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게이트 안의 게이트 (8)
이번 게이트의 문제는 우리가 첫 입장이라는 점이었다.
앞선 게이트처럼 정찰팀에 의해 정보를 전달받았다면 훨씬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백지 상태였다.
“정글 지형이네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게이트를 넘어오자마자 다들 껴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단숨에 시간 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기온이 변해 버렸으니까.
어쨌든 사막 지형이나 설원 지형에 비하면 정글 지형은 활동하기에 좋은 기온이었다.
“일단 게이트 근처는 뒤쪽이 막혀 있으니까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살피며 이동하도록 하죠.”
게이트의 끝 쪽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에 뒤에서 다른 몬스터가 기습해 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혼자 주변을 보고 와도 될까요? 사실 제가 원래 정찰팀 출신이어서 이런 쪽으로는 자신 있거든요.”
“그럼 최현 씨는 북서쪽으로, 저희는 남서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1시간 내로 복귀해서 합류하는 거로 하죠.”
전 게이트에서 같이 있는 동안 나는 나름대로 팀원들의 신임을 얻은 것 같았다.
D급 헌터가 혼자서 정찰을 하고 오겠다는 것도 흔쾌히 허락해 주는 걸 보면 이성연은 확실히 나를 믿어 주고 있었다.
아무튼, 덕분에 자유롭게 게이트를 돌아보는 게 가능했다.
어차피 이곳 어딘가에서 죽는다고 해도 부활해서 돌아가면 아무도 알지 못하니까 무리해서라도 주변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우리의 게이트가 있던 곳은 게이트의 동쪽 끝.
그 주변은 온통 숲이 우거진 곳이었고, 완벽한 정글의 형태였다.
그리고 정글을 벗어나 서쪽으로 나오면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쩐지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게이트가 생각나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곳인데.”
발렌은 내 말에 큭큭대며 웃었다.
확실히 그때 갇혀 있던 게이트와 비슷한 지형이었다.
하지만 구조만 비슷할 뿐, 주변의 느낌이나 세세한 형태는 전혀 달랐다.
“저쪽에 몬스터 냄새가 나는데?”
“나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네…. 이건…….”
이런 악취를 풍기는 놈은 하나뿐이었다.
언데드 몬스터.
어쨌거나 냄새 덕에 몬스터들을 피해서 이동하는 건 수월했다.
언데드 몬스터는 이동 속도가 느리고 주변 시야가 좁아서 대체로 정찰이 편한 편이었다.
맞붙어서 싸운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형씨, 저건……!”
“아무래도 저기에 보스가 출현하는 곳이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으니 돌아가야겠다.”
북서쪽 끝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한 건 커다란 저택이었다.
딱 봐도 음침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는 저택이었다.
누가 봐도 보스 몬스터가 출현할 만했다.
이미 도착해 있던 다른 일행들은 내 걱정을 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고, 내가 도착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아무래도 완벽하게 신뢰를 받는 건 아닌가.
“역시 그쪽도 마찬가지군요. 남서쪽에도 언데드 몬스터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글 필드라는 건 반갑지만, 몬스터들은 전혀 반갑지 않네요. 하필 언데드라니…….”
언데드 몬스터는 다른 병을 옮길 수도 있었기에 치료계 헌터가 없는 우리 파티에는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공략법이 있다면 쉬지 않고 한 번에 전투를 이어서 몬스터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는 것뿐이다.
병이 몸에 퍼질 시간도 없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밖에 나가서 치료를 받으면 됐으니까.
무식하긴 하지만, 조금의 찰과상도 없이 클리어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단 이쪽이 나았다.
“문제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쉬운 놈들이 아니라는 거죠. 스켈레톤이나 레이스는 모두 그린 라벨이라 쉽게 쓰러뜨릴 수 없을 겁니다.”
차라리 윈터 버드나 아이스 잭처럼 개별 행동을 하는 녀석이라면 각개격파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놈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놈들이라 더욱 까다로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13층에서 이 녀석들과 지긋지긋하게 싸운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주변 지형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주변을 살펴보고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도록 하죠.”
이성연의 오더를 따라 일단 게이트 근처의 숲을 수색했다.
운이 좋게도 언데드 몬스터들이 분포하고 있는 건 숲 바깥쪽 강 너머였다.
숲 안쪽에는 적은 수의 스켈레톤만 보였다.
“오늘은 그럼 저 녀석들을 처리하고 숲을 안전한 장소로 만든 뒤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해 보죠.”
급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천천히 정보를 모으고 공략 성공률을 높여서 무사히 이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먼저 눈에 보이는 건 스켈레톤 세 마리.
“궁사나 주술사는 보이지 않네요. 제가 먼저 진입하겠습니다.”
“알겠네.”
내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이 나았다고는 해도 아직 무리해서 움직이는 건 좋지 않았으니까.
미리 저쪽 게이트에서 몸을 풀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엉!
그렇게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 가장 앞에 있던 스켈레톤을 몸으로 들이받았다.
놈이 쓰러져 있는 틈에 다른 스켈레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자연스럽게 놈은 나와 검을 마주하게 되었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사각을 노려 공격을 해 왔다.
쌔앵-!
여전히 할아버지의 공격은 눈으로 좇기 버거울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웠다.
“자네는 그 녀석 마무리하고 다른 두 마리는 내가 잠시 붙잡고 있도록 하지.”
할아버지의 공격으로 자세가 무너진 녀석은 내 공격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몇 번이나 검을 휘둘러서 놈을 공격하자 곧 뼈가 으스러지며 가루가 되어 버렸다.
[System : 그린 스톤x1 뼛가루x2 낡은 검x1을 획득하셨습니다!]
전리품을 확인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다른 스켈레톤에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검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검을 아래쪽으로 흘렸고, 자연스럽게 스켈레톤의 검이 내 어깨를 내리쳤다.
쩌어엉!
갑옷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에게 빈틈이 생겨났다.
파악!
놈의 옆구리를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고, 제대로 대미지가 먹혀들어 갔다.
언데드의 공격은 언제나 조심해야 했지만, 갑옷이 입고 있으면 생각보다 대미지가 크게 들어오지 않았다.
[System : 그린 스톤x2 뼛조각x1 스켈레톤 깃발x1을 획득하셨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이미 나머지 한 마리를 정리한 할아버지가 유유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난 아직 한참 멀었구만.
“두 분 다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적어도 이 숲만큼은 청정 구역이 됐네요.”
“게이트 안에 청정 구역이라…. 굉장히 모순적인 표현이군요.”
어쨌든 우리가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텐트를 펼치고 대략적으로 주변 지형을 지도로 옮긴 뒤 공략 회의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육포로 만들어둔 윈터 버드의 고기를 먹었다.
그와 동시에 얼른 이 지겨운 맛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저희가 있는 곳은 이쪽입니다. 게이트 전체를 놓고 보면 숲의 크기는 작은 편이에요. 그래서 몬스터 수가 많지 않았던 거겠죠. 그리고 이곳이 최현 씨가 발견한 저택이에요.”
북서쪽 끝에 있는 저택이 잘 보이도록 동그라미를 쳤다.
“다행이란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내부에 다른 게이트 입구는 보이지 않아요. 저희는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저택으로 이동해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되는 거죠.”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로군.”
“몬스터는 남쪽부터 정리할 생각이에요. 이쪽은 강의 폭이 좁아 간단하게 건너갈 수 있거든요. 적의 침투로가 될 수 있으니, 이쪽부터 정리하는 게 저희 안전을 확보하는데도 유리할 겁니다.”
이성연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신뢰를 받는 만큼 이성연에 대한 신뢰도 커져 있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상황을 읽는 것은 나보다 그가 훨씬 뛰어났다.
“언데드 몬스터는 다들 알고 계시듯이 공격을 당했을 때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부패한 무기나 독이 있는 손톱, 이빨에 당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세요.”
한 번도 공격을 당하지 않고 모든 적을 쓰러뜨리라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처럼 플레이트 메일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결국, 전투마다 선두에 서는 건 내가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미리 기본적인 약초를 조합해서 해독제를 만들어 두긴 했지만, 듣지 않는 독이 있을 수도 있고 약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전투는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 게이트에서 신다희에게 약초에 대한 지식을 조금 알려 줬다.
그리고 그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알려 준 약초들을 모아서 약을 만들어 뒀다.
내 예상보다 그녀의 지식 습득력은 뛰어났고, 약초를 약으로 만드는 실력도 좋았다.
“그럼 바로 게이트 공략에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몬스터 주변부터 확인한 뒤 전투에 들어가도록 하죠.”
망원경을 이용해서 강 너머를 둘러봤다.
여러 가지 무기를 들고 있는 스켈레톤 무리가 보였다.
언데드 놈들은 생각도 못 하는 것들이 어째서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강 너머에 스켈레톤 셋, 스켈레톤 궁사 둘, 스켈레톤 주술사 하나가 확인됐습니다.”
“간격은?”
“한 마리를 공격하면 다른 녀석들도 몰려올 겁니다. 눈치채지 못한다면 좋겠지만, 힘들겠죠.”
내 보고에 이성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방법이 없네요. 한 번에 놈들을 쓰러뜨리는 쪽으로 가죠.”
강을 건너가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라이프 파워.”
능력치가 상승하는 것과 함께 온몸에 기운이 감도는 게 느껴졌다.
더블 포인트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라이프 파워는 이제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됐다.
까드득! 까득!
나를 발견한 스켈레톤들이 기괴한 움직임으로 뼈 소리를 내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놈들이 강한 것과 별개로 저런 움직임을 보면 공포스러운데 말이지.
“징그러우니까 좀 꺼져!”
부웅-! 카앙!
내 대검과 스켈레톤이 들고 있던 반월도가 부딪혔고, 놈의 팔이 반대로 꺾이며 뼈가 부러져 버렸다.
바로 다시 검을 내리쳐 놈의 머리통을 으깨버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놈이 내게 달려드는 게 보였다.
파악!
“앞에 두 녀석은 제가 붙잡고 있겠습니다. 원거리에서 공격해 오는 놈들을 부탁드립니다.”
이성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스켈레톤 궁사와 주술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파악 팍!
멀찌감치 서서 화살만 쏴대는 스켈레톤 궁사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기분이 더러웠다.
“검은 흐르는 것일세. 자네의 검은 너무 거칠어. 흐르는 검은 적의 공격마저 흘려보내지.”
타앗.
바닥을 살짝 밟고 튀어 나간 할아버지의 검이 스켈레톤 궁사의 머리통에 꽂혔다.
어느 틈에 저기까지 가신 거지?
“어디…. 한 수 배워 볼 텐가.”
나를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