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 1층 수복 작전 (1)
“자, 받아. 정비는 끝냈으니까 이제 멀쩡해.”
“감사합니다.”
신아람의 정비 능력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뛰어났다.
다른 대장장이에게 맡기면 내구도가 100%까지 오르지 않는 때도 있었는데, 신아람은 항상 완벽하게 수리를 마쳤다.
“그리고 이거.”
그녀는 내 장비가 아닌 다른 것을 건네주었다.
철로 만들어진 다리 모양을 보자마자 눈이 동그래지며 그녀를 바라봤다.
“이건…….”
“발렌 의족이야. 일단 제대로 만들기 전까진 이거라도 써.”
신아람의 말을 듣자마자 반색하며 발렌을 소환했다.
“임시야, 임시. 조금 무게도 나가고 불편할 거야. 내구도도 뛰어나지 않으니까 오래 전투를 이어 가면 망가질지도 몰라.”
“정말… 정말 고맙다.”
발렌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의족을 보고 있었다.
그런 발렌의 모습에 신아람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더 좋은 거 만들어 줄 테니까 지금은 그걸로 만족해.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당연하지!”
신아람은 직접 의족을 가져와서 발렌의 다리에 맞춰서 끼워 주었다.
의족을 끼는 동안 통증이 있는지 발렌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착용한 후에는 괜찮은 듯했다.
“움직여 볼래?”
의족을 착용하고 서 있는 발렌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울컥했다.
발렌과 다시 함께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벅참에 그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철컥.
의족을 앞으로 내딛자 이음새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발렌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순간 발렌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찼고 그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형씨… 형씨! 나 다시 걷고 있어! 걷고 있다고!”
“나도 보고 있어! 발렌…….”
시커먼 수컷 둘이 껴안고 울먹이는 모습을 본 신아람은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통증이 있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말해 줘.”
“전혀! 완전 괜찮아!”
“그럼 다행이네.”
발렌은 자신의 의족을 만족스럽게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라면 다시 형씨랑 함께 싸울 수 있어. 형씨를 지킬 수 있다고.”
“꿈이 야무지네! 자기 몸이나 지키시지!”
“두고 봐. 형씨가 나한테 도움을 받는 날이 올 테니까.”
발렌의 든든한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런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든 신아람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크게 걱정이 되진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와. 같이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네.”
“아니에요. 작전 팀 물자 관리 쪽 업무를 맡으셨다면서요.”
“…민하랑 하나는 부탁할게.”
문득 진천우 얘기를 했던 김정태가 떠올라 웃음이 지어졌다.
내 주변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많구나.
***
이번 대규모 작전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헌터가 모였다.
전에는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야 했기에 수비를 위한 전력을 따로 빼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꾸준한 토벌로 몬스터 수가 많지 않았다.
던전 외부에 있는 몬스터와 외부 게이트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은 큰 타격을 입었다.
자원한 헌터가 대부분이었고, 그만큼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많은 거겠지.
“저번에 말한 건?”
“준비해 뒀습니다. 아마 금방 도착할 겁니다.”
현장에 나와서 직접 진두지휘를 하는 백진철을 보면 그가 어떻게 협회장이 됐는지 알 수 있었다.
갈색 정장을 입은 그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최현 씨. 잠시만.”
나를 발견한 그는 얘기 중이던 다른 사람들을 보내고 내게 다가왔다.
“컨디션은 괜찮으신가요?”
“나쁘진 않네요. 그보다 저번에 말했던 얘기…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인위적으로 초월 능력을 헌터에게 주입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실제로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목표로 하는 던전의 완전 공략에도 가까워질 수 있는 열쇠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기엔 좋은 주제가 아닌 것 같군요. 하지만 이번 작전이 끝나면 적어도 제가 아는 건 전부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저한테 그 얘기를 했던 이유는 뭔가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보통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정보를 흘렸다.
“그들의 다음 표적이 최현 씨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죠. 자세한 얘기는 작전이 끝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도록 하죠.”
백진철의 말대로 지금은 시간도 촉박했고, 주변에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너 자꾸 개별 행동할래? 여기선 길드별로 움직이니까 떨어지지 마.”
어느새 나를 쫓아온 이민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스터한테 이를 테니까.”
“아, 이제 잘 붙어 다닐게요.”
아무리 그래도 신아람의 잔소리를 듣고 싶진 않다.
이민하가 말한 것처럼 이번 작전에서 개별 전투는 길드별로 이루어진다.
우리 길드에서는 이민하와 나, 그리고 채하나가 작전에 참여했다.
두 사람 다 믿을 만한 실력자였기에 말할 것도 없이 든든했다.
“출정식은 없고 바로 작전 시작한다고 하네요.”
채하나의 말에 이민하가 흠칫 놀랐다.
“뭐야, 그럼 바로 전투 돌입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백진철은 자신이 말한 것을 확실하게 지키고 있었다.
허례허식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실리를 추구한다고.
그런 그의 말은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매스컴에 실렸고, 그로 인해 많은 헌터가 작전에 지원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쪽이야.”
일단 우리 길드의 팀장을 맡은 건 이민하다.
신아람은 만약 내가 팀장이 되면 무리해서 행동하거나 위험한 짓을 벌일지도 모르니 이민하에게 팀장 자리를 맡겼다.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기에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이번엔 네 맘대로 행동하면 안 돼. 알지?”
“그렇게 말하시니까 제가 마치 문제아라도 된 것 같잖아요.”
“과정이 어떻든 내가 팀장이 됐으니까 따라 줬으면 좋겠어.”
이민하는 진지한 얼굴로 나와 채하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난 우리 중 누구도 다치는 걸 원치 않아. 다들 무사히 길드로 돌아가는 거야. 물론 위험한 작전이라는 건 알지만, 자신을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차이가 크니까.”
“알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이민하는 우리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네!”
작전의 첫 번째 단계는 던전 주변의 몬스터 소탕이다.
화이트 소드가 얼마 전부터 몬스터 토벌에 열을 올린 덕분에 던전 주변의 몬스터는 상당히 줄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몬스터의 수가 적지 않았고 전력이 모인 지금 한 번에 돌파하기로 했다.
“뭔가 떨리네요. 다시 던전 공략에 들어가게 된다니…….”
“괜찮아요?”
채하나는 눈으로 보기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떨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헌터를 그만두려고 했었으니 부담스럽겠지.
저번에 재료를 구하기 위해 들어왔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너무 힘드시면…….”
“아뇨. 정말 괜찮아요.”
떨리고 있는 몸과 달리, 그녀의 눈은 단호했다.
“처음에 던전에서 나왔을 땐 다신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됐어요. 저는 태생적으로 헌터라는 걸.”
씨익 웃음을 짓는 채하나의 눈은 그녀 말대로 헌터의 눈이었다.
“두 사람 다 집중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니까.”
작전 시작의 신호는 폭죽이다.
아직 오전이라 잘 보이진 않겠지만, 소리만으로 충분하다.
평소보다 정적이 흐르는 던전 근처에서 둘러싼 헌터들이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찌이잉- 콰앙!
폭죽이 하늘로 높게 치솟은 뒤 터졌고, 그와 동시에 헌터들이 던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으아!”
우르르 몰려가는 헌터들을 보고 이민하가 앞장서서 뛰어나갔다.
“우리도 가자!”
“네!”
갑자기 기습해 온 헌터들에 당황한 몬스터들은 아무렇게나 날뛰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포효 소리와 전투 소리, 주변을 가득 메우는 함성 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쩌엉-!
“……!”
미노타우르스가 묵직한 도끼를 이민하에게 내리쳤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뜨이며 단숨에 이민하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망설임 없이 검을 뿜어냈다.
파앗!
[System : 공격력 버프가 적용됩니다. 공격력이 29% 상승합니다. -10:48-]
도끼를 들고 있는 미노타우르스의 팔을 잘라 버렸고, 다시 뒤에서 이민하가 전위로 나섰다.
터엉-
그녀가 앞으로 체중을 실어 커다란 방패로 미노타우르스를 밀쳤다.
팔이 잘려 당황하고 있던 미노타우르스는 그대로 균형을 잃었다.
무방비 상태의 몬스터는 내게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쌔엥- 쌩! 쌔엥-!
“제법인데?”
화도가 쉬지 않고 몬스터를 훑어 냈고,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숨을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사방에서 몬스터와 헌터들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대규모 전투를 본 적이 없었기에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켜 냈다.
“쉬고 있을 시간 없어! 다음 간다!”
“네!”
이민하는 먹잇감을 찾는 포식자처럼 주변을 살폈다.
근처에 구울 떼와 전투를 벌이는 헌터 무리가 보였고, 이민하는 곧장 그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나와 채하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빠악!
선두로 달려간 이민하는 팔에 착용한 방패로 구울의 머리를 후려쳤다.
바닥에 나뒹군 구울을 방패 끝으로 찍었고, 원래 구울과 싸우던 다른 헌터들이 그녀에게 가세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일일이 받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바로 앞에 있는 구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에에엑!”
내 다리를 물어뜯으려고 덤빈 구울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뒤로 물러났다.
“……!”
“마음껏 싸우세요! 제가 서포트 할게요.”
채하나의 말에 씨익 웃음을 머금었다.
앞에서 이민하가 이끌어 주고, 뒤에서 채하나가 밀어준다.
그렇다면 내가 활약하지 않을 수 없지.
“흐으읍. 갑니다!”
라이프 파워를 쓰고 장비를 칠흑의 묵갑으로 바꿨다.
“가… 갑옷이 바뀌었어!”
카가각!
구울의 발톱을 튕겨 내고 바로 뒤로 이동해 놈의 목에 화도를 쑤셔 넣었다.
그 즉시 에렌 셀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달려드는 다른 구울을 베었다.
“뭐야… 길드 소속 헌터들인가?! 실력이 엄청난데?”
그 어느 때보다 감각이 살아 있다.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놓치지 않고 팔다리를 움직였다.
받아 내기 껄끄러운 공격은 이민하와 채하나가 처리해 줬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희열이라는 감각에 몸이 본능적으로 춤추고 있었다.
“설마! 이번에 C급에서 한 번에 S급까지 올랐다는 그 초월 헌터 아니야?!”
“그럼 레이브 길드인가?!”
뒤에서 사람들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민하와 채하나가 대단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우리 길드가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를 대단하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