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13구역 (3)
갑작스레 방에서 발생한 게이트는 이곳에 있는 우리에게 절망을 주기 충분했다.
정적 속에서 게이트만이 푸른색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정적을 깼다.
“…게이트를 이대로 둘 순 없어요. 저희가 이곳에서 나간다고 해도 언젠가 누군가는 공략해야 합니다.”
“그건 동의하지만, 꼭 지금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내 말에 반박하고 나선 건 이신예였다.
그녀는 원래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인 사람이었기에 나와 의견이 다를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다.
“던전 밖에서 게이트가 생긴다면 아마 이곳 외에 다른 곳에도 게이트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게이트 공략을 할 필요는 없어.”
이신예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선 다들 자신의 안전이 최우선이 되길 바란다.
현재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진입하는 건 여러모로 위험한 선택이 될 테니까.
“자, 잠깐만요.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혹시 그 게이트라는 건 뭔가요?”
3층으로 올라가던 길에서 구했던 남자가 물었다.
그는 우리의 대화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일반적으로 던전에 대한 것은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던전에 관심이 있어서 따로 공부하고 알아보는 사람이나, 던전 관련 종사자들에게는 당연한 것도 일반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던전은 사실상 게이트가 생겨나는 필드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몬스터가 발생하고, 던전으로 유입되는 경로는 이 게이트라는 것 때문이죠.”
“그런 게 왜 여기서 생긴 거죠?!”
“저희도 의문입니다만, 사실 지금까진 던전에도 규칙이라는 게 존재했는데,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린 이상 이젠 그 규칙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 게이트는 어떻게 할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신예가 다시 주제를 본론으로 가져왔다.
“게이트를 가만두면 몬스터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피해가 생길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게이트 공략에 실패하면 그 피해는 훨씬 커질 거야.”
이신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 헌터 한 사람의 목숨은 단순히 하나의 목숨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을 지키고, 몬스터와 싸우는 데 필요한 귀한 전력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게이트에 들어가서 차윤지가 심각한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전력 손실이 크겠지.
“저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요. 저희가 게이트 공략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상황을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게이트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나중에……!”
“만약 외부에 생긴 게이트가 이것 하나뿐이라면요? 이 게이트로 인해서 저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피해가 생길 수도 있어요.”
딱히 과장해서 얘기한 건 아니었다.
최상층에서도 베이스캠프 근처에 게이트가 갑자기 생겨나면 하나의 팀을 순식간에 전멸시키기도 했으니까.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나와 이신예의 열띤 토론을 듣고 있던 차윤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말해 봐.”
“저는…….”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선 차윤지를 포함한 팀을 꾸리는 게 가장 안정적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혹시라도 게이트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위험도는 더욱 올라가겠지.
이 사람들을 베이스캠프까지 데리고 가려면 현재 전력도 부족하다.
즉, 게이트에 분배할 수 있는 전력은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저 혼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너 미쳤어?!”
“오빠!”
내 말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입을 벌린 채 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아무리 던전이나 헌터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D급 헌터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게이트의 난이도도 모르고 정찰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냥 자살도 아니고 목숨이 100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그렇기에 나는 혼자 가려는 거다.
나는 목숨이 몇백 개니까.
“할 수 있어?”
“네?!”
“……!”
당연히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던 차윤지가 되묻자, 사람들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아까까지 나와 의견이 대립했던 이신예도 내 말에 큰 동요를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다들 장난치는 거죠? 이 녀석은 D급이라고요! D급 헌터 혼자선 2층이나 3층 게이트밖에 공략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 도박에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걸 왜 막지 않는 거죠?!”
꾹 참고 있었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이민하가 자신의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차윤지 씨도, 이신예 씨도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헌터였는데 실망이에요. 저라도 따라가겠어요.”
이민하의 반응은 당연했다.
어쨌든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헌터 등급이 전부가 아니에요. 당신이 따라가도 발목만 잡을걸요.”
이신예의 목소리에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민하는 자존심이 잔뜩 상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저는 A급 헌터입니다. D급 헌터의 발목을 잡는다뇨. 비꼬시는 건가요?”
두 사람 다 날카로운 살기를 흘리기 시작했고 가운데에 차윤지가 끼어들었다.
“난 도박이나 모험을 하진 않아. 이건 현실적인 최선책을 생각한 거야. 나도 최현과 같은 생각이거든.”
“어째서죠?!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하지 않아도 돼. 다만, 최현은 혼자서 13층 게이트를 공략했다는 건 사실이야.”
“…네?”
이민하는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는지 의심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이민하를 두고 차윤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내일 날이 밝으면 이곳에서 떠나서 베이스캠프로 이동할 거야. 아마 지금부터 남은 시간은 8시간 정도. 그 안에 게이트를 공략한다면 우리랑 같이 갈 수 있어. 나왔을 때 너 혼자라고 해도 크게 문제없겠지만…….”
차윤지는 말을 하다가 시선을 율이에게로 옮겼다.
“지키고 싶은 건 직접 지키는 게 좋겠지?”
“…알겠습니다.”
항상 무뚝뚝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그녀는 보이지 않는 세심함이 있었다.
그녀의 배려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율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빠, 정말 괜찮은 거야? 나 너무 무섭고 걱정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서 안 갔으면 좋겠어. 꼭 가야 해?”
울먹이는 율이를 보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내가 조금 더 강했다면, 누구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헌터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문제없었을 텐데.
율이를 걱정시키지 않았을 텐데.
“돌아올게. 약속해. 만약 내가 조금 지각하면, 저 언니들이 율이를 지켜줄 거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어. 나 그때 먹었던 스테이크 또 먹고 싶어. 꼭 다시 사 줘야 해.”
눈물이 잔뜩 차 있는 눈으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 율이의 얼굴을 보니, 오히려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간이 없다.
최대한 빨리 게이트를 공략하는 게 현재로서 이상적인 결과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율이를 잘 부탁드려요.”
“…너무 늦지 마.”
차윤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자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걸 보니 열대 지형이나 설원 지형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서진욱이 동굴에 가뒀을 때가 떠오르네.
“형씨, 저쪽에 불빛이 보여!”
발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의 말처럼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그쪽으로 이동했다.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울리는 거로 봐서 지금은 어딘가 내부에 있는 것 같았다.
“…동굴?!”
벽에 횃불 하나가 걸려 있었고, 덕분에 주변 시야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야말로 거대한 동굴이었다.
“천연 동굴은 아니네. 누군가 만든 인조 동굴이야.”
“느낌이 으스스한데?”
잿빛의 돌로 만들어진 동굴 벽엔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횃불이 동굴 곳곳에 놓여 있다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쉽사리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역시 나도 나와서 같이 싸우는 게 좋지 않을까?”
“…일단 좀 더 상황을 살펴보자.”
발렌이 함께 싸워 준다면 그보다 더 든든할 수 없겠지만, 게이트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선 그를 소환할 수 없다.
이런 인조 건축물의 지형이 나오는 경우는 다른 지형에 비해 적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경험이 많지 않았고,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엄청 큰 동굴이네.”
발렌의 말대로 동굴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폭은 2차선 도로 정도였고, 높이는 3-4층 건물 정도였으니까.
또각… 또각…….
걸을 때마다 내 발소리가 사방에 울려서 다시 귀로 돌아왔다.
묘한 위화감과 함께 나를 짓누르는 알 수 없는 압박감 때문에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형씨? 괜찮아?”
“아무래도 하위층 게이트는 아닌 것 같아.”
어떤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온몸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횃불이 걸려 있는 쪽으로 계속 걷다 보니 통로 양쪽에 골렘으로 보이는 조각상이 나타났다.
“오, 엄청 잘 만들었는데? 마치 살아서 움직일…….”
투두둑.
발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골렘 조각상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돌조각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왔다.
“설마…….”
쿵! 쿠웅!
몸에 붙어 있던 돌조각들이 떨어진 골렘은 발렌의 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 말조심해! 그런 플래그 세우지 말라고!”
“플래그가 뭔데?!”
콰앙!
떠들 시간도 없이 골렘은 내게 바로 주먹을 날렸다.
젠장, 너무 빨라!
아슬아슬하게 반응해서 피하긴 했지만, 골렘치곤 놈들의 움직임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보기엔 일반 골렘과 다르지 않은데, 골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형씨, 골렘 팔에 이상한 글자가 적혀 있는데?”
그제야 골렘 팔로 시선을 옮겼고,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룬 문자.
던전과 게이트에서 발견되는 문자로, 많은 언어학자가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오지 않은 신기한 문자다.
문자 자체에 힘이 담겨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룬 문자를 보고 표정을 구긴 이유는 이 골렘이 평범한 골렘이 아니라 ‘에이션트 골렘’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다.
블루 라벨의 하위 레벨 몬스터로, 일반 골렘과 외형이 비슷하지만, 몸 곳곳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게 놈들의 특징이었다.
콰앙!
에이션트 골렘이 바닥을 내리치는 순간, 땅이 솟아올라 나를 공중으로 띄웠다.
“뭐?!”
예상치 못한 공격에 공중에서 당황한 사이 다른 골렘의 주먹이 나를 향해 정통으로 날아왔다.
파앙-!
공중에선 피할 도리가 없었고 그대로 주먹에 후려쳐진 나는, 한참을 날아가 동굴 벽에 박혔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내 시야에 다시 골렘의 주먹이 보였다.
쒸익-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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