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 후유증 (3)
석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일주일에 3번 정도 게이트 공략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 건강이 좋아진 율이도 이젠 나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다음 학기부터 대학교에 다니기로 한 율이는 잔뜩 기대에 차 있어서 나도 평소보다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오빠 왔어? 손부터 씻어.”
“네네.”
협회에 게이트 공략 보고를 마친 뒤에 집에 돌아오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요리 같은 거 안 해도 된다니까. 내가 와서 하면 돼.”
“됐거든. 내가 심심해서 그래. 안 그래도 돈 버느라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내가 해야지.”
율이의 말에 내심 감동을 하며 그녀가 만든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흰 쌀밥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오빠 요샌 신월 길드에는 잘 안 가?”
밥을 꼭꼭 씹어서 삼켜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뭐, 나도 잘 모르겠다.”
어색하게 웃은 뒤 밥을 크게 한 숟가락 입에 구겨 넣었다.
그때 게이트가 중복되어 있던 게이트는 한동안 헌터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렸다.
앞으로는 더욱 기괴한 게이트들이 나타날 것이라며 최상층 공략을 멈추고 게이트 공략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내가 갔던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기형 게이트는 등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평화롭게 어렵지 않은 게이트들을 공략하며 그때의 시간들을 조금씩 희미하게 지워가고 있었다.
“여기… 아직 연락 안 해 봤지?”
율이가 식탁 위에 꺼낸 종이엔 연락처가 적혀 있었고, 내 인상이 굳어졌다.
그때 당시에 유지한 아저씨가 내게 주고 갔던 종이였다.
“이걸 어디서 찾았어?”
“서랍에서… 미안.”
타악.
숟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오빠! 언제까지 울고 있을 건데.”
“…….”
율이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숨을 죽였다.
“겉으로만 웃고, 겉으로만 아무렇지 않으면 뭐 해. 속으로 매일 그렇게 울고 있는데. 내가 아파서 그래…. 이제 다시 앞으로 가자.”
눈물을 감추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율이를 보고 내 시선이 연락처로 향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어떤 얼굴로 어떤 말을 해도 율이만큼은 속이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내 모든 걸 보고 있는 것처럼 훤히 알고 있었다.
“앞으로……?”
***
전화를 한 곳에선 내 이름을 듣자마자 장소를 알려 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그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도착한 나는 몇 번이고 내가 받은 주소와 같은지 확인해야만 했다.
“정말 여기가 맞나?”
대문 너머로 정원이 보이고 그 정원 멀찌감치에 엄청나게 큰 집이 보였다.
묘한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벨을 눌렀다.
띵동-
그리고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 최현이라고 하는데…….”
“잠시만요.”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고, 나는 정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원 가운데에는 호수가 있었고 주변에는 잘 정돈된 꽃들과 나무가 보였다.
“어서 오세요.”
“……!”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놀라서 입이 절로 벌어졌다.
“서… 서… 서진욱?!”
내 반응에 옅은 미소를 지은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가워요. 최현 씨.”
내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왜냐면 서진욱은 차윤지와 같은 SS랭크 헌터였으니까.
4명 밖에 없는 SS랭크 헌터 중에서도 그는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40대 초반인 그는 최강이라는 말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정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티 테이블에서 그와 차를 마시고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이리저리 훑어봤다.
“조금 더 빨리 찾아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아… 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는 차윤지와는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따듯하고, 그러면서도 어쩐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언론에 자주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헌터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유지한 아저씨가 제게 서진욱 씨의 연락처를 주신 거죠?”
“제가 부탁드렸거든요. 당신을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하… 뜨…거워……!”
차를 마시다가 그의 말에 깜짝 놀라 차를 흘렸다.
“…제자요?!”
“네. 상당히 흥미가 있거든요. 재밌지 않나요? 게이트에서 2년이나 혼자서 살아남고 초월 헌터가 돼서 돌아온 것도 모자라 차윤지와 하루에게 그토록 관심을 받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어요. 심지어 그 후엔 중복 게이트에도 당신이 들어갔었죠?”
서진욱의 말에 나는 고개를 떨궜다.
“단순히 흥미 때문에 저를 부르신 건가요?”
“…죄송해요. 곤란한 부분을 건드렸다면 사과드리죠.”
내 살기를 느낀 것인지 그는 바로 사과를 해왔다.
“지병하 아저씨는 굉장한 분이었죠.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분의 마지막에 대해 듣고 싶었거든요. 물론 힘든 이야기라면 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들을 머릿속에 새기고 새겼기에 까먹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수많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나 혼자 독차지 하고 있는 것도 그들에게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게이트에 들어가서부터 할아버지와 있었던 일들이나 대화를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고, 서진욱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랬군요. 당신은 그분의 마음도 얻었었나 보네요.”
“네?”
“말했죠. 존경하는 분이었다고. 어렸을 때부터 저는 매일 아저씨 뒤를 쫓아다니면서 제자로 받아 달라고 졸랐거든요. 그런데도 아저씨는 항상 차갑게 거절하셨죠. 알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아저씨가 스스로 제자라고 말한 사람은 차윤지랑 당신이 전부예요.”
처음 듣는 얘기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대체 왜… 왜 나 같은 걸 제자라고 말씀하셨던 걸까.
우리가 만난 시간도, 함께한 시간도 게이트 안에서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나를 제자로 봐 주셨던 건가.
“처음에 했던 말은 진심이에요. 당신을 제자로 삼고 싶다고 했던 말.”
“정말로 흥미 때문인가요. 겨우 그런 이유로 제게 ‘월하백화식’을 전수해 주실 수 있는 건가요?”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춘 만큼 나도 서진욱에 대한 건 조금 알고 있다.
한 사람을 통해서만 전수되는 검술인 ‘월하백화식’을 다루는 검사이자, 어느 길드나 협회에 속하지 않은 단독 헌터.
최강이라고 불리는 서진욱은 혼자서 게이트를 공략하고 다니는 괴물이었다.
길드에 속하지 않으면 협회에 들어가야 했지만, 서진욱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겠다고 했고, 큰 전력을 잃을 수 없었던 협회는 어쩔 수 없이 예외로 그를 단독 헌터로 인정해 줬다.
“저에 대해 조금 알고 계신 모양이네요. 말씀하신 대로 월하백화식은 오직 한 명이 제자에게만 전수할 수 있는 검술이죠. 그리고 저는 그 한 사람을 당신으로 선택한 겁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해할만한 이유가 아니라면 저 역시 제자로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서진욱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르릉.
악기에서 나는 소리처럼 경쾌하고 맑은소리.
그리고 붉은색이 감도는 검날이 내 시선을 빼앗았다.
“당신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 건 흥미 때문인 건 사실입니다.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로 당신은 굉장한 사람들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니까요. 처음엔 당신이 가진 초월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형태의 초월 능력을 갖고 계셨으니까요. 그 능력은 많은 사람이 탐낼 만큼 매력적인 능력이죠. 그렇기에 저는 당신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느꼈죠. 헌터에게 있어서 가장 남기고 싶은 업적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최상층 점령인가요?”
“정답입니다. 최현 씨도 최상층에 올라가 봐서 아시겠지만, 그곳은 쉽게 점령할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죠. 저 역시 오랫동안 최상층에서 싸웠던 헌터로서 그곳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최상층을 공략하기 위해선 좋은 실력을 가진 많은 헌터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파악!
서진욱의 검이 티 테이블 중앙에 꽂혔고 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압도적인 실력의 최강의 헌터가 필요하죠. 다른 헌터들이 전선을 지키는 동안 혼자서 뒤쪽에 있는 게이트를 공략하며 적진을 무너뜨릴 최강의 헌터가…….”
“그런 거라면 서진욱 씨만큼 적임자가 없지 않나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12층까지는 제가 그렇게 공략을 해 왔으니까요. 물론 13층은 12층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공략하기 힘든 층이지만요.”
그렇다면 내 머릿속엔 다시금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럼 어째서……?”
쌔에엥!
꽂혀 있던 검을 뽑아 든 서진욱이 그 검 끝을 내게로 겨누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앞에서 흔들리는 검 끝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2년 정도인 것 같더군요. 저도 최근까지는 병에 걸린 지 몰랐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정체도 알 수 없는 병이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이라니…….”
“아마 게이트 어디에선가 걸린 병 같은데 어느 병원을 가도, 어떤 의사도 치료할 수 없었어요. 처음엔 단순히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정도였는데, 요즘엔 진통제 없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르릉.
검을 천천히 검집에 집어넣으며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까 헌터에게 가장 남기고 싶은 업적이 최상층 점령이라고 했죠?”
“…….”
“그렇다면 그 최상층을 점령할 수 있는 최강의 헌터를 만드는 것도 헌터에게 있어선 매력적인 업적이 아닐까요?”
서진욱은 내 표정을 살피다가 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물론 최현 씨가 거절한다면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헌터로서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한 길드를 운영하며 헌터들을 육성하는 걸 목표로 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게이트들만 공략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서진욱 씨는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 건가요?”
내 물음에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요. 확답할 수 있는 건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선 우리가 생각하는 걸 아득히 넘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실력엔 단순히 전투 능력이 아닌,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되죠.”
그는 꽃이 떠 있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른 헌터가 전선을 지키고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과 맞서 싸우는 동안 적의 게이트를 혼자 파괴하는 것. 그건 굉장히 외롭고… 또 쓸쓸한 일이거든요.”
다른 누구의 말보다 서진욱의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유일하게 직접 그런 일을 해 왔고 겪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혹시 두려우신 건가요? 최근엔 낮은 층에서 출현하는 게이트 공략에만 참여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또 목숨을 잃을까 봐…….”
콰앙!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매섭게 그를 쏘아봤다.
순식간에 주변에 나와 서진욱의 살기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