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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62화 (62/176)

62화 : 붉은 새의 깃털 (3)

피?!

대체 누구길래 나한테 피를 달라는 거야?!

지금 피는 물론이고 골수까지 저 나방한테 뺏기게 생겼는데!

[목이 말라. 피를 줘.]

상황은 최악보다 최악이었고,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분진 가루는 계속해서 내 몸에 쌓여 감각을 마비시켰다.

젠장, 정신 차려! 최현!

내가 우겨서 이 게이트에 들어온 거잖아.

나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두 사람과 오크 한 마리는 물론이고,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하게 만들 순 없어.

[피를 준다면 내가 널 구할 수 있어.]

“아니! 그러니까 대체 누구냐고!”

누군지 알아야 피를 주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옆에서 같이 실에 묶이고 있는 이민하와 이신예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정신 차려! 지금 헛것 보이는 거 아니지?! 일단 어떻게든 이 실에서 벗어나야 해!”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명주실과는 전혀 다르다.

아무리 힘을 써도 도저히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긴 실이었다.

[피… 피가 필요해.]

설마……?

계속 들리는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내렸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착용하고 있는 이 묵색의 가죽 갑옷뿐이다.

“…너야?”

이젠 입은 옷과 대화를 하려는 나를 보고 이민하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이쪽은 이미 정신을 놨는데요?!”

“최현! 미쳤어?!”

안타깝게도 나는 무척 진지하다.

피를 달라고?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다 죽는 상황인데, 이렇게 된 이상 해 볼 수밖에.

내가 저 나방 공격을 몇 번이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뭐야, 이렇게 묶어 놓고도 쫄아서 못 내려오는 거냐?”

“…최현?”

양옆에 있는 두 사람이 정말 미친 사람 보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차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중에 날아다니고 있는 모스 퀸 쪽만 보고 소리쳤다.

“아까 한 번 당하더니 겁먹은 거구나?! 아아, 아까 그건 좀 아플 만했지.”

히죽거리며 최대한 놈을 화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까 도발이 먹혔던 걸 보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죽을 때가 되니까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구나.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모양이지?”

몇 개가 아니라 몇백 개인데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는 모스 퀸은 이 싸움의 승리를 확정 지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질긴 실로 우리를 꼼짝도 못 하게 묶어 뒀고, 이미 어느 정도 분진 가루를 마신 터라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우리가 이길 확률은 희박했으니까.

“그 무딘 손톱으로 내 배에도 구멍을 내보시지? 아, 너무 무뎌서 내 피부도 뚫지 못하나?”

“그렇게 안달 내지 마. 지금 당장 죽여줄 테니까.”

표정이 차갑게 변한 모스 퀸은 그대로 손톱을 내 어깨에 쑤셔 넣었다.

“끄으윽!”

“네놈은 특별히 천천히 맛보며 죽여줄게. 아주… 천천히.”

촤악!

손톱을 뽑아내자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피… 맛있어……!]

붉은색 피는 그대로 내가 입고 있는 ‘검은 새의 깃털’이라는 갑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조금 더… 더 줘!]

보채지 마. 아마 이 망할 자식이 마음껏 마시게 해 줄 테니까.

촤악! 푸욱!

잔인할 만큼 모스 퀸의 손톱은 급소를 비켜서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피는 상처 부위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최현 Lv.30

체력: 240/3050 마나: 300/300 기력: 11/30

힘: 80 민첩: 39 지능: 39

(사용 가능 포인트: 14)

라이프 : 716개]

젠장, 이제 얼마 못 버틴단 말이야!

이대로 내가 게임 오버되면 여기 남아 있는 셋은 그대로 모스 퀸의 먹이가 된다.

“이 자식아! 피를 주면 구해 준다며!”

“그게 무슨……!”

모스 퀸은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다가 내가 입은 갑옷이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하자 황급히 내게 거리를 벌렸다.

[이제 충분하다.]

[System : 검은 새의 깃털이 붉은 새의 깃털로 진화했습니다.]

[붉은 새의 깃털

검은 새의 깃털로 만든 갑옷.

웬만한 무기로는 뚫리지 않으며 충격 흡수에 용이하다.

검은 새처럼 피를 마시면 붉게 변해서 새로운 능력이 눈을 뜬다.

장비 스킬 - 붉은 새 Lv.Max]

[Passive - 붉은 새 LV.Max

체력이 10% 이하로 남을 시 발동한다.

모든 상태 이상을 없애며, 10분 동안 다른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다.]

이내 나를 묶고 있는 실이 녹듯이 사라졌고, 분진 가루 때문에 굳어 있던 몸도 평소처럼 돌아왔다.

[System : 상태 이상 ‘속박’이 해제되었습니다.]

[System : 상태 이상 ‘마비’가 해제되었습니다.]

[System : 상태 이상 ‘스킬 사용 불가’가 해제되었습니다.]

뭐야?!

퀘스트 때문에 생긴 상태 이상도 없애 주는 건가?!

“뭐야?! 어떻게 실을 푼 거지? 그 실은 쉽게 풀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모스 퀸이 당황한 지금이 기회다.

망설이고 있기엔 내 체력이 너무나 조금 남은 상태였다.

“라이프 파워! 더블 라이프 파워! 이모탈!”

기다렸다는 듯이 세 개의 스킬을 동시에 사용했다.

덕분에 이제 체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다.

촤악!

“…내 실을……!”

단숨에 다른 두 사람을 묶고 있는 명주실을 손으로 끊어 버렸다.

“여기서 잠시만 쉬고 계세요.”

내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이모탈의 버프 지속 시간 동안은 아무리 죽어도 죽지 않는다.

라이프가 깎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 잠깐, 혼자는… 안 돼.”

이신예가 감각이 마비된 탓인지 웅얼거리듯 말하며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빙긋 웃으며 그녀의 손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금은 죽고 싶어도 못 죽어요.”

다시 모스 퀸 쪽으로 몸을 틀어 에렌 셀을 꽉 움켜쥐었다.

후우우… 여태껏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는데 드디어 날뛸 수 있는 건가.

“어떻게 실을 풀고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네 동료는 이미 뻗었는걸?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아까도 느꼈을 텐데?”

“‘아까는’ 느꼈지.”

파앙!

바닥을 박차고 단숨에 모스 퀸에게 달려들었다.

여전히 더블 라이프 파워까지 쓴 상태에서는 힘을 조절하기 힘들다.

나조차도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검을 휘두를 타이밍을 놓쳐서 그대로 모스 퀸에게 어깨로 들이받아 버렸다.

[781!]

“컥!”

모스 퀸은 조금 추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한참 뒹굴었다.

“뭐… 뭐야! 방금 그 속도는?!”

“난 옛날부터 벌레가 싫었어.”

쌔엥! 찌지직!

모스 퀸이 다시 일어나기도 전에 놈의 날개에 검을 휘둘렀다.

얇은 모스 퀸의 날개는 내 한 번의 공격에 찢겼다.

“꺄아악!”

[1,781!]

[8,027/12,990]

상대하기 까다로운 보스 몬스터지만, 방어력은 약해서 대미지는 시원하게 박혔다.

“약해 빠진 인간 따위가!”

촤아악!

모스 퀸의 손톱이 날카롭게 내 몸을 찢었다.

이미 아까 공격을 잔뜩 당한 상태라 체력이 조금 남아 있었고, 모스 퀸의 공격에 체력이 한 번에 0이 되어버렸다.

[System : ‘이모탈’의 효과로 부활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라이프 1개를 소모합니다.]

체력, 기력, 마나까지 모두 원래 상태로 돌아왔고, 몸에 있던 상처와 핏자국까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너… 너 대체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말 그대로 싸우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날 보고 모스 퀸이 적잖게 당황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모스 퀸이랑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모탈의 효과가 끝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쌔엥!

모스 퀸이 뭘 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놈의 손톱이 내 배를 뚫고 들어오는 것도 안중에 없었다.

지금은 그저, 오직 모스 퀸을 죽이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뒈져! 뒈지라고!”

악에 찬 모스 퀸의 목소리에도 내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저 모스 퀸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를 뿐.

[System : ‘이모탈’의 효과로 부활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라이프 1개를 소모합니다.]

쌔엥!

[System : ‘이모탈’의 효과로 부활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라이프 1개를 소모합니다.]

쌔엥-!

[System : ‘이모탈’의 효과로 부활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라이프 1개를 소모합니다.]

몇 번이나 모스 퀸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야 모스 퀸의 체력이 눈에 들어왔다.

[542/12,990]

“너… 너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왜 죽질 않는 거냐고!”

“틀렸다.”

“뭐?”

“난 이미 몇 번이나 죽었는걸.”

푸욱!

에렌 셀이 모스 퀸의 배를 관통했고, 체력이 0이 된 모스 퀸의 몸이 가루로 변해갔다.

[System : 네이비 스톤x2, 마비 가루x2, 질긴 실x3을 획득했습니다!]

[Level Up!]

하아…….

어떻게든 이기긴 했구나.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System :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곧 게이트 밖으로 이동됩니다!]

순수하게 강한 것만 따지면 모스 퀸은 공격력도, 방어력도 높은 몬스터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상대했던 몬스터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놈이었다.

이 ‘붉은 새의 깃털’ 효과가 없었으면 위험했겠지.

서둘러 발렌을 다시 펫 시스템으로 집어넣었고, 여전히 마비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진짜 죽는 줄 알았지만.”

이신예를 부축해서 이민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신예는 자신에게 걸려 있는 마비 효과와 이민하의 마비를 동시에 치료하기 시작했다.

잠깐 시간을 확인했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차윤지가 말했던 8시간보다 이미 2시간이 더 흐른 상태였다.

“어쩔 수 없지.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마.”

옆으로 다가온 이민하가 내 어깨를 두드려 줬다.

“이 게이트를 공략한 게 어디야. 만약 도심 한가운데에 여기 있던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간다면 나중에 큰 피해가 생겼을 거야.”

“…감사합니다.”

이민하가 애써 날 위로해 주려는 걸 알았기에 그녀에게 고마웠다.

이내 잠깐 어지러움과 함께 게이트 밖으로 나와졌고, 우리가 있던 병원의 구석 방으로 이동됐다.

아침이 지나서인지 주변이 밝았지만, 여전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껴있어서 햇빛이 보이진 않았다.

“윤지 쪽은 출발한 모양이네. 무사해야 할 텐데.”

걱정하는 이신예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보다, 너 진짜 초월 헌터였구나? 설마 모스 퀸을 혼자서 잡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이민하가 눈을 반짝이며 날 이리저리 훑어봤다.

“갑자기 움직임도 엄청 빨라지고, 모스 퀸이 아무리 공격해도 계속 부상이 치료되던데? 초월 능력 완전 사기 아니야?”

솔직히 아니라곤 못 하겠다.

초월 능력이 있는 것부터 다른 헌터들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건데, 심지어 내 초월 능력은 남들보다 특별했으니까.

콰앙!

“……!”

“다들 뒤로 물러서요!”

스르릉!

에렌 셀을 뽑아서 소리가 들려온 쪽을 겨누었다.

밖으로 다시 나온 이상, 어디서, 어떤 몬스터가 공격해 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붉은 피가 방안에 흘러들어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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