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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21화 (121/176)

121화 : 1층 수복 작전 (4)

촤라락!

송인혁의 사슬이 정면에 있는 ‘페리톤’의 목에 감겼다.

페리톤은 새와 사슴이 합쳐진 듯한 형상의 몬스터로, 사슴이 이족 보행을 하며 날개가 달려 있다.

머리에 나 있는 뿔은 마치 창끝처럼 뾰족하며 덩치도 사람보다 크고 힘도 장사였다.

블루 라벨 최하위에 있는 몬스터로 무리 생활을 하는 게 특징이다.

“최현 씨!”

“네!”

사슬에 묶여 있는 몬스터를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화도가 단숨에 페리톤의 난도질했고, 버둥거리던 놈은 이내 축 늘어졌다.

“이거,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네.”

다른 페리톤의 뿔을 막고 있는 이민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게이트에 들어와서 쉬지 않고 페리톤을 쓰러뜨렸는데 아직도 몰려들고 있다.

“두 사람 다 괜찮아요?!”

채하나와 설소은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이런 떼로 몰려다니는 몬스터를 처리할 땐 마력계 헌터의 힘이 빛을 발한다.

설소은의 능력으로 처음에 놈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설소은의 정신력이 빠르게 소모됐다.

“얼른 끝내 버리죠! 화이팅!”

송인혁은 체력이 좋은지 전투가 오래 이어져도 별로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사슬은 몬스터를 묶는 것도 가능했고, 직접적인 타격으로 대미지를 입히기도 했다.

자유자재로 사슬을 다루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죄송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이미 충분히 하고 계시니까 괜찮아요!”

채하나는 자신의 주특기인 버프를 쓰지 못한다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레인이 내게 접근한 이후로 우리 팀은 모두 놈들의 기습에 대비하고 있다.

그 대비의 일환이 바로 채하나의 베리어였다.

그래서 채하나는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뒤에 빠져 있었다.

“최현!”

카앙!

이민하가 앞에 있는 페리톤의 뿔을 받아치며 내 쪽으로 밀어냈다.

기다렸던 난 바로 에렌 셀을 소환해서 놈의 등에 꽂아 넣었다.

“쿠에에엑!”

촤라락!

고통에 발버둥 치는 놈의 머리통을 송인혁의 쇠사슬이 후려쳤고, 그제야 잠잠해졌다.

“하아… 하아…….”

“드디어 정리됐네요.”

“몇 마리 놓친 건 조금 쉬었다가 쫓도록 하죠.”

주변도, 우리도 온통 피범벅이라 근처에 있는 냇가로 이동했다.

초원 필드는 전투하기엔 가장 좋은 필드였다.

그만큼 몬스터들의 시야도 트여 있어서 기습을 주의해야 하지만, 난 역시 초원 필드가 좋다.

“…피 냄새가 안 빠져.”

“그러게. 다음 게이트에서 또 성가시겠어.”

이민하가 찝찝한 듯 자신의 옷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 냄새를 잔뜩 풍기면 몬스터들이 우리를 눈치채고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게이트를 공략하고 던전으로 나가도 성가신 상황이 많았다.

“채하나 씨 얼굴이 너무 창백한데…….”

“저 괜찮아요!”

“무리하지 마세요. 충분히 쉬었다가 이동하도록 하죠.”

채하나는 우리 몸에 맞는 형태로 얇은 베리어를 두르고 있다.

즉, 우리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갑옷을 입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베리어의 형태를 바꾸는 건 상당히 세밀한 컨트롤을 요구하기에 다른 능력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다수의 인원에게 베리어를 쓰고 있어서 그 강도도 높지 않았다.

“어쩐지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채하나는 손을 내저으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애초에 그녀만큼 높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언제까지 베리어를 쓰고 있을 순 없으니까.

“최현 씨는 정말 대단하시군요.”

화도를 들고 자세를 취하는 내게 송인혁이 다가왔다.

“쉬는 시간에도 훈련을 반복하고 계시다니… 괜히 저까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네요.”

“아, 아니에요. 조금만 하고 쉬겠습니다.”

이재문에게 공책을 받은 후로 꾸준히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이미 잘못된 자세가 몸에 익어 버렸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바꾸기 힘들겠지.

“최현 씨의 검술은 뭐랄까…….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강한 느낌이에요.”

송인혁의 말은 월하백하식을 관통하는 말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검술이지만, 절제된 듯한 움직임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월하백화식의 강점이었다.

“송인혁 씨의 사슬도 보통이 아니었는걸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송인혁의 사슬은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공격과 방어, 그리고 서포트까지 혼자서 해결하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전투 센스가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게이트가 끝나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렇네요. 1층 공략 진척도 예상보다 빠르고…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겠죠.”

이민하와 송인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게이트를 2개나 공략했다.

백진철의 효율적인 운용으로 1층 공략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의 지휘 능력을 본 헌터들은 사기가 점점 올랐고, 공략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럼… 슬슬 다시 움직이는 게…….”

카가각!

“……!”

“꺅!”

뒤쪽에 있던 설소은이 바닥에 뒹구는 걸 보고 다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설소은 씨!”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놈들인 것 같아요.”

쓰러진 설소은의 주변으로 우리가 빙 둘러싸며 벽을 만들었다.

“괜찮으세요?”

“네. 베리어 덕분에…….”

그녀의 옆구리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긁힌 정도의 상처였다.

베리어가 없었다면 뚫고 들어갔겠지.

“발렌. 찾을 수 있겠어?”

“피 냄새 때문에 찾기 어려워. 가까이 오면 찾을 수 있지만, 지금은…….”

나를 비롯한 우리 팀 모두가 페리톤의 피를 뒤집어썼다.

발렌이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가.

“어쩌죠?”

“일단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어요.”

다들 소리도 내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다.

팔이 잘리고 하루 만에 다시 찾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놈은 단도를 잘 다뤄요. 설소은 씨를 공격했을 때도 단도를 쓴 거겠죠.”

단도는 빠르게 적의 급소를 정확하게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파괴력 자체는 미비하다.

채하나의 베리어를 뚫는 거로 끝난 것도 그 때문이겠지.

“형씨! 정면에서 왼쪽 세 걸음!”

발렌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화도를 휘둘렀다.

4공식, 매화.

쌔엥-!

매화는 월하백화식에서 가장 범위가 넓은 기술이다.

보이지 않는 적을 맞추기엔 매화보다 좋은 게 없었다.

붉은 피가 허공에 터져 나왔지만, 놈이 보이진 않았다.

“멀어지고 있어! 쫓아가야 해!”

발렌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다른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여기서 기다리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조심해!”

이민하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놈의 피 냄새가 나. 따라갈 수 있어!”

페리톤의 피 냄새가 여전히 맴돌았지만, 방금 피를 흘린 놈의 냄새를 쫓는 건 발렌에게 어려운 게 아니었다.

“형씨, 이거 함정일 수도 있어.”

“알고 있어.”

넓게 펼쳐진 초원을 달리며 놈의 뒤를 바짝 쫓았다.

“정면!”

칠흑의 묵갑으로 장비를 변경하여 블링크로 놈을 덮쳤다.

파악!

등을 밀치며 그대로 바닥에 놈을 넘어뜨렸고 단숨에 팔로 뒷목을 눌렀다.

“커헉!”

그제야 놈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어째서 팔이…….”

분명 어제 내가 베어 버렸을 팔이 여전히 놈의 어깨에 붙어 있었다.

왼쪽 팔과 오른쪽 팔, 둘 다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도 단도가 아닌 장검이었다.

힘이 없어서 베리어를 뚫지 못한 것뿐인가.

검은색 로브를 거칠게 벗기며 인상을 구겼다.

“……!”

로브 안에 있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앳된 얼굴이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바르르 떨었다.

“뭐야, 이렇게 어린놈이었어?”

“놔! 놓으라고!”

물론 상대 나이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콰직!

“크아아아악!”

바닥에 엎어져 있는 놈의 손등에 검을 찍었다.

발버둥을 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는 괴로운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남을 죽이려고 했으면 자신이 죽을 거란 각오도 했겠지?”

“닥쳐! 비키라고!”

아까 매화에 어깨 쪽을 다쳤는지 초록빛 초원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레인이라고 했지? 네놈들은 대체 뭐야? 제대로 얘기하면 목숨은 보장하지.”

“끄아악!”

작게 협박하며 그의 손에 꽂혀있는 화도를 살짝 움직였다.

부르르 몸을 떠는 그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하아… 하아…. 다 말하면 살려 주는 거야?”

“당연하지. 약속한다.”

일단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걸 물었다.

“이 팔은 뭐야? 어제 분명 내가 베어 버렸을 텐데.”

“당신이 자른 팔은 내 게 아니야. 우리 길드 마스터인 ‘킹’이야.”

어제 만났던 놈은 자신을 레인의 길드 마스터라고 소개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확실히 이 목소리와는 달랐다.

“그럼 너와 그 ‘킹’이라는 인간은 같은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레인 길드엔 헌터의 초월 능력과 특수계 능력을 뺏을 힘이 있어.”

그의 말에 인상이 구겨졌다.

“대체 무슨 수로…….”

“그건 우리도 몰라. 나 같은 ‘폰’에겐 그런 건 알려 주지 않는다고.”

“킹에 폰이라면 체스?”

소년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총 16명. 그게 우리 길드 총원이야. 나 같은 폰은 언제든지 다시 구할 수 있으니까 능력을 줘서 미끼로 던진 거지.”

“…미끼?”

그의 말에 바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초월 능력을 줬으면서 혼자만 보냈을 리는 없다.

놈들이 정말 미끼로 이 녀석을 보낸 거라면 분명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감시자가 있을 거다.

“형씨! 위야!”

“……!”

발렌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자 한참 위에서 날고 있는 커다란 새가 보였다.

아니, 새가 아닌 사람이다.

그때 방해했던 놈인가?!

“초월 능력은 한 사람에 하나만 넣을 수 있어. 그리고 능력을 뺏고 넣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 알고 있어. 이제 됐지?! 나… 나 좀 살려 줘! 저놈이 날 죽일 거라고!”

“뭐?”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위에 있던 놈이 아래로 빠르게 내려왔다.

파앙- 팡!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낮게 내려온 그녀는 거리를 두고 제자리에서 날고 있었다.

“당신은 폰 자격을 박탈합니다.”

“빨리! 저 여자 좀 죽여 주라고!”

내가 그를 잡았을 때보다 심각하게 떨고 있었다.

등에 날개가 달린 그녀는 공중을 날고만 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시겠지만, 저희 길드는 목숨을 잃는 것 외엔 길드를 나갈 수 없습니다. 즉,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든 죽게 된다는 거죠.”

“꺼져! 날 좀 내버려 두라고!”

내게 깔린 그가 울부짖었고, 그의 손에 박혀있던 화도를 뽑아 앞에 있는 여자에게 겨누었다.

“너흰 대체 뭐야.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건데?”

“저희는 그저 장사꾼일 뿐입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을 하는 거죠. 이 세상은 돈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녀는 아예 아래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뎠다.

“‘최윤수’ 씨. 임무에 실패한 건 물론이고 저희 정보를 마음대로 흘리다니… 편하게 죽진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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