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게이트 안의 게이트 (7)
“설마 윈터 버드의 알인가요……?”
“…그런 것 같네요.”
알을 발견한 나와 이성연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윈터 버드의 습성 때문이다.
윈터 버드는 알을 낳으면 평소보다 몇 배는 흉포해져서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해 온다.
파앙- 팡!
뒤에서 느껴지는 풍압에 나와 이성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튀어요!”
“으아악!”
“끼이이익!”
우리를 발견한 윈터 버드가 미친 듯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붉은 깃털과 검은 깃털이 불규칙하게 자라 있는 윈터 버드는 우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 정도로 덩치가 컸다.
그리고 어떤 창보다 날카로워 보이는 부리를 갖고 있었다.
“놈을 잡으려면 아래로 떨어뜨려야 해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면 우리에게 너무 불리해요.”
이성연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막상 놈을 땅으로 끌어 내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로 저렇게 커다란 놈을 바닥에 떨어뜨린단 말인가.
“아! 저한테 괜찮은 생각이 있어요. 잠깐만 윈터 버드의 시선을 끌어 주세요.”
“어…? 네?”
내 말에 이성연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보였지만, 애써 못 본 척 방향을 돌렸다.
“끼이익!”
“으아아악!”
윈터 버드를 이성연에게 떠넘기고 나는 다시 둥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윈터 버드는 무지막지한 크기를 가진 만큼, 윈터 버드의 알도 그 크기가 엄청났다.
조금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만, 서로 살아남기 위한 것이니 용서해라.
“후우웁!”
둥지에서 힘껏 알을 밀어냈고, 둥지 밖으로 밀린 알은 산의 경사를 따라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끼이익!”
이성연을 따라가던 윈터 버드는 자신의 알이 아래로 굴러가는 걸 발견하고 이내 몸을 돌려 이쪽으로 날아왔다.
내 예상대로 알을 멈추기 위해 땅으로 내려와 알을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알이 나무 사이에 걸려서 멈춘 순간, 놈의 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쌔에엥!
파악!
“끼이익!”
목을 베어 버릴 생각이었지만, 먼저 눈치채고 몸을 일으킨 탓에 등에 검이 꽂혀 버렸다.
“으아앗!”
몸을 힘껏 흔드는 바람에 나까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일단은 놈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놈의 몸 위에 일어난 나는, 윈터 버드의 날개 쪽으로 몸을 날렸다.
“제발….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파앗!
윈터 버드의 몸에서 떨어지며 날개를 향해 검을 쏘아 냈고, 놈의 날개를 반쯤 잘라 냈다.
“끼이이잇!”
발버둥을 치며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윈터 버드를 보며 내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변 나무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며 날뛰는 윈터 버드의 모습은 놈이 다시 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원래 전투의 순서대로 제가 시선을 끌면 최현 씨가 대미지를 입히는 쪽으로 가죠.”
“알겠습니다.”
먼저 윈터 버드를 향해 달려든 그가 다리 사이로 굴러서 관심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이미 부상을 당한 날개 쪽을 공략했다.
바닥에 추락한 윈터 버드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뾰족한 부리만 피하면서 주변을 돌면 땅 위에선 느려 터진 놈이 우리를 쫓는 건 불가능했다.
[System : 그린 스톤x2 윈터 버드의 깃털x2 윈터 버드의 고기x3을 획득하셨습니다!]
윈터 버드를 쓰러뜨리고 나서야 우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진짜 엄청 피곤하네요. 그래도 이 정도의 고기가 있으면 당분간은 식량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무지막지한 크기만큼 윈터 버드에게서 나온 고기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추가로 얻은 알의 크기도 며칠 동안 계란 프라이만 먹어도 될 정도였다.
해가 지기 전에 우리는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으으음…! 확실히 별미라고 할 만하네요.”
“그냥 구워서 그런지 조금 기름지긴 하지만, 게이트에서 먹는 식사에 이 정도면 특식이죠.”
칠면조와 비슷한 맛이 나는 윈터 버드의 고기는 아무리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다.
네 사람은 한참을 먹은 후에 다시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길드에 보고는 해 뒀지만, 입구가 막힌 이상 저쪽에서 지원은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그렇겠죠. 오히려 애가 타는 건 밖일 겁니다. 결국, 여기서 나가려면 저희끼리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성연은 이렇게 말하며 할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처는 괜찮으신가요? 아마 응급 처치를 제대로 해 둬서 상태가 나쁘진 않을 겁니다.”
“하하. 그렇구만. 자네 말대로 상처는 괜찮아. 괜히 이 늙은이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겠군.”
“아뇨.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저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는걸요.”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부상을 살핀 이성연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할아버지의 상처가 빨리 아물고 있어요. 오랜 시간 전장에 계신 탓인지 몸의 회복력이 젊은 사람보다 뛰어나요. 빠르면 일주일 정도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으실 것 같네요.”
“일주일이라…. 그 정도면 기다릴 만하네요. 이제 식량이 부족하지 않으니 저희 나름대로 준비도 할 수 있겠죠.”
일주일이면 스킬 쿨타임도 확보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다음 게이트에 대한 준비도 가능했다.
“준비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신다희가 궁금하다는 듯이 내게 물어왔다.
“게이트 내부에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유용한 게 많아요. 예를 들면 약초를 이용해서 약을 만들어 둘 수도 있고, 독초를 써서 몬스터를 잡을 독약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죠. 아니면 나무 같은 걸 깎아서 함정을 제작하는 것도 좋고요.”
“오오….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 최현 씨는 D급 헌터가 맞아요? 얼마 보지 못한 제가 말하는 건 조금 주제넘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C급…. 어쩌면 B급 헌터 정도의 실력인 거 같은데…….”
이성연의 말에 나는 연신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너무 과대평가해 주시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어쨌든 좋게 봐 주시는 건 감사해요. 나중에는 그 말대로 B급 헌터까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꼭 될 겁니다.”
두 번째 밤에도 불침번을 섰고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이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빙결의 갑옷을 입고 있는 나와는 달리, 다른 세 사람은 이곳의 추위가 영 괴로운 모양이었다.
바람과 함께 온몸을 파고드는 찬 공기는 몬스터의 공격보다 아플 때가 있었다.
“베이스캠프를 옮길까요? 일주일 정도 이곳에 있어야 한다면 굳이 여기가 아니어도 좋은 곳이 많을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내 말에 이성연은 흔쾌히 동의했다.
바람만 막을 수 있다면 이곳보다 훨씬 좋을 거라는 의견은 모두가 같았으니까.
다행히 괜찮은 장소는 많았다.
원래 우리가 베이스캠프로 삼고 있었던 숲이나, 바람을 등질 수 있는 산 뒤쪽도 괜찮았다.
“숲이 가장 조건이 좋지만 아무래도 한 번 전투가 있었던 곳이라 꺼림칙하네요.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몬스터들이 다가올 수 있으니까요.”
“그럼 산 뒤쪽은 어때요?”
“괜찮겠네요. 그럼 거기로 옮기죠.”
베이스캠프를 옮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텐트만 분해해서 조립하면 되는 문제였고, 사실 이런 걸 베이스캠프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이 게이트에 남아 있는 몬스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내 물음에 이성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불필요한 전투로 전력을 소모하고 싶진 않네요. 기왕이면 접촉을 피하고, 부상이 나으면 서둘러 게이트를 넘어가도록 하죠.”
확실히 이 게이트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게이트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다른 몬스터를 다 쓰러뜨리지 않아도 게이트의 보스가 존재했고, 몬스터가 남아 있어도 다른 게이트로 넘어가는 게 가능했다.
나 역시 몬스터와의 전투는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부상이 심하지 않은 나라면 미리 몸을 풀고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오늘도 다녀오신 거예요?”
“아…. 들켰나요.”
게이트에서 6일째 되는 날 텐트 앞에서 기다리던 신다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틀 전부터 주변 몬스터를 혼자서 쓰러뜨리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있는지 미리 확인한 뒤 1대1로만 전투를 펼쳤다.
아이스 잭은 조금 버거웠지만, 아이스 골렘은 가볍게 쓰러뜨리는 게 가능했다.
“이런 걸 보면 최현 씨는 헌터라는 직업이 잘 맞는 것 같아서 부럽네요.”
“…다희 씨는 그렇지 않으신가요?”
내 물음에 그녀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잡혀가셨을 때도 보셨잖아요. 저는 불침번조차 제대로 못 서는 헌터인걸요. 통신계 능력이 없었더라면 헌터는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그럼 다희 씨는 헌터라는 직업을 억지로 하는 건가요?”
잠시 고민하던 신다희는 바닥에 쌓여 있는 눈을 손으로 뭉치며 말했다.
“아뇨. 솔직하게 말하면 헌터라는 직업을 동경하고 있어요. 여기에 계신 다른 분들도 모두 멋있고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해요. 그래서 저도 그런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헌터가 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눈뭉치를 두 개 만든 신다희는 작게 눈사람을 만들었고, 나는 바닥에 나뭇가지를 주워서 눈사람의 팔을 만들어 줬다.
“헌터는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직업이라고들 말하죠. 각자의 자리가 있고, 각자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게 헌터니까요. 하지만 다희 씨는 너무 자신의 역할에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네? 그게 무슨 뜻인가요?”
“통신계 헌터라고 해서 반드시 남들을 서포터 하는 자리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에요. 능력의 활용은 다양하니까 분명 다희 씨한테 맞는 자리가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고마워요.”
우리의 대화 때문에 잠이 깼는지 눈을 비비며 일어난 이성연이 텐트에서 나오며 기지개를 켰다.
“흐아아암.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됐네요. 그럼 어제 말했던 것처럼 오늘부터 다음 게이트 공략에 들어가겠습니다. 다들 준비하시죠.”
할아버지는 예상보다 빠르게 부상을 회복했고, 오늘 아침이 되자마자 갑갑했는지 몸에 두르고 있던 붕대를 풀어냈다.
옆에서 그걸 도와주던 나는 그의 몸 사방에 난도질되어 있는 상처를 보며 그저 감탄사를 내뱉을 뿐이었다.
“하하. 미숙한 실력에 대한 증거지. 그리고 지금은 내 영광의 시대의 흔적들이라네.”
“…저도 이런 멋진 몸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자네는 아마 이보다 더 멋진 몸이 될 테니 걱정하지 말게.”
이성연을 선두로 우리는 다음 게이트 던전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게이트 공략,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