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게이트 안의 게이트 (5)
콰직!
들고 있던 대검이 아이스 골렘의 핵에 꽂혔고 이내 골렘이 움직임을 멈췄다.
[System : 옐로우 스톤x1 골렘의 파편x2 골렘 소환서(2번)x1을 획득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아까 하신 말씀은 허세가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허세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습니까.”
내 말에 살짝 웃음을 지은 그가 다시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돌렸다.
라이프 파워의 지속 시간은 1시간 40분.
아마 이 정도면 충분할 거다.
부디 우리가 갔을 때까지 신다희가 무사하길 바랄 뿐.
“그래도 밤에는 하늘이 개서 다행이네요.”
여전히 밤이라는 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그나마 달빛은 옅게나마 빛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두 분 다 괜찮으세요?”
“……!”
이내 머릿속에 들린 목소리에 나와 이성연이 시선을 나눴다.
“저희는 괜찮아요. 지금 어디에 계세요? 신다희 씨.”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무가 울창한 걸 보면 산인 것 같은데 오는 동안 정신을 잃어서 경로를 모르겠어요.”
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괜찮아요. 지금 금방 구하러 갈게요. 게이트 내부가 그렇게 넓지는 않으니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성연의 말대로 설원 지형이라서 나무가 있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가 전진 기지로 삼고 있었던 숲과 근처에 있던 산.
아마 이 주변 어딘가로 잡혀간 것 같았다.
“…오지 마세요! 주변에 펜리르 말고 다른 몬스터도 있을지 몰라요. 애초에 저희 파티로는 펜리르를 쓰러뜨리는 것도 힘들 거예요.”
이젠 아예 울면서 말하는 신다희의 목소리에 우리의 걸음이 빨라졌다.
“다희 씨. 사는 것만 생각해요. 죽으면 다 끝나요. 그러니까 이럴 땐 남을 배려할 생각보다 스스로 살아남을 생각을 하세요. 금방 찾을 테니까.”
내 말에 신다희는 잠시 흐느끼는 소리만 내더니 이내 통신을 끊었다.
“그래도 잠깐이라도 통신이 돼서 다행이네요. 일일이 발자국을 찾으면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서두르죠.”
발자국이 이어진 방향은 북쪽에 있는 산이었기에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
“…진심이에요?”
“당연하죠. 지금 농담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날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성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최현 씨를 믿을게요. 어차피 그것 외엔 방법도 없으니까.”
쌔엥!
망설임 없이 들고 있던 검으로 내 허벅지 쪽을 그었고,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후각이 예민한 펜리르가 피 냄새를 맡으면 분명 여기까지 쫓아올 것이다.
나를 미끼로 쓴다는 것을 이성연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내 목숨 하나로 신다희를 살릴 수 있다면 환영할 만한 교환이었다.
죽는 건 끔찍할 정도로 싫고, 죽는 순간에 겪는 고통 역시 역겨울 정도로 싫다.
하지만 그보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는 게 더더욱 싫다.
“형씨, 오고 있어. 두 놈이다.”
“…후우. 할 수 있다.”
꽈악.
검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동안 이성연이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피 냄새로 주변을 온통 잠식시킨 사이, 이성연이 신다희를 데리고 도망친다는 작전.
과정만 따진다면 이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성연이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는 내가 과연 펜리르 두 마리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나도 거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스킬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는 펜리르를 내가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정말로 내가 D급 헌터였다면 이 작전의 성공률은 0%.
그렇지만 죽어도 죽어도 부활하는 초월 능력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알고 있겠지만, 문제는 형씨가 죽었을 때야.”
죽은 뒤 부활하는 데까지 10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펜리르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부활하는 곳이 필드의 랜덤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이 작전은 성공하려면 내가 필요해. 알고 있잖아?”
모를 리가 있나.
발렌이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펜리르의 시선을 끌어 줄 수 있다면 절대 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약이라도 발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거기서 게임 오버나 마찬가지다.
“형씨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되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보내 줘.”
“…알겠어. 그 대신 위험한 상황에선 절대 싸우지 않는 거야. 내가 죽어 있는 동안엔 안전하게 도망치는 쪽으로 하자.”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옆에 소환된 발렌이 몽둥이를 꽉 움켜쥐며 앞쪽을 겨누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 번도 안 죽고 펜리르를 두 마리 다 쓰러뜨리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파앗!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온 펜리르가 발톱으로 내 목을 노린 채 곧장 달려들었다.
카강-!
펜리르의 공격을 튕겨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있던 발렌이 놈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몽둥이가 닿기 전에 다른 펜리르가 발렌을 밀쳐 냈다.
“괜찮아?!”
“난 신경 쓰지 말고 전투에 집중해.”
덩치는 내 몇 배나 되는 놈들이 움직임은 더럽게 빠르네.
이 전투에 우리가 유리한 조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속도나 파괴력, 지형에 대한 이해도조차 이 녀석들이 우세했다.
후웅-!
봐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 펜리르는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 방만 맞아도 골로 간다는 걸 알고 있기에 지금은 놈의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 버거웠다.
그나마 아직 라이프 파워의 효과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라이프 파워가 있어도 버티는 게 전부라니…….
공격을 피하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도중 스스로 만든 허리의 상처 통증에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 버렸다.
빠악!
그대로 펜리르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맞아버렸고, 한참을 날아간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바닥에 눈이 깔려 있어서 그나마 떨어지는 건 덜 아프네.
젠장…! 지금 죽으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위험해져.
나만 죽지 않아서야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System : 새로운 스킬 ‘라이프 파워x2’를 획득하셨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이에 눈앞에 간만에 반가운 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스킬……?”
[Active - 라이프 파워x2 Lv.Max
라이프 파워를 사용한 후에만 쓸 수 있다. 라이프 파워에 지불한 라이프의 2배를 더 지불한다. 라이프 파워의 남아 있는 지속 시간 동안 라이프 파워로 상승한 능력치를 다시 2배로 늘려 준다. - 쿨타임 48시간]
검을 많이 사용하면 검 숙련 스킬을 얻는 것처럼 스킬 역시 자주 사용하면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건가.
현재 내 라이프 파워는 5개의 라이프를 지불해서 2배의 능력치를 얻는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10개의 라이프를 더 지불하면 총 4배의 능력치를 얻을 수 있었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라이프 파워 더블 포인트!”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펜리르가 다시금 내게 달려들었고 놈을 향해 힘껏 대검을 휘둘렀다.
촤아앗!
“크에에엑!”
아무렇지 않게 발톱으로 내 검을 막으려고 했던 펜리르는 발톱은 물론이고, 자신의 한쪽 다리까지 잘려 나갔다.
발렌을 몰아세우고 있던 다른 펜리르는 비명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펜리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나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쌔엥-!
“형씨! 조심해!”
안타깝게도 이번 공격은 펜리르에게 닿지 않았다.
다른 놈까지 이쪽으로 오는 바람에 몸을 피해야만 했다.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내 속도와 파괴력, 그걸 떠나서 몬스터의 움직임까지 모든 게 확실하게 보였다.
라이프를 총 15개나 지불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나갈 수 있다면 내 라이프 정도는 기꺼이 내줄 수 있었다.
애초에 하루가 날 용병으로 데리고 온 것도 이런 이유였으니까.
“후우우…….”
버프의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이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죽으면 끝이다.
10분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비해야 했으며, 다시 여기까지 찾아오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라이프 파워 효과가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난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었다.
“크르르릉…….”
날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경계하고 있는 두 마리의 펜리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빠르게 한 마리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파앙.
쌓여 있는 눈을 밟고 앞으로 튕겨 나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펜리르가 입을 벌렸다.
이런…. 젠장……!
“쿠엑!”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포효 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온몸에서 위험하다는 경보를 울려 댔다.
빠악!
“컥……!”
“형씨 괜찮아?!”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발렌이 내 상처 부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찔한 통증 때문에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그 덕분에 로우 효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일단 괜찮은 거 같아.”
로우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니…….
또 전투에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상황을 읽지 못했다.
“정신 차려 형씨. 내가 옆에 있으니까.”
“…그래 지금은 혼자가 아니지. 그때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해라.
적이 가진 무기를 생각하고, 내가 가진 무기로 약점을 노린다.
타앗!
다시 한번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펜리르의 입이 벌어지는 걸 보는 순간,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카앙!”
로우를 쓰자마자 다시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스킬 효과로 인해서 지금 내 힘은 터무니없이 높였다.
아까 펜리르의 발톱까지 잘라 버린 게 그 증거였다.
적어도 지금 상태에선 이곳에 벨 수 없는 건 없었다.
“먼저 너부터다!”
다리 한쪽을 베어 둔 펜리르를 향해 힘껏 달려들어 대검을 내리쳤다.
펜리르는 입을 쩍 벌리며 내게 달려들었고, 그런 놈의 움직임마저 내겐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입이 벌어진 부분부터 몸의 끝까지 부드럽게 검이 관통하고 지나가자 펜리르는 반 토막 나며 바닥에 피를 흩뿌렸다.
[System : 블루 스톤x1 펜리르 가죽x1 날카로운 송곳니x2를 획득하셨습니다.]
“허억…. 허억…….”
펜리르를 하나 쓰러뜨린 건 다행이지만, 이 스킬은 아직 제대로 몸에 익지 않았다.
관절이나 근육의 반응이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라서 스스로도 감당이 되질 않았다.
특히나 이런 긴장 상황에서 낯선 몸을 컨트롤하려고 하니 부담이 상당했다.
물론 이런 것으로 투정 부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부웅-!
“크에에에엑!”
대검을 있는 힘껏 다른 펜리르 쪽으로 던졌고, 단숨에 바람을 찢고 날아간 대검이 놈의 어깻죽지를 뜯어냈다.
역시 컨트롤이 되지 않아서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다른 대검을 꺼낸 뒤 놈을 향해 겨누었다.
어쨌든 이만큼의 대미지를 주고 시작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형씨!”
“알았어!”
놈이 달려드는 것에 맞춰서 발렌이 펜리르의 상처 쪽을 몽둥이로 후려쳤다.
파악!
“케엥!”
깜짝 놀라며 자세가 무너진 틈에 내 대검이 펜리르의 목을 향해 그어졌다.
쌔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