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몬스터 슬레이어 (3)
건물 1층과 2층은 평범한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장 기숙사 느낌이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았다.
건물은 장비를 만드는 특수한 재료들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몬스터 공격도 웬만큼은 버틸 수 있을 거다.
애초에 몬스터들은 타는 냄새를 싫어했기에 평소엔 건물에 다가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식사하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저… 정말입니까? 그런 초월 능력이…….”
“아무리 다시 살아나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저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를 혼자서…….”
“저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등급이 낮은 헌터들이었다.
가장 높은 등급의 헌터는 B급 헌터였고,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답을 내놓는 건 당연히 힘들겠지.
200마리가 넘는 몬스터와 혼자서 싸우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들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선 지금 내 장비로는 버틸 수 없다.
“그럼 여러분은 계속 여기서 몬스터 장비나 만들고 계실 건가요?”
“…….”
“…그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거역하면 죽는다고요.”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나를 도와줘서 같이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내가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는 데 실패하면 나를 도왔다는 이유로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즉, 그들이 나를 돕는 건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보시다시피 해나 달도 없어서 제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가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덩치가 큰 남자가 자신의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여 주며 말했다.
“그래도 신체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밤에 자고 낮에는 일하고 있어요. 벌써 반년이나 지났네요.”
“처음엔 이 건물을 짓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저희가 끌려왔을 땐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으니까요.”
“몬스터들의 감시 아래에서 중노동이 시작됐어요. 건물이 만들어지자마자 장비를 제작해야 했죠.”
다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 듯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저희 역시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최현 씨 혼자서 저 많은 몬스터를 죽이는 게 그려지지 않아요.”
“반대로 최현 씨에게 물어봐도 되나요? 최현 씨는 정말 저 많은 몬스터를 전부 죽일 자신이 있나요?”
다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튀어나온 헌터가 죽어도 부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혼자서 200마리 몬스터를 상대하겠다고 말한다면 나라도 믿기 힘들 거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무조건 가능합니다.”
확신에 찬 내 말에 다들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믿음을 줘야만 한다.
“그 교주라는 여자에겐 치명상을 입혔으니 한동안 새로운 몬스터가 들어오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교주가 쓰러진 탓에 몬스터들이 세뇌에서 풀려나 날뛰고 있어요. 서로 싸워서 죽이거나 잡아먹은 수도 적지 않을 겁니다.”
바깥 상황을 모르는 그들은 놀란 눈치였다.
“시간이 지나서 그 여자가 정신을 차리면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될 겁니다. 부탁드릴게요. 도와주세요.”
“…….”
정적과 함께 이곳의 리더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안형석’입니다. 최현 씨를 돕겠습니다.”
“형?!”
“잠시만요!”
다들 깜짝 놀라며 그를 따라 일어났다.
“도와드리는 건 저 혼자로도 충분한가요?”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가 그렇게 쉽게 망가지진 않을 겁니다. 제가 쓸 것만 만들어 주시면 되니까 충분할 겁니다.”
“형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남자가 내 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건 알지만,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그러시는 거냐고요. 유한성이 우리를 시험하려고 보낸 사람일지도 모르잖아요.”
“그 남자는 그런 귀찮은 짓은 안 한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리고 난 너희가 반드시 살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른 거야.”
안형석의 눈은 신기할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이런 곳에서 반년이나 갇혀 있었다곤 생각되지 않았다.
“최현 씨 말대로 몬스터를 모두 쓰러뜨리고 나가면 가장 좋겠지. 하지만 만약 실패해서 유한성에게 트집이 잡혀도 최현 씨에게 협박당했다고 하면 직접적으로 돕지 않은 너희는 살 수 있을 거야.”
“형은! 형은 어떡하려고!”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그들이 안형석을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지. 어차피 최현 씨가 성공해 줄 테니까. 그렇죠?”
씨익 웃는 안형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아무리 수가 줄었다고 해도 남은 몬스터는 150마리 정도일 거다.
일반적으로 몬스터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그럼 바로 시작하죠. 일단은 제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 싸우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싸울 수 있도록 장비를 만들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먼저 치수를 재야겠군요.”
안형석은 바로 줄자를 가져와서 내 몸 이곳저곳의 길이를 확인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돕다니요. 저희는 협력 관계인 거죠. 제 목숨을 당신에게 투자하도록 하죠.”
“투자금은 회수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죠.”
내 농담에 안형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일단 이 건물에서 나가서 몬스터와 싸우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인데, 공간 자체가 좁은 건 아니지만, 공간에 비해 몬스터의 수가 터무니없이 많은 건 사실이다.
부활하자마자 몬스터의 먹이가 되어 버릴 게 뻔하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선 즉시 부활과 지정 부활이 필수다.
기회는 1시간에 한 번인가.
“형님이 하시면 저도……!”
“윤식이 너는 가족도 있잖아.”
“하지만…….”
재료를 정리하고 있는 안형석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씁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겨우 장비를 만들어 드리는 것밖에 돕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게 없으면 저 혼자서는 저 많은 몬스터를 잡을 수 없거든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안형석을 뒤로하고 내려왔던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아까 봤던 새하얀 공간이 다시 나를 반겨 주었다.
“대충 150마리 정도로 가정하고, 한 번 죽을 때마다 2마리 잡는다고 치자. 그럼 75번, 안 쉬고 3일 정도인가.”
그게 얼마나 어이없는 계산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저렇게 딱 맞아떨어지게 계산하면 안 되지만, 시간에 쫓기고 있는 이상 촉박하다는 압박이 필요했다.
화도는 검이 얇고 날카로워서 파괴력은 강하지만 내구도가 좋은 무기는 아니다.
그렇게 오래 쓸 수는 없을 거다.
에렌 셀도 있지만, 에렌 셀로는 월하백화식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기 힘들다.
타악!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며 아까 꽂아둔 에렌 셀을 잡았다.
스르릉!
그대로 검을 뽑아내며 아래로 내려왔다.
확실히 건물 외벽이 단단한지, 에렌 셀이 반절 정도만 박혀 있었다.
보통 벽이었다면 뚫고도 남았을 힘이었다.
“이런 상황 지겹네. 나도 이젠 좀 편하게 헌터 라이프 즐기면서 살고 싶은데.”
“헌터 라이프인데 편한 게 가능해?”
“…듣고 보니 그렇네.”
잠깐 발렌과 잡담을 나눈 사이 나를 발견한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목숨 하나에 2마리.
평소에 그린 라벨 몬스터와 블루 라벨 몬스터를 상대했던 걸 생각하면 아주 적은 숫자다.
하지만 이렇게 몬스터의 숫자가 많으면 내가 죽기 전에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도 쉽지 않을 거다.
싸우다가 죽는다기보단 몬스터들한테 깔려 죽겠지.
“쿠에에엑!”
“카앙!”
빽빽하게 붙어 있는 몬스터들이 우르르 이쪽으로 몰려오는 건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럴 때 장수주 씨나 류설영 씨처럼 마력계 헌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작게 투정을 부리고 화도를 움켜쥐었다.
이것보단 숫자가 적었지만, 스승님은 망가진 몸으로 그 많은 몬스터를 죽였다.
스승님을 따라잡기 위해선 나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
“간다아!”
***
“끄어억!”
막 살아난 몸은 멀쩡했지만, 몬스터에게 뜯어 먹히는 기억에 발작을 일으켰다.
“괘… 괜찮으세요?!”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쉰 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 냈다.
미리 건물 안을 지정 부활 장소로 정해 뒀기에 죽으면 이곳에서 부활하는 게 가능했다.
이걸로 10번째인가.
잡아먹히는 감각은 몇 번을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옆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안형석을 보고 애써 웃어 보였다.
“하… 괜찮아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처음엔 마냥 좋은 능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최현 씨를 보고 있으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은 그는 물을 따라 내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인간이라면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죽는 경험을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요.”
그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영원히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지금까지 쓰러뜨린 몬스터의 수는 10마리 정도.
즉, 한 번 죽을 때마다 겨우 1마리밖에 쓰러뜨리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도 썩 비관적이진 않았다.
몬스터 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전투하기 편해질 테니까.
그리고 일부러 독이 있는 구울 같이 성가신 놈들부터 처리하느라 그런 것도 있다.
“안형석 씨는 어째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건가요?”
“하하하,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살고 싶어서 그런 거죠.”
안형석은 멋쩍게 웃곤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현 씨를 도와서 살아 나가면 좋잖아요. 그리고 만약 돕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평생 이런 끔찍한 일을 해야 하는 거고요.”
까앙! 깡!
그는 망치를 들고 다시 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저는 원래 대장장이거든요. 헌터들의 목숨을 지켜 줄 수 있는 장비를 만드는 게 좋았어요. 자부심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을지도 모르는 몬스터의 장비를 만들고 있어요.”
까앙!
아까보다 힘껏 내려친 망치질에 쇳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만든 장비로 누군가 죽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등이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아무도 죽지 않을 겁니다. 제가 막을게요.”
내 옆에는 그가 만든 검이 놓여 있었다.
“이건…….”
“최대한 화도와 비슷하게 만든 검입니다.”
“네?! 화도를 알고 계세요?!”
스르릉.
검을 뽑아 보니 그가 말한 것처럼 화도와 비슷한 형태였다.
화도보다 아주 약간 무겁고 무디게 느껴졌다.
하지만 하루 만에 만든 검치곤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대장간 가문이었습니다. 최현 씨가 가지고 있는 그 화도는 저희 아버지가 만든 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