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30화 (30/176)

30화 : 복수는 복수를 (1)

[최현 Lv.27

체력: 2750/2750 마나: 270/270 기력: 30/30

힘: 77 민첩: 36 지능: 36

(사용 가능 포인트: 8)

라이프 : 601개]

간만에 능력치 창을 열어 보니 이제야 게이트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13층에 있을 때 차윤지와 대련을 하면서 라이프를 제법 소모했고, 그 후에 다른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었다.

현재 남은 라이프는 601개.

2층 게이트라면 라이프와 상관없이 공략할 수 있겠지만, 전에 그런 일을 겪어서인지 불안감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게이트 환경은 ‘설산’ 필드로 썩 반갑지 않은 지형이었다.

꿀꺽.

스마트폰으로 받은 보고서를 읽다가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게이트로 시선을 옮겼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게이트의 묘한 이질감이 싫었다.

“괜찮아! 형씨, 지금은 혼자가 아니잖아.”

머릿속에서 들려온 발렌의 목소리에 떨리고 있던 게 멈췄다.

그렇구나.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 게이트 안에 갇혔을 때도 발렌이 옆에 있어 줬고, 지금도 내 옆에는 발렌이 있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후우…. 추워.”

새하얀 입김이 입술을 비집고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쓸고 지나갔다.

“오래간만에 나오니까 좋네.”

나 혼자서 게이트 공략을 하니 발렌을 꺼내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E급 헌터와 함께 있는 것보다 발렌이 옆에 있어 주는 게 더 든든했다.

“정찰팀에 의하면 이곳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코볼트’랑 ‘고블린’ 정도인가 봐.”

“간단하네.”

발렌의 말처럼 두 종류의 몬스터는 레드 라벨로 가장 약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한 마리씩 상대하는 건 간단해도, 여러 마리가 한 번에 덤비면 혼자서는 상대하기 조금 까다로운 게 사실이었다.

“넌 안 춥냐?”

“우리 오크는 인간이랑 가죽부터 다르다니까. 이 정도 추위는 가소로운 정도지.”

간단한 차림새의 발렌이 허세를 부리고 있는 동안, 나는 몸을 벌벌 떨었다.

맞다!

그 순간 인벤토리에 있던 빙결의 갑옷이 생각났고, 바로 꺼내서 몸에 착용했다.

[빙결의 갑옷(상의)

지옥의 냉기를 끌어모아서 가공한 갑옷.

착용 시 추위에 대한 내성이 생기며 얼음 속성 공격에 대한 피해가 줄어든다.]

추위 내성 덕분에 신기하게도 아무런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와…! 이거 완전 좋은데? 하나도 안 추워.”

차갑게 쏟아내는 칼바람조차도 내겐 간지러운 산들바람처럼 느껴졌다.

“고블린이나 코볼트 모두 숫자가 워낙 많아서 정찰팀이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진 못했나 봐.”

아저씨가 준 지도를 보면 산을 중심으로 게이트 입구는 북쪽이었고, 서쪽엔 고블린의 동굴이, 동쪽엔 코볼트의 광산이 존재한다고 적혀 있었다.

결국, 산을 한 바퀴 돌아야 한다는 뜻이군.

그래도 이런 간단한 던전이라면 그 정도의 귀찮음은 감수할 수 있다.

스르릉.

오래간만에 제대로 몸을 움직일 생각에 묘하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킁…. 킁킁…. 온다.”

“뭐?”

발렌이 돼지코를 씰룩거린 것과 동시에 앞쪽에서 고블린들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작은 동물처럼 민첩한 고블린들은 펄쩍펄쩍 뛰어서 나와 거리를 좁혀 왔다.

“초록색에 뛰어다니는 게 개구리랑 다를 게 없네.”

“드디어 나도 활약할 수 있겠군.”

달려오는 고블린 쪽으로 발렌이 돌진했다.

부웅-!

고블린만큼 커다란 몽둥이를 힘껏 휘두르자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오싹하게 주변에 퍼졌다.

빠악-!

“켁!”

일격.

발렌이 몽둥이로 고블린을 내리치자, 고블린의 머리통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동조 덕분에 발렌도 내가 레벨업을 할 때마다 강해진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고는 생각 못 했다.

애초에 인간보다 뛰어난 근력을 갖고 있어서 상승 폭이 큰 건가?

나중에 돈이 많이 생기면 발렌에게도 좋은 장비를 맞춰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거야? 나 혼자 다 잡는다?”

발렌이 씨익 웃으며 내 쪽을 바라봤고, 나도 검을 뽑아 들었다.

신나게 날뛸 기회를 발렌에게 다 뺏기고 싶지 않았다.

타앗!

가볍게 바닥을 박차고 튕겨 나가서 달려드는 고블린을 향해 검을 쏘아냈다.

쒜엣-!

부드럽게 고블린의 몸을 베어 버리며 발렌의 옆에 설 수 있었다.

“자. 지금부터 누가 더 많이 잡는지 시합이다.”

“내기하는 거 어때? 내가 이기면 다른 라면도 먹게 해 줘. 형씨가 이긴다면 오크가 끓인 라면을 맛보여 주지.”

“그거 나한테 메리트 없지 않아?”

“라면을 끓일 수 있는 오크는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발렌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세상에 하나뿐인 라면 기대하겠어.”

부웅-!

큼지막한 검에 비해서 고블린은 너무나 작았다.

방어구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고블린은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죽어 나갔고, 온통 하얗던 주변이 점점 고블린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발렌과 함께 잡으니 생각보다 금방 정리됐다.

“하아…. 하아…! 슬슬 끝인가.”

“키… 키에엑!”

혼자 남은 고블린이 도망치기 시작했고, 고블린을 향해 힘껏 검을 던졌다.

푸욱!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고블린의 등에 검이 꽂혔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고블린을 보고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동안 승급 시험 때문에 몸을 쓰지 못했더니 스트레스가 풀리는구만.

[System : 레드 스톤x28, 고블린 가죽x5 낡은 단검x7을 획득하셨습니다!]

“방금 쓰러뜨린 수만 20마리 정도인가? 정말 끔찍하게 많군.”

“그러게. 고블린 동굴로 가면 이보다 더 많겠지? 벌써 토할 거 같아.”

고블린이나 코볼트나 내게 있어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은 몸체에 집단생활을 하며 성가신 공격을 해 오는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잔뜩 상대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겠어. 부탁을 받았으니 끝까지 제대로 해결하는 수밖에.”

레드 스톤은 특히 책정되는 가격이 낮아서 용돈 정도밖에 안 되지만, 수가 많고 혼자서 다 가질 수 있다면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번거로움만 감수한다면 추가 보수까지 얻을 수 있으니 나름 좋은 일거리였다.

사실 유지한 아저씨가 나한테 연락을 한 건 여전히 의아했다.

아저씨 말대로 2층 게이트를 공략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내가 아닌 다른 실력 있는 헌터들도 가능했다.

길드원들이 바쁘다고 해도 아저씨 정도면 주변에 아는 사람도 많을 텐데…….

“자자. 얼른 끝내자. 일찍 끝내면 이따가 석준이 만날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지도에 적혀 있는 곳을 따라서 이동하자, 커다란 동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정찰팀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까지 정확한 지도를 그린 그들에게 절로 감탄이 나왔다.

역시 신월 소속 정찰팀이라는 건가.

“미리 줄 테니까 이거 써.”

발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다른 몽둥이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어…? 나는 검이 있어서 필요 없는데?”

“형씨,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큰 무기는 벽에 닿아서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해. 동굴 벽면까지 같이 베어 버릴 게 아니라면 이 몽둥이를 쓰는 게 좋을걸.”

그의 말에 나는 얌전히 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확실히 아직 저런 동굴에서 전투해 본 적이 없으니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여전히 풋내기라는 건가.

문득 심윤성 아저씨가 나를 애송이라고 부르던 게 생각나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까의 전투도 있고, 계속 산을 따라 이동했기에 기력이 상당히 소모된 게 보였다.

“고블린 놈들을 정리하고 나면 잠깐 쉬는 게 좋겠다.”

“뭐, 형씨는 미리 쉬고 있어도 돼.”

어깨가 하늘까지 올라간 발렌을 보고 있으니 묘하게 귀엽게 느껴졌다.

사실 지금까지 발렌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발렌 역시 나와 동조된 후에 힘을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다.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키에엑…….”

“캬악…….”

안쪽에서 고블린들의 소리와 함께 살기가 느껴졌다.

어두운 동굴은 넓은 공간에서 싸웠던 것과 달리 섣부르게 움직이기 힘들었다.

여러 가지 환경에서 전투를 해 보는 건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과 아주 달랐다.

역시 경험만큼 좋은 건 없다는 건가.

“내가 먼저 들어갈게. 형씨는 뒤에 따라와.”

“그럼 내가 먼저 가는 게 낫지 않아? 난 어차피 죽는다고 해도 라이프가 많으니까.”

“설마 내가 고블린 따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물론 아니다.

동조 영향으로 단순히 발렌의 힘만 강해진 게 아니었으니까.

오크는 두꺼운 가죽과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는 특수한 눈을 갖고 있다.

동굴에서의 전투는 확실히 나보다 발렌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안쪽으로 이동할수록 길이 좁아졌고, 몽둥이도 팔을 크게 뻗으면 휘두르기 힘들어 보였다.

아까 들고 있던 대검은 여기서 제대로 들 수조차 없겠는걸.

파앗!

“……!”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고블린이 내게로 달려들었지만, 발렌의 손에 머리통이 붙잡혔다.

그대로 동굴 벽면에 고블린의 머리통을 꽂아 넣은 발렌이 인상을 찌푸렸다.

“짜증 나는 놈들이군. 하나씩 이렇게 툭툭 튀어나오다니…….”

“…검에 독이 묻어 있어.”

독이라는 말에 발렌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독이 발라진 단검

특수한 버섯에서 얻을 수 있는 마비 독이 발라져 있다.

독이 상처 부위로 들어가면 한동안 움직일 수 없다.]

아이템 정보를 볼 수 있는 덕분에 검에 묻어 있는 독이 치명적인 독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발라져 있는 건 마비 독이지만, 앞으로 위험한 독을 쓰는 놈들이 나올지도 몰라. 역시, 여긴 내가 먼저 가는 게 좋겠어.”

“…….”

발렌은 내 말에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꾹 깨무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분한지 알 수 있었다.

항상 위험한 상황에선 나서지 못하니 답답한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난 발렌에게 위험을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후우…. 이제 좀 살겠네.”

좁은 길목을 통과해서 동굴 안쪽으로 들어오자 넓은 공간이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여기저기 숨어 있는 고블린들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며 노골적인 살기를 내뿜었다.

“이런 곳이라면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있겠네.”

곳곳에 숨어 있는 고블린들 중에는 활이나 새총을 들고 있는 것도 보였다.

아까 단검을 보면 화살촉에도 뭔가 다른 걸 묻혀 뒀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 일단 원거리에서 공격해 오는 놈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잠시 발렌이 준 몽둥이를 집어넣고 다시 대검을 꺼내 들었다.

“활이나 새총을 가진 놈들부터 없애 줘! 성가시니까.”

“맡겨 둬!”

동시에 발렌과 반대 방향으로 뛰쳐나가서 활을 들고 있는 고블린의 목을 베어 버렸다.

워낙 고블린의 숫자가 많아서 대검을 휘두르면 여러 마리에게 대미지가 들어가는 일도 많았다.

캉- 카캉!

뒤에서 날아온 화살과 돌멩이에 잠시 몸을 바위 뒤로 숨겼다.

갑옷 덕분에 조잡한 고블린의 화살은 튕겨낼 수 있지만, 혹시라도 틈새에 맞으면 중독될 위험이 있다.

“형씨! 뒤에!”

쿠웅!

발렌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뒤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곳엔 차가운 얼음으로 온몸이 뒤덮인 아이스 골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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