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 헌터 선발 시험 (2)
“방금 그건 정말 운이 좋았군요!”
“네?”
악의 없는 미소를 지은 허유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검 끝이 우연히 거기에 걸리다니… 이야, 하긴 운도 실력이라고들 하죠.”
역시 재수 없는 자식이다.
검 끝으로 내리치는 검을 막는 건 확실히 정상적이진 않다.
나도 수만 번은 연습해서 겨우 스승님을 따라 하는 정도였으니까.
그 이후로도 테스트는 이어졌다.
30명의 수험생에서 합격자는 겨우 4명.
그래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이쪽이 자연스럽달까.
“저……!”
그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한 번만 더 테스트를 보면 안 될까요?”
합격자 발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던 우리는 손을 들고 있는 수험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테스트를 봤던 진용훈이었다.
그의 눈에는 분함이 서려 있었고, 허유재는 노골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시 봐도 결과는 같을 겁니다. 아쉽게 떨어진 정도가…….”
“다시 보게 해 드리죠.”
허유재의 말을 끊고 앞으로 나선 건 설소은이었다.
그녀는 새까만 흑발을 쓸어 올리며 담담한 표정으로 진용훈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결과가 같다면 받아들여 주세요. 저희는 객관적으로 채점하겠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듯한 차가운 목소리에 진용훈이 침을 꿀꺽 삼켜 냈다.
설소은이 자세를 잡았고, 진용훈은 다시 목도를 손에 쥐었다.
시작 신호를 외치기 위해 두 사람 가운데로 걸음을 옮겼고 손을 번쩍 든 순간, 기괴한 이질감이 나를 덮쳤다.
“형씨!”
발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
“이게 뭐야!”
우리 발밑에 푸른색의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건 익숙한 존재였다.
“게이트?! 어째서!”
당황한 우린 다급히 외부 게이트에서 멀어지려고 뒷걸음질 쳤지만, 게이트가 블랙홀처럼 주변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꺄악!”
“설소은 씨!”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강해서 체격이 작은 설소은은 단숨에 게이트에 삼켜졌다.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사람들도 공중에 붕 떠서 게이트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정신이 드세요?”
“으윽…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눈을 뜬 진용훈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게이트 안은 설원 지형이었다.
빨려 들어오기 직전 광경을 생각해 보면 아마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게이트로 들어왔을 거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건 나와 진용훈, 그리고 설소은이었다.
“으으윽…….”
엄습하는 추위에 진용훈은 다급히 자신의 몸을 끌어안으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게이트에 잡아먹힌 것 같아요.”
“게… 게이트가 왜 던전이 아닌 곳에서 생긴 거죠? 그리고 잡아 먹히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 봐서… 저희도 잘 모르겠네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진용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외부 게이트는 이미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협회에선 굳이 외부 게이트에 관한 것을 숨기고 있었다.
드물게 외부 게이트가 발생하면 화이트 소드가 전담해서 처리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외부 게이트는 그렇다 쳐도 게이트가 이렇게 주변을 빨아들이는 건 본 적도 없다.
“괜찮으세요?”
“…네.”
설소은은 나보다 먼저 깨어 있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은 채로 자신의 무릎을 껴안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단 숲으로 이동하죠. 얼어 죽기 전에.”
내 말에 고개를 든 설소은과 옆에 있던 진용훈이 끄덕였다.
다행히 눈이 내리진 않았지만, 이대로 있으면 말 그대로 얼어 죽을 거다.
이런 눈밭에서 불을 피우는 것도 무리니, 흙이 있는 땅으로 이동해야 한다.
“게이트라면 몬스터도 나오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진용훈이 이를 딱딱 부딪치며 연신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설원 지형은 활동 자체도 어렵고 보호색을 띤 몬스터들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사막 지형만큼 끔찍한 환경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다른 쪽이 더 걱정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벤토리에 잡다한 물건들을 넣어 두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생존하는 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온 다른 수험생들은 상당히 위험하다.
심지어 나와 설소은이 같은 곳에 있는 것도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프로 헌터가 같이 있다면 괜찮을 텐데, 하필이면 우리가 같은 장소에서 깨어났다.
치익-!
화력이 강한 토치를 꺼내서 장작에 불을 붙였지만, 젖은 탓인지 제대로 불이 붙지 않았다.
“평소에도 토치를 가지고 다니시는 거예요?”
“아… 하하,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몰래 인벤토리에서 꺼냈기에 진용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한참을 토치로 지지고 나서야 나뭇가지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으윽……. 이제야 살 것 같네.”
모닥불에 몸을 녹이는 진용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요. 살아서 나갈 수는 있을까요.”
“그나마 저희랑 같이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설소은의 말에 진용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으로 생각하라뇨. 하아…….”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일단 다른 사람들이랑 합류하는 게 가장 최우선인 것 같네요.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시고, 저 혼자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진용훈이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되면 체온이 떨어져서 다들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그 전에 서둘러서 찾아야 해요.”
“연기를 보고 이쪽으로 올지도 모르니까, 저희는 여기 있을게요.”
설소은은 생각보다 침착해 보였다.
처음 깨어났을 땐 그녀를 보고 완전히 멘탈이 나간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두 사람과 조금 떨어지자마자 나는 인벤토리에서 빙결의 갑옷을 꺼냈다.
이걸로 내가 이동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어졌다.
설소은이 했던 말처럼 다른 사람들이 연기를 보고 우리 쪽으로 와 주면 고맙겠지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발렌, 부탁할게.”
“맡겨 주라고.”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발렌의 후각뿐이었다.
그 어떤 정찰 헌터보다 믿음직스러운 능력이다.
“갑자기 궁금한 건데, 오크는 원래 그렇게 후각이 뛰어난 거야?”
“으음, 아마 아닐 거야. 다른 오크들을 봤을 때 내 후각이 예민한 것 같아.”
발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씨 때문에 매일 써서 더 발달한 느낌이라고.”
“그건 미안한걸.”
오히려 잘된 건가.
발렌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눈밭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네 명인가.
다들 정신을 못 차려서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체온이 너무 떨어졌어.”
다들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다행히 아직은 숨이 붙어 있었지만, 위험한 상황이다.
“으윽…….”
몸을 부르르 떨며 한 남자가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여긴……?”
“정신이 드세요?! 움직일 수 있겠어요?”
그는 하얀 입김을 토해 내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있는 사람 업고 움직일 수 있겠어요?”
“해 볼게요.”
다행히 건장한 체격의 그는 다른 여자 하나를 등에 업었다.
벌벌 떨면서도 나를 잘 따라오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양쪽 어깨에 한 사람씩 둘을 짊어진 나는, 서둘러 설소은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 사람이 쓰러져 있던 곳이 멀지 않은 곳이라 운이 좋았다.
“고마워요. 여기서 몸 좀 녹이고 계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모닥불 앞에 앉아 있던 진용훈이 벌떡 일어나서 내가 짊어진 사람을 받아 갔다.
“어? 원래 갑옷 있으셨나요?”
진용훈은 내가 입고 있는 빙결의 갑옷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아…….”
쓸데없이 예리한 진용훈의 지적에 시선을 멀리 옮기며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시험장에 갑옷을 가져왔는데 같이 빨려 들어온 모양이에요. 아까 저기에서 주웠어요.”
“아, 그렇군요!”
그는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았는지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저는 그럼 다시 둘러보고 올게요.”
“저도 같이 가요. 몬스터를 만나면 위험해요.”
자리에서 일어난 설소은이 나를 따라나섰다.
“네?! 하지만… 이분들만 두고 가는 건 너무 위험한데요.”
“…….”
설소은은 고개를 돌려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진용훈과 눈이 마주쳤다.
“…그럼 최현 씨가 여기 계세요. 제가 찾아볼게요.”
“절대 설소은 씨를 무시하는 말은 아니지만, 방금처럼 여러 사람을 발견하면 혼자서 두 명, 혹은, 그보다 많은 숫자를 짊어지고 오셔야 할지도 몰라요. 하실 수 있나요?”
현실적인 문제를 꺼내자 설소은은 표정을 구겼다.
그녀가 근력이 약한 건 아니다.
아까 테스트에서 큰 체격의 남자들을 넘기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기절한 사람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일단 허유재 씨를 찾을 때까진 설소은 씨가 다른 분들을 잘 지켜 주세요. 불을 피워서 다른 몬스터가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어요.”
그녀도 아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을 거다.
다만 헌터이기에 가만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는 게 답답하고 분한 거겠지.
설소은의 그런 표정을 봐서인지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형씨…….”
“어? 다른 사람 찾았어?”
발렌은 잠시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피 냄새야.”
“……!”
그대로 걸음을 멈춘 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 그 피 냄새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떨리는 가슴을 움켜쥐며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발렌이 안내해 주는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길수록 심장 소리가 커졌다.
화도를 꺼내 손에 꽉 움켜쥐고 언제든 싸울 준비를 했다.
“아이스 잭인가?”
온몸이 회색빛 털로 덮여 있는 놈은, 그린 라벨로 그다지 강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손톱을 주 무기로 쓴다.
보통은 무리를 지어 다니진 않지만, 지금 내 앞엔 5마리의 아이스 잭이 보였다.
한곳에 모여서 꼼지락거리는 놈들의 뒷모습은 내 머릿속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
내가 다가오는 걸 느낀 놈들은 몸을 휙 돌렸고, 앞이 온통 붉은 피로 덮여 있었다.
젠장, 한 사람이 아니야.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최소 3명은 당했다.
아이스 잭은 나를 발견했으면서도 쉽게 공격해 오지 않았다.
공격해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이미 포식을 한 놈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며 나를 공격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그냥 지나치진 않는다.
그린 라벨인 아이스 잭을 상대로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다.
타다닷!
눈밭을 빠르게 달려서 놈들이 있는 곳까지 거리를 좁혔고, 내가 돌진해 오자 아이스 잭들도 이빨을 드러내며 전투 준비를 했다.
입 주변에 피를 잔뜩 묻힌 놈들을 보니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발렌처럼 후각이 예민하지 않아도 주변이 온통 피 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새하얀 눈밭에 붉은 점을 뚝뚝 떨어뜨리는 아이스 잭들이 나를 덮쳐 왔다.
쌔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