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98화 (98/176)

98화 : 헌터 선발 시험 (1)

“C급이요? 정말 C급이세요?”

내 앞에 있는 ‘허유재’라는 남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A급 이상의 헌터가 시험관으로 참여하는 게 관행이니까 놀라는 것도 당연하지.

헌터 협회에서 파견되는 시험관은 A급 이상이지만, 사설 길드에서 참여하는 시험관은 기준이 없다.

실적에 따라 협회에서 허가만 나오면 누구라도 시험관이 될 수 있다.

협회 내부에서 나를 알 사람은 알고 있으니 허가가 나도 허가가 나온 거겠지.

“하하, 그렇네요.”

“…되게 열심히 일하시나 보네요.”

허유재의 말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죠.”

열심히 일한다는 건 C급 헌터임에도 실적이 많아 시험관 자격을 얻었다는 걸 비꼬는 말이다.

어쨌든 여기에 온 건 ‘레이브’ 길드의 이름을 달고 온 거니 귀찮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신아람이 나를 믿고 맡겨 준 일이니까.

“자, 그럼 지금부터 시험관 연수를 시작하겠습니다.”

“어……?”

시험관 강사로 강단에 오른 건 낯익은 얼굴이었다.

“유지연 대리님?”

“……!”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흠칫 놀란 그녀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내 나를 발견하곤 빙긋 미소를 지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는 유지연 ‘과장’입니다.”

그녀는 내 말을 의식한 듯 유독 ‘과장’이라는 말에 힘을 실었다.

“시험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은 이상, 연수에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후 유지연은 유창한 언변으로 시험관들에게 강의를 시작했다.

시험관은 총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시험을 진행하게 된다.

다른 팀과 합격 기준을 맞춰야 하기에 미리 연수를 통해 그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다.

강의 내용은 그렇게 어려운 건 없었다.

예전에 나도 헌터 선발 시험공부를 했기에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다.

원래는 되고 싶으면 누구나 헌터가 될 수 있었다.

선발 시험을 통해서 처음부터 높은 등급을 받거나, 상위 길드로 스카우트 당할 수 있다는 특권이 있을 뿐이었다.

던전은 각 층에 맞는 수준의 게이트만 발생했고, 자신의 수준을 파악한다면 뜬금없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다.

하지만 아포칼립스가 생긴 이후로 헛된 죽음을 막기 위해 선발 시험이 강화되었다.

이젠 정말 실력이 없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전장이니까.

강의는 짧게 끝났고, 알아보기 힘든 내 필기 노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중에 합격 기준 점수표도 따로 준다고 하니 괜찮겠지.

“설마 최현 씨가 여기에 오실 줄은 몰랐어요.”

“엄청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처음 봤을 땐 길지 않았던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까지 한참 내려와 있었다.

“회사원이 잘 지내는 게 있나요. 똑같이 흘러가는 거죠.”

“그건 조금 슬픈데…….”

“최현 씨 소식은 들었어요. 레이브 길드에 들어가셨다고…….”

예전에 유지연의 협회 스폰 제의를 거절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녀의 목소리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오늘은 바빠서 힘들겠지만, 다음에 만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

“그러죠.”

유지연은 고개를 살짝 숙인 뒤 걸음을 돌려 어딘가로 바삐 향했다.

***

“하아… 왜 하필…….”

허유재가 나를 보고 노골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구겼다.

시험관은 한 팀당 3명이 배정된다.

우리 팀은 나와 ‘허유재’, 그리고 ‘설소은’, 셋이다.

눈이 옆으로 찢어져 있고, 항상 웃고 있는 듯한 입꼬리를 가진 허유재는 썩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아니, 인상을 떠나서 하는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설소은이라는 여자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조용해서 어떤 사람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웬만한 건 제가 다 할 테니까 나서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허유재는 내게 그렇게 말하며 연신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볼수록 짜증 나는 놈이네.

A급 헌터인 허유재는 헌터 협회에서 파견된 시험관이었고, 설소은은 ‘백운’ 길드에서 나왔다고 한다.

기본적인 이론 시험, 적성 검사를 마친 수험생들은 시험장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시험관과의 대련으로 마지막 시험을 받게 된다.

“134번 수험생, 진용훈 씨?”

허유재가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시선을 옮기자 잔뜩 굳어 있는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팀에게 배정된 수험생은 30명 정도.

다른 곳에서도 시험이 진행되고, 며칠 동안 나눠서 진행되는 시험이라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당장 테스트를 받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수험생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참관하게 된다.

“누구에게 테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

아포칼립스가 발생하고 헌터 선발 시험의 틀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엔 ‘정찰팀’과 ‘공략팀’으로 나누어서 헌터 선발이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오직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전투 능력을 테스트받는다.

나중에 다시 게이트 공략에 필요한 정찰 활동을 하는 헌터를 뽑더라도 지금 필요한 건 전투가 가능한 헌터니까.

“저는… 허유재 시험관님께 테스트받겠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세 명이 시험관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허유재는 멀리서 전투가 가능한 활을 쓰고, 나는 근접 전투, 그리고 설소은은 마력계 헌터라고 한다.

수험생은 가장 자신 있는 상대를 골라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 주는 것이다.

“좋습니다.”

타악.

들고 있던 파일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허유재가 앞으로 나섰다.

시험장은 넓은 강당 같은 느낌이라, 주변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대련할 수 있었다.

듬직한 덩치의 진용훈이 겉옷을 벗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시험장에 준비되어 있는 목도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이제 막 헌터 시험을 보는 헌터 지망생이 A급 헌터를 이길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점수를 받는 것이기에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시험이다.

“그럼 제가 시작 신호를 맡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나는 두 사람 가운데에 서서 손을 들어 올렸다.

“대련 시작!”

신호를 외치는 것과 동시에 손을 아래로 내리쳤고, 두 사람이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시험을 떠나 이런 대련은 제법 흥미로웠다.

다시 설소은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둘의 대련을 감상했다.

트드듯!

허유재는 촉이 없는 화살을 활시위로 당겼다.

그걸 보자마자 진용훈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당연한 반응이다.

원거리 무기를 들고 있는 허유재를 상대하려면 그가 무방비한 상태일 때 거리를 좁히는 게 기본이다.

“……!”

“뭐……?!”

허유재는 달려오는 진용훈을 보고 활시위를 놓고 오히려 진용훈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보통은 계속 근접전을 피하면서 일방적인 공격을 하는 게 원거리 무기의 특권이다.

그런데 허유재는 그걸 포기한 거다.

부웅-!

허유재가 사거리로 들어오자마자 진용훈은 목도를 휘둘렀고, 허유재는 가볍게 피해 냈다.

그리고 그의 활대가 진용훈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파악!

“…져… 졌습니다.”

화살통에서 촉이 없는 화살로 누워 있는 진용훈 옆을 찍었고, 진용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가차 없는 허유재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허유재는 손을 건네 누워 있는 진용훈을 일으켜 줬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검을 제대로 휘둘러 보시지도 않은 것 같군요.”

허유재는 들고 있는 파일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당황한 진용훈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허유재를 보며 말했다.

“제가 실력을 보여 줄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잖아요! 겨우 이 정도만 보고 채점이 가능한 겁니까?”

그의 말에 허유재의 눈이 번뜩이며 쏘아봤다.

“기회요? 지금 기회라고 했습니까?”

“…….”

살기 등등한 허유재의 표정에 오히려 진용훈이 입을 다물었다.

“직접 몬스터와 싸우게 되면 몬스터에게 실력을 보여 줄 기회를 달라고 할 겁니까?”

“…….”

“놈들에게 죽일 기회를 달라, 이번 건 실수였으니까 다시 하자고 말할 겁니까?”

진용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나 본데, 저는 진용훈 씨를 그냥 떨어뜨리는 게 아닙니다. 조금 전 당신의 목숨을 살린 거라고요.”

허유재는 검지로 진용훈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래도 원하신다면 합격 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한 달 안에 죽는다는 것에 모든 걸 걸도록 하죠.”

진용훈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시험장을 나섰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수험생들도 허유재의 말에 단숨에 분위기가 바뀐 게 보였다.

재수 없는 인간이긴 하지만, 허유재의 말엔 조금도 틀린 게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시험관들은 단순히 합격, 불합격으로 나누는 게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판단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가 될지도 모르니까.

“다음! 135번 수험생!”

테스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뒤에서 허유재의 말을 들은 나와 설소은은 적당히 할 수 없었고, 우리는 가차 없이 수험생들을 상대했다.

첫 번째 테스트 이후로 허유재보단 나와 설소은이 많은 지목을 받게 되었다.

내가 C급 헌터라는 걸 아는 눈치였고, 설소은은 체격이 작고 약해 보이는 인상이 원인인 듯했다.

물론 우리가 지망생들에게 지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설소은은 마력계 헌터인데 능력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오직 격투술로만 수험생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C급치곤 제법이네요. 시험관으로 통과된 이유가 있었군요.”

허유재의 말에 나는 머쓱하게 웃을 뿐이었다.

수험생을 상대로 살살 하는 게 더 어려웠다.

혹여나 본심이 나와 버리면 자칫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10명 남았네요.”

생각보다 테스트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명이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겨우 2명이 합격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저는 최현 씨에게 테스트받겠습니다.”

인상적일 정도로 덩치가 큰 ‘한호인’은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족히 2m는 되어 보이는 키에 튼튼한 근육, 그리고 목도를 들고 있는 자세만 봐도 그가 어느 정도 검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한호인은 분위기에 걸맞게 시작 신호와 동시에 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타앙!

목도 두 자루가 맞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토해 냈다.

탕! 타앙!

확실히 그는 앞에서 봤던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 좋은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다.

물론 우리가 평가하는 건 합격과 불합격이 전부가 아니다.

높은 점수를 얻으면 E급이 아닌, D급에서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내겐 그를 한계까지 몰아붙일 의무가 있다.

어디, 조금만 보여 줄까.

양손으로 쥐고 있던 목도를 한 손으로 옮기며 자세를 풀었다.

내 도발을 눈치챈 한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흐아압!”

그는 예상대로 있는 힘껏 목도를 쳐들며 달려왔고, 한호인이 아래로 내려치기 전에 먼저 내 검 끝이 그의 검을 튕겨 냈다.

방향만 다를 뿐 월하백화식의 ‘제2수식, 연화’다.

“……!”

몸의 균형을 잃은 한호인을 넘어뜨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파악!

옆으로 쓰러진 한호인의 얼굴에 목도를 겨누었고, 그는 쥐고 있던 목도를 놓았다.

“져… 졌습니다.”

“바… 방금 그거 뭐야!”

“순간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

젠장, 너무 과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허유재가 다가왔다.

“최현 씨… 방금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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