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 블랙 퀸 (3)
“블랙 퀸…….”
“블랙 퀸? 그게 그 몬스터의 이름인가요?”
“네. 그리고 절 여기로 납치한 몬스터이기도 하죠.”
납치라는 말에 채하나는 흠칫 놀라며 이상하게 나를 쳐다봤다.
“뭐, 그렇게 보셔도 사실인걸요.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그 몬스터는 그럼 이 주변에 계속 돌아다니나요?”
“계속 동굴 안에서 불을 피운 덕분에 냄새가 밴 덕분인지 저는 들키진 않았어요. 얼마 전부터 나타난 그 몬스터를 본 후로 웬만하면 안 나가서 항상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블랙 퀸을 피해서 여기까지 도망친 것인데 하필 여기도 그 녀석의 활동 범위라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블랙 퀸이 다른 몬스터를 죽이는 걸 봤어요. 저는 공략층에도 지원을 나가는 파견형 헌터였는데, 어디에서도 그런 몬스터를 본 적이 없어요. 그건 소름 끼칠 정도로 위험한 괴물이에요.”
채하나는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떨고 있었다.
“공략층에 가신다는 건 등급이 높은 헌터신가 보네요?”
“A급 치유계 헌터예요. 높다면 높은 등급이지만, 치유계치곤 그렇게 높은 수준도 아니죠.”
그녀 말대로 치유계, 통신계, 마력계 헌터들은 어느 정도 활동을 하다 보면 B급까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초월 헌터 역시 활동만 꾸준히 한다면 등급을 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나 역시 1년 사이에 헌터 등급을 2단계나 올렸으니까.
“저는 사실 버프형 치유계 헌터거든요.”
치유계 헌터들이 쓰는 능력은 세 개로 나누어진다.
‘회복’, ‘방어’, 그리고 ‘버프’.
회복 능력은 말 그대로 다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방어 능력은 베리어를 만든다던가, 마법을 상쇄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버프 능력은 헌터계에서 가장 대우를 받지 못한다.
첫 번째로 짧은 지속 시간.
모든 능력은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버프는 길어 봐야 30분을 채 넘기지 못한다.
특히 계속 전투가 벌어지는 최상층 공략에선 30분 동안 버프를 받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
두 번째로 중복 사용이 불가하다.
한 사람에게 방어 버프를 주면 다른 사람에겐 같은 버프를 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감당하기 힘든 정신력 소모.
강한 버프를 걸수록 사용자의 정신력 소모도 증가하기에 쓸 만한 버프를 사용하면 정신력이 크게 깎여 나간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버프계 치유 능력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략층 파견 헌터인데도 대부분 시간을 여기, 10층에서 보내고 있었어요. 가끔 게이트 공략에 들어갈 땐 불렀지만, 그 외엔 거의 방치되어 있었죠.”
“그렇군요.”
“대피령이 떨어졌을 때도 저는 자고 있었는데 아무도 깨워 주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존재였던 거죠.”
아포칼립스가 발동했을 땐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모두를 챙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로 그녀를 위로해 봐야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실력 좋은 헌터와 팀을 짜면 버프계 능력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의 헌터라면 저보다 더 능력 있는 치유계 헌터를 데리고 다니겠죠.”
“…….”
젠장, 반박해라 최현.
머리를 굴려!
“정신력을 수련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정신력이 강해지면 좀 더 강한 버프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럴까요? 사실 제 정신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라서. 언제부턴가 적당히 버프를 주고 적당히 얹혀 가고 있었거든요.”
너무 솔직하잖아.
한숨을 쉬는 그녀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지금 테스트해 보죠. 어쨌거나 자신의 정신력이 어느 정도 수치인지 아는 건 중요하니까요. 저한테 가능한 최대로 수치를 올려서 버프를 걸어 보세요.”
“으음… 지금은 좋은 컨디션도 아닌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일어나 자세를 잡고 있었다.
만에 하나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채하나의 버프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미리 능력을 파악해 두는 게 좋겠다.
“스으으읍!”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게 손바닥을 펼치자, 몸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버프 능력을 다루는 치유계 헌터의 수가 적어서 나도 직접 경험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System : 공격력 버프가 적용됩니다. 공격력이 37% 상승합니다. -13:18-]
뭐지?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손으로 열심히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 봐도 수치는 37%였다.
심지어 지속 시간은 대략 13분.
“혹시 이게 최대치인가요?”
“이것보다 더 강한 버프를 쓰려면 5분 정도밖에 지속이 안 되거든요. 물론 다른 버프들을 안 쓰면 더 길게 쓸 수 있지만.”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잠시 멍하니 채하나를 바라봤다.
“그럼 다른 버프까지 쓰고도 이 정도로 5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죠. 평소엔 이것보다 약하게 써요. 어차피 알아주지도 않으니까요. 무엇보다 강한 버프를 쓰면 한참이나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않거든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녀는 극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버프 수치가 보이지 않으니 적당히 강해졌구나 하고 넘어가겠지.
평소엔 약하다고 했으니 보통 헌터들에겐 20% 정도 능력치가 상승했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압도적인 변화를 느끼진 못했겠지.
채하나는 무시무시한 재능을 갖고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만한 수치를 올려 주는 버프를 쓰면서도 길게 유지할 수 있는 거다.
기본적으로 정신력 통이 크니까, 다시 채우는 데에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채하나 씨는 엄청난 천재입니다.”
“……?”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여자 마음을 얻으려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스타일?”
“전혀 아니거든요?!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이 정도 버프를 다룰 수 있는 치유계 헌터는 그리 많지 않아요.”
이렇게 강한 버프라면 보통 5분 정도밖에 유지를 못 할 텐데 그녀는 그 2.5배나 지속시간을 갖는다.
다른 버프까지 쓰고도 5분이라니…….
“정말요?! 저 재능이 있나요?!”
“장담하죠. 이런 버프를 쓸 수 있다면 S급까지도 갈 수 있어요.”
진심이었다.
채하나는 그야말로 버프계 헌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해도 될 정도로 괴물 같은 정신력을 가진 셈이다.
“하아, 그럼 뭐해요.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최현 씨는 C급 헌터라고 했죠?”
그렇게 말하면서 또 실망하는 눈빛을 보내지 말라고.
이런 버프 능력은 내게 탐나는 능력이었다.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까지 쓴다면, 이 버프의 효과는 내게 비약적인 능력치 상승을 만들어 준다.
“나갈 수 있어요. 저만 믿으세요.”
***
슈우웁. 슈웁.
채하나가 말했던 것처럼 블랙 퀸은 시도 때도 없이 10층을 돌아다녔다.
다른 층에는 몬스터들이 이미 우글거리고 있었고, 딱히 숨을 곳도 없었으니 10층에서 나를 찾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말 싸우려고요?! 미친 짓이에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고요.”
“괜찮아요. 채하나 씨 버프가 있으면 가능해요. 저는 죽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싸우는 방식을 보여 드릴게요.”
과거 13층에서 죽었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던전 내부에서 죽으면 같은 층 어딘가에서 부활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처음 죽었던 곳은 10층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는 건가.
[최현 Lv.46
체력: 4650/4650 마나: 460/460 기력: 25/30
힘: 119 민첩: 78 지능: 55
(사용 가능 포인트: 0)
라이프 : 2312개]
직접 시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
6개월간 죽자고 몬스터만 때려잡아서 레벨을 올린 덕분에 무려 46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아낌없이 포인트를 사용해 힘과 민첩에 투자했다.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사용하면 4배, 힘 수치는 대략 500에 가까워진다.
거기에 채하나의 버프까지 들어오면 파괴력은 월등히 높아지겠지.
“버프를 걸어 주시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블랙 퀸이 혹여나 그녀 먼저 노린다면 상황이 골치 아파진다.
더블 라이프 파워를 쓰기 위해 쿨타임을 기다리느라 이틀이나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채하나에게 내 초월 능력과 앞으로 어떻게 이곳에서 나갈지 설명해 두었다.
직접 인벤토리를 쓰는 걸 보여 줬지만, 내 힘에 대해선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버프 주세요!”
빛이 내 몸에 스며드는 걸 보는 순간, 동굴 밖으로 기어서 나와 바로 에렌 셀을 꺼냈다.
[System : 공격력 버프가 적용됩니다. 공격력이 45% 상승합니다. -4:11-]
[System : 속도 버프가 적용됩니다. 속도가 39% 상승합니다. -4:57-]
어차피 이모탈을 사용하면 방어력 버프는 의미가 없기에 정신력을 아껴 두라고 했다.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그 안에 최대한 블랙 퀸의 체력을 깎는다.
쐐액!
“……!”
나를 발견하자마자 코앞까지 날아온 블랙 퀸이 바로 내 목을 노리고 검을 쏘아댔다.
카각!
물론 그때처럼 쉽게 당하진 않는다.
속도가 무려 40%나 상승했고, 이젠 충분히 블랙 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다.
블랙 퀸은 망설이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푸욱!
블랙 퀸의 검이 내 몸을 관통하는 순간 씨익 웃음을 머금었다.
[System : ‘이모탈’의 효과로 부활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라이프 1개를 소모합니다.]
이미 이모탈을 써 둔 상태라 나는 죽지 않았고, 그대로 블랙 퀸의 등에 에렌 셀을 쑤셔 넣었다.
[3165!]
[36185/39350]
파앗!
나를 밀쳐 낸 블랙 퀸은 황급히 나와 거리를 벌렸다.
3천이 넘는 대미지라니, 버프 효과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블랙 퀸의 방어력이 낮은 것이다.
버프의 시간이 짧은 만큼 망설이고 있을 수 없었다.
제6수식, 송화.
쌔액!
[751!]
쳇, 스쳤나.
원래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인 송화인데, 속도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으니 블랙 퀸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방금 두 번의 공격으로 블랙 퀸은 처음에 봤을 때처럼 거침없이 공격해 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죽지 않으니 놈의 공격을 그대로 맞으면서 맞교환하면 큰 대미지를 먹일 수 있다.
내게 제한 시간 같은 게 있는 줄 모르는 블랙 퀸의 입장에선 이만큼 불공평한 전투가 없겠지.
반대로 나는 제한 시간 동안 블랙 퀸을 최대한 몰아세워야만 했다.
[874!]
[1105!]
조금씩 공격이 들어가곤 있었지만, 블랙 퀸은 치명상을 피해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었다.
쉽사리 나를 공격해 오면 카운터가 들어갈 걸 알았기에 역으로 공격해 오진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분명 내게 승산이…….
“볼수록 재미있는 인간이군.”
타악!
던전에 납치돼서 처음 만났던 놈이 코앞에서 튀어나와 내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죽지 않는 인간이라…. 금방 스스로 죽고 싶게 만들어 주마.”
묵직한 중저음이 내 몸을 관통하는 듯한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