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승급 시험 (4)
“이 질문들도 점수에 포함되는 것이니 신중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먼저 팀장인 최현.”
“네……!”
손을 살짝 들자, 그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임무에는 조를 나눠서 이동하라는 말이 없었는데, 굳이 2인 1조로 나눈 이유가 뭐지?”
“정찰팀은 기본적으로 2개의 조로 움직이는 게 정석이기 때문입니다. 팀 전체가 같이 움직이면 안전하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입니다. 그리고 넓은 게이트에서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몬스터와 지형이 발견되니까요.”
시험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스콜피온을 만났다고 가정한 상황에서 임무를 포기하고 돌아간 이유는 뭐지?”
“팀장은 그 무엇보다 팀원들의 목숨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 팀의 전투력은 E급 헌터 4명이 전부니까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게 임무 실패로 처리된다고 해도 말인가?”
시험관의 선글라스 너머로 날카로운 눈매가 어렴풋이 보였다.
“공략팀은 게이트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게이트를 없애는 궁극적인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실패와 성공이라는 게 명확하죠. 하지만 정찰팀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밌는 말이군. 어째서지?”
“얼마나 목표치를 달성했는지는 존재하지만, 실패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목표치를 달성할수록 공략팀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니,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좋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목표 지점까지 0.5km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팀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험관은 내 대답에 무언가를 종이에 끄적였다.
그러곤 이내 시선을 이유리 쪽으로 돌렸다.
“자네는 어째서 스콜피온과 맞서 싸우려고 했지?”
살짝 당황한 듯한 이유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찰팀이 몬스터에게 기습을 받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고, 넓게 트인 공간에서 다른 스콜피온이 오는 건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시험관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만약 지금 상태로 자네가 D급 임무를 받고 실전에 투입된다면 1년 내로 죽는다에 내 전 재산을 걸지.”
“……!”
“그게 무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유리가 씩씩거리며 시험관을 노려봤다.
“자네의 실력은 스콜피온을 제압할 정도가 아니었어. 심지어 쫓아내기에도 부족한 역량이었지. 적의 강함을 모르는 것보다 자신의 약함을 모르는 게 더 위험한 법이다. 그리고 주변 시야가 트여 있다고 해서 적의 기습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거기까지 가면서 발견한 몬스터는 뭐가 있지?”
“스콜피온이랑…. 샌드맨…. 아…….”
무언가 깨달은 그녀가 작게 탄성을 흘렸다.
샌드맨은 모래 속에 숨어서 이동하고 적을 기습하는 몬스터였다.
즉, 주변의 시야랑 상관없이 언제든 공격해 올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정찰팀에게 필요한 건 몬스터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이 아니다. 몬스터에 대한 지식과 주변 지형에 대한 정보 수집, 그리고 그걸 토대로 얼마나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지.”
“…….”
고개를 떨군 이유리는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어쩐지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굳이 돌려 말하지 않겠다. 자네들은 이번 시험에 합격했다.”
“……!”
갑작스러운 시험관의 발표에 다른 팀원들은 물론이고 나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부분 수험생은 스콜피온이 막고 있는 곳을 지나서 어떻게든 목표 지점에 가려고 했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다. 이미 그곳에 스콜피온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정찰팀은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게 되지.”
“아싸!”
최연환이 신이 난 표정으로 소리쳤고, 시험관의 날카로운 눈매가 그에게 향했다.
다급히 자신의 입을 막은 최연환이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 사람이 많은 역할을 해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게이트 안에서 팀은 하나. 누가 잘했든 팀의 공적은 함께 인정받아야 한다. 지금은 부족하고, 잘못된 판단을 했던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 시험을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것들을 배웠을 테고, 누군가는 큰 동기를 얻었을 테니 앞으로 좋은 헌터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라 믿는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시험관이 밖으로 빠져나갔고, 우리는 그제야 마음껏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D급 헌터…. 진짜로 내가 E급을 벗어났어!
“형! 고마워요. 형 덕분에 합격한 거나 다름없어요!”
“아뇨, 그럴 리가…….”
타악.
그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유리가 대기실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녀의 행동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강주성에게 다가간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건넸다.
“…잘 부탁합니다.”
강주성은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저 녀석, 바보는 아니니까요.”
주섬주섬 짐을 챙긴 강주성은 이유리를 따라서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진급 시험에 합격한 건 기쁜 일이지만, 기분이 찝찝한 건 지울 수 없었다.
“원래 시험 결과가 이렇게 바로 나오는 건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나 역시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아직 보고서를 내지도 않았는데 바로 합격 통지를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시험장 밖으로 나와서 석준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사막 필드지만, 듣기로는 여러 가지 필드에서 동시에 시험이 진행된다고 했다.
원래 D급이었던 석준이는 다시 활동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는 거라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뭐야! 너 합격했어?!”
나를 발견한 석준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어 왔고, 나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캬아! 역시! 믿고 있었다고!”
나를 꽉 껴안은 석준이는 즐거운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합격이야! 오늘 합격한 팀은 3개뿐이라던데, 그중 너랑 내가 속한 팀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게 정말이야?! 시험 지원한 사람은 천 명 정도라며.”
“그니까 대단한 거지. 가자,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쏜다.”
지이잉- 지잉-
석준이를 따라서 걸어가려던 차에 울리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유지한 아저씨’라고 적힌 이름을 보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현아, 오늘 진급 시험 봤다며? 어떻게 됐어?”
“아…. 아저씨!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원래 그런 정보에 빠삭하지.”
“합격했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내 말에 나보다 더 기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오오! 합격할 줄 알았다고!”
어이가 없고 고마워서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승급 시험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연락한 것도 있지만, 다른 부탁이 있어서 연락했어.”
“네? 부탁이요?”
신월 길드의 실질적인 힘을 가진 유지한 아저씨가 내게 부탁할 게 있다는 말에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네가 공략해 줬으면 하는 게이트가 있거든. 급한 일 없으면 자세한 내용은 일단 우리 길드로 와서 얘기하자.”
“아….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석준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미안! 나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은 일찍 가 봐야겠다.”
“뭐? 그런 게 어딨어! 축하 파티해야지.”
“미안하다니까! 다음에 내가 더 맛있는 걸로 제대로 쏠게!”
“야! 잠깐만!”
뒤에서 들려오는 석준이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어쩐지 길드가 휑하네요.”
“사실 우리 길드 인원들 대부분이 급하게 게이트 공략에 나갔거든.”
신월 길드 건물 내부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넓은 건물에 사람이 없으니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었다.
“최근에 게이트가 이상할 정도로 많이 생길 때가 있어서 말이지. 아무래도 근 2년간 던전이 변화하고 있는 거 같아.”
“2년이라면…….”
“그래. 네가 게이트에 갇혔던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던전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아저씨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던전은 어디까지나 미지의 공간이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 헌터들은 항상 지금까지 얻었던 정보들을 토대로 행동했지만, 만약 그 정보와 전혀 다른 일이 발생하면 큰 피해를 볼지도 모르지.”
커피를 한 잔 마신 아저씨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했다.
“아무튼, 지금은 너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어.”
“아까 통화로 말하신 게이트 공략에 관한 건가요?”
“맞아. 이런 긴급 상황에서는 협회랑 사설 길드가 협력하는 게 일반적이거든. 발생한 게이트의 수와 등급을 파악하고 길드별로 공략할 게이트를 분배하게 돼. 그래서 인원을 모두 보냈는데 남아 있는 게이트가 있어서.”
아저씨의 말에 걱정이 되기 시작한 내가 물었다.
“그 말은 저 혼자서 게이트를 공략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래 봐야 2층에서 발생한 게이트고, 너 정도 실력이면 여유롭게 가능할 거라 판단했어. 물론 어디까지나 나는 부탁하는 처지니까, 네가 싫다면 거절해도 좋아.”
혼자서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다.
하필이면 내가 갇혔던 게이트처럼 2층에서 발생한 게이트였고, 그건 묘한 트라우마를 일으켜서 몸을 떨리게 했다.
“정찰은 끝내 둔 상태야. 그다지 특별해 보이는 건 없었고, 네가 가겠다고 한다면 정찰 보고 내용을 보내 줄게. 아, 그리고 이런 상황에선 추가 보수까지 나오…….”
“가겠습니다.”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고, 아저씨는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보수가 아니더라도 아저씨의 부탁이니 웬만하면 들어줄 생각이었다.
절대 혼자서 들어가면 모든 보상과 보수를 먹을 수 있으니 생각보다 짭짤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계산이 끝나서 그런 건 아니다.
“난 너의 그런 속물적인 부분도 마음에 든단다.”
“…칭찬이죠?”
아저씨는 곧바로 깔끔하게 정리된 지도와 보고서를 보내 주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갑자기 곤란한 부탁을 했는데도 들어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내게 연락해서 부탁을 한다는 건 그만큼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아저씨의 이런 행동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내 레벨보다 낮은 몬스터들이 나올 테니 라이프를 늘릴 수는 없겠지만, 여러 몬스터와 전투 경험을 쌓는 건 중요했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상당한 압박이 느껴졌다.
간만에 던전 앞에 서자,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후우…. 진정하자.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다.
이미 정찰도 끝낸 상황이고 보고서를 읽어 봐도 이질적인 부분은 없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