…….”

“하하, 물론 류설영은 아닙니다. 그분이라면 뺏고 싶다고 뺏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애초에 류설영은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킹은 내 쪽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

파지직!

강력한 전격이 눈 깜짝할 새에 쏟아졌고, 몸을 옆으로 굴려서 피해 냈다.

최대한 그와 거리를 벌리며 숨을 돌렸다.

전격 자체는 다루는 게 까다롭지만, 맞히기만 한다면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발렌, 준비됐지?”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거리를 두고 움직이면 전격을 피하는 게 어렵진 않다.

문제는 접근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내가 블링크를 쓸 수 있다는 건 킹도 알고 있다.

갑옷을 착용하면 수를 읽힐 것이고 그건 오히려 내게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검은 새의 깃털’을 입고 단숨에 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킹은 내가 최대한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전격을 뿜어냈다.

빠지직!

“크으윽!”

온몸을 뚫고 들어오는 전격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마비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그걸 알았는지 킹은 씨익 웃음을 머금었다.

“무슨 생각으로 접근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게임 끝이군요.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마비만 시켜 두면…….”

[Passive - 붉은 새 LV.Max

체력이 10% 이하로 남을 시 발동한다.

모든 상태 이상을 없애며, 10분 동안 다른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다.]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이 붉게 변하는 걸 보고 킹이 한 걸음 물러났다.

마비 효과가 사라지자마자, 그에게 바로 달라붙었다.

당황한 킹은 황급히 다시 전격을 뿜어냈다.

“발렌!”

바로 앞에 튀어나온 발렌은 나오자마자 들고 있던 몽둥이로 킹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직!

***

머리에서 피를 흥건하게 흘리는 킹은 바닥에 쓰러져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발렌의 공격을 제대로 맞았으니 그대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의 로브를 벗기자 젊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그의 얼굴에 인상을 찡그리며 여전히 멀찌감치 서 있는 퀸에게 시선을 옮겼다.

“당신 길드 마스터가 이 꼴이 됐는데도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 사람은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겠죠.”

검은색 로브 안에선 매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대체 뭐야? 둘이서 나를 노리고 있었던 거 아니었나?”

“방금까지는 그랬죠.”

퀸의 말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길드의 동료가 당했는데도 감정의 동요는커녕 당연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는 가치가 없거든요. 야망이 있고, 리더십이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능력이 없었어요.”

퀸은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뻗어 있는 킹을 바라봤다.

“상대와 자신의 힘의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능력에만 기댔죠. 아직 한참 어린 애송이였던 거죠.”

“…그래서? 이번엔 네가 덤빌 건가?”

“설마요. 저는 최현 씨를 이길 만큼 강하지 않거든요. 애초에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예상하였고, 그의 마지막을 봐 주러 왔을 뿐이에요.”

어쩐지 킹보다 퀸의 목소리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단지 말뿐이 아니라 정말 이 상황을 예상하였다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냥 돌아가지 못할 텐데?”

“그건 모르는 일이죠.”

로브 안쪽에서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퀸을 보고 한 걸음 다가갔다.

“여기서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는 건가?”

“저를 놓치는 게 두려우신가요?”

그녀의 말에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서 화도에 손을 가져갔다.

만약 뒤를 돌아서 문으로 향한다면 바로 화도를 뽑는다.

“킹에겐 고마워하고 있어요. 제 능력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게 해 줬으니까요. 길드라는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준 것도 감사하죠. 하지만 이제 능력 없는 그는 필요 없어요.”

어깨를 으쓱한 퀸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최현 씨의 능력은 분명 비싼 값에 팔리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오르지 못하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그저 돈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는 건가.”

“그저 돈이라뇨. 돈은 전부입니다. 킹은 어리석게도 넘으면 안 되는 선을 넘어 버렸지만, 능력을 뺏는 건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어요. 오히려 던전이라는 끔찍한 공간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죠.”

누군가의 능력을 뺏는 건 도둑질과도 같다.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부터 나는 그녀를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쪽으로도 쓸 수 있는 능력 아닌가.”

“최현 씨가 말하는 좋은 쪽이라는 건 헌터로서 능력을 쓰라는 건가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은퇴한 헌터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던가, 특수계 능력은 무작위로 생겨나는 능력이니 헌터가 되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런 사람들의 능력을 현직 헌터들에게 준다면 던전 공략도 나아지겠지.”

“던전 공략이 나아지면요?”

퀸은 아까와 달리 조금 날이 선 목소리로 물어왔다.

“던전 공략은 누굴 위한 일이죠? 헌터들은 누굴 위해 싸우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헌터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뿐이고, 협회도, 길드도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최현 씨는 마치 그들이 봉사하는 것처럼 말하고 계시네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던전 자체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며 살지 않아도 되고, 아포칼립스 때 그 많은 사람의 희생을 다시 겪지 않아도 돼. 언제 또 아포칼립스가 벌어질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최현 씨는 몽상가시군요. 아직 던전의 최고층이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정말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퀸은 그렇게 말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쌔엥-!

화도를 단숨에 뽑아 그녀의 목에 겨누었다.

“도망칠 생각하지 마.”

“13층까지 그렇게 힘들게 공략했는데 아포칼립스가 발생하자마자 던전을 빼앗겼어요.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요?”

“그래도 싸울 수밖에 없어. 이 세상에서 던전을 없앨 거야.”

퀸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보 같은 분이군요. 그래도 최현 씨 같은 분을 싫어하진 않아요. 지금 비어 있는 킹의 자리에 최현 씨가 온다면 환영이죠. 어때요? 저희 ‘레인’ 길드에 들어오시는 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뒤에 있는 문고리로 손을 가져갔고, 빠르게 퀸의 어깨에 화도를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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