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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05화 (105/176)

105화 : 앙그라마이뉴 (3)

결국, 나와 채하나는 4층까지 앙그라마이뉴를 따라서 올라왔다.

“정말 계속 따라가시는 거예요?”

“만약 들키게 되면 저만 나설게요. 채하나 씨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서 본 걸 전하세요.”

채하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같이 나가서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몬스터를 컨트롤하는 사람을 잡지 못하면 끝낼 수 없어요. 상대는 2위 길드니까요.”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채하나도 더 이상 내 의견에 반박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위험한 건 사실이다.

앙그라마이뉴라는 거대 길드를 적으로 돌려서 내게 이로울 건 없다.

어쩌면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걸지도 모른다.

협회에 이번 일을 보고하면 협회에선 앙그라마이뉴를 상대로 조사에 들어갈 거다.

그 상황에서 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 수 있겠지만, 만약 몬스터를 조종하는 사람을 빼돌리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번 사건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까 217마리나 있다고 했던걸요.”

물론 지금 그들이 217마리의 몬스터를 데리고 있진 않았다.

어딘가에 제대로 숨기고 있겠지.

퍼즐 조각이 대충 맞춰진 느낌이다.

헌터 시장에서 물건을 쓸어 간 건 몬스터 때문이었어.

재료는 몬스터의 장비를 맞추는 데 쓰는 거고, 몬스터 고기는 잡아 둔 몬스터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용도일 거다.

아무래도 앙그라마이뉴는 본격적으로 뭔가를 저지를 생각이다.

“어떻게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걸까요?”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초월 능력일 가능성이 가장 크죠.”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 생각해 보면 손에 닿은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굳이 스켈레톤 같은 몬스터를 저렇게 조직적으로 조종하기 위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스켈레톤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를 조종하면 정말 최강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조종할 수 있는 몬스터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너무 강한 몬스터는 조종할 수 없다는 건가요?”

채하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켈레톤 같은 그린 라벨 몬스터를 몇 마리 조종하는 것보다 블루 라벨 몬스터 한 마리를 조종하는 게 강력해요. 그런데 저들은 계획적으로 스켈레톤을 제압하고 정신을 지배했어요. 아마 어떤 제한이 존재하는 거겠죠.”

우린 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제법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따라붙었다.

“계획은 있나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힘으로 제압하는 거죠. 단숨에 기습해서 투쾅! 한 다음 남김없이 처리한다! 어때요?”

내 화려한 계획을 들은 채하나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게 보였다.

“…죄송해요. 다시 생각해 볼게요.”

“다행이네요. 그 정도 상식은 있는 분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상황을 완벽하게 정리하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저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고, 기습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면 저 핵심 인물을 잡아 두는 것도 가능하겠지.

“…….”

그들의 다음 목표는 익숙한 몬스터였다.

새까만 갑옷을 입고 천천히 다가오는 데스나이트를 보고 키가 작은 사람은 전혀 쫄아 있지 않았다.

쌔엥-!

데스나이트의 처음 공격을 가볍게 피했고, 검을 뻗은 데스나이트의 팔에 손을 올렸다.

쌩!

“이번엔 실패한 건가?!”

채하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만약 몬스터 세뇌에 실패한 거라면 두 번째 공격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연스럽게 다음 공격까지 흘려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데스나이트에게 파고들어 가슴에 손을 올렸고, 데스나이트도 스켈레톤처럼 얌전해졌다.

“상위 몬스터는 한 번 손을 대는 것으론 조종할 수 없다는 거네요.”

“저 사람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이다.

방금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보여 준 그의 깔끔한 동작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데스나이트는 처음 공격이 단순해서 패턴만 알고 있다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공격은 다르다.

첫 번째 공격과 이어서 들어오는 공격이기에 검의 방향과 궤도를 예상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저 사람은 두 번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 냈다.

“역시 방법은 정면 돌파뿐이네요.”

“불안하지만, 최현 씨 생각이 그렇다면 따를게요. 저는 무조건 최현 씨 편이니까요.”

이젠 나를 막는 걸 포기했는지 살짝 미소를 지은 그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귀엽죠? 제가 쓰려고 산 건데, 특별히 빌려드릴게요.”

채하나의 손에 들려 있는 건 고양이 가면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음을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만약 최현 씨가 여기서 당하면 저 사람들은 최현 씨가 죽었다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얼굴을 보이면 나중에 움직이기 힘들어지니까요.”

가면을 받아든 나는 채하나의 의외의 모습에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빙긋 웃고 있던 채하나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뚫어져라 보시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다니… 그렇네요. 고마워요! 물론 저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지만.”

상대는 앙그라마이뉴, 2위 길드다.

그리고 이런 짓을 벌이면서 잔챙이들이 따라왔을 리 없다.

즉, 여기 있는 녀석들은 전부 앙그라마이뉴의 주력이라는 뜻.

“혹시 이런 말 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채하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요?”

“최현 씨는 왜 저 사람들이랑 싸우려는 거예요?”

너무 근본적인 질문이 나와서 멍하니 대답을 못 하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못 본 척 지나갈 수도 있잖아요. 꼭 최현 씨가 짊어지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잖아요. 최현 씨의 행동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최현 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을 뿐이에요.”

사뭇 진지한 채하나의 표정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채하나 씨 말이 맞아요. 저 길드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던,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협회든 다른 길드든 나서서 해결하겠죠. 저 혼자서 해결하려고 발버둥 칠 필요는 없어요.”

“그럼 어째서…….”

“저는 던전을 완전 공략할 생각이에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 스스로를 위해서.”

어렸을 때 부모님이 던전에서 목숨을 잃고 생각했다.

던전 같은 게 없으면 나와 율이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적어도 그런 슬픔을 겪는 사람이 줄어들 거라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헌터가 되었지만, 그게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목표인지 깨달았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던전에서 죽어 갔고, 많은 피를 흘리며 싸웠다.

그렇게 얻은 13층이었다.

그런 성과를 우린 하루 만에 빼앗겼다.

“스승님의 목표이기도 했어요. 제게 이 목표를 외면할 이유는 없어요.”

내가 원한다.

스승님이 원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원한다.

할 수 없는 이유가 셀 수 없이 많지만, 해야 하는 이유는 이 세 가지면 충분하다.

“이번 일도 제 던전 완전 공략을 위한 일이에요. 몬스터를 조종해서 무슨 짓을 벌일지는 모르지만, 제 목표와 어긋나고 있어요.”

놈들은 화이트 소드를 처리한다고 했다.

적어도 그들이 몬스터를 가지고 던전 공략에 쓰진 않을 거란 말이다.

화이트 소드와 그다지 친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다른 헌터의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던전 공략이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다.

던전은 절대 혼자서 공략할 수 없으니까.

“그렇군요. 알겠어요. 최현 씨의 목표가 던전 완전 공략이라면, 저도 이제 던전 완전 공략이 꿈이에요.”

“네?! 어째서 채하나 씨까지…….”

“말했잖아요. 최현 씨는 제 은인이라고. 진심이에요.”

그녀의 눈은 흔들림 없이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최현 씨가 아니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를 목숨이에요. 그렇다고 최현 씨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거나 그런 거창한 생각은 하지 않아요. 최현 씨의 목표를 이룰 때까진 최현 씨 옆에 있겠어요.”

“저는 그렇게 좋은 일을 하지 않은걸요. 솔직히 말해서 채하나 씨를 구한 건 운이 따라 줬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때 아르티아를 쓰러뜨리고 17층으로 이동되지 않았다면 다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던전에 들어갔을지는 미지수다.

사실 내려오면서 겸사겸사의 느낌이 강했기에 그녀의 헌신적인 말들이 가시처럼 박혔다.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최현 씨 덕분에 제가 던전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거예요.”

채하나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들이 얼마나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그렇기에 더 이상 그녀를 말리는 건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일단 당장 앞에 있는 장애물부터 처리해 보죠.”

“후우, 그렇게 안 보이는데 채하니 씨 고집 엄청 세네요.”

해맑은 웃음을 머금은 그녀가 내게 손바닥을 펼쳤다.

버프를 주려는 채하나를 보고 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만요.”

“네?!”

“아직은 안 돼요. 채하나 씨의 버프는 아껴 두도록 하죠. 일단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채하나가 준 고양이 가면을 쓰고 그녀의 머리에 살짝 손을 올렸다.

“우린 저들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어요. 그러니까 일단은 먼저 가서 놈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그다음에 제대로 싸우도록 하죠.”

“알겠어요! 조심하셔야 해요!”

내게 최악의 상황은 놈들에게 붙잡히는 거다.

탐색전을 펼치며 얻은 정보들은 다음 전투에서 내가 가진 어떤 무기보다 큰 도움이 될 거다.

인벤토리에서 칠흑의 묵갑을 꺼내서 착용했다.

내가 죽는 모습을 놈들이 보면 내 능력을 파악할지도 모른다.

적당히 정보를 얻으면 블링크를 써서 도망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몬스터를 조종하다니, 상당히 흥미로운 능력이군.”

“……!”

모여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들은 나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는 게 보였다.

로브에 가려져서 그들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제대로 당황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너… 뭐야?!”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

“나는 고양이맨이다.”

“…….”

너무 차가워서 얼어 버릴 것 같은 정적.

그들 중 가운데에 있는 키가 작은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무것도 못 본 거로 하고 돌아갔다면 죽진 않았을 텐데…….”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본 걸 못 본 거로 할 순 없지.”

스르릉.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이 무기를 꺼내 드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앞에서 방패를 든 헌터들이 먼저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발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씨! 뒤쪽에 몬스터!”

돌아보기도 전에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화도를 검집에서 뽑았다.

발도기 제5공식, 화왕.

파앗!

뒤에서 나를 덮쳐 오던 구울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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