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 헌터 선발 시험 (3)
[System : 그린 스톤x7 아이스 잭의 털 뭉치x4 아이스 잭의 송곳니x3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스 잭을 사냥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놈들에게 당한 사람들을 수습하는 것이었다.
잠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나는,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걸 느끼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을 찾는 게 더 우선시해야겠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몬스터에게 당하기 전에 서둘러 찾아야만 한다.
“어때?”
“…안 돼. 피 냄새가 너무 강해서 인간 냄새를 찾을 수 없어.”
발렌의 말에 의하면 몬스터 냄새보다 인간의 냄새는 약한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피 냄새처럼 강렬한 냄새가 있으면 도저히 찾기 힘들다고 한다.
이젠 발로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나.
그나마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라면 처음 만난 몬스터가 ‘아이스 잭’이라는 것이다.
그린 라벨을 만났다는 건 이 게이트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블루 라벨 몬스터가 한계.
충분히 혼자서도 가능할 정도의 수준이다.
시험관인 나와 설소은, 허유재를 포함해서 총인원은 33명.
안전이 확인된 사람은 겨우 7명인가.
아이스 잭에게 당한 인원은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얼핏 보기엔 대략 3명.
“효과적으로 찾는 방법이 없을까? 이렇게 돌아다니다간 끝도 없겠어.”
그나마 허유재가 우리와 떨어져 있다는 것에 걸었다.
짜증 나긴 하지만, 실력은 확실한 녀석이다.
허유재랑 같이 있으면 몬스터에게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후각으로 찾는 게 가장 좋지만, 아까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야 해.”
“꺄아악!”
“……!”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가 홱 돌아갔다.
소리를 봐선 가까운 곳은 아니다.
급박한 상황인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지.
라이프 파워를 사용해서 민첩을 올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였다.
설원을 빠르게 달려서 비명이 들린 쪽으로 향하자 거대한 아이스 골렘이 보였다.
일반 아이스 골렘과 외형은 같았지만, 덩치가 상당히 컸다.
“도… 도와주세요!”
설원에 쓰러져 있는 여자는 나를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젠장, 멀어.
인벤토리에서 바로 에렌 셀을 꺼낸 나는 달리는 다리를 멈추지 않고 에렌 셀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창을 던지는 것처럼 뒤로 쭉 당겨서 아이스 골렘을 향해 힘껏 쐈다.
파앙-!
라이프 파워까지 발동된 상태라 창은 단숨에 허공을 찢으며 아이스 골렘의 등에 꽂혔다.
“……!”
워낙 커서 충격에도 넘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아이스 골렘은 등에 꽂힌 검을 보고 내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었으니 됐어.
“떨어지세요!”
“네!”
스릉.
허리춤의 화도를 꺼내 빠르게 아이스 골렘과 거리를 좁혔다.
골렘의 약점은 몸 안에 있는 핵.
쿠웅!
아이스 골렘이 묵직한 주먹을 힘껏 내리쳤고, 가볍게 몸을 굴려 피해 냈다.
땅에 쌓여 있던 눈들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시야를 가렸다.
팔을 최대한 안쪽으로 당겨서 튕기듯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제4공식, 매화.
쌔엥-!
“…! 아이스 골렘의 팔을… 일격에?!”
뒤에서 지켜보던 그녀가 놀란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이스 골렘이 다시 공격을 해 오기 전에 놈의 가슴에 있는 핵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목란.
카가각!
다른 골렘과 다르게 아이스 골렘은 안이 투명해서 핵의 위치를 바로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정확히 화도가 핵을 꿰뚫었고, 아이스 골렘의 몸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System : 옐로우 스톤x1 얼음 파편x1 골렘 소환서(6번)x1을 획득하셨습니다!]
“후우…….”
심호흡하며 놈의 등에 꽂혀 있던 에렌 셀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그녀는 추운지 손과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아이스 골렘을 이렇게 간단하게…….”
“역시 C급이어도 프로인가.”
이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골렘이 나오고 각자 흩어져서 도망쳐서…….”
한 남자는 머쓱한 듯 괜히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골렘에게 쫓기고 있던 여자는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도망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순 없었다.
어쨌든 이곳에서 10명이 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골렘에게 쫓기며 비명을 질러서 다른 사람들도 이쪽으로 모인 듯했다.
“다들 몸이 얼었겠지만, 조금만 참고 따라와 주세요. 다른 몬스터가 나오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우리 시험관들뿐이었다.
불안한 눈으로 수험생들은 얌전히 내 뒤를 따라왔다.
일부러 아이스 잭이 난리를 친 곳은 피해서 돌아갔다.
그런 광경을 보여 줘서 좋은 건 없으니까.
***
“15명이네요.”
설소은이 중얼거리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건 15명과 허유재.
아이스 잭에게 당한 게 3명이라고 치면 12명인가.
“저…….”
아이스 골렘에게 쫓기고 있던 여자가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모닥불에서 몸을 녹이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그녀에게로 향했다.
“도망치면서 아이스 골렘에게 3명이 당했어요.”
그녀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고, 나 역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미확인 생존자는 허유재까지 10명.
“왜 갑자기 이런 일이…….”
고개를 떨군 채 울먹거리는 그녀를 보고 다들 침울한 표정이 됐다.
많은 게이트를 공략했던 나와 설소은은 이 상황 자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게이트는커녕 몬스터와도 처음 만나는 사람도 존재했고, 어제까지 평범한 삶을 살아온 그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게이트를 공략해서 나가는 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지만, 다른 수험생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저는 바로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우리 바로 위쪽에 큰 그림자가 드리웠고, 누구 할 것 없이 고개를 들어 위쪽을 확인했다.
“끼이이익!”
“위… 윈터 버드다!”
“도망쳐!”
윈터 버드의 등장에 당황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이지 마세요! 저희에게서 떨어지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저랑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지켜 드릴 테니 여기서 떨어지면 안 돼요.”
우리 위를 빙글빙글 도는 윈터 버드를 먼저 공격하는 건 위험하다.
놈이 아래로 내려왔을 때를 노리는 수밖에.
“제가 처리할게요.”
“네?!”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얼굴의 설소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고,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설소은이 무언가 중얼거리며 손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자, 그녀 옆에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끼엑!”
하늘을 날고 있던 윈터 버드의 배에 물기둥이 정확히 명중했고, 윈터 버드가 그대로 땅에 추락했다.
기다리고 있던 설소은이 윈터 버드의 머리에 물방울을 씌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에 빠진 경험을 하는 윈터 버드는 괴로운 듯 발버둥 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마력계?!”
보통 사람이 보기에 마력계 능력은 마치 마법과 같았다.
자연 능력을 자유롭게 다루는 힘이었기에 그건 평범한 인간에겐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능력이기도 했다.
질식했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윈터 버드를 보고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켜 냈다.
그녀의 능력은 일반적인 사람이 보기에 위협적인 능력이었다.
저런 식으로 숨통을 조이면 호흡이 필요한 누구라도 쓰러뜨리는 게 가능하니까.
털썩.
“설소은 씨!”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그녀의 작은 몸이 힘없이 바닥에 충돌했다.
“괜찮으세요?!”
“어떻게 된 거죠?!”
걱정스러운 얼굴의 다른 수험생들도 설소은에게 모여들었다.
“마력계와 통신계, 치유계 능력자들은 자신의 정신력을 연료로 사용합니다. 정신력의 크기와 힘은 사람마다 달라요.”
이미 지쳐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원래 설소은의 정신력이 약한 건진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능력을 더 쓰면 위험해질 수 있다.
설소은을 업고 모닥불로 향하던 나는 그녀의 옷이 젖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러게 왜 무리했어요.”
“…저도 헌터인걸요.”
게이트에 빨려 들어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내내 걸렸는지 그녀가 업힌 채로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 무력감을 알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모닥불 앞에서 이거라도 입고 계세요.”
나는 빙결의 갑옷을 벗어서 설소은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나와 갑옷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이렇게 무거운 갑옷을 착용하면 그녀는 움직이지도 못하겠지.
“추위를 막아 주는 갑옷이에요. 그런 상태로 있다간 정말 저체온증으로 위험하니까요.”
물론 더 이상 그녀가 무리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도 있다.
젖은 옷 때문에 상당히 추웠는지 얌전히 갑옷을 입는 설소은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 나를 쏘아보는 설소은의 날카로운 눈에 급히 웃음기를 지웠다.
“이제 어떻게 하죠? 계속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기엔…….”
“제가 따로 움직이는 건 너무 위험해요. 일단 여기서 밤을 보내도록 하죠.”
벌써 해가 지고 있었고 주변에 어둠이 깔리면 몬스터들은 사냥을 시작한다.
섣불리 움직이는 건 여기 있는 사람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무사히 안전한 곳에 숨어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동굴 안이라도 들어가면 그래도 추위를 피할 수 있을 거다.
설원 지형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조급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모닥불 불을 옮겨서 여러 곳에 불을 피웠고, 윈터 버드를 손질해서 불에 굽기 시작했다.
“냄새 엄청난데.”
“윈터 버드 고기는 몬스터 고기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별미거든요.”
“오오.”
내 말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윈터 버드 고기를 보고 사람들이 군침을 흘렸다.
설원 지형은 식량을 구하기도 힘드니 내일은 반드시 공략해서 나가야 한다.
인원이 많아서 커다란 윈터 버드를 사냥해도 그렇게 넉넉한 식량을 얻을 순 없었다.
“저…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이스 골렘에게 쫓기고 있던 여자가 내게 다가와 고개를 푹 숙였다.
입안 가득 윈터 버드 고기를 구겨 넣었던 나는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말하고 싶어서 황급히 고기를 목으로 넘겼다.
“뭘요.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설마… 이런 타이밍에 고백?!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가냘픈 체격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젠장, 짐승 같은 자식! 정신 차려라, 최현!
확실히 목숨을 구해 준 사람에게 호감이 생긴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돼!
난 시험관이고 그녀는 수험생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최현 씨는 초월 헌터이면서 왜 진짜 실력을 숨기고 계시나요?”
“……?!”
그녀의 말에 순간 정적이 주변을 집어삼키며 모두의 시선에 내게로 향했다.
평소에 무덤덤한 표정인 설소은도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