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10년 전의 그날 (3)
“여기 계셨네요.”
“아, 오랜만이네.”
긴 흑발을 하나로 묶고 있던 서윤하에게 서진욱이 다가왔다.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만나자마자 그런 얘기야?”
서윤하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서진욱이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푸흐흐. 미안, 나도 모르게 장난치고 싶어서. 그건 그렇고 너도 많이 변했네. 처음 봤을 땐 예의라곤 모르는 까칠한 녀석이었는데.”
서진욱은 어쩐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돌렸다.
서윤하는 서진욱이 유일하게 어울려 다녔던 최준의 아내였다.
최준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의 당당하고 따듯한 성격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서윤하와도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 역시 최준과 많이 닮아 있었다.
어디에서나 밝은 모습과 강한 듯 부드러운 모습은 매력적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둘만 둬도 괜찮으신가요?”
“에이, 현이가 벌써 중학생인걸. 율이를 얼마나 애지중지 챙기는데. 나 때문에 현이가 너무 빨리 철이 들어 버린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지만.”
최준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서윤하의 뱃속엔 율이가 있었다.
서진욱은 자신 때문에 가장을 잃은 세 사람에게 책임감을 느꼈고, 평생에 걸쳐 지켜 주려고 했다.
서윤하에게 생활비와 아이들 양육비를 내겠다고 했을 땐 ‘한 번만 더 그런 말 꺼내면 다신 얼굴도 안 볼 거야.’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가장 많이 화를 냈었다.
“위쪽 상황은 어때? S급 헌터 정도면 그래도 들리는 얘기들이 많잖아?”
“다들 긴장한 상태로 경계 중이에요. 최근에 게이트에서도 이상 현상이 많이 발생했고, 던전 최상층에서도 몬스터 수가 급증했으니까요.”
서진욱은 한참 전에 S급 헌터가 됐다.
주변에서는 SS급 헌터도 금방 될 수 있을 거라고들 말하지만,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과거에 최준이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
SS급 헌터가 되면 뭘 하고 싶냐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저 SS급 헌터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으니까.
막 떠오르는 대로 던전 15층 공략을 떠들어 댔지만, 막상 최상층 공략팀에 들어가자 얼마나 바보 같은 소리였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피곤하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하품하며 말하는 서윤하의 모습에 서진욱이 피식 웃었다.
“정 힘드시면 제가 대기 인원에서 빼 드릴 수도 있는데.”
“됐거든?! 오히려 이런 날은 특별 추가 수당도 나와서 좋다고. 애들 키우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데.”
“…역시 제가…….”
서진욱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서윤하가 질색하며 손을 저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야! 적어도 애들은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 그이도 그러길 바랄 거야.”
항상 강한 모습의 서윤하지만, 최준의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약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마다 서진욱은 가슴이 아려 왔다.
다른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던 그였기에 이런 감정에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그렇기에 서진욱은 최준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서진욱 씨?! 들리세요?!”
“…! 네, 들려요.”
머릿속에 들려오는 다른 통신계 헌터의 목소리에 서진욱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서윤하도 서진욱의 표정을 살폈다.
“11층입니다. 몬스터들의 상태가 이상해요. 평소보다 흉포해지고, 공격적으로 바뀌었어요. 게이트 안에 있던 몬스터들도 일제히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서윤하 씨도 옆에 계시면 같이 올라오세요.”
통신을 끊자마자 서윤하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직접 듣진 못했지만, 서진욱의 표정만 봐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10층에서 대기 중이던 두 사람은 황급히 위층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흉포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했대요.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서두르자.”
1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진득한 피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아래에서 대기하던 S급 이상 헌터들이 모두 11층으로 올라갔다.
다들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오셨군요.”
“상황은 어떤가요?”
11층 계단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헌터가 올라온 다른 헌터들을 반겼다.
인상을 찌푸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최악이네요. 몬스터가 단순히 흉포해진 정도가 아니에요. 우리가 알고 있던 몬스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좋아졌어요. 마치 원래 라벨보다 한 단계 위의 라벨인 것처럼.”
“그렇다면 대부분 블루 라벨 급의 몬스터라는 건가요?”
11층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대부분 그린 라벨의 몬스터들이었다.
블루 라벨의 몬스터는 간혹 보스 몬스터로 등장하는 게 전부였기에, 블루 라벨 몬스터는 아직 미확인 된 종도 많았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11층을 내주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11층에서 물러난다는 건 10층도 주는 겁니다.”
서윤하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올렸다.
10층은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고 몬스터가 없는 안전 구역이었다.
현재 헌터의 전진 기지로 삼고 있는 층이기도 했다.
10층은 헌터들에게 있어서 큰 의미가 있다.
1층에서 9층까지 물자를 이동하는 건 어렵지만, 10층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기에 쉽게 물자를 공략층 헌터들에게 공급하는 게 가능했다.
10층을 다시 몬스터들에게 빼앗기면 다시 공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바로 여기서 팀을 나눠서 위치를 배정하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포지션만 맞으면 같은 팀으로 배정됐다.
서윤하와 서진욱은 자연스럽게 같은 팀으로 전투 구역까지 함께 이동하게 되었다.
“괜찮으세요?”
“뭐가?”
눈을 동그랗게 뜬 서윤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진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엔 정말 위험한 임무일 수도 있어요. 만약…….”
“만약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만 남을까 봐?”
“…….”
너무 시원하게 뱉어 버리는 서윤하의 모습에 눈치를 보던 서진욱만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무서웠으면 여기 없었겠지. 지금은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하자.”
“네.”
서윤하는 적어도 서진욱이 아는 여자 중에선 가장 강한 여자였다.
항상 부드럽게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 있는 강함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었다.
배정된 구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피 냄새는 더욱 짙어졌고, 근처에서 싸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건… 저희가 알던 던전이 아닌 것 같아요.”
진동하는 피 냄새,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땅.
두 사람이 마주한 곳은 지옥이었다.
“으아악! 다리! 내 다리가!”
“……!”
도착하자마자 다른 팀원들과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이 바로 전장에 투입됐다.
서로 지시를 내리거나 간단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던전은 난장판이었다.
“크에엑!”
“끼익!”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쉴새 없이 헌터들을 공격해 왔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기어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은 헌터들에게 지금껏 없었던 공포를 줬다.
S급 헌터라면 수많은 경험을 겪은 건 당연한 얘기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오늘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
“하아…….”
잠시 다른 팀과 교대해서 두 사람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매번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운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체력 소모가 컸다.
가만히 앉아서 숨을 고르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괜찮으세요?”
“이게 괜찮아 보여?”
피를 한껏 뒤집어쓴 서윤하가 물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아 내며 표정을 구겼다.
“샤워하고 뻗어서 자고 싶다.”
“…서윤하 씨는 정말 강한 사람이네요.”
“갑자기? 최연소 천재 헌터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전혀 와닿지 않네요.”
서윤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계속 몬스터의 피를 닦아 냈다.
“꼭 헌터를 하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
이번엔 서진욱의 말에 그녀의 손이 멈췄다.
서진욱은 처음에 그녀가 헌터로 활동하겠다고 했을 때 전력으로 반대했다.
앞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돈을 자신이 준다고 했지만, 서윤하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난 그이가 헌터라서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몬스터에게…….”
서윤하는 들고 있던 물수건을 머리에 덮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다가 과로로 죽는 의사도 있고, 불을 끄다가 사고로 죽는 소방관이나 범인과 싸우다가 죽는 경찰도 있어. 내 남편 역시 자기 일을 하다가 죽은 것뿐이야. 그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일인걸. 헌터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
“…이래서 서윤하 씨가 강하다고 하는 거예요.”
서진욱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젠 다른 헌터들에게도 제대로 인정받고 있었고, 헌터로서의 실력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윤하와 이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자신이 너무나 나약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신기하지? 율이를 낳고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율이 돌잡이 때 능력이 생겼어. 마치 그이가 등을 떠미는 것처럼.”
그녀가 최준과 처음 만난 건 헌터 일을 할 때였다.
두 사람 모두 이름 있는 헌터가 아니었고, 서윤하는 정찰팀 헌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율이가 태어날 때까지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던 그녀에게 마력계 헌터의 능력이 갑자기 발현했다.
B급 헌터였던 서윤하는 그 이후로 S급 헌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부모가 되면 강해진다는 말을 못 믿었는데, 이젠 조금 알 거 같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싸우는 거야.”
머리에 덮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떨구며 일어난 서윤하가 서진욱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다시 일할 시간이네. 다시 괴물 자식들을 불태우러 가 보자고.”
“…끝나고 맥주 한잔하시죠.”
“크, 좋지.”
***
막 중학생이 되었던 최현은 잠에서 깨자마자 엄마를 찾아 집을 뒤지고 다녔다.
쏴아아아-!
지독하게 쏟아지는 비가 유리창을 두드렸고 어두운 창밖은 아침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옆에서 평소처럼 편안하게 잠을 자는 율이를 힐끔 쳐다본 현이는 부엌으로 가서 아침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끔 엄마인 서윤하가 늦을 때면 율이 등교를 챙겼기에 이젠 익숙해져 버렸다.
띵동-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던 차에 밖에서 벨이 울렸고, 표정이 밝아진 현이 한걸음에 현관으로 달려갔다.
분명 평소처럼 피곤에 찌든 얼굴로 엄마가 다녀왔다고 말할 테니까.
“…누구세요?”
문을 열었을 때 밖에 있었던 건 서윤하가 아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서진욱은 비에 흠뻑 젖어서 퀭한 눈으로 최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그의 모습은 오싹했지만, 현은 어쩐지 슬프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현을 자신의 품에 안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흐윽… 미안. 미안하다. 흑… 흐으윽… 미안해.”
그렇게 서진욱은 최현을 안고 한참이나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