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헌터 선발 시험 (4)
“지금 뭐라고…….”
“최현 씨의 초월 능력은 ‘플레이어’. 맞죠?”
그녀의 눈은 똑바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있는 나를 위해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사실 아까 아이스 골렘에게 죽기 직전에 이상한 능력이 생겼어요. 보고 있는 것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능력.”
“네?!”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까 그 상황에서 초월 능력을 얻었다는 건가?!
“처음엔 무슨 능력인지 몰랐는데, 설소은 씨가 ‘수 속성 마력계’ 헌터라는 정보가 적혀 있는 걸 보고 알게 됐어요. 이건 헌터와 관련된 정보를 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걸.”
확신에 찬 그녀의 말에 나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자… 잠깐만요. 그…….”
“송지우예요.”
“네, 송지우 씨. 그럼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보이시나요?”
“라벨의 종류와 몬스터의 체력 같은 게 보여요.”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그녀의 능력은 내 초월 능력의 하위 호환 같이 보였다.
물론 내 능력으로 다른 헌터의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했으니, 아예 틀이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최현 씨는 초월 헌터인가요?”
쳇, 눈치가 빠르군.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라 나는 설소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대답했다.
“맞아요. 저는 초월 능력 헌터예요.”
“초월 헌터?!”
“초월 헌터인데 C급 헌터라고?”
“이상한 능력 아니야?”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은 썩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어와 같은 능력이에요. 이런 식으로…….”
인벤토리에서 아까 사냥한 아이스 잭의 그린 스톤을 꺼냈다.
“오오! 갑자기 뭔가가 나타났어!”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넣고 빼는 게 가능하고, 몬스터를 쓰러뜨리면서 경험치를 얻고 레벨업을 하는 게임 같은 능력이에요.”
내 말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라이프에 관한 거나 스킬 같은 걸 굳이 말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까지 묘하게 날 깔보는 듯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의 표정이 바뀐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원래 간사한 동물이기에 그들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왜 C급 헌터시죠? 초월 능력을 갖고 있으면 A급까진 쉽게 올라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누군가의 말에 나는 날카롭게 그를 쏘아봤다.
“제 얘기는 그만하고 싶네요. 사적인 얘기고 게이트에 빨려 들어오고 나서부터 여러분을 구하는 것에 있어선 조금도 감추기 위해 사리거나 하진 않았으니까요.”
“…….”
보채듯이 내게 이런저런 물음을 던지던 송지우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가 아이스 골렘과 싸우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봤으니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노골적으로 불쾌한 티를 내자, 송지우는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악의가 있었는지, 단순한 호기심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 필요 없는 내 개인적인 얘기를 꺼냈다는 건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죄송해요. 저는 그냥…….”
“주변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다른 몬스터가 밤에 기습해 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럼 이거!”
급히 빙결의 갑옷을 벗어 주려는 설소은의 머리를 꾹 눌렀다.
“괜찮아요. 입고 계세요.”
무언가 말하려던 설소은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분위기가 바뀐 걸 알고 사람들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불쾌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E급 헌터였을 때 헌터 대기실에 들어가면 항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군댔다.
그들의 비웃음과 그 눈은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잊히질 않는다.
“…괜찮아? 형씨…….”
“그래도 발렌이 있어서 다행이야.”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항상 내 걱정을 해 주는 이신예나 차윤지, 그리고 유지한 아저씨도 있다.
진천우나 신아람처럼 나를 보살펴 준 사람도 있고, 항상 옆에 있어 주는 율이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을 깊게 좋아할 수 없다.
내게 사람은 상처를 준 기억이 더 많으니까.
“형씨! 형씨!”
“어?!”
멍하니 있던 나는 발렌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주변에 몬스터 냄새가 나. 준비해.”
놀란 나는 급히 화도로 손을 가져갔다.
“몬스터 냄새와 피 냄새야. 숫자가 제법 많아.”
“하필 아직 라이프 파워 쿨타임이 돌지 않았을 때…….”
아이스 골렘과 싸울 때 쓴 라이프 파워의 쿨타임이라 쓸 수 없다.
그린 라벨 정도라면 라이프 파워 없이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지만, 옐로우 라벨의 몬스터가 잔뜩 덤비면 귀찮아진다.
크게 위험한 일은 없겠지만,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건 불안 요소였다.
“온다!”
멀리서 무언가의 형체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까만 어둠으로 가득 찬 설원은 오직 달빛에 의지해서 눈을 부릅떠야만 볼 수 있었다.
회색 털로 덮인 거로 봐선 아이스 잭인가.
숫자는 7마리 정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놈들이 공격해 오기 전에 먼저…….
타다다닷!
설원을 가로질러 망설임 없이 아이스 잭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 최현 씨! 무사하셨…….”
아이스 잭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깜짝 놀란 나는 급히 휘두르던 검의 궤도를 꺾었다.
쌔엥- 파악!
다행히 허공을 가르는 것으로 끝났지만, 달려들던 관성 때문에 그대로 그와 충돌하고 말았다.
“으윽…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아이스 잭의 가죽이 벗겨진 허유재가 짜증 섞인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바닥에 쓰러진 우리 둘은 여전히 충돌로 인해 몸을 비틀거렸다.
“설마 아이스 잭 가죽을 덮고 있는 허유재 씨라곤 생각도 못 했죠.”
“이게 아니었으면 진즉 얼어 죽었을 거예요. 저희에겐 생명줄이라고요.”
허유재는 일어나서 눈을 탁탁 털어 냈다.
“어쨌든 다시 만나서 반갑네요. 다행이에요. 혹시 다른 분들도 같이 있나요?”
허유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설소은 씨, 그리고 수험생은 15명 같이 있어요.”
“15명인가…….”
그는 내 말을 듣고 표정이 차갑게 굳어 갔다.
뒤쪽에서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6명의 사람.
그렇다면 지금까지 구한 사람은 21명이다.
6명이 당한 걸 봤으니 아직 확인되지 않은 건 3명이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죠.”
아이스 잭의 가죽을 이용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확실히 설원 지형 몬스터들의 가죽은 두껍고 방한이 잘 되어서 체온을 지키기에 유용하다.
방금 발렌의 반응처럼 몬스터 냄새를 풍기기에 다른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기에도 좋았다.
역시 재수는 없지만, 괜히 A급 헌터가 된 건 아닌가 보군.
***
“오… 무사하셨군요!”
“다행이다.”
“여기 와서 몸 좀 녹이세요!”
사람들은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모이면 그래도 안도감이 생기는 법이니까.
허유재의 합류는 내게도 안심이 되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단도로 아이스 잭을 쓰러뜨리고 가죽까지 벗겨 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얼마나 산전수전을 겪은 헌터인지 새삼 실감이 났다.
“역시 설소은 씨 대단하네요. 이 많은 인원을 구하고 윈터 버드까지 잡다니……. 믿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는…….”
설소은은 허유재의 말에 당황해서 무언가 말하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허유재 뒤에서 급히 검지를 입에 가져간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끄덕였다.
“쉽지 않았죠.”
연기는 절대 시킬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인걸.
로봇처럼 말하는 설소은을 보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에 반해서…….”
허유재는 내게 눈을 돌리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설소은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나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C급 헌터인 나보다 설소은을 의지하는 건 당연한 얘기였다.
내가 초월 헌터인지도 모르는 그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럼 다시 얘기해 보도록 하죠. 내일 어떻게 움직일지 정하는 게 좋겠어요.”
내 말에 허유재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발견한 희생자가 6명이라고 했죠? 그럼 미확인 생존자는 3명. 넓은 게이트를 뒤지고 다니는 것보다 게이트 공략을 하는 게 빠를지도 몰라요. 처리한 몬스터는요?”
허유재의 질문에 나와 설소은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같이 아이스 잭을 5마리쯤 쓰러뜨렸고, 설소은 씨가 아이스 골렘과 윈터 버드를 잡으셨어요.”
“크으! 역시… 마력계 헌터에 실력까지 좋으시군요. 설소은 씨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냥 한 대 칠까.
아까 내가 보였던 반응 때문인지 설소은은 얌전히 내 말에 맞춰 주었다.
“그럼 몬스터 숫자도 제법 줄어 있겠네요. 공략을 목표로 움직이도록 하죠. 설원을 뒤지고 다니는 것보다 나을 거예요.”
나 역시 허유재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미 사냥한 몬스터의 수도 많았고, 생존자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공략 쪽이 훨씬 빠를 테니까.
“저와 허유재 씨가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를 잡겠습니다. 설소은 씨는 다른 분들을 지켜 주세요.”
“알겠어요.”
설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 게이트가 꾸준히 생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화이트 소드가 전담해서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다고 들어서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가 공격해 오는 것과 달리, 게이트는 공략이 수동적이다.
즉, 직접 들어가지 않으면 당장 위험이 생기진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이번에 발생한 외부 게이트는 입을 쩍 벌린 몬스터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우리는 헌터라 그래도 다행이지만, 일반인들이 휘말리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겠지.
“최현 씨.”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송지우를 보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그녀에게로 향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송지우를 보고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깐 죄송했어요. 최현 씨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떤 목적이었는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게 중요한 거죠.”
“…….”
당황한 그녀는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변명해서 죄송해요.”
“지나간 일이니까 이젠 어쩔 수 없죠.”
대놓고 틱틱거리며 그녀에게 차갑게 대했고, 송지우는 이런 상황이 불편한 듯 보였다.
목숨을 구해 준 내게 폐를 끼쳤으니 편할 리가 없겠지.
딱히 그녀에게 나쁜 감정이 생긴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그녀의 편의를 봐주며 행동하고 싶진 않았다.
“놀라셨을 텐데, 쉬세요.”
그렇게 말하고 휙 돌아서자, 송지우는 다급히 내 옷자락을 잡았다.
“……?”
“초월 헌터가 되면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원래라면 망설이지 않고 ‘네’라고 답하겠지만, 그녀의 초월 능력은 전투 계열이 아니었다.
어떤 능력이든 사용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은 크게 환영받기 힘들 거다.
“능력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능력에 기대는 게 아니라 능력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분명 좋은 헌터가 될 겁니다.”
송지우는 내 대답에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