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스승과 제자 (3)
“으허억…….”
“괜찮으세요?”
서진욱의 물음에 손을 들어서 대답을 대신했다.
당장에라도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몇 번 몸이 으스러졌다.
4시간쯤 쉬지 않고 싸우니 몸이 남아날 리가 없지.
그사이 3번이나 죽었고, 이모탈을 써서 라이프는 총 5개를 소모했다.
4시간 동안 5번 죽다니… 옛날도 떠오르고 좋네.
“생각보다 잘 싸우시네요. 전투 센스가 좋아서 이런 난전에서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하고 있어요.”
“허허, 센스 말입니까?”
서진욱의 말을 듣자마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는 정말 조금도 나를 지켜 줄 생각이 없었고, 오직 다른 몬스터를 처리할 뿐이었다.
심지어 내가 싸우고 있는 몬스터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예전엔 차윤지가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천사였구나.
그립다…….
“일단 대충 정리된 것 같네요. 하나씩 오는 건 제가 처리할 테니, 잠시 쉬고 계세요.”
죽을 때마다 기력이 회복되었는데도 마지막 부활 후 기력도 바닥이 났다.
그 와중에 쉬지 않고 계속 싸운 서진욱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자기는 그 정도로 괴물이면서 나한테 센스가 있다니…….
조금도 와닿지 않는다고.
상체를 일으켜 자리에 앉았고, 서진욱이 내게 다가왔다.
“음, 역시 최현 씨의 능력에 대해선 제가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능력이라면, 초월 능력이요?”
“네. 일반적인 초월 능력들과 달리, 최현 씨의 초월 능력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제대로 알아 두지 않으면 그에 맞는 수련을 할 수 없어요.”
“그건 그렇네요.”
죽었다가 부활하면 기력이나 모든 부상이 회복된다거나, 라이프를 소모해서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건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나는 서진욱에게 인벤토리부터 기본적인 부활 능력, 스킬, 능력치까지 빠짐없이 보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펫 시스템에 눈이 돌아갔다.
“스승님, 놀라지 마세요.”
“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발렌을 소환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소환된 발렌은 멀뚱히 앉아서 나와 서진욱을 번갈아 바라봤다.
“혀… 형씨?! 갑자기 소환하면 어떡해?!”
“소환? 최현 씨가 소환한 몬스터인가요?”
서진욱은 당황하긴 했으나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발렌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제 친구인 발렌이에요.”
“허어, 오크와 친구라니… 누굴 닮은 친화력인지.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서진욱에게 발렌을 보여 준 건 어째선지 그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봤던 누구보다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람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사람 말을 하고, 외발인 오크라…….”
다리 쪽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서진욱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여러 가지로 특이한 친구긴 하군요. 몬스터와 친구가 되는 것도 최현 씨의 능력인가요?”
“아뇨. 발렌이랑은 게이트 안에서 친해졌어요. 그러다가 펫 시스템 능력이 생겨서 같이 게이트에서 나올 수 있었고요. 다리는… 저번 게이트 안에서…….”
발렌은 서진욱이 뚫어지라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내게 구해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멋진 친구네요. 앞으로 최현 씨에게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겁니다.”
“……?!”
서진욱의 입에서 나온 예상 밖의 말에 발렌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기 위해선 이 다리로는 힘들겠네요. 아까 말한 대장장이에게 부탁하면 의족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 정말인가요?!”
“뭐,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 그 가능성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빙긋 웃는 서진욱을 보고 나 역시 활짝 웃음을 머금었다.
발렌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기에 발렌이 다시 설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형씨, 나 다시 싸울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나중엔 나 지켜 준다고 했잖아. 그러려면 다시 일어나야지.”
“…고마워.”
발렌을 다시 시스템에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현 씨의 능력은 정말 RPG 캐릭터 같은 능력이네요. 지금 라이프는 몇 개죠?”
바로 능력치 창을 열어서 확인했다.
[최현 Lv.30
체력: 3050/3050 마나: 300/300 기력: 30/30
힘: 80 민첩: 39 지능: 39
(사용 가능 포인트: 14)
라이프 : 740개]
“740개 있어요.”
스킬을 쓰거나 게임 오버 당하면서 많이 썼지만, 그보다 많은 몬스터를 쓰러뜨린 덕분인지 라이프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여럿이서 같이 싸우면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줄어들었다.
레벨이 높아지면서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 양도 늘어난 탓에 레벨은 잘 오르지 않았다.
“같이 싸우는 동료가 몬스터를 쓰러뜨려도 라이프가 늘어난다고 했죠?”
“네. 저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쓰러뜨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옐로우 라벨 이상의 몬스터가 저보다 높은 레벨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이번 기회에 라이프를 1000개 이상으로 올려 보죠.”
라이프를 늘리는 건 전부터 나도 바라던 일이었다.
스킬을 쓸 때마다 라이프를 소모하고, 높은 수준의 몬스터와 싸울 땐 몇 번이나 죽으니 라이프를 잃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옐로우 라벨 몬스터는 그리 어렵게 쓰러뜨릴 수 있지만, 스킬을 쓰지 않고 싸우면 너무 시간이 오래 소모되었다.
그렇다고 스킬을 쓰면 오히려 라이프가 줄어드니 딜레마일 수밖에.
“일단 지금부터는 몬스터에게 죽지 않는 것, 그리고 몬스터와 싸울 때 라이프를 소모하는 스킬을 쓰지 않는 걸 전제로 하겠습니다.”
“저도 죽고 싶지 않긴 한데 그게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라서…….”
“단련할 때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 게 좋습니다. 지금은 앞에 있는 몬스터를 쓰러뜨리기보다 몬스터에게 쓰러지지 않는 걸 목표로 하자는 거죠.”
서진욱은 볼수록 대단한 사람이었다.
마치 항상 정답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고, 그의 말엔 확실한 신뢰가 갔다.
“또 떼로 몰려오네요.”
“벌써 그냥 죽고 싶은데요.”
밤이 되자 몬스터들이 주변에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오렌지 라벨의 몬스터부터 블루 라벨의 몬스터까지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우리 둘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아까와 달리, 이번엔 정말 오직 살아남는 걸 목표로 몸을 이리저리 날렸다.
라이프 파워를 쓰면 간단하게 피할 수 있는 공격도 전력으로 움직여야만 피할 수 있었다.
“잘하고 계세요! 힘들어도 집중하세요!”
“한 번만 죽으면 안 될까요?!”
“안 돼요!”
몬스터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도 서진욱은 내 움직임과 상황을 파악하며 오더를 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괴물.
그는 헌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거 같았다.
가끔 여유가 있을 땐 서진욱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싸울 땐 평소 이미지처럼 섬세하고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투박한 쪽에 가까웠다.
일격에 몬스터를 가볍게 쓰러뜨리고 부드럽게 움직이며 공격을 피하는, 그런 모습은 없었다.
일격이면 죽는 몬스터에게 순식간에 5번 정도의 공격을 퍼붓는다거나, 다른 몬스터를 방패로 삼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전장에서 살아온 헌터였다.
“후우… 역시 이렇게 쉬지 않고 싸우는 건 힘드네요. 젊었을 땐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기억 보정 아닙니까. 이보다 더 괴물이었다니…….”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서진욱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자, 그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었다.
“이제 791개네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서진욱 혼자 50마리를 쓰러뜨린 셈이다.
나도 같이 싸웠다곤 하나, 내가 쓰러뜨린 몬스터는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고, 대부분 도망치느라 바빴다.
“아직 한참 남았네요. 오늘 밤엔 잘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은데, 스승님은…….”
“오, 스승님이라는 말 역시 듣기 좋네요. 어렸을 때부터 꼭 듣고 싶었던 말이거든요.”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미친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다니.
“저는 항상 혼자서 게이트를 공략하러 다녔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들보다 체력이 강해진 느낌이랄까요.”
이 정도면 남들보다 체력이 강하다는 말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제대로 말하려면 ‘오우거나 윈터 버드보다 체력이 좋다’라고 해야지.
“조금 재수 없게 말하도록 하죠. 최현 씨.”
“네?”
“이게 지금, 현재 SS급 최강의 헌터입니다. 제대로 봐 두세요.”
꿀꺽.
4차선 도로 한가운데에서 달빛을 받는 그는 최강이라는 단어가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초월 능력을 얻고, 많은 경험을 겪으면서 나 역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서진욱이 싸우는 걸 봤을 때 나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최현 씨의 목표는 뭔가요? 가장 강한 헌터가 되는 것? 아니면 더 높은 층까지 공략하는 것?”
“목표요?”
지금까진 그저 나아가기 바빴다.
게이트에 갇혔을 땐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나오는 게 목표였다.
게이트에서 살아 나왔을 땐 오직 복수에 사로잡혔고,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키지 못했을 땐 강해지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던전을 없애고 싶습니다.”
“……!”
여유롭게 웃고 있던 서진욱은 내 말에 흠칫 놀라며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아, 하하하, 죄송해요. 던전 완전 공략이라니… 상상도 못한 말이 튀어나와서.”
“알아요! 나도 말도 안 되는 거 알지만…….”
“아뇨. 할 수 있을 거예요.”
“네?”
방금까지 미친 사람처럼 웃던 서진욱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최현 씨라면 정말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최현 씨의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
그의 눈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기에 나조차도 나를 믿어야만 할 것 같았다.
주변을 잠시 살피던 서진욱이 검을 집어넣고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이런 타이밍에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다른 곳 가지 말고 여기 계세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후다닥 커다란 건물 뒤로 달려가는 서진욱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함께 있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가 어째서 최강의 헌터인지는 금방 와닿았다.
“형씨…! 아무래도 아까 그 사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은데?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려.”
“뭐?!”
서진욱이라면 몬스터에게 당하거나 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지만, 지하 철도에서 차윤지도 몬스터에게 기습을 당한 적이 있다.
발렌의 말에 당황해서 서진욱이 사라진 곳으로 황급히 따라갔다.
“끄으윽… 그윽… 허억, 허억…….”
“……!”
바닥에 주저앉아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서진욱이 보였다.
그는 품에서 약통을 꺼내더니 입에 털어 넣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괴로운 표정으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고통을 삼켜 내고 있었다.
이런 심각한 몸 상태로 아까 같은 전투를 했던 건가.
조심스럽게 서진욱과 떨어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그런 고통을 참으면서 수도 없이 많은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아무리 머릿속에 그려 보려고 해도,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건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서진욱은 ‘최강’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