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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02화 (102/176)

102화 : 헌터 선발 시험 (5)

우리는 커다란 동굴 앞에 모여 고민에 빠져 있었다.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린 라벨의 몬스터가 대부분이었고, 전날 사냥한 몬스터의 수도 적지 않았기에 공략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몬스터들이 먼저 공격해 온 것도 운이 좋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역시 저희 셋이 모두 들어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죠.”

몬스터 사냥을 하던 중에 우리는 이 동굴을 발견했다.

누가 봐도 보스룸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동굴이었다.

동굴이 열리거나 하는 걸 직접 봤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아직 찾지 못한 세 사람이 남아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게이트를 공략해야 한다.

셋이 동굴에 들어갔는데, 보스룸이 아니라면 밖에 있는 수험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아직 다른 몬스터가 남아 있다는 거니까.

“저랑 최현 씨가 들어가는 거로 할게요.”

설소은의 말에 허유재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보스룸인데 위험할 수 있어요.”

“…이 많은 분의 안전을 맡길 수 있는 건 허유재 씨뿐이에요.”

예상치 못한 칭찬에 허유재의 표정이 한껏 밝아지며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렸다.

“크흠, 그것도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럼 설소은 씨의 판단을 믿고 맡기도록 하죠.”

단순한 자식.

어쨌든 내 생각에도 이렇게 진행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설원 지형은 설소은의 수 속성 능력을 쓰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허유재가 여기에 남는 게 안전하겠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믿겠습니다!”

그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나와 설소은은 동굴 안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깊숙이 걸음을 옮겨도 신기하게 어두워지지 않았다.

동굴 천장에 작은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었고, 그곳을 통해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마도 보스 몬스터는 블루 라벨 정도겠죠.”

“차라리 여기가 보스룸이면 좋을 텐데.”

다른 몬스터를 찾아서 돌아다니고, 다시 보스룸을 찾기엔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여기에서 빠르게 보스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무래도 정답인 것 같아.”

발렌의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우리 앞에 철문이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안에서 몬스터 냄새가 나. 그리고 타는 냄새도.”

“타는 냄새?”

설소은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다.

쿠구구궁!

힘껏 철문을 밀자, 두꺼운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내부엔 넓은 공간이 있었고 곳곳에 물웅덩이가 보였다.

“정답이었네요.”

설소은은 긴장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몬스터를 향해 손을 펼쳤다.

작은 키에 온몸이 불타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블루 라벨인 ‘아저’라는 몬스터다.

몸에 두르고 있는 불을 이용해서 싸우는 몬스터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서 까다로운 놈이다.

그렇기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우리에겐 설소은이 있으니까.

화르륵!

우리를 발견한 아저는 허공에 팔을 크게 휘둘렀고, 그의 팔을 따라 불길이 일어났다.

“제가 시선을 끌겠습니다!”

설소은에게서 떨어져 아저를 중심으로 빙 돌아서 움직였다.

강한 몬스터인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방어력이 약한 녀석이다.

시간에 쫓기고 있는 이상, 여유 부리고 있을 생각은 없다.

타악!

아저가 바닥에 손을 대자 그를 중심으로 땅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곳곳에 있던 물웅덩이가 단숨에 증발하면서 수증기로 시야가 가려졌다.

“설소은 씨!”

“저는 괜찮아요! 저를 믿고 들어가세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썼다.

라이프 몇 개를 아끼겠다고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수증기 사이에서 붉은 점이 뚜렷하게 보이더니, 그곳에서 불덩이가 날아왔다.

“……!”

촤아악!

그리고 내 바로 앞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더니 불덩이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덕분에 아저의 코앞까지 단숨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화왕, 앵화, 목란.

순식간에 아저에게 3번의 공격을 먹였다.

[1521!]

[1611!]

[1963!]

찰나의 순간에 아저 전체 체력의 반을 깎았다.

놈은 내 움직임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고, 예상치 못한 타격에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겨우 접근했는데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다.

쌔엥-!

따라붙으며 놈의 어깨에 검을 그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저가 내 검을 손으로 움켜쥐는 게 보였다.

“……!”

불길 속에서 씨익 웃는 것 놈의 미소와 동시에 화도가 붉게 달아올랐다.

“최현 씨!”

설소은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위에서 엄청난 양의 물벼락이 우리를 덮쳤다.

치이이익!

아저의 불은 설소은의 물벼락에 그 힘을 잃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몇 번이나 검을 휘둘렀는지 정확하게 셀 수 없었다.

아저가 자세를 바로잡기까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으니까.

[System : 블루 스톤x2 붉은 돌x1 숯덩이x3을 획득하셨습니다.]

[System :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곧 게이트 밖으로 이동됩니다!]

“후우…….”

숨을 크게 몰아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로는 설소은을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계속 다르게 반응했다.

결과적으로는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내게 다가온 설소은이 손을 내밀어 줬고, 씨익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 일어났다.

“저보다 설소은 씨가 걱정인데요. 서포트 좋았어요.”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만 봐도 무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번 쓴 능력 모두 상당히 규모가 컸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은 설소은에겐 타격이 있었겠지.

잠깐의 어지러움과 함께 정신을 차렸을 땐 우리가 처음 게이트에 빨려 들어온 장소였다.

주변엔 하얀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신기할 정도로 사건을 몰고 다니시네요.”

“저도 도통 이해할 수 없거든요.”

어쨌든 협회에 보고는 해야 했기에 유지연 대리… 아니, 유지연 과장과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

테이블 하나를 놓고 서류를 작성하는 유지연 과장을 보니, 어쩐지 취조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최현 씨가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다행인가요.”

내 굳은 표정을 보고 유지연이 고개를 떨궜다.

우리가 찾지 못했던 3명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30명 중 9명이 사망한 이번 외부 게이트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지금까지 외부 게이트에 관한 것을 숨기고 있던 협회는 이번에 어쩔 수 없이 공개해야만 했고, 다시 한번 질책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잖아요. 최현 씨가 있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무력함을 느낄 때마다 머릿속에 ‘만약에’를 그리게 된다.

만약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게이트를 공략했다면…….

“최현 씨……?”

“아, 죄송해요.”

유지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다가 다시 이것저것 물어 왔다.

보고는 형식적인 것이었기에 그리 복잡한 질문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었고, 정리를 끝낸 유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현 씨는 목숨이 여러 개라고 하셨죠?”

“네? 아… 네.”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시면 좋겠어요. 남을 위해 반드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말한 유지연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방에서 나갔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라이프를 소모해서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때 그러지 못하면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것 같은 죄책감이 옥죄어 온다.

똑똑.

유지연이 나간 뒤, 방에 들어온 건 윤서훈이었다.

평소와 같은 깔끔한 정장과 올백 머리의 그는 안경을 쓰윽 올리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또 만났군요.”

헌터 협회 협회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그가 썩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땐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이젠 그가 나를 만나러 올 땐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이번엔 뭐죠?”

“하하, 아무래도 저는 미움받고 있는 모양이군요.”

“협회장님을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거든요.”

아르티아 건에 대해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는 율이의 약을 거래 조건으로 제시했다.

내겐 만족스러운 거래였고, 덕분에 전보다 율이의 상태가 양호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협회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었다.

협회가 과거와 비교하면 무력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이번엔 최현 씨에게 뭔가를 부탁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외부 게이트 사건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자 할 뿐이니까요.”

그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내게 인사를 했다.

“갑작스럽게 위험에 처하게 만든 점, 그리고 다른 일반인들을 지켜 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번 외부 게이트 사건은 협회의 잘못이 아니었다.

단순히 외부 게이트를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게이트 자체가 주변을 집어삼킨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어디서 게이트가 발생할지 모른다면 대처할 수 없는 문제였다.

고개를 들지 않는 윤서훈을 보고 문득 머릿속에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중얼거린 내 말을 들은 윤서훈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도 뻔뻔했던 거죠.”

“하지만… 이번 외부 게이트는 불가피한 일이었잖아요!”

“피해자가 9명이나 있었습니다. 헌터 협회는 외부 게이트에 관해 알고 있었으면서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었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다.”

윤서훈은 협회장에서 내려오려는 거다.

“걱정하지 마세요. 최율 씨의 약은 제가 책임지고 계속 조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불편한 관계가 아니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왜 저랑…….”

“저는 최현 씨 팬이니까요. 그렇기에 이번 사건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외부 게이트에 관한 것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계속 미소를 짓고 있던 윤서훈은 처음으로 표정이 굳었다.

“외부 게이트는 조금씩 진화하고 있습니다.”

“진화요?!”

살아 있는 것도 아닌 게이트가 진화하고 있다는 말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나 공략 난이도는 던전에서 발생하는 게이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부 게이트는 마치 인간을 먹어 치우려고 하는 것처럼 진화하고 있어요. 출구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거나, 이번처럼 직접 주변을 빨아들이는 것처럼요.”

“원인은 모르나요?”

윤서훈은 고개를 저었다.

“외부 게이트는 아포칼립스가 발생한 이후로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아직 충분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처럼 던전 공략을 진행하면 외부 게이트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요.”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가 던전을 공략하고 있을 땐 외부 게이트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그때처럼 돌아간다면 외부 게이트도 사라질지 모른다.

“다 가정일 뿐이라 도움은 되지 못한 것 같군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게 좋지만, 만약 또 외부 게이트를 마주하시게 된다면 도망치시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겁니다.”

여전히 진의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은 윤서훈은 다시 한번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방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윤서훈은 협회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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