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아포칼립스 (3)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파도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신예가 가져온 지도로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해지기 시작한 탓에 게이트에서 사용하는 헤드 랜턴을 착용했다.
“직선으로 이동하면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겠네요. 문제는 걷는 시간만 포함했을 때 이 정도라는 건데…….”
“최대한 몬스터와 만나지 않는다면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마음은 당장 율이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머리는 오히려 차가웠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적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여기로 이동하는 건 어때?”
“……!”
차윤지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지하철역이었다.
“지하철?!”
“확실히 지금은 지하철이 운행하지 않을 테니 이쪽으로 가면 몬스터랑 만나지도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어.”
“그럼 그렇게 하죠.”
지하철역 2개 정도의 거리였고, 운이 좋게도 역에서 나오면 바로 병원 앞이었다.
차윤지의 신박한 작전에 속으로 감탄하며 서둘러 이동했다.
베이스캠프와 가까운 곳이라 근처 몬스터는 대충 정리가 된 상태였다.
덕분에 역에 들어갈 때까지 몬스터를 만나지 않을 수 있었다.
“계단 조심해요.”
불이 다 꺼진 지하철역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헤드 랜턴에 의지해서 걸음을 옮겨야 했고, 너무나 조용해서 내 숨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터억!
“……!”
발에 무언가가 걸려서 급히 한 걸음 물러났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 붉은 피가 보였다.
몬스터에게 당했는지 몸의 형체가 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설마 몬스터가 여기까지 들어온 건가?!”
“가능성이 없진 않아. 이곳에 있던 사람들의 냄새를 맡고 들어왔거나, 누군가 밖에서 몬스터를 피해 여기로 들어왔다면 몬스터도 이곳에 있을 수 있어.”
차윤지의 말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상보다 시간을 적게 소모하겠지만,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동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특히나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는 더더욱.
“사… 사람! 도와주세요!”
“……!”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우린 서둘러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기둥이 무너져서 다리가 깔린 여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윽…. 흑…. 살려주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법 큰 돌덩이였지만, 힘 스텟만 찍은 내겐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쿠웅!
돌덩이를 들어서 옆으로 치웠고, 기다리고 있던 이신예가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치유계 헌터를 여럿 만나 봤지만 이신예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치료가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괜히 S급 헌터가 아니었다.
“굉장해요…. 벌써 나았어.”
“여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가요?”
내 물음에 그녀는 좋지 않은 기억을 꺼내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위에서 이상한 몬스터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급히 다시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몬스터는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고, 그다음엔 저도 정신을 잃어서…….”
“…혹시 몬스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셨나요?”
“쉽게 설명하면… 엄청 큰 개미였어요.”
“……!”
그녀의 설명에 우리는 단번에 몬스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자이언트 앤트’.
말 그대로 거대한 개미처럼 생긴 이 녀석은 상당히 흉포한 녀석이다.
하지만 우리 표정이 일그러진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자이언트 앤트는 기본적으로 무리 생활을 하는 몬스터였다.
즉, 이곳에 자이언트 앤트가 한 마리 보였다는 건 이미 무리가 모두 이 근처에 있을 거란 의미였다.
무엇보다 놈들은 땅을 파서 생활하는 몬스터였다.
지하에선 상성이 최악이었다.
“어떻게 하죠? 지금이라도 나갈까요?”
다른 몬스터라면 모르겠지만, 자이언트 앤트가 있다면 지하로 이동하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오히려 지상보다 까다로울지도.
내가 망설이며 고민하는 걸 본 차윤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가자. 돌아가기엔 시간 소모가 너무 커.”
“…알겠어요.”
던전에서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온 마당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상으로 간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밀고 가는 수밖에.
“저기……!”
“아…….”
우리가 치료해 준 여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안전한 곳까지 모셔다드리고 싶지만, 저희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출구로 나가서 쭉 걸어가시면 바로 베이스캠프가 나오긴 하는데, 안전하다고 보장할 순 없어요.”
이신예의 말에 그녀는 더욱 눈동자가 떨렸다.
“선택하세요. 저희는 누가 봐도 위험한 곳으로 갈 겁니다. 저희랑 가실지, 아니면 혼자서 베이스캠프까지 가실 건지.”
그녀는 잠시 어두운 뒤쪽을 보더니,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따라갈게요.”
“알겠습니다. 몬스터가 나오면 제 뒤에 붙으세요.”
지하철이 없는 지하 철도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살면서 이곳을 걸어서 이동해 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름이 뭐예요?”
“아. 장수주예요.”
“특이한 이름이네요.”
그나마 우리 중에 낯을 가리지 않는 이신예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반 사람이 몬스터를 처음 봤는데 그런 일을 당했으니 당연히 충격이 크겠지.
“…여러분들은 항상 그런 괴물과 싸우는 건가요?”
“그게 저희 일이니까요. 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돈도 버는걸요.”
“아뇨!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저는 그런 거 못 할 거예요.”
장수주가 고개를 크게 저으며 말했다.
“정말…. 절대 못 할 거예요.”
동그란 눈에 까만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른 그녀는 호리호리한 몸이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
“형씨! 온다!”
“……!”
스르릉!
발렌의 말에 거칠게 에렌 셀을 뽑아 들었고, 차윤지도 내 움직임에 반응했다.
검을 들고 어둠으로 가득한 앞을 향해 겨누었다.
“아래야!”
발렌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숙이는 것과 동시에 땅이 솟아올랐다.
콰앙!
“크윽!”
몸을 움직이긴 했지만, 제대로 피하지 못했는지 대미지가 들어왔다.
땅에서 튀어나온 자이언트 앤트는 더듬이를 꿈틀거리며 우리 앞을 막아섰다.
그 자체로는 강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리로 움직인다는 점과 방금처럼 땅속에서 기습한다는 점 때문에 그 등급이 옐로우 라벨로 책정됐다.
“괜찮아?!”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눈은 앞에 있는 자이언트 앤트에 꽂혀 있었지만, 모든 신경은 주변에 집중됐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다른 녀석들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너는 다른 두 사람을 지켜. 내가 처리할게.”
“알겠습니다.”
차윤지의 오더에 나는 이신예와 장수주 앞을 막아섰다.
파앗-!
그녀의 움직임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적을 공격하기 위한 사전 동작조차 없었다.
단숨에 앞으로 튕겨 나간 그녀의 검이 자이언트 앤트의 이마에 꽂혔다.
콰직!
“키에에엑!”
자이언트 앤트가 괴성과 함께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에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거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혹시라도 지하 철도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이 차윤지의 검이 자이언트 앤트의 앞다리를 잘라 버렸다.
쿵!
균형을 잃은 자이언트 앤트는 앞으로 꼬꾸라졌고, 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차윤지의 검이 다시 한번 뿜어졌다.
“엄청나네요. 헌터라는 분들은 원래 이렇게 강한가요?”
장수주가 멍하니 차윤지를 보며 물었고,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사람이 심각하게 강한 겁니다.”
블루 라벨도 여유롭게 처리하는 차윤지에게, 옐로우 라벨이 상대될 리 없었다.
가볍게 자이언트 앤트를 처리한 차윤지가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자.”
전투 직후의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냥 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내가 앞을 가리키자 차윤지의 시선은 내 손가락 끝을 따라 움직였다.
그곳엔 4마리의 자이언트 앤트가 지하 철도를 꽉 채우고 있었다.
항상 같은 표정을 유지하던 차윤지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이대로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겠어. 이대로 돌파하면서 전진하자.”
“괜찮을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앞에 차윤지가, 뒤에 이신예가 있는데 뭐가 무섭겠는가.
“길은 내가 뚫을 테니까 너는 뒤에서 다른 두 사람을 지켜.”
“알겠습니다!”
타앗!
차윤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이언트 앤트가 막고 있는 길을 향해 돌진했다.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몬스터라는 걸 알지만 혼자 저기에 뛰어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쐐액!
그녀의 검이 한 번 쏘아질 때마다 자이언트 앤트들은 초록색 피를 허공에 흩뿌려야만 했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몬스터들 사이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옆에 생긴 공간으로 서둘러 지나갈 수 있었다.
“윤지야! 바닥이!”
이신예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차윤지의 발아래로 향했다.
어느새 모래가 잔뜩 깔린 바닥에서 무언가가 위쪽으로 튀어 올랐다.
촤아악!
그와 동시에 두 개의 날카로운 집게가 자이언트 앤트를 잡았다.
그렇게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앤트 라이온’이었다.
흔히 말하는 ‘개미 귀신’.
모래 안에서 함정을 파고 적을 사냥하는 녀석이다.
자이언트 앤트를 사냥하려고 이쪽에 온 건가?!
위험해.
앤트 라이온은 그린 라벨에서도 상위 레벨인 놈이다.
밖에 나와 있는 상태에서 싸운다면 크게 위협적이진 않지만, 이렇게 기습을 당하면 얘기가 다르다.
몬스터 자체보다 놈이 만든 저 모래 늪이 상당히 까다롭다.
아직 놈의 시선이 차윤지에게 돌아가진 않았지만, 집게로 물고 있는 개미를 먹어 치우고 나면 차윤지도 위험했다.
그사이 차윤지는 모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다.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너…! 무슨!”
차윤지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할 말을 잃은 사이, 나는 그녀를 모래 늪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딱 그만큼 내 몸이 모래 늪에 점점 집어 삼켜지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이렇게 하면 네가……!”
“저는 다시 살아나니까 괜찮아요! 부활하면 다시 그쪽으로 갈게요. 다른 두 사람을 부탁해요!”
이미 몸이 모래에 반이나 묻혔고, 자이언트 앤트의 체액을 모조리 빨아 먹은 앤트 라이온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후우, 죽음을 기다리는 건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니까.
“얼른 가요!”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보는 이신예에게 손을 흔들었다.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자, 그럼 그냥 죽어줄 수는 없지.
타악!
“흐압!”
사슴벌레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놈의 집게를 팔로 껴안았다.
그리고 모든 힘을 쏟아서 놈의 집게를 옆으로 꺾어 버렸다.
“끼이이익!”
제대로 대미지가 들어갔는지, 놈이 잔뜩 발버둥 치면서 괴로워했다.
그리고 이내 놈의 입이 내 시야를 덮쳤다.
어깨를 물자마자 온몸의 피가 놈에게 뽑혀 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직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 있었군.
“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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