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 1층 수복 작전 (3)
“너… 뭐야?!”
“최현 씨? 왜 그래요?”
내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걸 보고 다른 일행들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제 모습이 보이는 건 최현 씨뿐입니다. 제 초월 능력이거든요. 이 칼이 최현 씨가 아닌 다른 동료에게 닿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꿀꺽.
“아, 아뇨. 먼저 가세요. 신월 길드에 전할 말이 있어서요.”
“그런 거라면 제가…….”
송인혁은 그렇게 말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 전달하기 힘든 내용인가 보군요. 알겠습니다.”
“뭐야! 최현 씨 뭔데요! 나 몰래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채하나가 입술을 빼죽 내민 걸 보고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에요! 금방 얘기하고 따라갈게요.”
“알겠습니다. 혼자 움직이는 건 위험하지만, 최현 씨라면 괜찮겠죠. 먼저 가겠습니다.”
일행이 앞으로 멀어지는 걸 보고 다시 뒤에 있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 뭐야?”
“잘하셨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레인 길드의 길드 마스터입니다.”
레인 길드… 들어본 적도 없는 길드다.
휘릭.
단검을 가지고 놀듯 손에서 몇 번 돌린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다시 집어넣었다.
“놀라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 물론 처음부터 놀라게 해 드리려고 했지만요.”
“칼을 갖다 대면서까지 나와 하고 싶은 대화가 뭐지?”
던전은 어두웠기에 애초에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로브 때문에 입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길드는 능력을 사고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능력을 사고팔아?”
“그렇습니다. 초월 능력이라던가 특수계 능력을 뽑아서 다른 헌터에게 주입하는 게 가능하죠. 혹은, 직접 만드는 것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깜짝 놀라 뒤로 살짝 거리를 벌렸다.
언제든 화도를 뽑을 수 있도록 검에 손을 가져가며 그를 노려봤다.
백진철이 말했던 놈들인가.
백진철은 앙그라마이뉴의 길드 마스터인 유한성의 초월 능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저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나름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데 정보가 빠르시네요.”
“엄청난 정보책을 하나 갖고 있거든. 그래서? 내게 용건이 뭔데?”
남자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최현 씨의 능력을 원하는 고객님이 많아졌거든요.”
“뭐?”
단숨에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숨을 훅 들이마셨다.
아찔할 정도의 살기였고, 이런 살기는 보통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뿜어내는 살기였다.
“최현 씨의 초월 능력은 최상위 능력이기 때문에 엄청난 값을 받고 파는 게 가능하죠.”
“애초에 초월 능력을 빼앗거나 주입하는 게 가능해?”
내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면 제가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았겠죠. 더 이상 저희 쪽 정보를 흘리는 건 곤란하니 떠드는 건 그만두도록 하죠.”
그의 살기가 아까보다 예리하게 변하며 언제든 내게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쿵쾅- 쿵쾅-
주변이 시끄러운데도 심장 소리가 귀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호흡도 불안정했고, 모든 감각이 성가시게 느껴졌다.
정말 이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여기서 내 능력을 뺏길지도 모른다.
나를 죽이겠다고 찾아오는 것보다 능력을 빼앗기는 게 더 두려웠다.
심지어 나는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초월 능력을 뺏는지도 알지 못한다.
“뭐, 반항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계속 일을 귀찮게 만드시면 저희도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
“예를 들면 최현 씨 주변 사람들을 건든다든지…….”
쌔엥-!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도가 뿜어졌다.
날카로운 기습이었음에도 그는 민첩하게 몸을 뒤로 피했고, 어깨를 살짝 스치는 것으로 끝났다.
사전에 내 움직임을 파악해 두지 않았다면 피하지 못했을 거다.
“이런… 생각보다 감정적인 분이시군요.”
처음에 자신의 능력이 남에게 보이지 않는 능력이라고 했다.
내겐 무언가의 방법으로 보이도록 손을 써 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능력을 쓰지 못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건가.
“최현 씨를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초월 능력만 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걸 말이라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동료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건 최현 씨도 바라지 않으시잖아요?”
남에게 보이지 않는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굳이 내겐 모습을 보이며 협박을 해 왔다.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으로 모습을 감추고 내게서 능력을 빼앗으면 됐을 텐데 어째서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선택한 거지?
즉,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능력을 뺏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너 거기서 뭐해?!”
머릿속에 이신예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이신예 씨! 도와주세요. 혹시 민혁이도 같이 있나요?”
“응? 옆에 있긴 한데…….”
통신계 능력은 머릿속으로 대화를 할 수 있기에 앞에 있는 놈에게 걸리지 않을 수 있다.
혹시나 그가 의심할지도 모르니 떠들어 볼까.
“능력만 넘기면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건가?”
“물론이죠. 아무리 초월 능력이 엄청나다고 해도 목숨보다 중요하겠습니까?”
그는 히죽거리며 나를 조금씩 꾀어내고 있었다.
“제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5걸음 앞에 화살을 쏴 달라고 해 주세요.”
“뭐? 갑자기 왜?”
“급한 일이에요!”
“알겠어.”
이신예는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군말 없이 따라 주었다.
“초월 능력은 어떻게 넘기는 거지?”
“하하, 일단은 영업 비밀이라 이 약을 먹고 잠시 주무시면 끝납니다.”
그가 손바닥 위에 하얀색 알약을 보여 줬다.
긴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고, 그 순간 멀리서 화살이 날아왔다.
파앙-!
“크아아악!”
정확히 놈의 옆구리에 화살이 박히며 놈의 자세가 무너졌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파고들어 화도를 뽑았다.
쌔엥-!
“……!”
붉은 피가 허공에 퍼졌지만, 놈의 목을 베지 못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팔이 바닥에 나뒹구는 걸 보고 인상을 구겼다.
“…다음엔 지금처럼 대화로 끝나지 않을 거야.”
펄럭! 펄럭!
뒤에서 남자를 당긴 건 그와 같은 검은 로브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등에 새와 같은 커다란 날개를 달고 있었다.
방해만 없었어도 검이 빗나가지 않았을 텐데.
다시 한번 달려들려는 순간, 팔을 잃은 남자를 데리고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기억하겠어, 최현.”
“…….”
하늘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현아!”
멀리서 뛰어오는 민혁이 일행을 보고 숨을 크게 토해 냈다.
***
“뭐… 뭐?! 그게 정말이야?”
“들은 적 있어.”
이신예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도시 전설처럼 퍼진 소문이라 믿지 않았지만, 들어본 적 있는 얘기야.”
먼저 신월 길드에게 방금 있었던 일에 관해 얘기했다.
숨길 필요도 없는 얘기였고, 기왕이면 많은 사람이 아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숨기는 게 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처음부터 현이의 초월 능력을 노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는 거군. 후우…….”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은 유지한 아저씨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우리가 가져갈게. 검사를 해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유지한 아저씨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지금까진 왜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민혁이의 질문에 대답한 건 이신예였다.
“아마 놈들이 수를 쓴 거겠지. 투명화 능력이 있다면 초월 능력을 뺏은 뒤에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런가.”
“하필 이렇게 번잡한 틈에 일을 벌이다니…….”
유지한 아저씨는 짜증 난다는 듯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짓이겼다.
“뭐,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조심하는 수밖에. 특히 현이는 같이 움직이는 팀에 말해 둬. 나는 협회에도 보고해 둘 테니까.”
“알겠어요.”
아저씨 말대로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놈들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건 힘들었다.
찾는다고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얼굴을 본 것도 아니니까.
확실한 정보는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와 투명화 능력을 가진 남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본인들을 ‘레인’ 길드라고 말했다는 것.
일단 신월 길드와 헤어져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아, 왔다!”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입구에서 채하나와 이민하가 반겨 주었다.
“들어가서 먼저 쉬고 계시죠. 괜히 죄송하게…….”
“괜찮아. 우리도 보고하고 쉬자.”
베이스캠프는 넓은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아 뒤쪽에서 몬스터의 공격이 들어오지 않도록 배치한 듯 보였다.
주변은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다수의 헌터가 경계 중이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
길드별로 나누어진 캠프에서 나는 두 사람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사실 놈들이 노린다면 내 옆에 있는 이 두 사람일 가능성이 컸고, 나를 노리는 것보다 그쪽이 더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이민하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채하나는 입을 가린 채 할 말을 잃었다.
“투명화하는 녀석만 처리해도 기습해 오긴 힘들 것 같아서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했는데 다른 녀석이 끼어드는 바람에…….”
“하아… 능력을 사고팔다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이민하는 머리를 감싸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 생각엔 이번 작전에서 두 사람이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괜히 위험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아니, 어차피 놈들이 누군가를 인질로 삼는다면 우리가 노려지는 게 나아.”
“네? 어째서…….”
“지금 이 정보를 알리게 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이민하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봐. 수많은 헌터가 목숨을 잃어가며 몬스터와 싸우고 던전을 공략하고 있어. 그런데 갑자기 초월 능력을 뺏는 무리가 있고 투명화까지 가능하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분명 분위기가 안 좋아질 거예요.”
채하나 역시 이민하의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들의 사기도 꺾이고 보이지 않는 미친놈이 어디서 칼을 들고 달려들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심지어 초월 능력이나 특수계 능력을 가진 헌터들은 더 심각하겠지.
“우리가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놈들은 다른 헌터들을 인질로 널 협박할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대비하고 놈들을 역으로 낚는 게 나을지도 몰라.”
“분명 그렇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보이지 않는 적이라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적을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지치게 된다.
“제 방어 능력을 쓰면 지킬 수 있어요.”
채하나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저만 믿으세요! 제가 어떻게든 두 사람을 지킬 테니까!”
그녀의 반짝이는 눈과 반대로 나와 이민하는 어째 불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