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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42화 (42/176)

42화 : 게이트 안의 게이트 (9)

스켈레톤 궁사의 화살을 가만히 서서 베어 내는 걸 보고 있자니 정말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쏘는 화살을……?!

“검이 거칠다는 건 뭔가요?”

“적을 힘으로 베려고 하면 안 되지. 힘이 들어가는 공격은 그만큼 자신의 빈틈을 상대에게도 보일 수 있다는 걸세. 검은 단순히 공격 수단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어 수단도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하게.”

스켈레톤 궁사에게 다가가면서도 할아버지의 검은 놈의 화살을 모조리 베어 냈다.

할아버지가 말대로였다.

할아버지의 검은 힘없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적에게 닿는 순간엔 강력했다.

“조심하세요! 마법입니다!”

뒤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던 스켈레톤 주술사가 마법을 발동했다.

그와 동시에 나와 할아버지 발아래에 마법진이 펼쳐졌다.

스켈레톤 주술사가 상위 마법을 쓸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대처가 되어 있지 않은 우리에겐 치명적일 수 있었다.

화르륵!

불기둥이 바닥에서 솟아올랐고, 그걸 보자마자 옆으로 몸을 굴렸다.

바로 피했음에도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할아버지!”

“하하. 저렇게 느려 터진 건 맞지 않지.”

이미 할아버지의 검이 주술사를 베어 버린 뒤였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신다희는 바로 내게 화상에 좋은 약을 발라 줬다.

“으윽…….”

“엄살 부리지 마세요. 검에도 찔리면서 싸우는 분이 쓰라리다고 그럼 안 되죠.”

“…생각보다 엄한 분이네요.”

내 말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전투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혹시 잠시라도 제게 검을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검은 잠깐의 시간을 투자한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닐세.”

“…익히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면 시간은 스스로 채워 보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알려 주지.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기본… 인가요?”

“만약 정말 처음으로 배우는 거라면 기본이 먼저인 건 맞지. 하지만 자네는 이미 오랜 시간 검을 휘둘러 왔어. 그로 인해 좋지 않은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걸세.”

“그럼 먼저 그것들을 없애야겠군요.”

할아버지는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대충 주변에 보이는 나뭇가지를 끊어서 내게 건네주었다.

“이걸로 저기 있는 바위를 반으로 잘라보게.”

“…네? 정말 이런 소설에나 나올 법한 게 가능하다고요?”

“불가능하지. 나도 그런 건 못하는걸.”

“……?”

“‘한 번에’는 불가능하단 말일세. 정확한 자세와 타점, 힘을 담는 정도에 따라서 무기는 보다 좋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네. 그 나뭇가지도 마찬가지지. 내가 100개의 나뭇가지로 바위를 벨 수 있다면, 자네는 몇 개가 필요할 것 같나. 족히 1000개는 넘을 거라고 장담하네.”

전부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의 말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끈기나 힘을 기르는 수련이 아니었다.

바위를 벨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얼마나 확실한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 할아버지의 말대로라면 무기 내구도를 보존하면서 전투를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이 수련을 반복하면 자네는 자연스럽게 안 좋은 자세는 없어지고 좋은 자세가 자리를 잡게 될 걸세.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네의 동료가 되어 줄 거야.”

“…감사합니다. 해 보겠습니다.”

내가 하게 될 거라 예상조차 못 했던 나뭇가지로 바위를 베기를 시작했다.

보통 사람보다 근력이 훨씬 강한 나는 조금만 방심해도 나뭇가지가 부러져 버렸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휘두르면 나뭇가지는 바위를 치는 게 아니라 훑어 냈다.

방향성.

게이트에서 나온 이후로 내 실력은 방향성을 잃은 상태였다.

어디서부터 무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조언은 내게 방향성을 만들어 주었다.

“…정말로 그런 수련에 의미가 있는 건가요?”

내 옆으로 다가온 신다희가 물었다.

사실 내가 누군가를 붙잡고 묻고 싶은 말이었지만, 지금은 할아버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기본적인 자세나 형태를 배운 적이 없던 나였기에 자세가 엉망이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일단 해 봐야죠. 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건 싫거든요.”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게 게이트 공략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다른 팀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수련하는 게 가능했다.

“자. 그럼 저쪽에 보이는 다음 언데드 놈들을 처리하겠습니다.”

이성연의 말에 잠시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

이쪽 게이트로 들어온 지 3일이 지났다.

언데드 몬스터들은 머리가 나쁜 탓에 사냥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놈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고, 게이트 내부에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었다.

“…엄청 죽였는데도 아직도 잔뜩 남아있네요. 이제 언데드 냄새만 맡아도 토가 나올 것 같아.”

“그래도 이제 익숙해져서 전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어디예요. 지겹더라도 이렇게 게이트를 공략한다면 저는 몇 번이고 절을 할 수 있는걸요.”

이성연다운 답이었다.

여전히 나는 나뭇가지로 바위 치기 수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자는 시간 외엔 거의 이 수련을 반복하고 있는데 전혀 변하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그저 나뭇가지로 바위를 치고 있는 게 다였으니까.

틱… 틱…….

거의 한 번 휘두르면 나뭇가지는 부러졌고, 덕분에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가지를 잃어버린 앙상한 모습을 하게 되었다.

“자네는 수련을 수련으로 여기지 않고 있군. 정말 자신의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겐가.”

“네?! 보면 몰라요? 며칠째 이것만 하고 있는데 눈곱만치도 변하는 게 없다고요.”

“책을 줄줄 읽는다고 그걸 이해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건 아니네. 곱씹고 곱씹어서 의미하는 것을 파악하고,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게지.”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조금 화난 표정으로 말을 뱉어낸 뒤 자리를 떠났다.

뭔가 죄를 지은 듯한 기분에 가만히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곱씹고 곱씹어서 의미와 정답을 찾는다.”

그런 말을 쉽게 이해할 정도로 내 머리가 똑똑하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게 문제였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있던 건 단순히 나뭇가지를 바위에 휘두르는 행위였다.

그것만으로는 당연히 변하는 게 없겠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뭇가지로 바위를 벨 수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후우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나뭇가지를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마치 바위라는 적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내 손에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달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야.

막무가내로 나뭇가지를 휘두르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지금 내 발이 어디에 있는지, 허리는 얼마나 숙였는지, 팔의 위치와 각도, 힘의 세기까지 모든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수련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수많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 체형에, 내 힘에 맞는 정확한 타점과 자세를 찾아내는 것.

그게 이 수련의 목적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그런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 담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오직 이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으면서 바위를 벨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만 지독하게 생각하면 됐다.

팔을 좀 더 정면으로 휘둘러서 힘의 방향과 나뭇가지의 방향이 겹친다면 나뭇가지에 무리가 덜 갈 거다.

그리고 자세가 너무 낮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를 때는 지금보다 좀 더 허리 위치를 높인다면…….

휘익- 탁!

“……!”

물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뭇가지는 부러졌고 바위는 티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속에서는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할 수 있다.

드디어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야.

“최현 씨, 다들 모이라고 하는데요?”

신다희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로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저택 근처에선 구울과 레이스가 발견됐어요. 아마 놈들은 스켈레톤처럼 쉽게 처리하긴 힘들 겁니다.”

구울과 레이스 모두 최상층에서 만났었던 녀석들이다.

확실히 이성연의 말처럼 두 녀석은 스켈레톤에 비하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특히 구울은 스켈레톤보다 훨씬 날렵하고 독성이 섞인 침을 가지고 있어서 피부에 닿기만 해도 감염되고 만다.

레이스는 주변에 완전히 동화돼 모습을 감추는 놈들이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뒤에서 기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게이트를 공략하려면 어쩔 수 없죠.”

이제 가져왔던 식량도 거의 바닥을 보였다.

그렇다면 무리해서라도 보스까지 공략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어쩌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던전 공략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해 보죠.”

이성연이 앞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고, 불평 없이 나 역시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이내 할아버지와 신다희도 손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지금까지 우린 충분히 잘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무사히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화이팅!”

“화이팅!”

전투에서 까다로운 건 레이스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레이스를 공격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레이스가 기습을 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겠지만, 반대로 먼저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한다면 의외로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레이스는 전투를 하지 않을 때 하얀색 천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듯한 형태였다.

이럴 땐 민혁이 같은 원거리 딜러가 있으면 편할 텐데…….

우리 중에선 그래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할아버지가 레이스에게 먼저 공격하기로 했다.

쌔엥-!

할아버지의 검이 날카롭게 레이스 하나를 찢어발겼고, 다른 레이스들이 할아버지를 발견하자마자 모습을 숨기기 시작했다.

정확한 위치를 놓치지 않은 할아버지가 다른 레이스가 있는 곳으로 검을 쑤셔 넣었고 또 하나의 레이스를 관통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가 꼬챙이가 되어버린 레이스를 향해 검을 내리쳐 마무리를 지었다.

[System : 그린 스톤x1, 레이스의 천 조각x1을 획득했습니다!]

남은 건 3마리.

모습을 감추긴 하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녀석들이다.

집중해서 기척을 느낀다면 충분히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모습을 감춘 뒤 얇고 뾰족한 손톱을 적의 급소에 쑤셔 넣는 무서운 놈들이었기에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할아버지와 등을 맞댄 상태로 온몸의 감각을 세웠다.

“쿠에에엑!”

“…뭐?!”

그렇게 레이스를 찾고 있던 사이 멀리서 구울 무리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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