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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44화 (44/176)

44화 : 후유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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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으로 공격을 제대로 먹인 덕분에 단숨에 체력을 깎는 데 성공했지만, 놈을 죽이진 못했다.

굳이 놈이 소환한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 자식만 죽여 버린다면…….

쿠웅!

발을 크게 구르자 내게 다가오던 스켈레톤들이 바닥이 흔들려서 넘어져 버렸고, 그 틈에 다시 한번 네크로맨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형씨! 진정해! 그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건 위험하다고!”

“시끄러! 당장 죽여 버리겠어!”

할아버지의 상태를 보는 순간 알았다.

그렇게 온몸이 감염되어 버렸다면 이제 손 쓸 수 없다는 것을.

그래…. 그랬구나.

나는 내 앞에 있는 네크로맨서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정말 화가 났던 건 나 스스로에게였다.

결국, 할아버지를 죽인 건 나였다.

나의 한심한 나약함 때문이었다.

“검은 안개.”

네크로맨서의 바로 앞까지 달려든 순간, 놈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쿨럭…. 쿨럭!”

젠장…. 독인가. 조금 마셔 버렸다.

“형씨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조금밖에 안 마셨으니 독이 퍼지기 전에 놈을 죽여 버리면 돼.”

“일단 조금 진정하고…….”

발렌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다시 네크로맨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놈이 쓰는 스킬들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

그렇다면 쿨타임이 돌기 전에 최대한 빨리 몰아치는 게 가장 빠르게 놈을 제압할 방법이었다.

체력도 많이 깎여 있으니 한 번만 제대로 공격이 들어간다면…….

빠르게 앞으로 돌진하던 내 앞에 좀비 드래곤이 가로막았다.

일반 드래곤에 비해서 덩치가 작은 좀비 드래곤은 피부 여기저기에 구멍이 뻥뻥 뚫려서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좀비 번.”

촤아악!

“……!”

코앞에 있던 좀비 드래곤이 폭발하듯 뼈와 살점이 사방으로 퍼졌다.

뭐야, 어째서 자신이 힘들게 소환한 좀비 드래곤을 자기 손으로…….

그런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네크로맨서가 다음 주문을 외웠다.

“영원한 귀속.”

사방에 퍼졌던 살점과 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들었고 구의 형태로 똘똘 뭉쳐서 나를 감쌌다.

“꼼짝도 못 하겠지? 좀비 드래곤의 살점은 힘을 가할수록 탄탄해지는 특징이 있지.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칠수록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해진다.”

젠장…. 젠장…. 젠장!

뭐 하는 거냐 최현!

결국, 나는 처음 게이트에 갇혔을 때랑 전혀 다르지 않잖아.

죽여도 살아나는 것밖에… 스스로 성장한 건 아무것도… 없어.

“뜨거운 건 좋은 걸세.”

“……!”

눈을 제외하곤 모조리 살점에 둘러싸인 상태라 말도 할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할아버지는 독에 심각하게 감염된 상태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젊은이들을 움직이는 건 그 뜨거운 감정이니까. 그건 때때로 누군가를 향한 동경, 사랑, 혹은, 복수심, 분노일 수 있지. 감정이라는 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어떤 검보다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도, 자신을 찌르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네.”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울지 말게. 단순히 자네를 지키려고 막아선 게 아닐세. 아까 상태에서 자네가 당해버렸다면 나는 자네가 부활해서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할 테고 그럼 자네 외에 우리 팀은 전멸하고 말았을 테니까.”

“곧 죽을 놈이 말이 많구나.”

네크로맨서의 말에도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보고 말하고 계셨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를 둘이나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자네는 분명 좋은 검객이, 그리고 좋은 헌터가 될 수 있을 걸세.”

“우웁…. 읍!”

스르릉.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든 할아버지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택 안이었으니 당연히 천장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똑바로 바라보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자랑스러운 딸 얼굴은 보고 싶군.”

“유언은 다 끝났나? 어차피 둘 다 지옥에서 만날 텐데 헛수고를 하는군.”

“하하. 그 아이에게 초콜릿을 전해 줄 수 있겠나? 의외로 단 걸 좋아하거든.”

씨익 웃고 있던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단숨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서 있던 할아버지도 모습이 사라졌다.

쌔엥-! 촤아악!

할아버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 네크로맨서의 가슴 쪽에 피가 터져 나왔다.

“이 자식…! 이 소리는 뭐냐! 자기 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거냐?!”

눈이 잔뜩 충혈된 네크로맨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우두둑!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인간 따위가 자신의 뼈가 부러질 정도의 속도를 견디면서 나를 정확히 공격한다고?!”

촤아악!

다시 한번 네크로맨서의 어깨 쪽에서 피가 뿜어졌다.

까드득. 까드드득.

멀리 떨어져 있는 나까지 들릴 정도로 뼈가 기괴하게 꺾이고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내 마지막 제자가 자네라서 다행이네. 가르친 건 없었지만…….”

“할아버지!”

어느새 나를 감싸고 있던 살점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네크로맨서는 몸이 흩어지고 있었다.

온몸이 보라색으로 변한 할아버지는 팔다리의 뼈가 으스러져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이런 늙은이 목숨으로 젊은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바꿔 주지.”

“흐으윽…. 흐윽…. 왜…. 왜 그랬어요.”

“부모가 자식을 구하는 데 이유가 있나. 자네는 이미 내 훌륭한 아들이야.”

어느 때보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할아버지의 손이 힘겹게 꿈틀거렸고, 나는 황급히 할아버지의 손을 내 뺨으로 가져다 댔다.

그리고 이내 할아버지의 손이, 내 손을 빠져나가 흘러내렸다.

***

쏴아아아-

지독하게 쏟아지는 비는 마치 내 우산을 뚫어 버릴 기세였다.

아니, 차라리 내 우산을 뚫고 머리 위로 쏟아지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먹구름과 같은 표정을 짓고 이동하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검은색 우산은 내가 먹구름을 쓰고 있는 건지, 우산을 쓰고 있는 건지 착각이 들게 했다.

비를 맞고 있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차가워서, 너무나 추워서 몸이 떨렸다.

“흐으윽…. 흑흑…. 흐으윽…….”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넓은 야외 공터에서 진행됐다.

많은 사람이 모였고,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우산을 두드리는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그들의 우는 소리는 내 귓가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마치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울고 있는 것처럼.

“지병하 씨는 훌륭한 인품과 실력으로 수많은 게이트에서 활약하며 세상의 평화에 이바지하셨으며 부족한 헌터들에겐 가르침을 나눠 주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사회자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은 건가.

머릿속에서는 일부러 반복 재생을 해 놓은 듯이 네크로맨서와의 전투 장면만이 수없이 되감기 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했다면…. 내가 저렇게 했다면….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끝나고 모두가 살아서 게이트에서 나가는 행복한 결말이 나오더라도 결국 마지막엔 할아버지의 마지막 얼굴만이 보였다.

“이젠 그를 보내 주려고 합니다. 일동 묵념.”

장례식이 끝나고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휴게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내가 찾던 차윤지가 울고 있었고, 처음으로 그녀의 우는 얼굴을 본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뻥긋거렸다.

짜악-

…정적.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집중됐다.

차윤지의 매운 손이 내 뺨을 후려쳤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할아버지가 죽는 걸 가만히 본 거야! 왜 할아버지를 지키지 못 했냐고! 왜!”

비명을 지르듯 악을 쓰는 그녀의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비참했다.

그리고 그녀 앞에 주저앉아 있는 나는 그보다 훨씬 비참했다.

“으아악!”

“진정해! 차윤지! 제발……!”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말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오직 나를 노려보며 날뛰고 있었다.

“난 왜…. 왜 이렇게 약한가요. 왜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나요.”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날뛰던 그녀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난 왜에! 왜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 했냐고!”

안쪽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쉴새 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강해지고 싶어요. 제발…. 제발 강해지게 해 주세요…. 이젠 지킬 수 있게 해 주세요. 흐어억… 흐윽…….”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져서 바닥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다가온 차윤지가 내 얼굴을 품에 안았다.

“강해지자. 누구라도 지킬 수 있게…. 강해지자.”

그녀의 품 안에 안겨 있으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만 울게 해 달라고 빌고 싶을 정도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휴게소는 실내였지만, 아무래도 비가 내 머리 위에서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계속 뺨을 타고 흘러내릴 리 없으니까.

***

“…괜찮아?”

집으로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유지한 아저씨였다.

지금 내 몰골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진 못했다.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네 여동생한테 도움을 받았어. 정확히는 그 애가 먼저 날 찾아왔지만.”

“…….”

안으로 들어와서 집을 잠시 살펴보던 아저씨는 의자에 몸을 털썩 앉혔다.

“벌써 일주일이야. 이제 좀 나오는 게 어때? 방 안에만 숨어 있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알고 있어요.”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실 아저씨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일주일이 흘렀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확실히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야. 하지만 헌터라는 직업의 힘든 점에는 그런 것도 포함되어 있어. 그걸 짊어지고 가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차윤지 씨는 괜찮나요?”

“어?”

아저씨는 내 말에 조금 당황한 듯 보였고,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그 녀석은 강하니까 이겨내는 것 같더라. 다시 던전으로 들어갔어.”

“…그렇군요.”

“너, 정말 강해지고 싶어?”

아저씨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씻고 정신 좀 차리면 이쪽으로 연락해 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야.”

아저씨는 연락처를 하나 남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그분이라면 떠나기 전에 네게 여러 말을 하시고 가셨겠지. 그 말을 들은 건 오직 너뿐이니까 가슴에 새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그게 짊어지는 거다.”

끼익- 쿵!

아저씨가 집에서 나가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가서 초췌한 내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쉰 뒤 세수를 하고 면도를 했다.

조금은 나아진 얼굴로 간만에 집 밖으로 나섰다.

나를 바보 취급하듯 하늘은 어느 때보다 맑았고, 뜨거운 햇볕이 내 피부를 태울 것만 같았다.

곧장 뒤쪽에 있는 산으로 향한 나는 인적이 드문 길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커다란 바위로 향했다.

“짊어진다라…. 어깨가 너무 무거운데요.”

그렇게 무거운 짐을 얹기엔 내 어깨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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