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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06화 (106/176)

106화 : 앙그라마이뉴 (4)

“크에에엑!”

팔이 잘려 나간 구울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었고, 헌터들의 발이 멈추었다.

구울은 평소에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놈인데, 방금 기습은 조용히 이루어졌다.

그런 것까지 조종할 수 있는 건가.

난 발렌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뒤에 몬스터가 있다고 했으니 몬스터가 있는 거다.

보지 않아도 된다.

구울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몇 번이나 다시 검격을 먹였다.

[System : 그린 스톤x1, 구울의 뼈x2 독성액x1을 획득하였습니다!]

“역시 조종당하는 것만 빼면 몬스터랑 다를 게 없군. 그건 네 능력인가.”

일부러 말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이상하게 바꿨다.

“내게 대답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로브 안쪽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였다.

마음 같아선 라이프 파워를 써서 제대로 이 녀석들의 한계까지 끌어내고 싶지만, 이번 전투는 어디까지나 탐색전이다.

제대로 싸울 때 쿨타임 때문에 쓸 수 없으면 낭패니까 참기로 했다.

“보통 실력자는 아닌 거 같고, 얼굴을 가린 거 보니까 제법 유명한 헌터인가 봐? A급? S급?”

“내게 관심이 많네. 나도 당신에게 관심이 많거든. 몬스터를 모아서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냐?”

타다다닥!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다른 헌터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사불란하게 나를 둘러싸는 모습만 봐도 그들이 어쭙잖은 실력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엔 몬스터랑만 싸워와서 사람과 이렇게 대적하고 있는 게 어색했다.

아, 헌터 선발 시험 때 수험생을 상대로 대련한 적은 있지만.

“머릿수도 많으면서, 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덤벼.”

방패를 들고 천천히 거리를 좁혀 오는 그들의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상대는 겨우 나 한 사람인데, 빈틈을 주지 않고 완벽하게 조여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약한 곳을 뚫는 수밖에.

커다란 방패로 상체를 가리고 있다면, 아래는 비어 있겠지!

쌔엥-!

단숨에 자세를 낮추며 정면에 있는 사람의 다리를 노려 화도를 그었다.

하지만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의 궤도에서 벗어났고, 화도는 허공을 갈랐다.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없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그를 향해 힘껏 몸을 날렸다.

터엉!

방패로 막아도 공중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지.

저만치 나가떨어진 그는 로브가 벗겨져서 얼굴이 보였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는 얼굴 곳곳에 굵직한 흉터가 있었다.

놀란 남자는 급히 다시 로브를 뒤집어썼다.

“지루하게 굴지 말고, 제대로 덤비라고.”

압박 대형에서 빠져나온 나는 다시 거리를 벌린 뒤 그들을 도발했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조금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다.

아마 이들이 쉽게 덤비지 않는 건, 나도 전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강제로 움직이게 하는 수밖에.

땅을 박차고 튕겨 나가 노린 건 몬스터를 조종하는 헌터였다.

푸욱-!

화도가 묵직하게 살집을 뚫고 나갔고,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녀 앞에 막아선 건 또 다른 구울이었다.

몬스터를 겨우 방패막이로 쓰는 건가.

평소에도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지만,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베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목적이 뭐야.”

“저는 선택 받은 존재예요.”

구울에게서 화도를 뽑아 한 걸음 물러났다.

“아포칼립스 보셨죠? 그 잘난 헌터들이 아무리 많아도 몬스터들을 막을 수 없었어요. 이성도 없이 날뛰기만 했는데 그 정도의 피해였어요. 그렇다면 몬스터를 누군가 지휘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

“벌써 흥분되지 않나요? 던전이 이 세계의 중심인 이상,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제 능력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요.”

가면에 가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겠지만, 내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능력을 다른 몬스터와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거잖아.”

“어째서죠? 저보고 던전을 공략하라는 건가요? 제 능력으로 던전을 전부 공략하면 저에겐 뭐가 남죠?”

“정상이 아니군.”

“맞아요! 저는 정상이 아니에요! 자신을 정상이라고 포장하고 보통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려는 사람들은 모두 지루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에요. 남들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선 정상이길 포기해야 하죠.”

그녀는 미쳐 있었다.

완전히 미쳐 있었다.

양팔을 하늘로 번쩍 들더니 아까보다 거칠어진 숨소리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숨길 필요도 없죠. 아니, 애초에 숨기려고 했던 적도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죠.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는 건, 이 던전 자체가 제 것이 된다는 거예요.”

“…마치 미친 것처럼,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말하면서 날 속이려고 잔머리를 굴리는군.”

“…….”

내 말에 방금까지 광기로 가득했던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당신이 조종할 수 있는 몬스터는 한정된 거겠지. 초월 능력 자체가 성장하는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 당신에겐 능력이 닿지 않는 몬스터도 있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구울이나 스켈레톤 같은 몬스터를 굳이 시간을 허비해 가며 조종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머, 고양이맨치곤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군요.”

고양이맨이라는 말에 처음으로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었다.

“오랜 시간을 쌓은 계획이에요. 쉽게 말해 줄 리 없죠.”

“재미없네. 당신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까 말해 드리죠~ 라면서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게 보통인데 말이지.”

“물론 들킨 이상, 살려서 보낼 생각은 없어요. 말했듯이 오랜 시간을 투자했거든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리게 만들 순 없죠.”

“자기들이 강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굉장한데.”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튀어나온 구울들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캉! 카앙!

구울의 발톱과 이빨에는 독이 묻어 있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물론 블랙 스네이크의 독에 비하면 그리 강한 독은 아니었지만, 감염된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목숨을 잃는 건 똑같았다.

네 마리의 구울은 오랜 시간 같이 싸운 헌터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공격 직후 불안정한 자세에선 다른 구울이 달려들어 내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줬다.

동시에 반대 방향에서 공격해 오거나, 상체와 하체를 같이 노리는 등, 까다로운 공격 패턴을 보여 줬다.

“형씨, 이대로 계속 싸우는 건 의미가 없어.”

“나도 알고 있어!”

구울의 공격을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보통 구울이었다면 이렇게 애먹지 않았을 텐데.

발렌의 말처럼 구울과 싸우고 있는 건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정보를 저들에게 보여 주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로브를 쓰고 있는 앙그라마이뉴 길드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내 전투를 관람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게 정보를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건가.

“금방 다시 만나자고!”

블링크를 써서 단숨에 구울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후우…….”

“괘… 괜찮아요?!”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하나에게 돌아왔고,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괜찮아요.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에요.”

내가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움직일 거라 예상했지만, 내가 갑자기 등장했음에도 그들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결국, 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고, 놈들은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더 경계하면서 움직이겠지.

“아마 놈들은 이제 던전 밖으로 나가려고 할 거예요.”

“그럼 어떡하죠? 따라가실 건가요?”

채하나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분하지만, 적어도 이곳은 내게 불리한 전장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놈들은 몬스터를 미끼로 나를 막은 뒤, 던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스킬과 버프를 전력으로 쓴다고 해도 데스나이트가 여러 마리 덤벼 오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제 얼굴을 보인 것도 아니니 이대로 보내죠.”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 거다.

몬스터에 손을 대기 위해 대형을 갖추고 끌어들이는 것부터, 헌터 시장의 아이템을 모조리 쓸어 가는 것까지, 오래 준비하지 않으면 보일 수 없는 모습들이다.

“아까 했던 얘기를 생각해 보면 놈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예요. 제가 나타났을 때 빈틈을 보였다면 모르겠지만, 저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녀석들을 상대로 혼자서 뭔가를 하긴 힘들겠네요.”

“그럼…….”

“저희가 원래 던전에 온 목적을 찾도록 하죠.”

우리가 원래 던전으로 들어온 목적.

그건 필요한 채집 아이템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4층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검붉은 결정’.

“저는 괜찮지만, 최현 씨는 여기서 막고 싶으셨던 거 아니에요?”

내 눈치를 살피는 채하나를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아까 채하나 씨와 대화를 하면서 앞으로 너무 혼자 다 짊어지지 않기로 했어요. 여기서 무리하면 저에 대한 정보가 더 빠져나갈지도 몰라요. 그럼 던전 밖으로 나가서도 위험해질 테니까, 여기까지만 하는 게 정답이겠죠.”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는 내 뒤로 채하나가 총총 따라왔다.

“검붉은 결정은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둘러보죠.”

“좋아요!”

뭔가 헤실헤실 웃고 있는 채하나를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그냥 최현 씨가 조금은 가벼워진 거 같아서요.”

그녀 말대로 지금 나는 전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항상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만히 두는 게 정답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검붉은 결정은 4층에선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름처럼 반투명한 검붉은 색의 결정으로, 던전 곳곳에 자라 있다.

예전 같으면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도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흔한 결정조차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다.

아이템을 채집하겠다고 목숨을 거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

“찾았어요!”

채하나가 먼저 검붉은 결정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발렌은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없는지 계속 후각을 예민하게 유지해 주었다.

“조금 떨어져 계세요.”

에렌 셀을 꺼내서 검붉은 결정을 향해 있는 힘껏 내리쳤다.

까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결정이 벽에서 떨어져나왔다.

[검붉은 결정

던전에서 볼 수 있는 하급 결정.

아이템을 제작하거나 강화하는 데 쓰인다.]

검붉은 결정도 하나만 필요한 게 아니었기에 주변을 둘러보며 좀 더 모으기로 했다.

결정을 찾아서 걸음을 옮기던 도중, 채하나가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아, 그런데 아까 뒤에서 구울이 공격해 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아…….”

예상치 못한 그녀의 질문에 당황해서 급히 눈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전부터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는 몬스터 위치도 잘 파악하셨죠? 어떻게 그렇게 알아채시는 거예요?”

“그건… 살기랄까? 육감이라고 해야 하나…….”

중얼거리는 나를 바라보던 채하나의 눈빛이 단숨에 변했다.

“…거짓말하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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