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109화 (109/176)

109화 : 1 vs 길드 (3)

“그쪽은 어때?”

“못 찾았어.”

“젠장, 어디에 꼭꼭 숨은 거야?”

로브를 입고 다른 앙그라마이뉴 길드원 사이로 숨어든 채하나는 심장이 쿵쾅거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머리로는 진정하자고 자신을 타이르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들킬 것만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최현이 말한 것처럼 5층으로 20명 정도가 더 올라왔고, 최현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만 아래로 내려가는 건 오히려 눈에 띌 가능성이 컸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최현을 찾기 위해 여러 팀으로 나눠서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여기 좀 도와줘!”

“크윽…….”

아까 최현과 싸웠던 인원 중에서 부상이 심한 사람들이 있었다.

치유계 헌터가 2명이나 올라왔지만, 중상을 입은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아서 그들의 정신력으론 모두 치료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네요. 부상자들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세요.”

붉은 로브 무리 사이에 섞여 있던 채하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몬스터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현이 처음 그들 앞에 등장했을 때 멀리서나마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어쨌든 이건 기회였다.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혼자서는 힘드니, 다른 사람들도 거들어 주세요.”

움직이기 힘든 부상자는 두 명이었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다른 헌터들이 둘을 등에 업었다.

던전 계단은 상당히 길었고,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기에 부상자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5명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세요. 혹시라도 최현이 통신계 헌터에게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계획은 절대 틀어지면 안 돼요. 우린 여기서 최현이라는 사람을 행방불명으로 만들고 완벽하게 증거를 지우는 겁니다. 길드에 가면 바로 몬스터들부터 숨기세요.”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좋아요.”

채하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앙그라마이뉴 길드 아지트에 가면 증거가 남아 있다는 거다.

그들이 그것들을 어딘가에 숨기기 전에 현장을 덮치지 않으면 도망치고 말 테니까.

부상자를 옮기는 조에 들어온 채하나는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섞여서 걸음을 옮겼다.

“잠깐.”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막 출발하려던 붉은 로브의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를 보고 채하나의 심장이 아까보다 요동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킬 것만 같았다.

“로브의 단추가 풀렸군요.”

그녀는 채하나의 단추를 다시 매 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붉은 로브는 저희의 상징입니다. 혹여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세요.”

“네… 네!”

채하나의 어깨를 툭툭 쓸어 준 그녀가 다시 멀어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서 눈물이 찔끔 나온 그녀는 로브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고개를 숙이자, 그를 따라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채하나가 알고 있는 앙그라마이뉴의 길드 마스터는 여자가 아니었다.

매스컴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피해 왔던 길드였기에 길드 마스터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남자라는 얘기는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채하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길드원들이 마치 그녀가 길드 마스터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우리끼리 내려가도 괜찮겠지?”

“무슨 일이야 있겠어? 아래에 또 다른 길드원들 와 있다며.”

“하지만… 혹시 몬스터들 습격이라도 받으면 위험하잖아.”

확실히 실제 전력은 부상자를 업고 있는 두 사람과 채하나를 포함한 세 명, 총 다섯 명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몬스터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부상자를 지키면서 전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결국,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건 몬스터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그 여자 한 사람밖에 없었다.

“저, 사실 길드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아까 그분은 누구죠?”

채하나의 물음에 순간 정적이 흐르며 동시에 걸음이 멈췄다.

지뢰를 밟았다는 생각에 채하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뭐야, 신입이야? 하아, 이런 일에 신입 좀 투입하지 말라니까.”

“교주님을 모르다니… 완전 새파란 신입인가 보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 신입이면 교육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우리 길드 마스터보다 힘이 강한 사람이라고 보면 돼.”

“길드 마스터보다요?”

“원래 우리 길드원이셨는데 아포칼립스 이후에 갑자기 초월 능력을 얻으셨어. 능력을 얻자마자 길드 마스터를 찾아가 ‘라그나로크 계획’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들었어.”

“신입한테 아무거나 말해 주지 말라고.”

라그나로크 계획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 말을 한 남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채하나의 눈치를 살폈다.

“뭐 어때? 어차피 신입은 다 검증을 거치고 교주님이 직접 뽑으시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능력으로 꾸준히 몬스터 숫자를 늘리고 있지.”

어두운 계단이 아래로 쭉 이어져 있었고, 채하나는 지금이 정보를 캐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럼 지하에 있는 그곳에 몬스터들이 숨겨져 있는 건가요?”

“뭐? 하하하!”

신나서 자신이 아는 걸 떠드는 남자는 채하나에게 있어서 좋은 먹잇감이었다.

물론 채하나는 앙그라마이뉴 길드 아지트에 지하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거나 찔러본 것이다.

“거긴 그냥 창고야. 애초에 그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가 지하에 들어갈 리 없지.”

“재밌는 발상이네. 그런 곳에 몬스터를 숨기면 금방 들키고 말걸?”

“하하하!”

그들은 채하나의 말에 한껏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몬스터를 숨길 수 있는 다른 장소가 있나요? 어디든 사람들 눈을 피하긴 힘들 것 같은데.”

이건 순수한 채하나의 생각이었다.

던전 주변엔 보는 눈이 많았다.

그들이 이 밤에 던전으로 들어와서 몬스터를 하나씩 세뇌하고 있었던 것도 다른 눈에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을 거다.

“길드 마스터 능력이 있잖아.”

“사실 나도 그런 것까지 되는 줄 몰랐는데, 신기하더라고.”

“교주님이랑 길드 마스터 능력이 있으면 라그나로크 계획은 충분히 가능할 거야.”

앙그라마이뉴 길드 마스터 역시 초월 능력자라고만 들었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 바보들 덕분에 만족스러운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

“후우… 무거워서 죽는 줄 알았네.”

“여기서부턴 저희가 옮기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치유계 길드원들이 부상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에 그 후에 다시 옮겨야 하지만, 부상이 심해서 응급 처치가 필요했다.

3층까진 몬스터와 만날까 봐 조마조마하며 이동했다.

그 이후로는 다른 길드원이 지원을 와 준 덕분에 몬스터를 처리하며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어? 아까 그 신입 어디 갔어?”

“신입? 그러고 보니 안 보이네?”

“어디서 길 잃어버린 거 아니야? 하여간… 교육 좀 제대로 해야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채하나는 빠르게 던전 근처에서 벗어났다.

이번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알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지 않으면 최현의 고생이 헛수고가 될지도 몰랐다.

밤이 지나고 동이 틀 무렵이라 주변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

그때 바닥이 크게 흔들리며 땅에서 기다리고 있던 ‘앤트 라이온’이 입을 쩍 벌리며 등장했다.

“꺄악!”

그대로 모래 늪에 빠진 채하나가 점점 아래로 끌려 들어갔고, 모래 늪 가운데에 있는 앤트 라이온은 먹잇감이 아래로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앗-!

채하나가 늪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녀를 지나갔다.

“쿠에에엑!”

모래 늪 가운데에 있는 앤트 라이온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차윤지가 놈의 등딱지에 검을 쑤셔 넣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몇 번이나 검을 찔렀고, 채하나에게 손을 뻗었다.

“잡아.”

“아… 네!”

그녀의 손을 잡자마자 확 당겨져서 단숨에 모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채하나는 차윤지를 보자마자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빠… 빨간 망토.”

“날 알아?”

“모르는 게 이상한걸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차윤지를 보고 채하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차원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정말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아, 그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최현 씨가 위험해요! 몬스터가…….”

최현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차윤지의 표정이 변하는 게 보였다.

흠칫 놀란 채하나는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까먹었다.

“현이가 위험하다고? 자세히 말해 줄래, 아가씨? 후우…….”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남자는 유지한이었다.

해가 뜨자마자 신월 길드는 몬스터 토벌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말이 몬스터 토벌이지, 사실은 앙그라마이뉴 길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던전 주변을 탐색 중이었다.

그들의 길드 마스터인 하루는 이런 쪽 후각이 심각할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기에 앙그라마이뉴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앙그라마이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건 신월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헌터 시장에서 물건들을 모조리 사 갈 때부터 다른 길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유독 하루는 앙그라마이뉴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뒷세계의 정보로는 헌터 협회보다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하루였기에 그들이 꾸미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게…….”

채하나는 잠시 말하길 망설였다.

자신의 길드 마스터인 신아람도 아니고, 헌터 협회도 아닌 제3자에게 이번 일을 말하는 게 괜찮은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누가 2위 길드인 앙그라마이뉴가 그런 계획을 꾸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신월 길드가 만약에 앙그라마이뉴와 손을 잡은 상황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다.

물론 그런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보고 왔으니까.

“저희 길드로 데려가 줄 수 있나요?”

“좋아.”

“야, 잠깐…….”

채하나의 부탁에 차윤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이미 다른 것보다 최현이 무슨 상황인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대로 채하나를 품에 안은 차윤지가 폴짝 뛰어올랐다.

“기다려!”

유지한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멀어지는 차윤지를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에 앙그라마이뉴의 다수의 인원이 던전으로 모였다는 정보를 받았다.

하루는 그쪽을 조사해 달라며 유지한에게 부탁했고, 여기서 채하나를 만났다.

유지한은 그들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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