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납치당한 헌터 (3)
[System - 퀘스트 - 아르티아를 토벌하십시오. 보상 - Hidden Skill]
퀘스트?!
퀘스트의 발생 조건을 당최 모르겠다.
지금 입고 있는 ‘검은 새의 깃털’을 얻은 퀘스트는 던전 안에 있는 룬 문자를 발견했을 때 발생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아르티아의 토벌이라… 가능할까.
물론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퀘스트가 있든 없든 내가 발렌을 구하러 가는 건 변하지 않을 테니까.
파악!
거칠게 텐트 입구를 밀치고 들어온 이신예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한걸음에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팔을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고, 그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막는 거야?”
“본능적으로 제 몸을 지키기 위한 행위입니다. 이신예 씨, 누가 봐도 화나신 거 같거든요.”
“때리진 않거든?! 그보다 너 정말 특수 임무팀에 합류한다고 한 거야?!”
소리를 지르는 이신예를 보고 손가락을 귀에 꽂아 넣었다.
“발렌이 아직 던전 안에 남아 있다고요. 어떻게든 데리러 가야 해요.”
이후 들려올 잔소리에 대비해서 귀를 막은 손을 떼지 않았지만, 이신예는 손으로 이마를 감쌀 뿐, 더 이상 화내지 않았다.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잘 생각해 봐. 남을 위해 죽는 게 정말 옳은 일인지.”
축 늘어진 어깨에 문득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죽어 주는 게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일인지 잘 생각해 봐.’.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괜찮아요. 저는 죽어도 안 죽을 테니까.”
“…….”
일부러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밝게 웃으며 말했고, 내 표정을 본 이신예는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약속해 줘. 꼭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네? 갑자기…….”
장난스럽게 넘기려던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이신예의 눈에 나까지 표정이 굳어졌다.
“약속할게요. 반드시.”
“…좋아.”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내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파악!
“크윽!”
“자, 그럼 나가서 본격적으로 일해 볼까.”
“이신예 씨가요?!”
“이래 봬도 S급 헌터거든?!”
이신예를 따라서 텐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지독한 피 냄새가 내 코를 뚫고 들어왔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인 건 바리케이드 바깥쪽으로 잔뜩 쌓여 있는 몬스터의 시체였다.
“이… 이게 대체……!”
“말했잖아. 우린 특수 임무팀. 블랙 퀸을 잡기 위해선 베이스캠프 근처에 있을 수 없어.”
“그렇다고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길목 한가운데에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당황한 내 목소리에도 이신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린 S급이야.”
그건 오만한 말이 아니었다.
책임감.
S급 헌터가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다른 헌터들의 부담이 커진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블랙 퀸을 가만히 기다리며 쉬고 있을 여유는 없다는 건가.
텐트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들어왔던 이유가 있구만.
“여기서 할 수 있는 한 몬스터를 최대한 처리하며 블랙 퀸을 끌어들이는 게 우리의 일이야.”
“오! 일어났냐?! 안 본 사이에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피를 흠뻑 뒤집어쓴 진천우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진천우 씨?! 괜찮은 거 맞아요?!”
“크하하하! 내가 누군데! 엄청 찝찝하긴 한데 내 피는 아니니까 괜찮아.”
“그보다 정말 이렇게 싸워도 되는 건가요?”
SS급이 포함된 S급의 전력은 분명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몬스터의 시체가 이만큼이나 쌓여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결국, 이것도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너 때문이거든?! 우리도 갑자기 네가 여기서 튀어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그럼 저 때문에 여기서 버티고 있었던 거예요?!”
진천우는 뭔가 재수 없는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하하하! 괜찮아. 이럴 땐 선배에게 의지하는 거라고. 넌 아직 풋.내.기니까. 하하하!”
“방금 최고로 재수 없었어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재수 없었어요.”
“두 번이나 말하지 마! 아무튼, 네가 깨어났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야.”
“움직인다는 건 던전 내부로 들어가는 건가요?!”
진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너무 위험해요! 미친 짓이라고요!”
내가 10층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건 초월 능력으로 살아날 수 있어서다.
어떻게든 10층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다시 무사히 내려올 가능성은 적다.
“우리가 가는 건 1층이야.”
“1층이라면… 설마 던전을 다시 수복하려고요?!”
진천우는 씨익 웃으며 들고 있던 창을 어깨에 걸쳤다.
“언제까지 이렇게 몬스터들이 밖에서 날뛰게 할 순 없잖아. 1층만 수복해도 몬스터를 훨씬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그 말엔 동감이다.
시간이 갈수록 헌터가 버티기 힘들어진다.
아르티아가 했던 말처럼 몬스터는 계속 게이트에서 튀어나오지만, 헌터는 수가 줄어가니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언젠가 몬스터가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블랙 퀸이라는 존재 때문에 강제로 모이게 되었다곤 하지만, 이만한 전력이 모인 지금이야말로 1층을 수복할 기회라는 것이다.
“뭐, 대충 근처에 있는 놈들은 정리한 것 같은데?”
“그럼 다 모여 주실래요?”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루가 사람들에게 소리치자, 다른 헌터들도 모두 모였다.
“대부분 아는 얼굴이네요.”
“전에 봤잖아. 일단 우리가 블랙 퀸을 추적하고 있었으니, 우리는 그대로 특수 임무팀에 배정된 거지.”
이신예가 입꼬리를 올리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는 사람들이라 반가운 거야? 아니면 윤지가 있어서 기쁜 건가?”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나 놀리는 게 저렇게 재밌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조심스럽게 옆에 있는 차윤지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랑 너무나 똑같아서 전혀 모르겠어!
“저희의 목표는 2가지. 첫 번째는 블랙 퀸과 아르티아 토벌, 그리고 두 번째는 던전 1층 수복. 만약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저희는 블랙 퀸과 아르티아 토벌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하루의 표정은 전과 다르게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는 3위 길드 신월의 마스터였으며, 모두에게 인정받는 지휘관이었다.
“블랙 퀸과 아르티아가 멀쩡히 돌아다니면 던전 수복은 불가능해요. 두 가지의 목표를 모두 달성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토벌만 성공한다고 해도 저희가 모인 의미가 있으니까요.”
모두가 하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누구 하나 하루가 어리다고 얕보거나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이 정도 되는 사람들이기에 S급 헌터로 있을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 두 가지의 목표를 모두 포기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있어요. 그건 자신의 목숨입니다.”
하루는 모두와 한 번씩 눈을 맞추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특수 임무팀에 내리는 첫 번째 오더는 절대 죽지 말 것!”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지금부터 2개의 팀으로 나눠서 움직이겠습니다. 먼저 전위에서 정찰 역할을 해 주며 약한 몬스터를 처리해 줄 팀, 그리고 후위에서 따라오며 양측에서 오는 몬스터와 정면에 있는 상위 몬스터의 처리를 해 줄 팀으로 나눌 겁니다.”
전위팀은 발이 빠르고 평소에도 정찰 활동을 했던 사람들 위주로 짜였다.
민혁이, 신아람, 유지한 아저씨, 그리고 강유화라는 마력계 헌터까지.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금발을 하나로 묶은 그녀는 차윤지와 같은 20대 후반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후위팀은 차윤지, 이신예, 진천우, 그리고 내가 맡기로 했다.
하루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오더를 내릴 수 있도록 양 팀의 중간에서 이동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등을 맡기고 돌아보지 않아도 돼요. 저희는 던전까지 그대로 나아갑니다.”
“오랜만에 날뛸 수 있겠구만.”
“하아, 이 녀석이랑 같이 다녀야 한다니, 벌써 피곤한걸.”
“담배 냄새 역겨우니까 옆으로 꺼져!”
진천우와 유지한 아저씨가 투닥거리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동갑이었고, 자주 저런 모습을 보인다고 들었다.
생각해 보니, 사이 안 좋은 사람이 더 있잖아.
“다치고 오지 마. 널 치료하는 데 쓸 체력은 없거든.”
“누가 너한테 치료받는대?! 밴드 하나 붙이는 게 더 낫지.”
눈에서 불꽃이 튀는 이신예와 신아람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괜찮은 거냐, 이 팀.
***
그런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치 초식 동물을 사냥하는 포식자라도 된 것처럼.
“앞에 스켈레톤 무리 발견!”
“궁사 넷, 전사 셋, 주술사 하나.”
“궁사는 우리가 처리할게.”
“하하! 전사는 다 내 거니까 건들지 마!”
이런 상황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어떤 전투가 벌어져도 다른 팀원이 커버해 줬고, 내가 필요로 하는 타이밍에 정확히 다른 팀원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우리는 몬스터를 ‘토벌’하고 있었다.
“좌측에 샌드 리자드 다수!”
“따라와!”
“네!”
튕기듯 바닥을 박차고 건물 위로 올라가는 차윤지의 말에, 바로 그녀 뒤로 따라붙었다.
샌드 리자드는 사막에 서식하는 몬스터로 제법 덩치가 크고 무식하게 힘이 센 놈들이다.
단단한 비늘로 몸이 덮여 있고, 도마뱀이지만 이족 보행을 하는 특이한 놈들이었다.
“정면 먼저!”
차윤지의 말에 있는 힘껏 들고 있던 에렌 셀을 던졌다.
부웅- 파악!
“크에엑!”
가장 앞에 있던 샌드 리자드의 배에 에렌 셀이 꽂혔고, 놈이 쓰러지기 전에 차윤지가 에렌 셀을 발판 삼아 올라섰다.
쌔엥-!
단숨에 그놈의 목을 베어 버린 차윤지는 그대로 한 번 더 뛰어올랐다.
천재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그녀의 전투 센스는 굉장했다.
전투가 어떻게 이어질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미리 다 알고 행동하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에렌 셀을 뽑아서 다시 차윤지의 뒤로 따라붙었다.
“뒤에 있는 두 마리는 네가 처리해.”
“알겠습니다!”
화도가 아닌, 에렌 셀로는 월하화백식을 다루기 쉽지 않지만, 지금은 그런 투정을 부리고 있을 순 없지.
제5공식.
쌔-엥!
단숨에 검을 뿜어내며 앞에 있던 샌드 리자드를 반 토막 냈다.
가장 빠른 발도기인 화왕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뒤에 있는 샌드 리자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에엑!”
잔뜩 화가 난 샌드 리자드가 묵직한 꼬리를 내게 휘둘렀다.
가볍게 위로 뛰어올라서 놈의 머리에 검을 쑤셔 넣었다.
목란을 쓸 때마다 머릿속에 스승님이 쓰던 검술이 그려진다.
내가 쓰는 목란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그의 검술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뭘 멍하니 있는 거야, 얼른 가자.”
“아, 네.”
앞에는 4마리나 있었던 거 같은데 나보다 먼저 처리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난 아직 멀었구만.
촤아악!
다른 팀원들을 따라 달려가던 차윤지가 급하게 멈춰 섰다.
“……!”
“무슨 일이에요?!”
뒤에서 따라오던 나는 그녀의 어깨너머로 앞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엔 아르티아가 발렌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제 발로 돌아올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혀… 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