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복수는 복수를 (2)
부웅-! 콰앙!
나보다 큼지막한 아이스 골렘의 주먹이 쉴 새 없이 휘둘러졌다.
주먹이 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동굴이 흔들렸다.
“크윽…! 이러다가 동굴이 먼저 무너지겠네.”
옐로우 라벨인 골렘이 이런 곳에서 튀어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정찰팀도 동굴 위치까지만 파악해 둔 상태였으니 골렘의 존재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이것도 던전의 이상 현상의 일부인가.
“괜찮아! 여긴 신경 쓰지 말고 고블린부터 처리해 줘.”
내 말에 발렌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고블린 학살을 시작했다.
그나마 발렌 덕분에 고블린은 신경 쓰지 않고 싸울 수 있겠군.
다행히 최상층에서 겪었던 전투들로 인해 내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 알 수 있었다.
전력으로 싸운다는 가정하에 옐로우 라벨에서 그린 라벨 사이 정도가 내 현재 레벨인 듯했다.
즉, 옐로우 라벨 정도는 무난하게 이기지만, 그린 라벨은 혼자서 버겁다는 의미다.
부웅-!
생각에 잠겨 있을 여유도 없이 다시 아이스 골렘의 주먹이 날아왔다.
카가각-
검을 비스듬히 들자, 아이스 골렘의 주먹이 묵직하게 나를 훑고 지나갔다.
기본적으로 방어는 약간의 체력과 장비의 내구도가 깎이지만, 회피보다 쉬웠다.
물론 가능하다면 회피를 하는 게 가장 좋다.
“후웁……!”
카앙-!
옆으로 흘려보낸 아이스 골렘의 주먹은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골렘의 팔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아이스 골렘의 체력이 깎여 나가는 게 보였다.
[2721/2855]
방금 타격으로 입힌 대미지는 대략 120 정도.
공격 패턴이 단순하고 움직임이 느리지만, 더럽게 단단하군.
체력도 옐로우 라벨 몬스터치고는 높은 편에 속했다.
문제는 뒤쪽에 아직 고블린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성가신 독에 맞기라도 하면 아이스 골렘을 상대하기 까다로워진다.
그리고 지금은 내 목숨뿐만 아니라, 발렌의 안전까지도 신경 써야 하기에 좀 더 움직임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순간 바닥에서 얼음송곳이 나를 찢어발길 것처럼 솟아올랐다.
카강!
갑옷 덕분에 거의 타격은 없었지만, 공격이 제대로 들어왔다면 꼬챙이가 돼 버렸겠는걸.
“…형씨.”
“왜? 뒤쪽 버거우면 도와줄까?”
내 말에 발렌이 바로 화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전혀 아니거든?!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그럼 뭔데?”
이내 굳은 표정으로 바뀐 발렌이 시선을 동굴 밖 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형씨 말고 다른 인간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거 같아. 다른 인간의 냄새가 나.”
“뭐? 그럴 리가……!”
보통 다른 팀이 들어간 게이트는 협회나 길드 시스템에서 공유되기 때문에 중복으로 입장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유지한 아저씨가 날 위해 인원을 추가로 보냈을 가능성이 가장 크긴 한데….
아저씨가 어째서?
만약 다른 사람을 함께 보낼 필요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같이 보냈을 거다.
대체 누가…….
쩌엉-!
내 검과 아이스 골렘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내뱉었다.
지금은 다른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닌가.
“라이프 파워.”
라이프를 계속 쓰는 건 아깝지만, 지금은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수밖에 없지.
현재 내 힘은 ‘77’로, 라이프 파워를 쓰면 무려 154까지 올라간다.
처음에 10으로 시작했던 걸 생각해 보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보통 골렘이라는 몬스터는 몸 어딘가에 ‘핵’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파괴하면 죽게 된다.
다른 골렘은 몸이 불투명해서 핵을 찾는 게 쉽지 않지만, 아이스 골렘은 말 그대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몬스터라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이스 골렘이 다시 날 공격하기 위해 주먹을 위로 들었고, 그 틈에 내가 먼저 몸을 날렸다.
쐐엣-!
검을 크게 휘둘러 아이스 골렘의 가슴을 후려쳤다.
까앙!
골렘의 가슴 쪽이 파괴되며 주변에 균열이 생겼지만, 핵까지 검이 닿지 않았다.
이내 아래로 떨어지는 내게 아이스 골렘의 입에서 튀어나온 얼음 창이 쏟아졌다.
파팟!
“크윽……!”
리치왕과 싸울 때 많이 겪어 봤던 빙결 마법이었기에 그 파괴력은 잘 알고 있었다.
[체력: 1850/2750]
뭐야…! 생각보다 많이 안 깎였잖아?
아무리 옐로우 라벨이라고 해도 대미지가 낮았다.
아…! 빙결의 갑옷 효과인가!
빙결의 갑옷에는 기본적인 방어력과 더불어 얼음 속성 공격에 대한 피해 감소 효과가 붙어 있다.
이 정도라면 좀 더 공격적인 전투가 가능해!
바닥으로 착지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다시 아이스 골렘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악!
이번엔 좀 아플 거다!
검을 아이스 골렘 가슴에 깊숙이 찔렀고, 골렘의 체력이 단숨에 깎여 나가는 게 보였다.
핵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조금 얕았는지 파괴되지 않았다.
“비켜, 형씨!”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급히 검에서 손을 떼고 골렘에게서 멀어졌다.
콰앙-!
이미 박혀 있던 검을 발렌이 몽둥이로 깊게 쑤셔 넣었고, 핵은 산산조각 나며 파괴됐다.
[System : 옐로우 스톤x2 골렘의 파편x1 골렘 소환서(3번)x1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여간, 나보다 오래 걸리면 어떡해?”
“흥. 나였으면 고블린쯤은 진즉 다 없앴을걸?”
“아아. 그러시겠죠.”
피식 웃는 발렌을 보고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어쨌든 발렌 덕분에 아이스 골렘을 빠르게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잠시 코를 찡긋거린 발렌이 다시금 동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어떻게 할까?”
“…일단 들어가 있어.”
발렌이 펫 시스템으로 들어갔고, 입구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뚜벅… 뚜벅…….
동굴 내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울렸다.
이곳에 있는 몬스터는 모두 쓰러뜨린 덕분인지 다른 소리가 없어서 동굴은 정적이 흘렀다.
“……!”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자마자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낯익은 얼굴. 아니, 내가 알던 얼굴과는 조금 달랐다.
“…오랜만이네.”
“민웅이 형…….”
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내 기억보다 조금 더 덩치가 커졌다.
짧은 머리카락에 갑옷을 두르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아련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이었다.
“형이 왜 여기에…….”
“네가 혼자 던전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도와주러 왔지.”
거짓말이다.
공략 중인 게이트에 대한 정보 공유는 이루어지지만, 누가 어느 게이트에 들어갔는지까지 상세한 내용을 공유하진 않는다.
유지한 아저씨가 굳이 박민웅에게 그런 정보를 줬을 이유도… 혹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진짜 다행이다. 난 네가 살아 있을 거라고 믿었어.”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동굴 벽을 강타한 뒤 내 귀에 들어왔다.
소리의 울림 때문인지 내 손이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돌려 말하지 않을게. 대체 왜 그랬어?”
사실 확신이 없다.
정황은 박민웅이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칼에 찔릴 때 들었던 목소리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먼저 선수 치기로 했다.
“설마 내가 까먹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형…. 아니, 당신 목소리를 내가 못 알아듣겠어? 하긴… 그때 당신은 내가 이렇게 다시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이해가 잘…….”
“게이트 안에서 당신이 날 찔렀잖아! 그 목소리도, 그때 쓰러져서 봤던 신발도 정확하게 기억해. 그리고 내가 갖고 있던 에렌 셀을 당신이 던전에서 갖고 나온 걸 본 사람도 있어.”
빙결의 갑옷을 입고 있는데도 몸이 굳어 버릴 것 같은 차가운 정적.
그 안에서 박민웅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내 사정 잘 알고 있잖아. 나… 부모님 병원 신세도 지고 있고… 결혼도 해서 이제 아이도 생겼어. 돈이 필요했다고. 이해하잖아. 그렇지?”
“…….”
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너도 살아서 나왔고, 나도 이제 나름 인정받는 헌터가 됐거든! 그 돈 몇 푼…. 내가 앞으로 천천히 갚아 줄 테니까.”
“제발…….”
“응? 이해해 주는 거지? 현아…….”
“제발…. 닥쳐…….”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이상한 감각.
분노라는 하나의 감정이 아니었다.
내 소중한 2년을 허비했다는 억울함, 그 긴 시간 동안 혼자서 버텨야 했던 율이에 대한 미안함, 믿고 따랐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런 쓰레기를 믿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
“어차피 밑바닥에 있던 너는 더 잃을 것도 없잖아. 누군가를 위해 죽는 건 오히려 기쁜 일 아니야?”
스르릉.
박민웅은 허리춤의 롱소드를 뽑아서 천천히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얌전히 사라져 줘. 그럼 아무것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이 사람은 원래 이랬던 걸까.
아니면 주변 환경과 자신의 처지 때문에 괴물로 변해 버린 걸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E급 헌터가 게이트를 혼자 공략하러 온 것부터 이상한 거 아니냐?”
타앗!
빠르게 내게 달려든 그의 검이 내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카각!
검을 들어서 가볍게 박민웅의 공격을 막아 냈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원래 정찰팀이었던 그였기에 이 정도가 한계인가?
확실히 박민웅이 지금 착용하고 있는 장비는 값이 나가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어이없을 정도로 하찮게 느껴졌다.
“다행이네. 솔직히 조금 걱정했거든. 당신이 범인인 걸 알면서도 내심 아니길 바랐고… 만약 맞다고 해도 내가 용서하게 될까 봐 무서웠어.”
“그게 뭔 소리야!”
타닷!
다시금 박민웅의 검이 휘둘러졌지만, 그의 검은 아무것도 베지 못했다.
왜냐면 검을 들고 있던 팔이 잘려 나갔으니까.
“뭐… 뭐야! 내 팔… 내 파아아알! 끄아아악!”
“그런데 다행이야. 당신을 죽여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워.”
그의 비명이 동굴 곳곳에 퍼지며 더욱 증폭되어갔다.
붉은 피가 어깨에서부터 진득하게 흘러내렸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당신의 칼에 찔리고 나서 나는 죽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초월 능력을 갖게 됐어.”
“……!”
“팔이 잘린 게 아파? 내가 그 고통을 몇 번이나 겪었을 거 같아? 열 번? 백 번?”
박민웅은 입을 뻐끔거렸지만, 무언가 말이 나오지 않는 듯 보였다.
극한의 고통…. 그 고통을 나는 익숙해질 정도로 많이 겪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고, 죽을 수 없는 게 그토록 잔인한 것이라는 걸 처음 느꼈다.
그런 지옥에서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옆에 있어 줬던 발렌과 항상 의지하고 있던 팀원들에 대한 생각 덕분이었다.
그런데…….
왜 당신이…….
“초… 초월…. 말도 안 돼!”
“쓰레기라 고맙다. 조금의 죄책감도, 조금의 망설임도 느끼지 않게 해 줘서.”
쌔엥-!
다시금 내 검이 그의 다른 팔을 훑고 지나갔고, 그는 이제 피가 흐르는 자신의 어깨조차 움켜쥘 수 없게 되었다.
“흐어억…. 컥…. 어억…….”
몸을 부르르 떨며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사… 살려줘…. 제발…. 살려 줘…! 뭐든 다 할 게…. 내가 가진 돈도 다 줄게.”
“…….”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그를 보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를 묶고 있던 사슬 하나를 끊어낼 시간이다.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