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 아르티아 토벌전 (3)
예전에 라이프 룰렛을 사용할 땐 스킬 설명에 있는 ‘능력치에 비례하여 높은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난 6개월간 수련을 하며 스킬을 써 본 결과, 라이프 룰렛은 민첩 수치가 높으면 라이프 개수 중 높은 숫자가 걸릴 확률이 오른다.
트드듯… 파앙!
[1851!]
손을 떠난 화살은 정확히 블랙 퀸의 어깨에 명중했다.
“…죽이진 마라.”
블랙 퀸 옆에 있던 아르티아가 말했고, 고개를 끄덕인 블랙 퀸은 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이 게이트는 우리 집 앞마당보다 눈에 훤했기에 숨어서 놈들을 공격하기엔 완벽한 장소였다.
아무리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식으로 기습을 하는 건 피하기 어렵겠지.
블랙 퀸의 속도는 여전히 나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카앙!
처음 공격은 운 좋게 막을 수 있었지만, 바로 블랙 퀸의 손이 내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나를 농간한 걸 영원히 후회하게 해 주마.”
뒤따라온 아르티아를 보고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뭐가 재밌지? 고문을 당할 생각을 하니 미쳐 버린 건가.”
“너무 내 생각대로 흘러가서 불안할 지경이거든. 커헉!”
목을 쥐고 있는 블랙 퀸의 손에 피를 토해 내자, 아르티아가 내게 다가왔다.
“독…? 설마, 스스로에게 독을 넣고 온 건가. 다른 의미로 미쳐 버렸군.”
“하아… 하아… 말했잖아. 내 능력은 죽으면 부활하는 능력이라고. 몇 번이고 죽으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네놈을 찾아와 주마.”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르티아의 눈에 아주 작은 공포감이 서린 게 보였다.
여기 오기 전에 블랙 스네이크를 잡고 얻었던 맹독을 내 몸에 집어넣었다.
독은 순식간에 내 몸을 집어삼켰고, 몸이 불타는 듯한 감각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야말로 미친 짓.
당연히 놈들은 내 맹독을 풀 수 있을 리 없었고 고문을 당하기 전에 게임 오버 될 수 있다.
마음 같아선 놈들에게 독을 쓰고 싶지만, 깎여 있는 체력이 자연적으로 치유되지 않는 걸 보면 아르티아와 블랙 퀸은 생명체 몬스터가 아니다.
독을 쓸 수 없겠지.
“그럼, 금방 또 만나자고.”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조건이 완성되었다.
아르티아는 내가 숨겨 둔 오크를 찾을 때까지 이 게이트에서 나갈 수 없고, 나를 고통스럽게 고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르티아가 스스로 체력을 회복하는 속도는 라이프 룰렛으로 깎는 것보다 훨씬 느리다.
지금이라면 놈들을 이곳에서 완벽하게 죽일 수 있다.
“…형씨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지금 저놈들을 여기서 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라.”
아르티아의 체력은 절반 정도, 그리고 블랙 퀸은 25%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내 라이프도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둘 다 체력이 모두 차 있는 상태면 내가 먼저 라이프를 다 소모할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놈들과 싸우는 것뿐이야. 가장 잘하는 거기도 하고.”
독이 묻은 에렌 셀로 다시 내 옆구리를 살짝 긁었다.
“나 하나를 상대로 놈들이 덤빈다면 놈들이 이기겠지만, 2천 명이 넘는 나와 싸운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형씨… 머리 다친 거 아니지?”
차라리 머리를 다쳐서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고, 라이프 룰렛의 쿨타임이 돌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르티아와 블랙 퀸은 주변에 있는 데스나이트를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처음 내가 갇혔던 게이트에선 데스나이트들이 나만 졸졸 따라다녔지만, 그 이후에 차윤지 일행과 들어갔던 게이트와 여기선 일반 몬스터처럼 평범하게 행동했다.
어쨌든 여기서 나가기 위해선 몬스터를 모두 쓰러뜨려야 했으니까.
“어디 보자.”
[9611/39350]
블랙 퀸의 체력은 거의 4만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수치였지만, 아까 우리 파티와의 전투로 상당히 줄어 있는 상태였다.
아까 라이프 룰렛을 명중시켜서 1만 아래로 떨어졌다.
시선을 옮겨 아르티아의 체력바를 뚫어지라 노려봤다.
[27156/56000]
이쪽이 더 괴물이군.
새삼 차윤지가 혼자서 3만 가까운 체력을 깎았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쨌든 일단 블랙 퀸 먼저 쓰러뜨리면 아르티아를 공격하는 것도 수월해질 거다.
트드듯!
라이프 룰렛을 발동 시켜 활시위를 당겼고, 블랙 퀸이 데스나이트를 죽이는 순간, 시위를 놓았다.
파앙-!
[2067!]
라이프가 2300개 정도인데 2067이라는 수치는 아주 높은 수치였다.
이제 블랙 퀸의 남은 체력은 7544.
이대로만 하면 블랙 10번 정도로 블랙 퀸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만나자고 했지?”
털썩.
아주 적은 양의 독만 몸에 들어왔기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역시 블랙 스네이크의 맹독은 보통이 아니었다.
다리가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은 내게 아르티아가 다가왔다.
“크하하하! 네놈 같은 인간은 처음 보는군. 아니, 인간이라기보단 몬스터라고 하는 게 어울리겠어.”
“칭찬이라고 생각할게.”
이내 아까처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몬스터를 모두 죽이면 나갈 수 있다. 네놈이 하는 짓이 얼마나 헛된 건지 보여 주마.”
“…기대하고 있을게.”
그 말을 끝으로 체력이 0이 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
그 후로 놈들은 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지만, 끝없이 뛰어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이곳의 지형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집요하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라이프 룰렛을 꽂아 넣었다.
블랙 퀸은 휴식을 취할 땐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게이트 끝에 등을 붙이고 있었다.
이미 다른 몬스터는 모두 처리한 상태지만, 내가 숨겨둔 오크가 있는 한 보스 몬스터가 나올 일은 없었다.
“블랙 퀸 체력은 이제 2천밖에 안 남았는데, 성가시네.”
블랙 퀸이 저러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르티아를 노려야만 했다.
몬스터를 찾기 위해선 게이트 안을 뒤져야만 했고, 내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벌써 이틀째 쉬지도 않고 이러고 있다고. 형씨, 괜찮아?”
발렌의 말에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죽을 때마다 기력이 회복되어서 크게 피로를 느끼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과거에 게이트에 갇혔을 땐 그래도 저녁이 되면 데스나이트가 움직이지 않아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으니까.
라이프 룰렛이 항상 명중하진 않았고, 오히려 놈들이 경계하기 시작한 이후론 맞힐 때보다 빗나갈 때가 더 많았다.
덕분에 나 역시 라이프를 꽤 소모해야만 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위해서 지금까지 라이프를 모았던 거니까.
“어쩔 수 없지. 놈들이 숨겨 놓은 오크를 찾으면 끝장이야. 그 전에 어떻게든 놈들을 처리해야 해.”
높은 곳에서 풀숲에 몸을 숨기고 아르티아가 보이길 기다렸다.
꾸준히 놈의 체력을 깎아 놓은 덕분에 지금 아르티아의 체력은 15000 정도.
이곳에 들어와서 아르티아의 행동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블랙 퀸이 아끼는 부하라곤 하지만, 자신도 위험한 상황에서 블랙 퀸을 뒤에 두고 혼자 움직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어쨌든 블랙 퀸이 떨어져 있는 지금이라면 라이프 룰렛 외에도 직접 아르티아와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스킬 쿨타임도 돌았으니, 최대한 체력을 깎는 게 좋겠지.
아르티아의 회복 능력을 쓰면 1시간에 대략 500 정도 회복하는 거로 보인다.
라이프 룰렛이 꽝이 나오면 간혹 회복 속도가 더 빠르기도 했다.
덕분에 이틀 내내 체력을 이만큼밖에 못 깎았지.
“괜찮겠어?”
발렌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티아는 버프를 다 사용하면 생각보다 상대할 만했어.”
아르티아의 순간 이동 능력은 까다로운 게 사실이지만, 전투 능력만 놓고 보면 블랙 퀸이 위였다.
블랙 퀸이 없는 지금이라면 아르티아에게 제법 대미지를 줄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차윤지가 아르티아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이동에 기습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라이프 룰렛을 사용하자 활과 화살이 손에 생겨났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주변을 경계하는 아르티아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파앙-!
[1451!]
화살은 정확히 아르티아의 옆구리에 명중했다.
스릉!
아르티아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쓰고 아르티아에게 달려들었다.
이길 순 없을지 몰라도 순간 이동만 조심하면 충분히 아르티아의 체력을 깎을 수 있다.
아무리 빨리 사용해도 순간 이동은 대략 1분에 1번 정도밖에 쓰지 못했다.
거리 역시 그리 멀리 움직일 수 없었다.
“가소롭군! 내게 검으로 덤비는 거냐?!”
잔뜩 화가 난 목소리의 아르티아가 등에 메고 있던 그레이트 소드를 뽑아 들었다.
“더럽고 비열하게 화살만 쏘더니, 이제 용기가 생겼나?!”
쩌엉!
에렌 셀과 놈의 검이 맞닿는 순간, 웅장한 소리가 주변 숲에 퍼졌다.
“더럽든 비열하든 이기면 장땡이야!”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아르티아의 힘에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
블랙 퀸도 속도는 나를 훨씬 웃돌았지만, 힘으로 밀리진 않았다.
그런데 아르티아가 오직 근력으로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썼는데도 나보다 힘이 세다고?!
“동감이다. 결국, 남는 건 승자뿐이니까.”
정면에 있던 아르티아가 옆으로 순간 이동을 했고, 앞으로 쏠려 있던 힘 때문에 자세가 무너졌다.
아르티아는 옆에서 바로 내게 검을 내리찍었다.
자세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연화는 쓸 수 있어!
지금 타이밍으론 아르티아의 공격을 피할 수 없으니 내게 남은 선택지는 막는 것뿐이었다.
“오만하군, 인간.”
부웅-
아르티아의 검을 막기 위해 연화를 써서 휘두르기 전에 받아치려고 했지만, 이미 그곳에 아르티아의 검은 없었다.
어느새 다시 옆으로 움직인 아르티아가 내 목을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커헉!”
발로 내 손목을 밟아 에렌 셀을 휘두를 수 없게 만들었다.
방금 그 속도는… 뭐지?!
분명 전에 차윤지와 함께 있을 땐 이 정도가 아니었다.
일부러 힘을 숨겼던 건가?
“이제야 네놈의 능력에 대해 알겠군. 네놈은 죽으면 짧은 시간 후에 무작위 장소에서 부활하는 능력이지?”
“……!”
“크하하! 분명 재밌는 능력이지만, 네놈이 부활하자마자 죽인다면 그 이상한 화살도 쓸 수 없을 테지. 이번에 네놈을 죽이고 바로 찾으러 가 주마.”
파악!
아르티아의 그레이트 소드가 내 가슴 가운데에 꽂혔다.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