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후유증 (1)
카앙! 카아앙!
6마리의 구울이 합류하면서 전투는 예상 밖의 난전으로 변했다.
적어도 내가 상정하고 있던 최악의 전투인 건 사실이었다.
구울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도 놈들이 독성 침을 뱉는 것도 피해야만 했고, 그러면서 레이스의 위치를 신경 써야 했다.
삐끗하는 순간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쿠에에엑!”
후웅! 콰직!
두 구울이 서로 엉켜서 부딪힌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내리쳐 한 놈의 머리를 두 개로 갈라 버렸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찰나의 순간에 놈의 몸을 세 토막으로 베어 버렸다.
[System : 그린 스톤x1, 구울의 뼈x2 독성액x1을 획득하였습니다!]
뒤에서 후방 지원을 하며 전체적인 전투를 이끌기로 했던 이성연도 결국 우리와 함께 뒤엉켜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 둘은 구울에게만 신경 쓰게나.”
“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레이스를 머리에서 지우자 오히려 구울의 공격은 단순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놈들이 뱉는 독성 침은 신경 쓰였지만, 침을 뱉는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어 오히려 빈틈을 공략하기가 쉬웠다.
쌔엥-!
내 공격을 피해 뒤로 이동한 구울에게 이성연의 검이 꽂혔다.
오랜 시간 같이 싸우다 보니 일부러 맞추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합이 맞기 시작했다.
둘이서 차근차근 구울을 쓰러뜨리니 조금씩 리듬이 생겼다.
내가 먼저 놈들의 시선을 끌며 큰 공격을 하면 이성연이 빈틈을 파고들어 기습을 가한다.
“최현 씨! 뒤요!”
머릿속에서 들려온 신다희의 목소리에 허리를 꺾으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키에엑!”
정확하게 구울의 목을 벨 수 있었고 멀리서 보이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쐐액!
순간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 검에 몸이 굳어 버리며 침을 꿀꺽 삼켜 냈다.
그리고 그 검의 끝에 레이스가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다들 훌륭하군. 한때는 어떻게 되는가 했는데 어찌어찌 다 정리된 것 같네.”
“그러게요. 진짜로 죽는 줄 알았네.”
“크윽…….”
뒤에서 들려온 작은 신음에 고개를 휙 돌렸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이성연이 보였다.
“괘… 괜찮으세요?!”
“독에 당했군. 아무래도 팔에 독이 감염된 거 같아.”
멀리서 기다리고 있던 신다희도 우리 쪽으로 달려왔고 가방에서 황급히 해독제를 꺼냈다.
“안타깝지만, 그 약으로는 독이 퍼지는 걸 늦추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네. 약초의 성분을 추출한 약이 아니라, 약초를 그대로 쓴 것이니 효력이 약할 수밖에.”
할아버지 말대로였다.
조금만 감염된 거라면 모르겠지만, 이성연은 팔에 정통으로 놈들의 침에 맞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쿠구궁……!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자마자 바닥이 크게 진동하더니 바로 앞에 보이는 저택 주변이 푸른 불에 감쌌다.
약초로 대충 상처를 감은 이성연은 먼저 저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아…. 괜찮습니다. 이제 곧 끝나니까 버틸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이런 실수를…….”
“아니에요.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억지로 움직이지 마세요.”
저택 입구 쪽에만 불꽃이 없었고, 그건 우리가 이동할 길을 안내하는 듯 보였다.
“이건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를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 같군.”
“이제 보스밖에 남지 않았네요.”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깔끔한 복도가 우리를 반겼다.
문제는 4층이나 되는 저택에 복도마다 수많은 방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하나씩 열어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성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느긋하게 저택 구경을 하고 있기엔 이성연의 독이 언제 온몸으로 퍼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살아있다고 해도 독이 온몸에 퍼진다면 게이트 밖에서도 손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시간제한이 걸려버린 셈이다.
“그럼 할아버지와 제가 나눠서 찾아보도록 하죠. 다희 씨, 힘들겠지만, 보스룸을 찾을 때까지 계속 통신을 연결해 주실 수 있나요? 발견하면 바로 통신을 통해서 전달하도록 할게요.”
“알겠어요.”
말을 끝내자마자 나는 2층으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 때 긴장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리 팀원들이 누구도 죽지 않길 바라는 건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벌컥! 벌컥!
문이 보일 때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열어 버렸고, 2층의 모든 문을 열고 나서 계단으로 이동했다.
“할아버지께서 3층을 확인하신다고 해요. 1층에도 아무런 이상은 없었어요.”
“알겠습니다.”
신다희의 말을 듣고 바로 4층으로 올라갔다.
4층은 2층과 달리 불빛이 전혀 없어서 바깥에서 보이는 푸른 불꽃에 의지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4층에 있는 문은 겨우 4개뿐이었다.
아무래도 정답을 찾은 건 나인 것 같은데.
달칵! 달칵!
두 개의 문을 열고 나서 다음 문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발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너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는군. 틀림없이 여기야.”
“…….”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익-
문을 열자 발렌이 말한 것처럼 썩은 냄새가 단숨에 나를 뒤덮었다.
어두워서 방 안이 보이지 않다가 이내 하나둘 랜턴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환영한다. 살아있는 자들이여.”
안쪽에서 들려온 기분 나쁜 중저음의 목소리에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다희 씨 찾았어요. 4층 3번째 문이에요.”
“저희도 바로 그쪽으로 갈게요.”
통신을 마치고 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그리고 바로 뒤에서 할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찾았군. 보스는 네크로맨서인가.”
네크로맨서…. 블루 라벨에서도 최상위 몬스터였다.
새까만 옷을 두르고 있는 그는 얼핏 보면 뱀파이어와 비슷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푸른색 피부와 뾰족한 귀, 그리고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죽더라도 내 충실한 부하로 만들어서 영원히 살게 해 줄 테니까.”
“너 죽어봤어? 죽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인지 네가 알기나 해? 죽어 본 적도 없는 게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내 말에 오히려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네크로맨서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콰앙!
그때 우리가 들어왔던 문이 닫혀 버렸고, 네크로맨서가 먼저 주문을 외웠다.
“일어나라, 나의 병사들이여!”
그의 주문에 바닥에 잔뜩 깔린 뼛조각에서 스켈레톤들이 부활하는 게 보였다.
몬스터 자체의 전투력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몬스터들을 부활시켜서 지칠 때까지 싸우는 게 놈의 전투 방식이라고 들었다.
“우리에겐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알아 두게. 이런 허수아비 인형들에게 시간을 끌리고 있다간 게임 오버라고. 잡몹은 내가 처리할 테니, 보스는 자네가 공격해.”
“알겠습니다.”
짧은 작전 타임을 갖고 바로 움직였다.
달려드는 스켈레톤을 피해서 네크로맨서가 있는 곳을 향해 단숨에 파고들었다.
그때 네크로맨서가 다시 주문을 외웠다.
“어리석은 자의 손.”
바닥에서 튀어나온 새까만 손들이 내 다리를 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젠장…. 아직 라이프 파워 효과가 남아있는데도 전혀 뿌리칠 수 없잖아.
할아버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스켈레톤을 쓰러뜨렸다.
이런 데서 내가 시간을 낭비하면 할아버지까지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라이프 파워 더블 포인트.”
다시 한번 더블 포인트 스킬을 사용했고, 능력치가 오르자마자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앙!
그와 동시에 바닥을 밟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앗!
[2,597!]
[13015/15612]
제법 먼 거리였음에도 단숨에 좁혀 기습에 성공했고, 놈의 옆구리에 깊게 검을 쑤셔 넣었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의 대미지가 들어갔다.
더블 포인트 스킬 덕분에 내 능력치가 평소보다 뻥튀기된 덕분이겠지.
놈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기 전에 검을 크게 휘둘렀다.
부웅-!
“본 실드!”
어느새 주문을 외운 네크로맨서 앞에 거대한 뼈로 만들어진 방패가 튀어나왔다.
가볍게 내 검을 튕겨낸 방패는 바로 사라져버렸고, 그 뒤에서 네크로맨서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문을 다 외우기 전에 검을 놈에게…….
파악!
“……!”
그러나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기괴한 모습의 발이 내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의 충실한 종이여…. 더러운 적을 삼켜라.”
쿠구구궁….
바닥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를 보고 나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최악이네…….”
“설마 이건 ‘좀비 드래곤’?!”
스켈레톤을 어느 정도 정리한 할아버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일반적인 드래곤에 비하면 좀비 드래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시체에서 부활시킨 몬스터였고, 아무리 일시적이라 해도 그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드래곤이 천천히 입을 벌려 마력을 한곳에 모으는 게 보였다.
“젠장…. 나오자마자 브레스냐?!”
“이런 좁은 곳에선 피할 곳이 한 곳밖에 없어. 드래곤의 뒤로 간다!”
할아버지는 날렵하게 이동했다.
나도 그를 따라 움직이려는 순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봤던 검은 손은 물론이고, 수많은 스켈레톤이 내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좀 꺼져! 이 더러운 자식들아!”
검으로 서둘러 스켈레톤들을 쳐냈지만, 어디선가 계속 튀어나오는 바람에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놈들을 죽여라!”
쒸이잇…. 파앙!
좀비 드래곤의 입에 모여 있던 마력이 단숨에 앞으로 퍼지며 나를 덮쳤다.
아니, 내게 닿기 전에 무언가에 갈라져서 양쪽으로 퍼져 나갔다.
“하… 할아버지! 안 돼! 할아버지 비켜요! 전 어차피 죽어도 살아날 수 있단 말이에요!”
앞에서 브레스를 몸으로 막아 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안 돼에!”
브레스가 멈추고 나서야 바닥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이미 온몸이 독에 감염돼서 보라색으로 변한 할아버지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하하하. 멍청한 인간 같으니…. 자, 다음은 너…….”
네크로맨서가 다음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놈의 입에 검을 쑤셔 넣었다.
어떻게 놈의 코앞까지 달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불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어느새 상황이 이렇게 진행돼 있었다.
콰직!
“커… 커헉!”
붉은 피를 토해 내는 네크로맨서가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사이 놈의 몸에 몇 번이고 검을 꽂아 넣었다.
부웅!
이내 옆에서 튀어나온 좀비 드래곤의 발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춰야만 했다.
온몸이 불타는 듯한 참을 수 없는 분노.
그 분노를 토해 낼 곳을 찾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토하지 않으면 내가 타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반드시 죽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