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 앙그라마이뉴 (2)
“앙그라마이뉴요?!”
1위 길드는 화이트 소드, 그리고 3위 길드는 신월이다.
규모와 세력으론 앙그라마이뉴가 2위지만, 사실 앙그라마이뉴 길드에 관한 것은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워낙 활동도 조용히 하는 길드고, 항상 붉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음침한 분위기라 그다지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워낙 이상한 놈들이잖아? 사이비처럼 길드 마스터를 신격화한다는 말도 들리고, 내부에서 이상한 의식을 치르기도 한대.”
“그런데 앙그라마이뉴가 왜 시장 물건을 쓸어 가는 거죠?”
“난들 아나. 괜히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확증이 없으니까.”
평소엔 의도적으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숨어 지내는 헌터들인데, 갑자기 이렇게 주목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히 김정태의 말처럼 앙그라마이뉴는 정상적인 길드로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물건은 구해 볼게. 오랜만에 귀여운 동생이 부탁한 건데, 힘 좀 써야지.”
“고마워요. 다음에 한턱 쏠게요.”
“하하하, 기대하고 있을게.”
***
주변이 온통 까맣게 물든 밤, 구름이 껴서 달빛마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안 되죠. 그러니까 왜 따라오셨어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조금씩 던전 쪽으로 이동했다.
옆에 따라붙은 채하나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길드 마스터에게 보고하고, 정식으로 팀을 꾸린 뒤에 협회의 승인이 떨어져야 한다.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싫었고, 혼자 움직이는 게 편했기에 이렇게 몰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채하나에게 들켜 버려서 이런 상태가 되었지만.
“채하나 씨. 지금이라도 괜찮으니까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최현 씨에게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제 초월 능력 아시잖아요. 무슨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나갈 수 있어요.”
“싫어요! 최현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 자체가 싫어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떼를 쓰는 채하나를 보고 문득 유지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라고.
아무래도 나보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건 채하나인 것 같다.
“제가 옆에 있으면 그래도 최현 씨가 무리하거나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건…….”
확실히 그녀가 옆에 있으면 혼자 다닐 때 보단 조심하겠지.
도저히 채하나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
“그럼 저도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제 말을 따라 주세요.”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이제야 환하게 웃으며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채하나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던전에 들어가서 내가 찾아야 하는 건 ‘검붉은 결정’과 ‘노란 코런덤’, 그리고 ‘아르스드 촉매제’다.
검붉은 결정은 4층, 노란 코런덤과 아르스드 촉매제는 5층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꼭 지금 구해야 하는 아이템이에요? 나중에 던전 공략을 하고 구하면…….”
“제대로 던전 공략이 이루어져서 4층과 5층까지 도달하면 아마 아이템은 저희가 갖기 힘들 거예요.”
채하나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채집 아이템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황인데 공식적으로 채집이 이루어지면 거액으로 판매가 되기 시작할 테니까요. 암암리에 뒤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겠죠.”
애초에 4층까지 공략이 진행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 발렌을 시스템에 가둬 두고 있는 것조차 미안한데, 더 기다리게 하고 싶진 않았다.
확실히 혼자서 4층에 올라가려는 발상은 정상적인 건 아니었다.
층마다 몬스터가 잔뜩 있고, 예전처럼 아래층에 약한 몬스터만 출현하는 것도 아니다.
“괜찮아요! 제가 옆에 있잖아요.”
불안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채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채하나 씨가 더 떨고 있잖아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고, 채하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던전을 무서워했으면서 이렇게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나를 믿고 있다는 거니까.
“어떻게든 몬스터를 피해서 가는 게 중요해요. 저한테 붙어서 따라오시면 들키지 않을 거예요.”
“알았어요! 딱 붙어서 절대 안 떨어질게요!”
“필요할 땐 떨어져 주세요.”
채하나는 자신이 옆에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던 채하나의 모습은 전혀 믿음이 가질 않았지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채하나의 버프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든든했다.
그리고 던전을 올려다보며 느껴지는 막연한 두려움에 그녀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던전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피해서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내겐 그 누구보다 뛰어난 탐지기인 발렌이 있으니까.
“입구 왼쪽에 몬스터가 많아. 오른쪽에 붙어서 들어가는 게 좋겠어.”
발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모닥불 앞에서 연기를 맞아 둔 덕분에 냄새로 들킬 염려는 없었다.
가능한 몬스터와 싸우지 않고 4층까지 도달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쉽지 않겠지.
타다닷!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던전 외벽에 몸을 붙였다.
반대편에 무언가 움직이는 커다란 형체가 보였고,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
채하나 쪽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신호를 보냈고, 숨까지 참으며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벌써 돌아가고 싶어요.”
이번만큼은 채하나의 말에 동감이다.
1층부터 3층까진 비슷한 느낌인데 음침한 잿빛 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 같은 풍경이다.
물론 미로라고 하기엔 통로도 굉장히 넓고, 길이 막혀 있지도 않다.
어쨌든 아래층에서 오랜 시간 활동을 해 온 덕분에 이쪽 지형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계단으로 향하는 루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발렌의 날카로운 후각 덕분에 몬스터와 싸우지 않고 3층까지 단숨에 올라올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선 돌아서 가는 게 좋겠어.”
“겨우 스켈레톤들인데요?”
스켈레톤은 그린 라벨로 ‘겨우’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몬스터는 아니다.
하지만 채하나는 내 실력을 알고 있기에 나와 비교하여 스켈레톤을 판단했다.
타다다닥!
카앙!
“……!”
벽에 등을 기댄 채 모퉁이 너머를 살피던 중, 누군가 몬스터와 싸우는 걸 발견했다.
붉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10명 정도.
앙그라마이뉴?!
방패를 들고 있는 세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스켈레톤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카앙! 캉!
단순한 공격 밖에 하지 못 하는 스켈레톤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활을 쏘아 댔지만, 방패를 뚫을 수 없었다.
“앙그라마이뉴 길드가 왜 여기에…….”
“이 시간에 3층까지 올라와서 몬스터 사냥을 하는 건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정도 숫자의 헌터라면 협회의 승인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1층에서도 스켈레톤이 출현한다.
굳이 3층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올라와서 스켈레톤을 사냥하고 있는 건 어째서지?
그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전투하는 걸 지켜봤다.
방패를 들고 있던 헌터들이 살짝 옆으로 비켜섰고, 뒤쪽에 있던 다른 헌터가 전위로 나왔다.
스르릉!
검을 뽑아 든 그들은 자연스럽게 스켈레톤 무리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력을 잠깐 훔쳐봤을 뿐이지만, 스켈레톤 정도는 가볍게 사냥할 수 있을 실력이다.
괜히 2위 길드가 아니겠지.
“마치 몬스터를 농락하는 것 같아요.”
채하나도 그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걸 느낄 정도였다.
진즉 쓰러뜨릴 수 있는데, 스켈레톤의 공격을 받아치며 얕은 공격만 먹여서 대미지를 쌓고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마치 몬스터를 농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들 사이에서 키가 작은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역시 붉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뭘 하려는 거죠?”
“의식 같은 건가?”
원래 이상한 길드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음침한 분위기에 항상 풍기는 기묘한 살기.
웬만하면 앙그라마이뉴 길드와 얽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쌔엥-!
앞으로 달려든 스켈레톤 한 마리가 힘껏 반월검을 휘둘렀다.
다른 헌터들이 다 뒤로 물러났고, 키가 작은 사람만 남아서 스켈레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스켈레톤의 팔에 닿는 순간, 스켈레톤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
“죽은 건가?!”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스켈레톤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다른 헌터들도 방금 그 스켈레톤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저건 마치…….”
그들의 대형은 스켈레톤과 같은 동료인 것처럼 보였다.
카앙-!
“……!”
하압.
나와 채하나는 방금 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 전까지 헌터와 싸우던 스켈레톤이 갑자기 자신의 동료인 다른 스켈레톤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캉! 카캉!
스켈레톤은 전력으로 다른 스켈레톤과 싸우고 있었다.
“이게 대체…….”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었다.
같은 종족인 몬스터가 싸우는 상황이 전혀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지금은 너무나 비정상적이었다.
키 작은 사람의 손이 닿는 시점부터 스켈레톤의 행동이 이상하게 변했다.
마치…….
“몬스터를 세뇌한 것 같아요.”
채하나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고선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가 몬스터를 컨트롤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이성이 없는 몬스터들을 조종해서 움직인다면 훨씬 위협적인 몬스터가 될 거다.
“아무래도 저희가 보면 안 되는 걸 본 것 같네요.”
“어쩌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서 저들과 전투를 벌이는 건 너무 위험하다.
로브를 쓰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당장 그들을 적으로 돌리면 이 던전에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일단 던전에서 나가서 길드 마스터와 협회에 보고하는 게 가장 현명하겠지.
“이제 몇 마리죠?”
“……!”
처음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스켈레톤도 손이 닿자마자 공격을 멈추고 순한 양이 되어있었다.
“다 합쳐서 217마리. 쓸 만한 녀석은 50마리 정도인가.”
“아직 멀었네요. 화이트 소드 놈들을 처리하려면 500마리 정도는 필요하다고 했으니까요. 4층까지 올라가죠.”
“으음, 마스터한테 혼날 텐데…….”
“저희 길드 정예만 있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요?”
“그럼 딱 4층까지만 올라가자.”
그렇게 대화를 마친 그들은 4층 계단으로 걸음을 돌렸고, 그들의 뒤로 스켈레톤이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몇 번을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발렌과 자연스럽게 있는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느낌이려나.
“저희는 던전에서 나가는 게 좋겠어요.”
채하나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뇨. 저희가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