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39화 (39/176)

39화 : 게이트 안의 게이트 (6)

[System : 블루 스톤x2 펜리르 가죽x1 날카로운 송곳니x2를 획득하셨습니다.]

“허억…. 허억…….”

“형씨 괜찮아?!”

한동안 호흡에만 집중한 덕분에 겨우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몸이라 그런지 생각과 움직임의 괴리감이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생기는 어지러움 같았다.

“괘… 괜찮아. 어떻게든 다 잡긴 했네.”

눈밭 위에 털썩 누워서 숨을 돌렸다.

펜리르는 데스나이트와 같은 블루 라벨의 몬스터였다.

이런 괴물 같은 자식들이 우글거리는 게이트에서 살아 나왔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번만큼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전투가 끝나고 나서야 온몸에 욱신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특히 부상을 입은 곳은 통증 때문에 잘라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단 발렌은 들어가 있어. 누가 보면 상황이 괜히 귀찮아지니까.”

“…괜찮겠어?”

“조금 쉬면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괜찮아.”

발렌을 달래서 소환을 해제한 뒤 나무에 기댔다.

사실 효율만 따진다면 18번 죽고 부활해서 싸우는 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내겐 지금 선택지가 없었다.

내 라이프보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훨씬 무거웠으니까.

발렌에게 허세를 조금 부려서 들여보낸 게 후회될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혼자서 펜리르 두 마리를 모두 쓰러뜨린 건가.”

“아…. 벌써 움직이셔도 괜찮으세요?”

반가운 얼굴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째서 마스터가 자네를 같이 보냈는지 알겠군. 하하하.”

할아버지는 내 앞으로 다가와 상처를 살펴보더니 가방에서 약을 꺼내 응급 처치를 해 주기 시작했다.

치료계 헌터가 같이 들어왔다면 이런 부분이 간단하게 해결됐을 테지만, 게이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수요가 늘어난 건 아무래도 치료계 헌터였다.

그래서 이렇게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응급 처치를 하며 말을 이었다.

“이 파티의 주인공은 자네였던 모양이군. 우리는 자네를 서포터 하는 역할이고.”

“그렇게 띄워 주시면 곤란한데요.”

“D급 헌터가 혼자 블루 라벨인 펜리르를 둘이나 잡았으니 띄워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내가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몰라.”

할아버지는 농담을 섞어 가며 내 상처를 치료해 줬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자마자 근처에 불을 피웠다.

“할아버지가 한 일에 비하면 저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걸요. 몬스터가 기습한 상황에서 저희 둘을 지키면서 쫓아내기까지 하셨잖아요.”

“…말은 고맙지만 결국 난 다희를 지키지 못했네. 그것만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거야.”

할아버지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난 진심으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눈 위에 뿌려진 피의 양은 단순히 펜리르의 공격을 받아서 생긴 것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벌려서 주변에 피를 뿌린 거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정신력을 갖고 있다는 건 충분히 존경을 받아 마땅했다.

만약 거기서 할아버지가 우릴 지켜 주지 않았다면 신다희는 물론이고, 이성연까지 위험한 상황에 처했겠지.

“어…! 두 분 다 무사하셨군요.”

“다행이네요.”

이성연과 나는 서로를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잃은 신다희를 등에 업고 온 이성연은 나와 할아버지의 상처를 제대로 살펴 줬다.

“그보다 정말 굉장하시네요. 두 분이 펜리르를 이길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거의 할아버지가 다 하셨죠. 저는 옆에서 거들었을 뿐이고.”

내 말에 할아버지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간만에 왕년 실력 좀 뽐냈지. 한 마리씩 떨어져 있을 때 잡아서 다행이야.”

이렇게 해서까지 내가 초월 헌터인 걸 숨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숨길 수 있는데 들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 생각을 읽고 바로 입을 맞춰 주셨다.

“그런데 치료하는 기술이 좋으신데요?”

“헌터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 보니 응급 처치 같은 건 많이 익숙해졌거든요. 알아두면 좋은 지식이라 열심히 공부해 뒀죠.”

치료를 마치고 제대로 주변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결국,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건 리더의 몫이었다.

그는 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쉽게 결정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나와 할아버지가 부상을 당한 것은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둘 다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애초에 부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부상을 입고도 어떻게 벌써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귀신이 맞네.

“솔직히 개인적으론 이대로 던전을 클리어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여기서 한 번 물러가는 게 맞겠죠. 아무리 낙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한다고 해도 내부에 있는 다른 게이트를 우리가 클리어하는 건 무리예요.”

그 부분은 동의한다.

굳이 최악을 가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 게이트에선 펜리르보다 더한 놈들이 튀어나올 테니까.

그럼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그곳을 돌파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내 스킬은 전부 쿨타임이 돌고 있어서 아까 같은 전투가 불가능했다.

“리더의 뜻이 그렇다면 나는 따르도록 하지.”

“저 역시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신다희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나와 할아버지의 의견은 이성연과 같았다.

모두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다시 오더라도 일단 한 번은 빠져나가는 게 정답이다.

보스 몬스터로 펜리르가 튀어나온 것과 다른 몬스터가 있는데도 기습을 해 온 것은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었으니까.

“아…. 여긴…….”

“정신이 드세요? 괜찮아요?”

주변을 잠시 살피던 신다희는 우리를 발견하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흐아아…. 흐윽…. 너무 무서웠어요.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흐으윽.”

할아버지는 신다희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미안하다. 잡혀가는 걸 막지 못해서.”

한참이나 그녀의 울음소리가 산에 울렸고, 피로가 몰려와서인지 그녀는 어느새 다시 잠에 빠졌다.

돌아가는 건 이미 결정이 난 상황이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성연이 신다희를 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조금씩 동이 트기 시작해서 주변 지형이 어느 정도 보였다.

“하늘이 맑아서 시야가 넓으니 몬스터들을 피해서 출구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럼 바로 이동하죠.”

출구로 향하는 걸음은 더없이 무거웠다.

과정은 과정일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게이트를 공략하지 못했으니까.

외부에서 우리의 성과는 결국 공략 성공과 실패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기에 출구로 향하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잠깐…. 여기가 출구 게이트 위치 아닌가요?!”

“설마…….”

“출구가 없어.”

우리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부에 다른 게이트로 들어가는 입구도 가까이에 있어서 보였지만, 그건 멀쩡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저희에게 선택지는 없었던 모양이네요.”

“…이제 어떡하죠?”

“일단 이 근처에는 몬스터가 없으니까 이쪽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생각하죠.”

당황한 나와 달리, 이성연은 리더 자리에 걸맞게 상황에 대한 판단이 빠르고 능숙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눈이 있었다.

불을 피우고 텐트를 만든 뒤에 침착하게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신다희 역시 정신을 차리고 우리에게 상황을 전달받았다.

“다희 씨는 먼저 저희 길드 통신원 쪽과 연결해서 이쪽 상황을 전달해 주세요. 출구가 사라진 걸 보면 외부에서 게이트로 들어오는 입구도 사라졌겠지만, 일단 보고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네. 알겠어요.”

“그리고 저희는 제대로 휴식을 취한 뒤에 식량을 구해 보죠.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니까요.”

이성연의 말에 나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게이트에 들어올 때는 부족하지 않도록 충분한 양의 식량을 가져오지만, 지금은 예외인 상황이었다.

이곳에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모르니 식량은 미리 확보해 둘수록 좋다.

이성연은 아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적어도 나와 할아버지의 부상이 모두 치료가 된 뒤에 다음 던전으로 넘어가려는 것이다.

게이트를 반드시 클리어해야 한다면 최상의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답이니까.

“할아버지는 다희 씨랑 여기서 쉬고 계세요. 저랑 최현 씨는 주변에서 식량을 구해 보겠습니다.”

“알겠네.”

하필이면 설원 지형이라는 게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대부분 지형에선 몬스터 외에도 다른 동물들이 사는데, 설원에서는 그런 녀석들을 보기 힘들었다.

동물은커녕 나무에서 열매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넓지 않은 게이트를 도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나와 이성연은 헛걸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으음…. 지금 저희가 가진 식량으로는 3일 정도 버틸 수 있겠군요. 그것도 아껴서 먹었을 때.”

“제 상처는 몰라도 할아버지 상처가 다 나으려면 최소 2주는 필요해요. 턱없이 모자라겠네요.”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다시 선택지를 강요받게 된다.

어떻게든 식량을 구해서 버티며 할아버지 부상이 치료되길 기다리는 것과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다음 게이트로 넘어가는 것.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양질의 식량이 있거든요. 저는 기왕이면 다음 게이트 공략 성공률을 1%라도 더 올리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어쨌거나 나는 라이프 파워x2의 스킬 쿨타임이 돈 다음 싸우고 싶었다.

그러려면 최소 48시간이 필요했기에 이성연의 생각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양질의 식량이라는 건 뭔가요?”

“보통 몬스터의 고기는 대부분 독성이 있거나 기괴한 맛이 나서 먹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출현하는 ‘윈터 버드’라는 몬스터는 별미로 유명하죠. 그래서 놈들을 사냥해서 외부에 팔면 제법 비싸게 팔릴 정도예요.”

“오…. 별미라…. 먹어 보고 싶긴 하네요.”

윈터 버드 자체가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었다.

그린 라벨에선 한참 아래에 있는 녀석이었지만, 무시무시한 크기와 날렵한 속도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그럼 바로 놈을 찾아보도록 하죠. 기왕이면 이 근처에 있는 다른 몬스터들도 미리 정리해 두면 좋으니 같이 움직이면서 하나씩 사냥하는 게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다시 할아버지와 신다희를 두고 나와 이성연이 이동했다.

처음에 받았던 정찰팀의 지도 덕분에 대충 윈터 버드의 둥지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었다.

펜리르와 싸웠던 꼭대기 쪽이었다.

솔직히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게 더 괴로웠다.

“허억…. 헉…. 드디어 둥지가 보이네요.”

“그런데…. 저건…….”

이성연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뭔가를 가리켰다.

그것은 윈터 버드 둥지에 있는 커다란 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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